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티커를 가지는 이유
밥 한 끼가 6~7천 원을 금방 넘어가고, 한 번 이동할 때마다 3~4천 원이 나간다. 끊임없이 모든 게 오르지만 우리의 수입은 그저 찔끔찔끔 오를 뿐이다. ‘그래도 살 수는 있는’ 삶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작금의 현실을 개탄한다! 아, 고등학교 시절 꿈꿨던 자아 실현이며 사망년부터 취준 시절까지 바라 왔던 쪼들리지 않는 삶은 다 어디 갔단 말인가??그렇게 딱히 희망이랄 것 없이 하루하루 ‘살아질’ 뿐이라고 느낄 때쯤, 아주 대단치는 않지만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를 주는 게 내 삶에 등장했다. 스티커였다.
아니 이게 무슨 팔에 와우풍선껌 스티커 붙이고 타투했다고 우기는 개소린가 싶겠지만,?적어도 74.21% 정도는 진심이다.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누군가에게서 얻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몇몇 스티커를 스케줄러와 노트북과 노트에 붙이면서 왠지 모를 희미한 즐거움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스티커는 최소 비용 혹은 무비용으로 소소하게, 상대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최강의(!) 아이템이다. 뭐가 그렇게 쩌는지는 지금부터 살짝 덕내를 풍겨가면서 얘기해볼까 한다.
스티커를 가지는 취미의 좋은 점들
1. 돈이 안 들고 부담이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 우린 돈이 없고, 그래서 문화생활을 포기하거나 축소하고 산다. 그런데 스티커는 제작 단가가 대단히 낮아서 유난히 돈이 덜 드는 취미다. 조금이라도 여기저기 다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스티커는 무료로 뿌려지는 경우가 많다. 전시회든, 공연이나 파티든, 집회든 자기 취향에 맞춰 다니다 보면 허락 없이 거저 가져가도 되는 스티커 더미를 종종 만날 수 있다. 판매용으로 제작된 스티커 상품도 그리 비싸지 않다. 홍대 합정 근방의 편집샵이며 플리마켓에 가 보아도, 끽해봐야 단돈 천 원 선이다.
그래서, 스티커는 아무리 많이 주고 받아도?부담스럽지가 않다. 편의점의 나무젓가락이나 카페의 빨대, 식당의 일회용 냅킨은 어쩐지 가져오기 뭐하지만, 이상하게도 스티커는 그 한 장의 가벼운 무게만큼이나 사람들 마음속의 짐도 가볍게 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다지도 모두를 즐겁게 하면서 현실적인 걱정을 하지 않게 해 주는 아이템은 달리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것이 앞으로 나와 당신이 더 많은 스티커를 만들고, 찾고 원하게 될 이유이다. 뭐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런 부분도 없지 않고.
2. 없으면 만들 수도 있다
어떻게 그렇게 값싸고 부담 없을 수 있냐고? 간단하다. 제작비가 정말 적게 든다. 기본 제작 단위는 보통 1천 장이며 그 금액은 보통 1만 원 안짝이다. 이러니 무료 배포나 1개 천 원 미만 단가가 가능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금전적 여유가 아주 살짝이나마 있는 대신 집-학교-직장의 삼각지대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신세라면, 스티커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래저래 다녀도 원하는 스티커를 막상 구하지 못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고, 돈 없는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문화 생활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실천한 적도 있다. 지름 7cm 정도의 원형 스티커를 만들면서 2만 원쯤을 냈더니,?비교적 좋은 재질의 스티커 1천 장이 집에 배달돼 왔었다. 오직 당신만을 위해 제작된 디자인 소품을 온 사방에 붙이고 나눠주면 그야말로 ‘기분이 조크든요’. 이 가격대에 이 정도의 ‘폼’이 나는 문화생활은 스티커 말고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자작 스티커는 도전해볼 만한 취미다.?어쨌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돈 쓰는 일을 낭비 혹은 사치라고 죄스럽게 느낄 정도로 돈이 없이 살고 있으니까.
3. 소소하게 나누며 내가 누군지 얘기할 때 그만이다
스티커가 남는다고 해서 부담스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주변 사람에게 나눠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스티커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감흥을 보여주지 않겠지만, 예컨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아니면 빌려준 물건을 쓰고 돌려줄 때 하나씩 얹어주기에는 더없이 좋다. 매번 비타민 음료 박스를 얹어주기에 우리는 돈이 너무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혹시라도 이게 뭐냐는 궁금증 가득한 시선을 만나면, 쿨하게?그 스티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마도 당신은 상대방에게서 작게나마 동경과 귀여움을 사게 될 것.
이뿐이 아니다. 스티커는 단체나 집단이 특정 브랜드나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당신이 그런 단체나 브랜드나 이벤트를 안다는 사실을 슬쩍 드러내어 당신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스티커는 탁월한 매개체다. 마음에 들었거나 당신과 맞는 스타일의 스티커를 발견하면 주저 없이 구하고 붙여서 과시하자. 왠지 돈 없이 사는 게 티가 날 것 같다고? 천만에,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해도 좋다. 스티커로 관심사의 공통분모를 찾게 되어 친해지는 사람이 생기는 보너스는 있을지언정.
스티커를 가질 수 있는 곳
직접 만드는 경우가 설명하기는 가장 쉬우므로 먼저 살펴보자면, 초록 창에 “(소량) 스티커 제작”이라고만 치면 업체가 쭈루룩 나온다. 그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서 달라는 파일을 보내 주고 견적 확인한 다음 결제하고 잠시 기다리면 끝이다. 어느 업체든 당신이 주는 jpg 파일이나 ai 파일을 그대로 인쇄해줄 것이며, 대부분의 업체가 디자인, 크기, 재질 등을 오픈마켓 상품옵션 고르듯 클릭 몇 번으로 쉽게 정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가끔 보면 딱 1장 제작도 해 주는 업체도 있을 정도니까, 그야말로 당신 마음대로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이 별로 없으므로, 공짜로 스티커를 획득하는 법을 설명하겠다. 홍대~합정을 비롯한 마포구 일대의 “스트릿”하거나 “인디”한 카페 멀티샵, 서점 등의 문화 공간을 잘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특이점이 오는” 스티커를 하나쯤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집어오면 된다. 그것도 막막하다면 노트북이나 공책 등에 오만 스티커를 다 붙이고 다니는 주변 사람을 찾아가 “이거 (어디 가면) 있어?” 물어보자. 여유분을 받거나, 정보를 구하거나, 적어도 그 스티커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거나 할 수 있다.
정말 탐이 나는 스티커는 간혹 유료일 수 있지만 쫄지 말자.?가볍게 놀러 다니다가 종종 눈에 들어오는 녀석이 있다면, 여유롭게 싱긋 웃으며 집어들고 카운터로 가면 그만이다. 돈이 없어서 지나가다 휙 보고 탁 결제하는 ‘지름’의 즐거움을 스티커로 느껴 보자.?그저 조금이라도 더 싼 것, 더 ?푸짐한 것 찾느라 눈이 빨개져서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삶을, 당신의 취미생활에서까지 반복할 필요는 없다.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삶의 질과 라이프스타일을 이 정도로나 향상시켜 주는 호화로운 취미가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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