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뒷모습을 향해 우리는 뭐라고 말하고 있나
이번에는 재범이었기에 실형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첫 정규작 <The Anecdote>가 완성되었을 시점에서, 이센스(E-SENS)의 대마초 흡연이 또 적발된 것이다. 그는 결국 1년 6개월 형을 받았고, 졸지에?<The Anecdote>는 ‘옥중 앨범’이 됐다. 이센스 특유의 유려한 랩과 솔직담백한 가사, 날선 태도와 굴곡진 인생 스토리 위에 심지어 수감 이력이라는 ‘스트릿 크레디빌리티’까지 합쳐져 이 음반은 명반의 반열에 올랐지만, 이센스 본인은 얼마 전 세상으로 나와 자신의 고향 경산으로 돌아갔다.?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원래 전역일이 지나자마자 활발하게 활동을 재개한 스윙스(Swings)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제 그에게 붙는 딱지는 여러 개다. ‘한때 많은 인기를 누렸던 래퍼’, ‘마약에 중독돼 모든 걸 그르친 망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독고다이’… 적어도 일반적인 대중의 시선에서 해석되는 이센스는 대체로 이럴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이센스가 대마초를 피웠다’라는 팩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사람들로 하여금 범죄를 규정하고 금기시해야 할 것을 정의하게 해 주고, 그래서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팩트’를 그렇게도 좋아하니까.
내가 궁금한 것은 대마에 관한 팩트 자체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법과 문화가 그 팩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가 궁금할 뿐이다. 과연 대마는 백해무익한 작용만 하나? 대마가 중독성이 있기는 한데, 그러면 대마 흡연자는 그의 능력이고 가능성이고 볼 것 없이 덮어놓고 감옥에 보내야만 되는가? 백보 양보해서 정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왜 해외의 적지 않은 나라들이 종종 대마에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는 있을지언정, 범죄시하지는 않는 추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그 ‘금지’를 스스로 결정해본 적이 있나
대마는 동서고금에 가장 흔하고 친숙한 약물 성분의 원천이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삼베 모시옷을 만드는 식물이 바로 대마라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마를 규제하거나 금기할지언정?권장하지는 않는 것이 전세계적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대마를 법으로 금지한 역사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대단히 수동적으로, 남들이 제시한?가장 강력하고 권위적인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여, 재고 없이 계속 가고 있다는 점이다.
대마 금지 조항은?‘조선마약취체령’에서 처음 나오는데,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공표한 것이었다. 해방 이후 1973년에는 박정희 정부가 대마초를 범죄로 규정하는데, 이는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 베트남 전쟁 참전에 반대하는 히피들을 억압하기 위해 대마초를 강력히 금지하는 기조를 일견 수용한 것이었다. 20세기는 그런 시대였다. 식민지 제국주의가, 강력한 정부의 요구가 사회의 도덕률과 법령에 비판 없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었던 시대.
하지만 21세기에 즈음해서, 그 규제의 원조였던 미국은 대마를 바라보는 태도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1996년에 의료용 대마를 허가한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현재는 콜로라도 주를 비롯한 몇몇 주가 대마를 오락용으로까지 허가한 상황이다. 대마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서, 지난 6월만 해도 대마초의 주성분인 THC가?치매 유발 단백질을 제거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마를 적극적으로 진지하게 탐구하고 판단해 본 결과, 위험성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효용성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박정희 시대 이후로 업데이트가 전무하다. 적용이나 탐구는 고사하고, 우리의 법과 관점은?여전히 대마를 죄악시하고 강력 규제하던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대마는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강력범죄가 되는 물건이며, 그걸 피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숱한 많은 아티스트들의 커리어가 중단되곤 했다. 걸그룹이 활동을 하려고 해도 발목이 잡히고, 심지어 “이거 듣고 나면 대답해 개코”를 뱉으며 판 자체를 디스한 시도마저도 “약 빨았네” 두 마디에 입을 다물어야 하는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마의 위치다.
있는 걸 없는 체하고 무조건 눌러만 둘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법이 사람보다 먼저 있지 않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양상, 새롭게 밝혀지는 과학적인 자료에 의해 법규와 규제와 사고방식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침해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법이나 체제라는 것은 엄연히 있는 걸 없는 척하고 무조건 누르기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워낙 많은 21세기에는 특히 그렇다. 그것들을 사회 안으로 수용할 방안을 법과 시스템이 부지런히 찾아낼 때에야, 세상은 좀더 불편 없고 괜찮은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20세기의 시스템은 아직도 그때 그 모습으로 살아 있어서, 범죄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을 범죄시하거나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것을 위협으로 규정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은 청소년 컴퓨터 게임 시간에 ‘셧다운’을 걸고, 길거리 흡연 문제를 전면 금연 정책으로 짓눌러 버리며, 세상에서 제일 흔한 약물을 구시대의 관점에 따라 노골적으로 원천 차단하는 곳이다. 어떤?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그 문제점은 무엇인지, 어떤 해결책이 적절한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강화해서 인간의 욕구를 틀어막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대마 비범죄화’, ‘합법화’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마는 심리적 중독만 일으킬 뿐 화학적 중독성은 거의 없다시피하며, 화학적으로 제조되지 않는 천연 물질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담배보다도 건강과 환경에 덜 해로울 수 있으니 우리도 대마초를 범죄 취급하지는 말자는 의견이다. 이처럼 진지하고 합리적인 탐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언론은 습관처럼 “연예인 A씨”의 대마초 흡연 뉴스를 내보내고, 우리는 혀 한번 쯧쯧 차고 지나가고,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는다.
문득 생각해 본다. 대마초가 어느 정도 합법화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담배 진열대에 ‘대마초갑’이 추가될 것이고, 몇몇 성인들이 주변 사람들의 잔소리를 들어 가며 성분이 조절된 공식 대마초 상품에 조금씩 취미를 붙일 것이다. 굳이 더 생각해 보자면,?이센스가?<The Anecdote> 이후의 활동을 좀더 떳떳하게 전개하면서,?‘한국담배인삼대마공사’로 이름을 바꾼 KT○G와의 협업으로 ‘코리안 위드’ 홍보 광고를 찍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이상은, 글쎄, 의외로 별일 없을 것 같다.
이게 그렇게 많이 나쁜가?
적어도 최정상급 문화예술인들을 이런 식으로 부질없이 투옥시키는 것보다는 나쁘지 않은 얘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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