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위병소를 벗어나지 못한 당신들에 대하여

그곳에서 운 좋게 탈출한 ‘너’를 바라보던 나의 이야기

두 번의 겨울을 돌아 그가 나의 세계로 돌아온다

어느새 끝으로 다가온 남자친구의 전역. 남은 날짜를 세어보다 문득,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하나 명확하게 잡히는 문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의 이 감정을 남겨 두어야 할 것만 같아서 책상 앞에 앉아본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하려는 건 고무신이 겪은 재미없는 군대 얘기다

사람들에게 비치는 ‘고무신’은 어떤 존재일까. 신기루 같은 믿음 하나로 2년을 기다린 바보?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자처한 고생길 위에서 연인과의 의리를 지키려 애쓰는 안쓰러운 사람?

곰신과 군화의 사랑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누군가의 희생과 또 다른 누군가의 헌신이라는 클리셰 안에서만 설명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2년이라는 시간은 군화의 휴가를 기다리느라 얼마나 애가 탔고, 면회 가는 고무신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따위의 ‘썰’로만 끝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도리어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징병제의 경험이 남자친구뿐만 아니라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지켜보는 나에게도 모종의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 우선은 2016년 5월 16일, 논산에서 그를 보내던 날로 돌아가 보려 한다.

#장면 1 : 단절의 의미

입소식날, 연병장으로 내려가며 잡고 있던 손이 끊어지던 찰나의 느낌을 기억한다. 끊어진 건 손이었는데 무언가 다른 것이 함께 끊어진 듯해 심장이 덜컥 내려앉던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 순간이 무한 반복 되는 꿈을 꿨다. 아마 떨어지는 손끝으로 만져지던 두려움의 감촉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연 흙먼지 속으로 사라져가는 너와 나 사이에 포승줄로 그은 38선이 생긴 것 같았다. 붕 떠 있던 나를 다시 지상으로 내려준 건 2주 후 도착한 너의 편지였다. 총과 탄을 배우고, 매복하는 법을 익히면서 너는 빠르게 그곳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이쪽 세상에서는 좀처럼 본 적 없는 언어가 실린 편지들을 보면서, 어쩌면 너는 나라 속의 나라, 또 다른 국가 속으로 끌려들어 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주 뒤 열린 수료식에서 기수가 된 너는 뒤로 백여 명의 중대원을 이끌고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똑같은 옷, 비슷한 표정을 한 아들들의 일사불란한 행진을 보며 스산한 전율이 일었다. 저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이토록 똑같을 수 있다니. 한 달 전, 좌향좌와 우향우를 몰라 쩔쩔매던 저들에게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너의 부모님과 함께 간 갈빗집. 정체 모를 감정을 살코기와 함께 씹고 있을 때, 내 손바닥 위에는 네가 쥐여준 은색 목걸이가 놓였다. 전시에 사망할 경우 하나는 전사자의 몸에 남기고, 다른 하나는 시체를 발견한 동료가 가져가 대신 소속부대에 신원 보고를 하기 위해 두 개의 인식표가 걸려있다는 ‘군번줄’ 이었다.

이름과 혈액형이 양각으로 새겨진 그것의 표면을 매만지자 저릿한 금속재의 차가움이 뼈를 타고 올라왔다. 잠재된 죽음을 목에 걸고 살아가는 일상이란 어떤 것일까?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네가 갑자기 머나먼 타국의, 익명의 인물처럼 느껴졌다.

네가 무심히 내뱉은 탈영병의 이야기가 귀에 박힌 것도 그래서였나. 훈련소의 담장을 넘는 순간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담장을 넘었다는, 그리고 곧 붙잡혔다는 그 훈련병. 그도 이 얇고 작은 금속표가 주는 추위가 도망치고 싶었을 만큼 소름 끼쳤던 걸까.

다시 너를 들여보내고 돌아가는 길,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훈련소가 꼭 섬 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섬 하나. 떨쳐내도 자꾸만 엄습하는 외로움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장면2 :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한 달의 후반기 교육을 받고 너는 경기도 북부로 이동했다. 너는 ‘선진병영’ 캠페인 덕분에 바뀌어간다는 요즈음의 군대 문화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몇 년 전부터 네가 소속한 부대는 생활관을 동기들끼리만 쓰고 있고, 선임과 부힐 일이 없으니 딱히 사병들 사이에서 위계로 인한 부조리가 생기지도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던 너. 유난스러운 간부도 없고, 맛없는 밥과 새벽잠을 이겨야 하는 경계근무 외에 특별히 힘든 게 없다는 그 말에 나의 일상도 안정을 되찾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하는 네 말을, 나는 순진하게도 그대로 믿었다. 아니,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써 숨겨둔 불안의 방아쇠는 그해 가을, 파주 GOP 초소에서부터 당겨졌다.

