#1 보증금과 월세, 이거 조삼모사 아닌가?
2년째 취업 준비중인 A군, 그는 높은 대학 등록금 탓에 수업을 마치고 매일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한다. 취준에 학교에 아르바이트까지… 이런 그에게 ‘집’이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내집마련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몸 하나 눕힐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만족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조차 어렵다. 치솟는 월세값과 전세난의 칼바람이 부는 부동산 시장 앞에서, 집 장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행복주택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지하철 광고를 이해하자마자?부리나케 컴퓨터 앞에 앉아 행복주택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보증금 옆에 적힌 숫자. 0이 유독 많아 보인다. 하나 둘 셋… 순간 A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500도 아니고, 5000만원이다. 월세를 조정하면 보증금을 낮출 수는 있다지만, 그래도 수입원이 없는 가난한 취준생에게는 여전히 높은 금액이다.
A군은 허탈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잡은 손을 내려놓았다.?그리고 이내 짧게 읊조렸다.
“그러면 그렇지.”
싼데 싸지 않은 월세와 보증금
행복주택의 표준 임대료 정책은 다음과 같다. 주변 지역 전월세 시세를 추합하고, 그 시세의 60-80% 범위에서 입주계층에 따라 차등 부과한다. 주변 시세보다 무조건 싸게 매긴다는 점에서, 월세 숫자만 놓고 보면 훨씬 저렴해 보인다. 구체적인 부과 비율은 다음과 같다.
대학생: 시세의 68%
사회초년생: 시세의 72%
신혼부부, 산업단지 근로자: 시세의 80%
비취약 노인 계층: 시세의 76%
취약 계층: 시세의 60%
그러나 이 주택의 대상이 “경제 활동이 어려운 청년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이 아니다. 핵심?문제는 보증금이다. 서울 삼전지구가 입주 신청을 받을 당시의 언론 보도를 보면, 사회초년생이 26㎡ 주택에 입주하는 데는 월세 23만 5천 원, 보증금 4,032만원이면 된다는 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20㎡ 주택에 입주하는 대학생의 경우, 보증금 2,992만원에 월 17만 5천 원쯤이라는 얘기가 나왔었다.
이에 반해 서울시 SH공사의 대학생 희망하우징은 강동천호 지구전용 12.6㎡ 임대료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가 10만 2천 원으로 잡힌다. 1㎡ 기준으로 행복주택은 12,400원, 희망하우징은 8,400원 꼴이다. 행복주택의 월세-보증금 전환율을 어림잡아 따져 봤는데, 보증금을 2,000만원 낮출 경우 월세가 10만 원쯤 올라간다. 월세를 많이 내든 보증금을 많이 깔든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 꼭 이런 건 나는 해당이 안 되더라
그날 저녁 A군은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행복주택에 대한 불만을 속 시원히 풀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돌아오는 대답은 A군의 기대와는 달랐다.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 넌 그나마 자격 요건이라도 되지 않느냐, 너 지금 사람 약올리냐 등등.
오히려 비난의 화살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에 놀란 A가 되물었다. “야 너네도 이거 해보려고 했었어?” 돌아오는 답들을 들어 보니, 친구들이 그렇게 반응할 만도 했다. 행복주택 입주 자격 요건에는, A군의 친구들을 포함한 청년층 상당수가 입주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 A군은 처음 꺼냈던 말을,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시 건넸다.
“야, 우리 술이나 한 잔 하자.”
넌 이래서 안 되고, 넌 저래서 안 돼
1) 대학원생의 경우
원래 ‘대학원생’은 행복주택의 자격요건에 해당되지 않았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연장한 것’이기 때문이란다.
행복주택 입주자 대상에 왜 대학원생·취업준비생이 빠져 있느냐는 지적을 받은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 행복주택 입주자 자격에 ‘졸업 후 2년 이내에 있는 대졸자들’을 추가해 조건을 개정하고 “대학원생도 행복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라고 홍보하기 시작했다.?하지만 한국의 실업률이 여전히 높고, 취업을 미루기 위해 대학원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아, 실질적으로 대학원에는 ‘학부 졸업 후 2년 이내’인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출신 대학(학부) 연접 지역”
기본적으로 행복주택에 대학생이 입주하려면, 그 근처에 자기가 다니는 대학이 있어야 한다.
