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보다 더 지독한 이 세상의 ‘침대축구’

그래 규칙은 규칙이지. 근데 이런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어.

지난 9월 6일, 시리아와의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은 중동 특유의 시간끌기 전술, ‘침대축구’를 넘지 못했다. 시리아 선수들은 각자 할당된 목표치가 있는 것처럼 옷깃만 스쳐도 팔과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져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가 운동장인지 게스트하우스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운동장에 누워있는 모습이 많았다. 선수들, 감독, 관중들 모두 답답했지만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이 축구의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다. 경미한 충돌이지만 실제로 아팠을 수도 있고, 설령 아픈 척하며 시간을 끈 것이라고 해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팀 닥터가 들어오면 선수가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지만, 고통을 호소하며 넘어져 있는 선수에게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아프다는 선수에게 옐로카드를 줄 수도 없고, 거짓말 탐지기를 가지고 와서 검사를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규칙이 이러하니, 맘만 먹으면 이런 식의 축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관중들은 침대축구를 향해 강한 비난과 야유를 보낸다. 때로는 자국팀이 시간을 끄는 행위조차 비난하기도 한다. 침대축구가 비록 경기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더라도, 상식과 성실성의 수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잔디에 누워서 누가 누가 더 연기를 잘 하는지 겨루는 경기가 아니라, 두 발을 딛고 서서 골을 넣어야 하는 경기다. 관중들 역시, 운동선수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스포츠맨십을 기대하고 스타디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롯데액셀러레이터 스타트업 데이

ⓒ국민일보

그로부터 몇 주 뒤, 전혀 무관해 보이던 한 뉴스를 접한다. 롯데의 창업보육투자법인인 롯데엑셀러레이터가, 청년 사업가에게, ‘파산’을 권고했다는 것이다. 롯데 측으로부터 계약된 잔금을 받지 못한 사업가가 직원의 임금이 체불됐다고 항의하자, 임금 회피 방법으로 알려준 대책이다. 파산 신청을 하면 직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아서라나.

참 영리하지 않은가? 거대 기업이 궁지에 내몰린 청년 사업가에게 알려주는 ‘꿀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몇 주 전 축구 경기를 볼 때와 똑같은, 아니 조금 더 심한 불쾌함과 황당함을 느꼈다. “파산이라는 옵션을 설명해 준 건 맞지만 파산을 종용한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회사 파산

보통 사람의 지극한 상식선에서 파산이란, 어떤 방법과 대안으로도 손쓸 도리가 없는 사업가를 구제하는 최후의 선택일 뿐이지, 임금 지급 의무 같은 걸 면피하기 위한 수단일 수가 없다.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가가 지녀야 할 도리와 양심의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가는 대기업이 이런 걸 ‘설명’이라고 하고 있을 때, 갓 사업을 시작한 청년이 배우고 있는 가치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정녕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인 방법’ 이상 아무것도 없는 걸까.

규칙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규칙만 지키는 것은 안 된다. 법과 규칙은 윤리의 최솟값이고, 우리는 그 최소의 윤리 이상의 부가 가치와 신의 성실이 교환된다는 믿음 안에서 이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에 들어오는 것은 남은 시간 동안 공을 쫓아 뛰어다니기 위해서지, 시시콜콜한 안전 규정의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스타트업” 역시 기업을 성장시키고 구성원에게 돈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적당히 ‘사장님 놀이’ 하다가 수틀리면 취소 버튼 누르고 집에 가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옐로카드

오늘 저녁 8시에 예정된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도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가 뚜렷하게 예상된다. 이미 슈틸리케호는 그 대응책으로 기선제압의 선제골을 넣는 전략을 선언한 바 있다. 그게 실패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 마음껏 눕고 아파하며 충분히 시간을 끌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규칙의 안전지대에 숨어 상식과 양심을 저버리는 ‘침대축구’는, 이제 축구라는 좁디좁은 사회에서만의 일이 아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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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훈

김다훈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