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스타임라인 (2016. 4. 11. ~ 2016. 11. 1.)
트웬티스 타임라인의 주간특집 연재 시리즈, 먼데이스타임라인이 장장 7개월의 여정을 마치고 11월을 맞아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행복주택’에 대해 친구로부터 ‘까똑’을 통해 소개를 받는다는 내용을 제1탄 제1화로 하여, 대학 내 성폭력 문제부터 ‘아프리카TV’, ‘계절학기’, ‘대마 비범죄화’에 이르는 우리 사회 20대가 한 번쯤 가닿을 소재들과 키워드와 화젯거리를 매주 월요일 오전, 낮, 저녁 세 번에 걸쳐 보내 드렸다.
그리고 이 7개월의 여정에는, 본인들은 부끄러워하지만, 특히 두 사람의 공이 크다.?주간특집이라는 큰 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총책임 김어진 에디터와, 구성원 선정부터 콘텐츠 톤 밸런스 조절까지 나머지 디테일의 모든 분야에서 대활약한 김정원 에디터가 그들이다. 생각해 보면 바이라인에서 자주 보았던 이름들. 궁금했다. 그들은 지금쯤 뭘 생각하고 있을까. 왕십리의 한 펍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피자와 각자 취향대로의 맥주를 시켜 놓고 자세히 들어보았다.
Q1. 주간특집 TF팀에서의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김어진. 트탐라 홈피를 만들고 이 팀에서 제일 많은 원고를 쓴 창립 멤버다. 주간특집 팀에서는 총책임을 맡았다.
김정원. 트탐라 피처에디터를 비롯해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신분이다. 주간특집 팀에서는 팀 운영에 참여했고, 거의 항상 기사 작성의 1/3을 맡았다.
Q2. 4월부터 지금까지 꼬박 반 년 넘게 진행한 편성이다. 그간의 소회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사실 나는 다른 매체에서 2년 정도 주간 연재를 해 봤었다. 그래서 마감 주기(사이클)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생각을 계속 뽑아내야 하는 점이 힘들었다. 생각 뽑아내는 연습을 이 기회에 해 보았다는 점도 있긴 하지만, 그게 연습치고는 쉽지 않았다.
세월을 낭비했다고 하면 그건 안 되겠지. 어디 가서 돈 주고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 경험을 굳이 돈 주고) 사지는 않을 것이다.
Q3. 먼탐라는 처음에 어떤 의도로 시작했나?
아주 쉽게 말하면?아이즈를 이기자는 것이었다. 당시 아이즈는 매주 화요일마다 하나의 키워드를 선정해서 3개의 관련 기사를 내보내는 ‘아이즈 스페셜’을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일정 수준의 이상의 매체는 물리적으로 반복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질과 양을 가진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과연 우리는 그 역량을 개발할 수 없을까 하는 도전이 있었고, 우리가 그 챌린지를 수락한 것.
내부적으로는 ‘한 가지 관점만 제시하면 아쉬운’ 소재를 다양하게 소화하는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소재를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의성부터 20대에게 관심 있는 주제인가까지 다양한 기준에서 검토를 했었고, 어느 정도는 해냈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기는 체력적 고갈 때문에 뒤로 갈수록 허술해진 것이 사실이고.
Q4. 매주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했는지?
초창기에는 어진과 정원 2명이 상의해서 함께할 팀원을 매주 새로 선발해 부탁했다. 이번 주에 A라는 주제를 하게 되었으면 A라는 주제에 맞는 필진 1을 섭외하고, 그 다음 주가 되면 B라는 주제에 맞춰서 필진 2를 섭외하는 식.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정원의 제안에 따라 한 달 단위 팀 구성으로 바꾼 것이 현재에 이른다.
