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살림은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집안 일’ 따위가 절대 아닙니다.

어제는 17킬, 오늘은 20킬.?오버워치 얘기가 아니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초파리 연속 처치 횟수다. 모닝콜을 초파리로 시작하게 된 것이 오늘로 나흘째다. 자취생이 초파리에 시달리는 얘기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만, 당사자인 나는 무척 심각하다. 심지어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와중에도 팔에 붙어있는 초파리를 떼어냈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라 두마리가 붙어있었다.

죽을 걸 알면서도 자꾸 붙어어요...ⓒ부활Ent

죽을 걸 알면서도 자꾸 붙어요...ⓒ부활Ent

고백한다. 초파리들이 내 방에 창궐하게 된 것은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잘못이다. 지난 주말 계절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친구놈들을 불러다가 방에서 요리하고 술을 먹었고, 귀찮아서 그냥 자버렸다. 다음날 아침에 늦게 일어난 나는 빨리 일하러 가야한다는 핑계로 음식물 쓰레기들을 그냥 방치해뒀다. 돌아왔을 땐, 특이점이 지난 다음이었다. 내 방은 초파리에 점령당했다.

딱 15분만 내가 제정신이었다면 현재진행형의 개고생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딱 한번 미룬 설거지는 수백배의 시간동안 나를 괴롭히고 있다. 후회해봐야 소용도 부질도 없다. 왜냐면 난 약 한달쯤 전에도 똑같이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었으니까. 나는 지금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주 : 편집하던 편집장이 정말 놀라서 쓴 짤입니다

주 : 편집하던 편집장이 정말 놀라서 쓴 짤입니다

집안일 그까이꺼 뭐 대충 할 때 되면 할 수 있겠지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땐 안보였으니까. 그러나 안보이는 일이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어쨌거나,?이렇게 집안일을 망쳐놓고 뒷정리를 하고 있노라면, 보고서 상신을 하루 깜빡했다가 지원장교에게 불려가 혼나던 때가 생각나곤 한다. 그럴때마다 사수가 항상 내게 하던 말이 있다.

"존재감이 없는 행정병이 좋은 행정병이다."

살림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때는 존재감이 없다. 하지만 무언가 하나라도 깜빡하는 순간?제대로된 삶을 영위해나갈 수가 없다. 빨래를 제때 안하면 옷에서 쉰내가 나고 입을 옷이 없다. 공과금을 제때 내지 않으면 범칙금이 붙는다. 요리를 안하면 밥을 굶고, 쓰레기를 안버리면 집안에서 냄새가 난다. 청소를 제때 안하면, 방의 어지러움에 파묻히고 만다.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포기하면 이렇게 된다 ⓒ노다메 칸타빌레

그리고 그것을 영원히 포기하면 이렇게 된다 ⓒ노다메 칸타빌레

또 이런 일들이 그냥 하기만 하면 쉽게 끝나는 일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흰 빨래는 흰 빨래끼리, 중성세제 쓰는 빨래가 따로 있다는 것을 나는 자취하고 처음 알았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날 잡고 락스 뿌르고 마스크 쓰고 물안경 쓰고 청소해야한다. 귀찮아서 넘어간 얼룩 하나가 때가 되고 곰팡이가 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해결하고 방과 내 삶의 수준을 유지해내는 일이 '집안일이나' 하는 말로 폄하될 일인가? 이것은 삶을 살만한 형태로 지속시켜 나가는 프로의 영역이다.?나는 다시는 이것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전문가의 영역이다. 존경심을 담아 '가사행정' 이라고 부르고 싶을 만큼 말이다.

이토록 어려운 '가사행정'이지만, 그렇다고 안하거나 피할수야 있나.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자기 삶의 부스러기들을 정돈하고 사는 공간을 관리하는 정도는 책임지고 해낼 수 있어야 않겠나. 오히려 지금의 시행착오들이야 말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집안일에 무관심했는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겠고. 아직은 잘 못하더라도, 더 능숙해져야 할거고, 더 연습과 시행착오를 거칠 것이다.

...일단 이 초파리들을 때려잡는것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통계청

ⓒ통계청,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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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수

안학수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대학생입니다. 집에도 가고 싶고 취직도 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