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박종철, 그리고 살아있는 대공분실

세상에는 아직도 27개의 대공분실이 남아있다

건장한 남자들이 쇠사슬로 묶어둔 학생회관 4층 복도 현관문을 뜯어내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공주사대 총학생회에서 온 전화였다. '여기에도 계엄군이 진입했으니 빨리 피하세요!' 그렇게 외치고 돌아서는데 이단옆차기가 날아왔다. 허벅지를 밟혔다. 이마에 닿는 권총 총구가 서늘했다.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영화 <1987> ,그리고 대공분실

80년대 민주화운동은 폭력과 고문으로 점철됐다. 그 중심에는 보안사, 그리고 대공분실이 있었다. 보안경찰은 민주화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붙잡아 가두고 대공분실에서 고문했다.

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이 장면은 시각적으로 관객에게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이 밝힌 박종철의 사인이다.

실상은 달랐다. 부검 결과,? 물고문 와중에 목이 욕조 턱에 눌리며 질식사했다. 명백한 치사였다. 이 사건을 도화선으로 6월 항쟁이 일어났고 제5공화국은 막을 내린다.

6.29선언을 앞둔 전두환

제5공화국을 뒷받침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대 한국 건축의 아버지, 故 박수근 선생의 수치로 평가받는다. 5층 창문의 좌우 폭은 1cm 남짓이다. 아주 희미한 빛만 들어온다. 밖에서는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다. 정문은 있으나 잡혀온 사람들은 아주 좁은 쪽문으로 들어간다.

1층부터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나선형의 철제 계단에서 피해자들은 눈을 가린 채 철체 계단이 내뱉는 굉음을 들으며 공포를 느낀다. 빙빙 도는 계단 때문에 방향감각을 상실한다. 각 방은 문을 엇갈리게 설치하여 오로지 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벽뿐이다. 오로지 고문만을 위한 시설이다.

오직 고문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2018년에도 아직 대공분실은 남아있다

대공분실은 남영동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른 대공분실은 창문을 콘크리트로 가려놓은 곳도 있고, 과거에는 용도를 숨기기 위하여 전혀 상관없는 간판을 단 적도 있다. 그리고 현재에도 수많은 대공분실이 운영되고 있다.

의정부시 경기지방경찰청의 대공분실. 외견상으로는 다른 건물과 다를 것이 없다.

1987년에서 30년이나 지났으니 그래도 무언가 바뀌지 않았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전국 27개의 대공분실 중 인권을 침해할 요소가 적다고 평가된 곳은 6곳에 불과하다. 진술 녹화실이나 변호사 접견실이 없는 곳도 있다. 명백한 인권탄압이다.

대공분실의 존폐 요구에 대하여 경찰 측은 '대공분실이 각 청의 보안수사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난색을 보인다. 그러나 부산청과 대전청에서는 대공분실이 아닌 경찰청 내부에서 국가보안법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진다.

보안 수사를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권탄압의 소지가 존재하는 대공분실을 사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곧 경찰로 대공수사권이 넘어온다

지난 1월 14일은 박종철 열사의 31주기였다. 연세대학교 언어학과 84학번, 스물둘 故 박종철 열사는 대공분실의 욕조 안에서 숨졌다. 민주화 투사들의 피, 눈물, 그리고 죽음을 거름 삼아 이 땅에서는 민주주의가 싹을 텄다. 총칼 앞에 무수한 사람이 피를 뿌렸고 전국의 대공분실이 미어터지게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박종철 사건 당시 검찰의 ‘실황 검증’ 장면

30년이 지난 지금,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있다.? 누군가는 전기고문을 받고 엉덩이뼈가 부러져 제대로 걷지 못한다. 또 누군가는 50년이 넘게 간첩 딱지가 붙은 채로 손가락질당하며 살았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국정원이 가지고 있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전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비밀리에 이뤄진 비리, 본디 목적을 잊은 수사 그리고 커다란 권력을 가졌던 기관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권력이 양지로 나오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공분실은 투명한 수사를 장담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장소다. 2018년의 시민들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는 수사를 원한다.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 오욕의 역사가 묻어 있는 대공분실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구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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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훈

조영훈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비오는 날과 홍학을 좋아합니다. 공산당을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