달마다 한두 명을 고정적으로 투입시켜 한 달치 먼탐라를 같이 만드는 방식을 제안했다. 어진 형과 내가 월말에 1~2명의 다음 달 멤버를 확보하고 매달 마지막 토요일 회의 때 4명이 1시간쯤 일찍 모여 다음 달 마스터플랜을 짰다. 1~2주차 구성안은 좀 빨리 정했고, 3주차부터의 소재는 대비책 차원에서 대략만 정해 둔다. 그러고 나면 그대로 가거나, 중간에 의정부고 같은 이슈가 생겼을 때 대응했다.
Q5. 쉽지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주간특집 전체는 처음의 의도를 얼마나 실현했다고 생각하는가?
말하자면 기복 심한 2할 5푼짜리 타자였다. 안타도 치고 아주 가끔 홈런도 쳤지만 아차하면 대대적인 파울플라이를 뻗었다. 나중에는 보내기 번트만 치고 보내도 잘했다, 다음에 잘하자 생각하는 지경이 되었다.
첨언하자면, 처음엔 포맷상으로나 그 내용, 주제상으로나 고민을 좀 많이 했다면, 뒤로 가면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면서 주제를 정하는 방식이나 그걸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날카로움이 부족해지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아쉽기는 한데, 물리적인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Q6. 가장 기억에 좋게 남아 있는 특집은?
캠퍼스 관련 특집들. 특히 수강신청, 농활, 복수전공. 캠퍼스 소재는 사람들이 뻔할 거라고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컨텐츠 형태로 정리되지 않고 ‘썰’로 소비되는 영역들이 있다. 그걸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재밌게 혹은 인사이트 있게 풀어낼 노력을 했고, 그게 대학내일을 위시한 20대 매체들이 대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방식과 어떤 식으로든 확연히 차이를 만들어냈던 것으로 자평한다.
한 번쯤은 다뤘어야 하는 소재를 다룬 특집들. 검색을 해 보면 내용이 형편없는 소재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 관해서는 팀원들의 사진집을 뒤져 사진을 채운다거나 하는 노력을 투입해서 제작했다. ‘가지는 취미’ 특집도 그런 차원에서 진행했다. 적어도 조현익 에디터의 파이프에 대해서는 이런 기회 아니면 알 일이 있었을까.
그렇게 해서 예쁘게 잘 나왔을 때, ‘아 먼탐라의 존재의의가 이런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바이럴이 잘 나온다거나 2차 퍼블리싱 플랫폼에 ‘잘 팔린’ 것들도 그런 차원이다. 한국의 자랑 특집이나 단톡방 반성폭력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도 누군가는 했어야 하는 이야기를 3가지 방식으로 했고 그러니 그 중 하나쯤은 잘 나와 줬던 것 아니었나 싶다.
Q7. 가장 아쉽다거나 가장 미련이 남는 특집은?
딱히 어느 특집이었다고 꼬집어서 말하기보다는, 그냥 어떤 특집 때든 ‘디렉터의 그림’과 ‘글 쓰는 에디터의 그림’이 서로 다르면 수시로 어려웠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디렉터가 아니었어서 잘 모르지만 옆에서 봤을 때 그래 보였고. 집중점이 없고 아웃라인이 없으면 어려웠던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육아예능 특집이다. 아니면 악뮤컴백 특집도 그랬고, 하여튼 디렉터로서는 내 스스로 치밀한 검토나 계산을 끝내지 않고 ‘아 뭐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지?’ 하고 나 자신과 상황을 너무 믿어 버렸을 때 항상 안 좋게 나왔다.
맥주보이 특집, 대학 인습 특집, 복수전공 특집 때 그렸던 만평들이 번번이 그랬고, 생각보다 제작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포기해야 했던 종편 예능 리액션 비디오 같은 콘텐츠가 그랬다. 내가 더 철저하게 계산을 안 하니까 엄하게 이유진 에디터 같은 팀원들이 고생을 했다.
Q8.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전하고 싶은 팀원이 있다면?
