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하이 9집 : 쓸쓸하고, 더욱 외로워 보이는 노래들

강하게 느껴지는 마지막의 징조, 그리고 ‘mother fucker’ 논란까지.

#1. 그 어느때보다도 쓸쓸한

에픽하이의 음악이 오랜 시간 이렇게 여럿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탄탄한 실력만큼이나 넓은 음악의 스펙트럼 덕분이다. 'no genre, just music'라는 표어 아래에 에픽하이는 사실상 '랩 뮤직'으로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낸다. 'high skool dropout'의 유쾌함도, 'don't hate me'의 발랄함도, '백야'의 비장함도, '우산'의 서정성도, 모두 에픽하이의 것이다.

그러나 에픽하이의 이번 앨범은 유달리 비애와 고독의 감정이 지배적으로 색칠되어 있다. 타블로의 [열꽃]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열꽃]과 [we've something wonderful]이 풍기는 분위기에는 차이가 있다. [열꽃]이 해열을 막 시작한 환자가 내뱉는 가쁜 숨이라면, 이번 9집은 서서히 삶의 의지가 흔들리가는 환자의 한숨으로 들린다. 이번 앨범에는 아주 명백히 하강 곡선이 그려져있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암시의 하강 곡선이.

14년차 그룹, 에픽하이.

#2. 어쩌면 에너지의 고갈은 아닐지

9집의 곳곳에는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앨범일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정말 곳곳에 흩뿌려져있다. 물론 에픽하이가 음악을 그만둔다는듯한 제스쳐를 취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집은 제목부터가 무려 [swan songs]였고, 4집은 국힙 장르상 유래없는 비장미 가득한 2cd 앨범에 제목은 [remapping the human soul]이었다. 타진요 사건 역시 거대한 위기였지만, 에픽하이는 계속해서 새 앨범을 내왔다. 그러다보니 인터뷰마다 '우리는 이번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한다' 라는 말은 진짜 은퇴를 고민한다기보다는 '우리 이번에도 진짜 열심히 작업했다'는 너스레로 읽히곤 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은 전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 앨범의 그들은 유달리 지쳐보이고 힘들어보인다. 이 차이는 지난 8집 [신발장]과 비교해볼 때 더욱 선명해진다. 지난 8집의 오프닝 트랙인 [막을 올리며]가 'the show is not over'를 외치고 있다면,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는 '이제 눈 감을 수 있어'를 말한다.

마지막 트랙인 [신발장]이 여정을 마치고 피곤에 젖어 쉬는 이야기라면, [문배동 단골집]은 시대에 밀려나 갈 곳이 없음을 노래한다. [Bleed]와 [Life is good]의 차이는 설명할 것조차 없다. '여기서 더 뛰어봤자 ceiling'와 '내가 해야 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를 말하는 에픽하이는 그 어느때보다도 쓸쓸하고 고단해보인다.

#3. 아직은 그들의 다음을 듣고 싶다

혹시 이번이 고별앨범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앨범이 제목인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은 그래서 선언이라기보다는 회고의 읖조림으로 들린다. 그래 우리 음악 잘했었지, 그래도 우리가 나쁘진 않았지, 지금은 trap이 울려퍼지는 그 곳에도, 한때는 비오는 날이면 모두가 우산을 틀곤 했지, 하는. 쉽사리 저항하기 어려운 비애감이 이 앨범에서 흘러나온다.

물론 에픽하이는 당분간은 은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랬으면 좋겠기도 하고). 굳이 실험적이거나 대담한 시도를 하지 않아도 에픽하이는 여전히 좋으면서도 다른 누구도 하지 못하는 음악을 하고 있으니. 여전히 에픽하이는 내기만 하면 차트 순위권이기도 하니, 대중적인 성과만 본다면 은퇴할 이유는 없다.

다만 다음 앨범이 정말로 지난 앨범이 차트 순위권이기 때문에 새로 나온 앨범일 뿐이라면 조금 서글퍼질 것이다. 새로운 동력원을 찾기를, 더 많은 백지 위를 펜으로 달려내기를 바란다.

P.S : 문제는 motherfucker 너머에 있다

이 논란은 조금 복잡한 이야기다. 일단, 개인적으로는 motherfucker 그 자체가 '혐오표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motherfucker'라는 욕을 쓰면서 '모친과 성적으로 교접할 인간'이라 비난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병신'이란 욕설을 쓰면서 우리가 장애인권을 반대함을 선언하는 의도가 없는 것과 같다.

둘 모두 명백히 혐오적인 어원에서 출발한 단어이지만, 지금은 'motherfucker'도 '병신'도 그저 그저 찰진 발음의 욕설일 뿐이다. 그러니 'motherfucker'를 썼다고 해서 그 사용자가 '여혐'을 하고있다고 단순하게 단정짓기는 어려운 것이겠다.

그러나 오히려 얘기해볼만한 것은 송민호의 게으른 작사이다. 'motherfucker만 써도 혐이라 하는 시대 shit'라는 가사 안에서 'motherfucker'가 정말로 혐오표현인가 아닌가는 여전히 논의해볼만한 사안이다. 누군가는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타당한 근거를 대어 낼 수 있다. 특히나 motherfucker는 아주 정직한 혐오적인 어원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아닌가. 그 단어의 혐오적 요소 그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전까지motherfucker가 논란이 되지 않았던 것은 시대가 그것의 혐오적인 요소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고, 또는 인지하고도 묵인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그것을 인지해버렸고, 누군가는 비판할 것이고 누군가는 옹호할 것이다.

오독을 원하지 않는 창작자는 더욱 자신의 단어 선택에 있어서 조심하고 생각해야한다. 정녕 혐오적인 의도는 없었으나 그 찰진 어감으로 인해 motherfucker를 포기할 수 없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으로 인해 딸려올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그것을 생각치 않고 자신에게 온 비판에 맞서 이 시대를 욕하는 것은 게으른 사유의 소산으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송민호는 이 문제로 인해서 이미 여러번 논란이 된 바 있지 않았던가. '비트를 잡아먹는 짐승 이건 수간'과 ,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가 여성혐오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면, 또는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이 별 문제가 된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송민호는 시대탓을 할 것이 아니다.

버벌진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반쪽짜리 대답' 도 되지 않는다. 훌륭한 힙합 트랙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논쟁에 휘말린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강조한다. 이것은 '게으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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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수

안학수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대학생입니다. 집에도 가고 싶고 취직도 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