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MyALS
지난 8월 18일에 유튜브에 올라온 어떤 동영상. 초반 2분간 어떤 남자가 쾌활하게 웃으면서 무슨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더니 대뜸 얼음물 바가지를 뒤집어쓰는 벌칙(?)을 받는다. 그런데 그 이후 4분간 바로 그 남자는 정색하고, 아니, 눈물을 꾹꾹 삼키면서 말한다. “사실은요, 저는 5개월전에?ALS?판정을 받았어요.”
남자의 이름은 앤소니 카바자르. 올해로 만 26세가 되었다. 그는 ALS를 가족력으로 가지고 있다. 그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기회를 빌어 사람들에게 전한다. 병의 치료비를 쉽게 감당할 수 없다고, 그리고 자기 가족이 그 병과 지금도 힘들게 싸우고 있다고.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ALS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면서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말한다. 이거 엄청 추운데 당신들은 견딜 수 있겠어요? 견디던지, 아님?ALS 협회에 기부를 하세요!
그리고 비디오 맨 끝에는, 병 때문에 손 끝에 힘이 없어서 단추 잠그는 것도 버겁고, 아마 몇 개월 뒤에는 말하는 것 조차 힘들어질 그가 화면에 팬티 한 장 입은 자기 엉덩이를 가득 채우면서 사람들을 도발한다. 마치 절대로 이 슬픔과 절망에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결의의 의식이라도 되는 양.
그 팬티에 써 있던 말은 KISS MY ALS. 내 ALS에 키스나 해라! ALS에게 뭔가 제대로 된 것을 보여주라구!
이사님께서 초대를 해 주셔서 저도 참여할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됐는데요
그러다 이 도전이 흐르고 흘러 빌 게이츠에게까지 닿은 모양이었다. (그래 그 빌 게이츠 맞다.) 그는 아늑한 정원 의자에 앉아 그에게 도전을 보낸 마크 주커버그의 영상을 확인하고, 그냥 뒤집어쓸 수 없다는 듯 ‘아이스버킷 머신’을 제조하여 물바가지 밑에서 밧줄을 잡아당겨 도전을 성공해낸다. 그리고 ALS에 기부해 줄 것을 당부하며 녹화를 마친다.
뭐가 문제냐고? 두 가지가 문제가 있다. 첫째 그는 대놓고 자기 회사 태블릿 PC를 전면에 보여줬다. 둘째 이 소박한 도전을 굳이 쇠파이프 용접까지 해 가며 폼 나게 했다.
그 유명하신 게이츠 님께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참가하셨는데 우리가 빠질쏘냐? 개그맨부터 무슨 음료 회사 마케팅 담당자까지, 지난 며칠 동안 그야말로 ‘너도 나도’ 얼음물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ALS에 관심 가져 주세요” 인사를 서둘러 끝낸 뒤 다음 사람을 지목했다. 좋은 취지의 재밌고 좋은 캠페인인데 뭐가 문제일까?
사실은 바로 그 점,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잘은 몰라도 그냥저냥 좋은 취지의 캠페인”으로 흐리멍텅해지고 있었다는 그 자체였다. 우리는 알고있다. 좋은 취지의 자발적 캠페인이란 대체로 논란과 과다한 자의적 해석과 ‘기념 셀카’의 겉껍데기만 남기고 정작 핵심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이를테면 크리스마스 씰을 떠올려 보라. 해마다 학교 차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강매에 가깝게 사 온 우리는, 그래서, 이제 결핵이 어떤 병인지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 되었는가?
하지만 그냥저냥 좋은 취지의 캠페인이란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겐 지극히 구미가 당기는 것이어서, 그들은 곧 죽어도 그것을 반드시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랑과 도취에 적극 활용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이미 아이스 버킷 챌린지는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 씰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ALS는 간 데 없고 간접광고와 자잘한 반짝 인기들만 나부낀다. 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공익 캠페인이 얼마나 칙칙하고 재미없는 저(화)질의 대세 편승으로 변할 수 있는지는, 굳이 콕 찝어 지목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의 타임라인에서 볼 수 있다.
