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그렇게 일상에서 조금씩

2060년을 살고 있을 먼 미래의 송하나를 위해서라도

웹툰 <캐셔로>의 주인공 강상웅은 어마어마한 신체적 능력이 있다. 차를 번쩍들기도 하고, 건물 사이를 훌쩍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강상웅이 배트맨이나 아이언맨처럼 마냥 멋진 히어로는 아니다.  그의 능력은 소지한 금액에 비례해서 증가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는 언제나  돈이 없다.

그래서 이 웹툰의 장르는 히어로물이 아니라 드라마, 혹은 코믹, 또는 가난에 가깝다. 썩어빠진 정부와 국회를 뒤엎고 체제를 바꾸는 혁명? 먹고살기 바쁜 나머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만,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뛰어갈 뿐이다. 평범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말이다.

이렇게. ⓒ웹툰 '캐셔로'

아휴. 뭐가 이렇게 느리고 답답한지 모르겠다. 초인같은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빌어먹을 세상을 바꿔주면 안되나? 1939년의 히틀러가 그랬다. 세상을 망치는 유태인을 때려잡고 아리안인들의 아름다운 세상을 빠르게 만들고자 했던 그 의도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장기화된 경기 불황과 실업을 이민자를 몰아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빌어먹을 오바마케어를 당장 폐지하고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드는(Make America Great Again) 초인을 원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세상은 순식간에 더 나쁜 쪽으로 바뀌고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이 급하게 바뀌고 있다. ⓒ한겨레

그렇다. 이 세상을 구원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캐셔로'들처럼 근처의 일상을 구원하는 일이 아닐까.  처음부터 거창한 일을 해낼 순 없으니, 아주 간단한 것부터라도 시도해 보자.

영미권에서 이민자 혐오와 소수자 차별에 대해 반대함을 보이기 위해 #safetypin을 다는 것처럼, 우리는 노란 리본을 가방에 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요란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엘레베이터 앞에 선 휠체어 탄 사람 앞으로 은근슬쩍 끼어들지 않는 것도 훌륭한 혁명의 하나일 수 있겠다. 생각해보면 모두 대단하고 어려운 일들이 아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를테면, 게임 '오버워치'의 전국 디바 협회(이하 '전디협)처럼 말이다.

아주 작은 일상 속, 이를테면 게임 같은. ⓒ 트위터maxpoetaster

희롱을 하거나, 게임과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지나친 플러팅을 하는 등 여성을 한 명의 게이머로 대하지 않는 행동은 예전부터 문제가 되었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꾸준히 항의는 계속되었지만 '여왕벌'과 '정치질'이라는 프레임으로 번번히 무시되고 왜곡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게이머들은 자신의 일상 속에 있는 게임에서 하나의 행동을 시작했다. 지금 같은 성차별적 게임 문화가 만연하다면 송하나와 같은 프로게이머가 나타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게임 속 캐릭터인 디바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아 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디바는 오버워치의 한국인 캐릭터로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천재 프로게이머가 되었습니다.
...
전국디바협회는 디바를 우리의 마스코트로 삼아서,
그와 같은 사람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
성평등한 2060년을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 전국 디바협회 소개문 中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여성 유저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은 물론, 게임 오버워치의 디자이너 제프 카플란(Jeff Kaplan)은 23일 라스 베가스에서 열린 '2017 DICE SUMMIT'에서 전국디바협회의 운동을 소개하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자(Never Accept the World as it appears to be, Dare to see if for what it could be')라는 오버워치의 정신이 한국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며 감탄했다.

DICE Summit 2017 중 제프 카플란이 전국디바협회를 소개하고 있다. ⓒIGN

혁명은 그렇게 일상에서 조금씩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이 조금 느려도 좋다. 다만, 지금의 어둠을 끝내고 나서 찾아올 세상을 계속 상상하자. 그 세상에 어울리는 인간의 존엄과 생활양식을 구체적으로 구상하자. 그리고 그것을 우리 생활에서 조금씩 만들어내자.

일상적인 부분에서 변화를 위해 함께 움직여 나간다면, 우리는 어쩌면 캐셔로보다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멀리 돌아갈지라도 우리의 삶은 나아가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조그마한 것들이 모여간다면, 2060년의 송하나도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믿고 싶다.

 



어차피 정답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어사 박문수나 판관 포청천처럼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는 것을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문유석 판사, <개인주의자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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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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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그냥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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