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는, 온몸을 태우는 로맨스가 필요하다

파괴적인 사랑과 함께 이 추위를 잊어보자.

친구가 많아도, 애인이 있어도 잿빛 하늘을 보면 왜인지 쓸쓸하다. 학교 안에 있는, 싼 가격이 유일한 장점인 카페에서 이 시럽 저 시럽 마구 섞어서 아무렇게나 만들어 파는 토피넛 카페모카 같은 게 필요하다.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따뜻하고, 목구멍이 죽을 것처럼 타들어가지만 그만큼 달콤하고, 당장 닥쳐올 추위와 서러움을 잊을 수 있는 그런, 나쁜 것들.

그래, 파괴적인 것들을 보자. 언젠가 나를 죽여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너무 달콤해서 정신을 차리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을 탐미하자는 말이다. 방구석에 콕 박혀 잉잉 징징 하면서도 목 졸리게 달콤하고 치명적인 것들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소설: 무라야마 유카, <천사의 알>

자기가 좋아하던 조각상과 꼭 닮은 여자를 만나고 말았다.

하지만 자신은 재수생이며, 심지어 그녀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의 담당의였다. 더군다나, 그녀는, 옛 사랑의 언니이기도 하다. 이토록 뒤틀린 상황을 알고서도 당신은 그 사랑을 이어갈 수 있는가? 이 소설은,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그런 사랑을 묵묵히 버텨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다.

“우리 ‘둘’이 행복해지는 것만 생각하자”

문체도 어렵지 않고 스토리도 직관적이다. 파괴적인 SM도 부담스럽고 집착적인 예술도 부담스럽다면, 조금 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 로맨스. 하지만 수면이 고요하다고 그 안이 깊지 않은 것은 아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할 늪에 빠졌다는 것을 느끼겠지만, 나오기엔 너무 늦어버렸을 것.

 

음악: 오지은, <화>

사람이 사랑을 하면 어디까지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는 걸까.

갑자기 나타난 네가 나의 모든 것을 유치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절망을, 내 안에서 네가 너무 커져서 나를 좀먹고 급기야 내가 사라지는 그 순간을, 하지만 너의 세계에서 내가 얼마나 있을지 몰라 또 불안해지는 그 광기를, 그렇기에, 차라리 너를 갈아먹어버리고 싶다고까지 생각해본 그런 사랑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널 보고 있으면 널 갈아 먹고 싶어
하지만 그럼 두 번 다시 볼 수 없어

나의 이성 나의 이론 나의 존엄 나의 권위 모두가
유치함과 조바심과 억지부림 속좁은 오해로

모든 것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 무작정 속상하고, 그저 방 안에 우울하게 처박혀있을 때. 기왕 이렇게 된 것 가능한 바닥까지 최대한 내려가 보고 싶을 때면 2008년에 오지은이 부른 노래, ‘화’를 들어보자. 유튜브에서 성인 인증을 해야 할 만큼의 직설적인 가사들이 당신을 반갑게 맞이할 것이다.

 

애니메이션: 다카하시 신, <최종병기 그녀>

그냥, 고백을 받아서 사귀기 시작했다.

둘의 처음은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터지더니, 작고 소심했던 ‘치세’는 군에 의해 인간 병기로 개조되고 만다. 치세가 점점 병기로 성장함에 따라 둘의 연애는 점점 평범함을 잃어가고 있지만, 그럴수록  남자친구 ‘슈’는 치세에게 빠져들고 만다. 이 세계에 멸망을 가져올 여자친구와 함께, 이 연인은 영원할 수 있을까.

미안해. 나, 이런 몸이 되고 말았어.

상대방이 사라질 것을 아는 연애를 한다고 가정하자. 아무리 그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도 그것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둘의 사랑은 전쟁이 주는 참혹함 안에서 더욱 빛난다.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에서 감히 사랑을 말하는, 조금은 특별한 사랑을 이 겨울에 느껴보자. 마침, 극의 클라이막스도 겨울이다.

 

영화: E. L. 제임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아닌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가는, 이 거칠고도 서툰 사랑.

수갑과 가죽 채찍, 눈가리개로 과연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 의심하다가도 다시 넋을 놓고 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이 사랑은 ‘비정상’이라기보다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이 서로 얽혀가는 과정으로 이해되고 만다. 끝을 명백히 알고 있지만, 결국 서로에게 향하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난 한번도 다른 여자를 여기에 데려온 적이 없어.
이건 또 다른 나의 첫번째 모습이야.

영화 밖의 세계에서 SM이란 장르는 보편적이지 않지만, 어느새 강렬한 호기심이 분출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쉽게 실현될 수 없기에 더 크게 발전되는 그 금기를 안전하게 충족시켜주는 영화. 스크린 속에서 달아오르는 그 모습을 보다 보면, 영하로 떨어진 추위도 어느새 잊고 말 것이다.

 

만화: 작업실 시보, <뼈와 살>

집착하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예술 하나뿐이었다.

어머니가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재하’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 재하의 예술관은 여성과 여체에 대한 숭배와 탐닉으로까지 연결되다가, ‘다미’를 만나며 그 절정에 닿는다. 나만 이해할 수 있고 나만 가르칠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 같은 사람을 드디어 찾았다고 ‘재하’는 믿게 되지만, 그 사랑의 끝은 과연 어떠할까?

자.
이제부터 우리
이 세상에 없던 사람처럼 잊혀져요.

남과의 공간,
남들의 기억 속에서
함께 사라져요.

그럼 우린
오로지 서로에게만
기억될 테니까.

끈적하게 엉겨드는 두 사람의 아찔한 집착. 서로를 너무 원한 나머지 진정한 끝으로 달려가는 그 사랑은 지옥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달콤하다.  스크롤을 내리는 내내 몰려오는 탐닉과 몰입이 미친 듯이 당신을 압박하더라고, 만화를 끝까지 지켜보기 바란다. 뜨거운 사랑 그 이상의 충격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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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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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그냥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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