학부생의 경우 그 행복주택이?본인의 학교 근처 부근이 아닐 때는 행복주택을 신청할 수 없다. 이는 학사 졸업 후 2년이 지나지 않은 대학원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입주 가능 지역이 ‘출신 대학(학부)의 연접(인접) 지역’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지방에서 대학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는 사람의 경우, 서울 행복주택에는 입주할 수 없다. 출신 학부 대학 인접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3) 2년이 넘은 경우
행복주택 입주 자격 요건에는 유난히 ‘2년’이라는 기준이 자주 나온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설정된 ‘2년’인지 알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대학 학부 졸업 후 2년의 요건도 있지만, 올해부터는 ‘대학이나 고교 졸업 또는 중퇴 후 2년 이내’라는 조항도 새로 붙었다. 이론상으로는 고졸 20대나 취준생들도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처럼 생존에 내몰려 살아가는 2030들에게 2년이라는 시한이 충분한 유예의 기간인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고등학교까지만 나온 후 몇 달 놀다가 군대를 다녀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2년이 지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3 엄마 그 차 내 명의였어요…? 아니… 왜?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들의 원성이 하도 드높아, A군은 그들에게 좀 덜 미안하기 위해서라도 울며 겨자 먹듯 입주자격 자가진단을 해 본다. 학교 주소지가 서울에 있긴 하니까 YES,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해 봤으니까 NO… 하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멈칫한다. “본인이 소유한 자동차나 주택 이외의 부동산이 있나요?”
그리고 A군은 그날 굳이 걸지 않아도 좋았을 한 통의 전화를 건다. 지방 본가에서 쉬고 계시던 A군의 어머니께서 전화를 받으신다. A군이 물었다. “엄마 혹시, 그 아부지 차 있잖아요, 그거 누구 명의였지?” 어머님이 해맑게 대답하신다. “아 그거 니 차다! 니 나중에 취직할 때쯤 느 아부지 은퇴하면설랑 물려 타라고 이름만 그래 해놨었지? 왜, 필요하나?”
A군은, 불효인 줄 알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한 마디를 주체하지 못한다.
“엄마, 나한테 왜 그래요?”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자산/소득 기준
올해 3월부터 행복주택 입주 조건은 더 까다로워졌다. 우선 자산 기준이 공공임대에서 국민임대 수준으로 강화됐다. 2016년 기준으로 행복주택 지원자가 넘지 말아야 할 자동차 및 (주택 외) 부동산에 대한 자산가치의 한계는 다음과 같다. (부동산은 공시 가격, 자동차는 보험금 산출을 위해 사용하는 기준가액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 기준도 매년 바뀐다는 점에서 불안한 변수다.)
산업단지 근로자, 사회초년생, 신혼부부:?자동차 2,767만원 이하, 부동산 2억 1,550만원 이하
취약계층, 대학생:?자동차 2,465만원 이하, 부동산 1억 2,600만원 이하
소득 기준도 여전히 장벽이다.?‘본인, 부모 합계 소득이 평균 소득의 100% 이하’여야 하고, 해당 세대의 자산이 ‘별도의 자산 기준’ 이하여야 한다. 2016년 기준으로?그 평균 소득은 월 481만원이다. 다시 말해, 부모님이 버는 세전 기준 월 수입과 내 월수입을 합쳤을 때 481만원을 넘으면 신청이 되질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비관할 여지가 분명히 존재하는 사업
2015년 대학 졸업생 취직률 55%
청년층 고용률 40.7%
계속되는 취업난에 ‘수저계급론’이 떠돌고 “헬조선”이라는 나라가 바짝 다가온 지금, 행복주택은 A군처럼 힘들고 빡빡하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따스한 햇살 같은 존재가 될 것만 같았다.?대학생·사회초년생 등 주거 취약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고, 직장과 학교에 가까운 공공임대주택을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공급하며, 개정 조항만 살펴보면 지원 가능한 사람의 범주는 점점 넓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부담스러운 비용, 실제 청년 중 상당수를 입주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예외조항, 누가 순순히 통과할 수 있을까 싶은 각종 기준 등을 보면, 이게 과연 진정한 ‘행복 주택’인지, 아니면 취지만 거창한 거품 정책이 아닌지 두고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사업의 혜택을?진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민임대주택보다 1,000만~3,000만 원 이상 높게 나오는 보증금은, 과연 행복주택의 취지를 반영하고 있을까? ‘학부 기준 대학교의 소재지’는, 과연 어느 대학생에게나 공평한 ‘연접지역’ 기준일까? 명목상의 소득이나 자산도, 무조건 그 청년의 재산으로 보아서 ‘그거 팔아서 알아서 집 구해라’ 해도 되는 것일까??행복주택의 정책과 방침에는 비관적인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적어도 A군에게는 충분히 부담스러운 장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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