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장애학교 부지 앞에는 허준박물관이 있다

사람을 밀어내고 한방병원을 지으려는 것이 허준의 가르침일까?

평생 '허준 박물관’ 앞에 살았다. 아빠와의 산책이 소중했던 유년 시절부터 대학 노트를 끼고 사는 오늘까지. 중학생 땐 약초·약재실에서 봉사 시간을 채웠고 허준 축제가 열리면 친구들과 구암 공원에 갔다(구암은 허준의 호). 고등학교 친구들과 농구할 땐 허준 박물관 통로를 지나갔다. 술 취한 동네 친구를 바래다줄 때 박물관 정문에 앉아서 쉬다 간 적도 있었다. 새로 발급받은 도로명 주소는 ‘허준로’다. 여기저기 '허준'이 적혀 있으니 그를 모를 수가 없다.


부모님은 구암 허준을 드라마로 아셨다. 1993년에 부모님이 허준로에 이사 오셨다. 6년 뒤인 1999년에 드라마 <허준>이 방영되었다. 처음엔 동네 이야기라서 봤는데 재밌어서 끝까지 보셨다. 동네 어른들도 <허준> 얘기만 했다. 드라마가 평균 시청률 48.3%, 최고 시청률 65.5%를 기록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네이버 블로거의 증언에 따르면, 식사 자리에서 “침을 놓겠소.”라고 말한 뒤 삼계탕을 젓가락으로 찌르는 게 그렇게나 유행했다고. 2013년에 ‘구암 허준’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또한 등장했으니 <허준>의 인기에 대해서 더 말할 게 없다.

역대 4위의 시청률

특히 아버지는 주인공 허준을 좋아하셨다. 그 인품이 훌륭한 까닭이었다. 마지막 화에서 허준은 이렇게 묘사된다.

"그분은 땅속을 흐르는 물 같은 분이셨어. 태양 아래에 이름을 빛내며 살기는 쉬운 법이란다. 어려운 것은, 아무도 모르게 목마른 사람의 가슴을 적시는 거지. 그분은 그런 분이셨어. 진심으로 진정으로 병자를 사랑한 심의(心醫)셨다."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말했다.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심의'가 되어라." 드라마는 허준이 긍휼함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의원답게 사는 모습을 그렸다. 드라마 막판에 그는 <동의보감>을 편찬한 뒤 관직에 돌아가지 않고 백성을 돌보다가 역병에 걸려 죽었다. 제 몸에 쓸 약재를 다른 아이에게 양보하느라 치료 때를 놓쳤다. 허준이 침을 쥔 채 숨 거두는 장면에서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셨다. 약자를 불쌍히 여기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몸 바치는 사람. 밥상마다 아버지는 허준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드라마의 인기가 드높자 허준의 업적을 기리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 일환으로 2005년 허준박물관이 개관했다. 허준박물관은 정문 돌벽에 허준의 그림과 <동의보감>의 구절을 새겨 넣었다. 아버지는 산책을 할 때마다 석판 문구를 가리키셨다. 아래는 문장 전부다.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은 다스릴줄 모른다
이것은 근본을 버리고 끝을 좇으며 원천을 캐지 않
그저 지류만 찾는 것이이
병 낫기를 구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은가

나는 어려서 뜻을 잘 몰랐다. 그러나 허준의 선함은 느낄 순 있었다. 글귀에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씨가 묻어나서 그랬을까. 허준 아저씨한테 진료받으면 청진기가 아니라 당신의 귀로 마음 사정을 들어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허준을 존경했다

. 허준에 관한 조선시대의 기록이 거의 없어서 실제 행동거지를 알 순 없지만, 적어도 <동의보감>에 적힌 허준은 멋졌다. 마음을 소중히 대하자고 분명하게 말하는 사람. 깊이 존경하진 않더라도 '허준은 훌륭한 분이구나' 여길 만했다. 구암 공원에서 아버지는 약한 사람의 마음에 제 발로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심의(心醫) 허준이 그러했듯이.


2013년 11월, 허준 박물관 앞에 있던 공진초등학교가 폐교되었다. 이듬해 서울시 교육청은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예고했고, 주민 약 1천 명이 반대 의견을 제출해서 막았다. 2016년 9월,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한 교육청은 공진초 부지 특수학교 설립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반발했다. 올해 9월 5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자 교육감이 주민토론회를 열었다.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은 일로 sns가 시끌벅적했다.

허준 박물관 근처에서 토론회가 열리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당일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소식을 접했다. 상황이 궁금해서 토론회장 근처를 기웃거렸다. 밖에서 담배를 피던 아저씨가 앞사람에게 말했다.

“아니 무슨 특수학교여. (도로) 이름도 허준로인데 한방 병원 깔고 그러면 좀 좋아? ”

그냥 뱉은 말이든 솔직한 말이든 기분이 상했다. 왜 이익 추구에 허준을 끼워 파는가. 속세가 싫어서 안동 청량산 밑에 숨어 지내던 퇴계 이황을 지폐에 그려넣은 일만큼이나 민망하다. 허준은 약자의 편이었다. 특수학교를 내몰고 한방병원을 짓는다니. 허준이 듣는다면 뒷목 잡았을 얘기다.

<동의보감>에 적힌 허준은, 눈물로 특수학교 설립을 간청하던 부모들에게 “쇼 하지 말라!” 외치는 사람을 나무라고, “강서구에 주민 기피시설이라고 하는 것은 죄다 모여 있다.”고 불평하는 사람을 혼내며, 장애인 학부모 대표 발언 도중 토론장을 빠져나간 김성태 의원을 불러다가 면박했을 테다.

기가 차지 않으셨을까

그들이 하는 변명대로 자기 때문에 특수 학교 설립이 주춤거린다고 하면 당장 ‘허준로’나 ‘허준 박물관’을 없애자고 말씀하시거나, 한방병원이 생긴 뒤에 “약자를 밀어낸 병원은 내 의술을 쓸 자격이 없다.”고 못박으실지도 모른다.

그럴진대 무슨 염치로 위인의 이름과 업적을 들먹이는가. 차라리 솔직하라. 장애인이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게 싫다고, 집값 떨어지는 게 싫다고, 한방병원이 생기면 내 주머니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나는 차별과 배제를 옹호하며,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고 떳떳하게 말하라.

언론이 사건을 주목하고 여론이 특수학교 설립을 응원했지만 추석이 지날 참까지 결론은 나지 않았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재협의에 들어간다고 한다. 여전히 지역 주민은 공진초등학교 부지가 허준 박물관 주변이라는 점을 들어 국립 한방병원 설립을 주장하고 있다.

토론회가 벌어진 탑산초등학교 바로 옆에 허준 선생의 잠언이 적혀 있었다. 동네 주민들은 잠언 옆에서 신호등을 기다렸다.

“장애인 때문에 우리가 손해보게 생겼네.”

“시벌, 아까 눈물 흘리는 거 봤어?”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목으로 몸을 돌렸다.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반대추진 비상대책위원회’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Pin on Pinterest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이찬영

이찬영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