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솔직히 다이어트는 의지 문제 아니냐?”

살찌고 그러는 거 다 게을러서 그래~

올해 목표는 다이어트

새해가 밝았다. 다들 그러하듯  ‘다이어트’를 목표로 잡았다.
헬스장으로 갔다. 숀리를 닮은 트레이너는 나를 보며 경악했다.

"키도 크신 분이 왜 이렇게 자기 관리를 못하셨어요?"

약간 이런 표정으로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상담을 시작했다. 헬스장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한 달에 9만원이라는 현금이 필요했다. 물론 12개월 단위로 등록하면 엄청난 할인을 경험할 수 있었지만, 월세에 버금가는 돈을 갑자기 구하는 건 무리였다. 겨울에 가기로 한 여행을 포기하고 3개월을 신청했다. 덩달아 식비가 줄겠으니 살은 뭐 절로 빠지겠거니 생각하며  운동복을 집었다. 갑자기 숀리가 내 손목을 잡고 말했다.

“운동복 대여는 월 1만 원 추가입니다.”

나는 다시 가벼운 지갑을 꺼내야 했다.
아 그런 거였냐고. 몰랐다고 힘겹게 웃으면서.

사실, '운동'만으로 살은 빠지지 않는다

러닝머신을 열심히 뛰던 어느 날, 오랫동안 헬스장에 다닌 친구가 말했다.

“야 , 그래 가지고 살 절대 안 빠져.”

친구는 음식 섭취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은 닭가슴살과 신선한 채소, 그리고 허기를 채워주기 위한 바나나 같은 간식들. 모두 근육 형성에 도움을 주면서 열량이 낮은 음식들이라고 한다.

운동을 마치고 마트에 들렀다. 샤오미 보조배터리만한 살덩어리 한 개가 4100원. 싱그러운 녹색채소 모듬이 6200원. 4B연필보다 짧은 바나나 두 개가 1500원. 벌써 만원이 넘어갔다. 그런데 이게 한 끼라고 한다. 이렇게 매번 끼니를 챙겨야 한다고 한다.

나는 주로 아침을 굶는다. 바쁘기도 하고, 학교 식당에서 아점을 먹으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기 때문이다. 정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컵라면 1100원. 삼각김밥 700원. 거기다 이벤트로 콜라를 준다. 그렇게 식단을 구성해야 한 달 생활비에 맞춰 살 수 있었다.

비싸도 건강하려면 이렇게 먹어야 하구나... ⓒMBC '무한도전'

디지털미디어시티에 단기 알바를 나갔다. 교육용 PPT를 고치는 일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구내 식당을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양학적으로 고려된 식단을 4천 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서울 바닥에 흔치 않았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숟가락을 움직이고 있는데, 대리님들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내 헬스클럽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갑자기 누군가 배를 만지며 한숨을 내뱉었다.

“집에 가면 막차 시간인데 무슨 운동이야~”

그때, 갑자기 아버지가 떠오른 까닭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사실 세상은 우리의 상황에 관심이 없다

태권도 발표회에 참석하라는 가정통신문이 나오면 몰래 버렸다. 176cm에 110kg. 다른 사람에게 그런 아빠를 보여주기 싫었다. 예쁜 피아노 선생님이 아빠를 보는 게 싫었다. 교회에 가면 ‘그 뚱뚱한 집사님 아들이니?’라는 말을 견뎌야 했다. 가끔 가족끼리 산책이라도 나가면 사람들이 흘깃 쳐다보곤 했다.

왜 아빠는 주말에 잠만 자는 걸까. 다른 아빠들은 조기축구회에 나간다던데, 우리 아빠는 왜 저렇게 움직이기 싫어할까. 하다못해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는 없을까. 왜 그렇게 끼니를 때우기에 바쁠까. 자기 관리를 못하는 아빠가 싫었다. 부끄러웠다. 같이 있는 자리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혹시 같이 있을 기회가 있으면 도망가기에 바빴다.

생각해 보면, 아빠는 항상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었다. 같이 아침을 먹은 기억도 없다. 주말에도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나가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숨겨둔 가정통신문을 어쩌다 발견하시면, 세상에서 제일 곤란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곤 했다.

“못 가서 미안하다. 잘하고 올 거지?”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몸무게가 100kg을 넘었을 때부터 내게는 이상한 일이 많이 생겼다. 관장님은 태권도장에 가끔 놀러만 오라고 말하셨다. 피아노 선생님은 어느 날부터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맨날 집에 있던 엄마는 아침 일찍 어디론가 나가시곤 했다. 주말마다 하던 산책 시간도 어느샌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모든 게 미스터리였던 어린 날의 장면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새해가 되었지만 일상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손쉽게 누군가의 일상을 폄하한다. 비만은 게으름의 결과라고 말하면서, 어째서 건강한 삶에 욕심 내지 않느냐고 말한다. 배우들의 입금 전/후 짤을 보면서, 결국 모든 것이 의지의 문제 아니냐고 거침없이 입을 연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나 역시 이런 타박에 항상 시무룩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들이 입을 열지 않는 주제들이 있다는 걸.

하루 종일 전문 PT를 고용할 수 있는 경제력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 일주일 내내 운동에만 전념하려면 어느 정도의 느긋함을 확보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가장 합리적인 식단으로 매 끼니를 구성하려면 얼마나 지갑이 두둑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은, “다이어트”라는 것을 따라하려면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나도 그들도 아버지도 대리님도 이런 여유를 꿈꾸기에는 너무 일상이 각박하다.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에 나왔던 크리스 프랫의 경우.

알바의 마지막 날, 깜빡 놓고 온 물건이 있어 다시 회사로 향했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을 헤치며 겨우 건물에 도착했다. 해는 이미 저 쪽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상암의 스카이 라인을 채우고 있는 빌딩들은 무섭도록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내가 근무했던 곳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오후 아홉 시 반을 가리키고 있지만,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대리님은 여전히 저기에 앉아 있을 것이다.

과연 대리님뿐일까. 아버지의 체중도 여전하고, 나 역시 다이어트에 실패한 채 그대로다. 하지만 숀리를 닮은 그분은 여전히 의지의 문제라는 복음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파하고 계실 것이다.

그렇다. 새해가 되었다고 하지만, 어떤 각박함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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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영

이찬영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