근데 그 병에 관해서 알고들 하는 건가?
이쯤 되니 이런 일도 생긴다.
이 도전이 수입되어 국내 연예인들 사이에서까지 유행할 즈음, 한 배우는 영상 대신 짧은 의견 표명을 올렸다. “다들 너무 재미삼아 즐기는 것 같다. 김명민 하지원이 주연했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김명민이 아파했던 병이 ALS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뒤 기분 좋게 시원해하는 모습 난 별로다.”
이후 그는 생각이 짧았다며 사과하게 된다. 그가 받은 반론 혹 비난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좋은 취지로 하는 일 다들 알아서 잘 하고 있는데 왜 초를 치느냐, 그런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되묻고 싶다 ― 부유한 자들의 인맥놀이라느니, 관심받고 싶은 애들이 나댄다느니 등의 자잘한 논점은 치워두고 ― 그래서, 지금 지구상의 적지 않은 앤소니 카바자르들의 눈물이, 조금이나마 그쳤는가?
다시 얘기해서, 정말 이런 식으로 너도나도 끼어드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지목하기 그리고 이 모두에 대한 많은 논평이 얼마나 ALS와 직접 관련을 맺고 있기는 한가? 이켠이 그 짧은 SNS 메시지에 담고 싶었던 것은 이런 뜻의 의구심이었을 것이다.
결국 아이스 버킷 챌린지의 의미가 생존했던 시점은 딱 조인성까지였고, 그 이후로, 이건 그냥 물벼락 맞기 게임일 뿐이고, 다만 그 게임의 규칙에 ALS를 언급하는 것이 포함돼 있을 뿐이다.
?
그래도 얼음물을 여러분들의 머리 위로 부어 주세요
이런 논란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외국의 한 ALS 환자의 가족 중 한 명이 자기 블로그로 이런 입장을 밝힌다. “이것을 새로운 할렘 쉐이크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 남은 일생 동안 ALS에 대해 말하기 위해 ‘그 아이스버켓 질병 있잖아’라고 해야 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제발 계속 얼음물을 여러분들의 머리 위로 부어 주세요.”
이 호소의 당위는 명료하다. ALS가, 이제야, 그 방법이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논란의 여지가 있든지간에, 비로소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이걸 벌써부터 그만둘 수는 없단 말이다.?앤소니 카바자르의 심정도 비슷했으리라.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자기와 같은 증세로 투병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들, 희귀병이라서 겪는 모든 서러움, 어떤 지원과 관심이 필요한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알려야 해서 택한 노력이 비로소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물론 당신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것은 2분이 채 걸리지 않는 쉽고 즐겁운 선택이다. 키득거리는 친구들에게 영상을 준비시키고, 화창한 웃음과 함께 “ALS 여러분(?) 힘내세요!” 외친 뒤 셀프 쏟아붓기를 하고 그 비디오를 카카오스토리에 올리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ALS를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ALS에 '키스'한다는 것은 당신이 ALS의 고통을 알고 그것을 위해 기부하는 것이고, ALS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고, 물벼락 때문에 벌벌 떠는 것보다 더 심한 근육 위축의 아픔을 두고두고 잊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ALS 환자가 자기 팬티에 써서 도전했던 그 말을 다시 전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그들의 ALS에 키스해줄 수 있겠는가? ALS를 위해 당신 친구들끼리 물벼락 맞고 노는 것 이상의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가? 못 하겠다면, 가볍게 들어올린 물바가지라도 적어도 내려놓도록 하자. 부디.
P.S.
‘관련 기관’이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그럴 것 같아서, 기사 본문에 나오는 모든 “ALS”에 링크를 걸어 두었다. 모두 한 곳으로 연결된다. ALS를 “루게릭 병”이라고 부르는 것도 쉬운 선택이고 스티븐 호킹 박사의 병이라고 부르는 것도 편한 방법이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ALS 환자들이 스스로의 병을 부르는 이름을 제대로 쓰기로 했다. 이게 우리가 그들의 ALS에 키스하는 방식이다. 자, 이제 당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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