우선 최희선 에디터. 그때 같이 할 멤버 구하기가 진짜 어려웠다. 어느 어둔 저녁날에 버스 타고 집 가는 길에 희선에게 전화해서 먼탐라 팀 합류를 부탁했었다. 조만간 인턴 가는 친구를 그렇게 반 강제로 붙잡아놓은 것인데, 서로 굉장히 많은 상의와 작업을 하면서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먼탐라가 상대적으로 가벼운 기획임에도 충실하게 잘 따라 주었고 결과적으로 바이럴 성적도 상당했다.
그리고 김다훈 에디터. 처음으로 마스터플랜을 같이 짠 멤버였고, 마찬가지로 가볍달까 작게 많이 만드는 모습을 못 봐서 사실은 불안했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디렉터가 어떻게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김다훈 에디터가 선방해 준 덕에 주간특집의 월 단위 TF 체제가 확신 있게 확립될 수 있었다. 모든 참여 멤버들에게 정말로 고맙지만, 특히 두 사람은 기회 있을 때 한 번은 인사하고 싶었다.
황유라 에디터. 나와 어진 형은 팀을 운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 건데, 운영하는 쪽의 입장을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잘 받아쳐 줬다. 이해도와 헌신도가 높아서 기획의 진행이나 방향 수정이 수월했다. 원고도 늦는 일 없이 처음 초고 상태도 좋았어서, 수정할 것도 별로 없었고.
Q9. 갑자기 번외 질문. 두 사람은 서로 어땠나?
서로에 대해서 좀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일단 내가 디렉팅을 잘 못 보기 때문에 그걸 매주 하고 있는 어진 형의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은 전우애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다.
콘텐츠 외의 모든 컨트롤은 정원이 다 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지독하게 없어서 인사 관리를 정말 못 하는데 다음 달 누구를 데리고 갈지를 가장 앞장서서 고민한 게 정원이었고, 팀원 수부터 기사 볼륨까지 정말 거의 모든 부분을 케어하고 걱정해 준 친구다.
Q10. 본인에게 먼데이스타임라인이란 무엇이었나?
주말 예능. 그건 사실 방영 분량의 7배를 편집실에서 힘겹게 잘라내 50분 정도만 내보내는 작업인데, 그렇다고 모든 에피소드가 매주 빵빵 터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 여러 주 중 한두 번 ‘역대급’이 터지는 것이고. 먼탐라가 꼭 그랬다. 나는 이제 모든 주말 예능 제작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막말로, 지금 온라인 매체 업계에서 이 정도 성실성은 일종의 재능처럼 되어버렸지 않나.
성장하고 싶어서 시작한 버티기. 나는 인생을 버티면서 산다. 발전하려고 버티다 보면 구력이라는 게 생기는 법이고 철학이나 성찰도 얻고, 언젠가는 어제의 LG처럼 승리를 거둔다고 믿는다. 매번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하고, 큰 그림을 그리려고 해 왔다. 다만 이렇게 버틴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지금처럼 지금을 하나의 단계로 삼아 나가면 되는 것이고.
Q11.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까? 주간 특집을 해 본 경험을 살려서 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사나 콘텐츠를 n분의 1로 나누어서 내보내는 연계 기사 기획의 기능이나 의의를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이제는 전체 회의 때 서로의 기획서를 봐 주다가 ‘야 이건 누구 꺼랑 누구 꺼 합쳐서 먼탐라로 해라’ 하는 얘기가 왕왕 나온다. 좋은 것 같다. 모든 기획이 1개 1명 1건으로 끝날 필요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조금씩 해서 합치는 것이 더 시너지가 나올 때가 있더라. 그런 걸 좀더 많이 제안하고, 나도 제안받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좀 충전을 하고 싶다. 항상 금요일을 “먼탐라 원고 쓰는 날”로 빼놓고 살았고, 다른 곳에 기고하는 일도 많고 다른 삶도 바쁘다 보니 정작 내가 이제 내 개인 기사 기획을 뭘 가져와야 좋을지 생각하기가 어렵다. 다만 주간특집을 하면서 재확인했던 건, 내가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 다만 남들과 조금 다르게 볼 줄 안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무기라는 점. 아마 그런 점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 애쓰는 기간을 가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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