후임과 경계근무를 서던 일병이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했다. 불의의 사고로 출발한 사건일지는 결국 가혹 행위 주도자인 선임 3인의 구속 수사로 이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총성의 도미노는 철원, 연천을 비롯한 육군 최전방뿐만 아니라 공군, 해군, 해병대 할 것 없이 전국 각지 부대에서 일어났다.

근무용 권총에 공포탄을 장전해 후임에게 ‘러시안 룰렛’을 자행한 선임, 후임의 위장이 미어터지도록 빵과 과자, 심지어는 바퀴벌레까지 먹인 선임들과 사병들을 학대, 협박한 간부의 이야기가 탕, 탕, 일정한 간격으로 발사되는 총탄처럼 튀어나왔다. 윤일병과 임병장은 A, B, C와 같은 이름으로 어디에나 있었고, 터진 지뢰와 화약에 스러져도, 스스로 목을 매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죽음 역시 도처에 널려 있었다.

네가 해병대에 가지 않은 것을, 의장대로 차출되지 않은 것을, 최전방에 배치되지 않은 것을, 선임과 함께 쓰는 생활관에 있지 않은 것을 감사하다가 울컥하고 눈물이 새어 나왔다. 맞거나 자살 당하는 일없이 주어진 일과에만 충실하며 생활하는, 군인으로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너의 일상이 마치 거듭된 요행의 결과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잘못하지 않아도 잘못을 빌어야 했던 윤 일병이 만약 다른 부대에 있었다면. 그는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 겨울이 될 무렵 너는 함께 생활하던 동기 한 명이 수면제를 털어 넣고 실려 나갔다고 털어놓았다. 훈련소 시절 네게 들었던 탈영병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에이-, 비-, 씨-. 어디선가 누군가의 이름처럼 울리는 총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장면3 : 그곳에서 다름은 용서되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너는 상병이 되었다. 봄이 되고 있었고, 긴 휴학 끝에 복학생이 된 나는 바빠진 일상만큼 전역으로 향하는 시간 역시 빠르게 갈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탄핵정국과 장미대선 사이의 혼란 속에서 마주친 악몽은 나를 또 한 번 충격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군내 동성애자를 처벌하기 위해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지시한, 동성애자 ‘색출’작전. 군은 UN 자유권 규약위원회에서도 이미 수차례 폐지를 권고한 군형법 92조 6항을 수사의 근거로 내걸었지만, 참모총장이 한국기독교군인회의 회장임을 알았을 때엔 헛웃음이 나왔다.

함정수사로 만들어진 수십 명의 블랙리스트와 이들의 ‘혐의’를 검증하려 밀실에서 이루어진 취조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내게 남는 것은 군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이었다. 30여 년 전 남영동의 망령이 거기 있었다. ‘추행’이란 죄목으로 회부된 A 대위는 결국 군사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얼마 뒤 장 총장은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과 함께 떠들썩한 전역식을 치렀다. 이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대체로 무관심했다.

결단력 있는 참모총장의 ‘남자다움’을 칭송하기도 했다. 눈앞에서 한 인간의 삶이, 존엄이 곤두박질하는데 세상은 이토록 싸늘할 수 있구나. 그 무관심은 묵인에 가까운 것이었다. 다름을 단죄하는 폭력에 대한 강력한 묵인. ‘A대위’로 이름 지어진 한 남성은 불과 몇 개월 만에 그가 속한 세계에서 완전히 삭제되었다.

다름에 대한 결벽증, 그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파시즘적 징후가 아닌가.

제도가 뒷받침하는 혐오와 강제되는 마초이즘의 학습 속에서 전체주의는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징병제에 대한 강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군대는, 군대 그 자체만으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재사회화의 깔때기를 통과한 예비역 남성들을 통해 사회를 수혈하고 있었다. 곳곳의 세포로 수혈된 빅브라더의 DNA는 남자를, 여자를, 인간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그리고 깔때기를 통과하지 못한, ‘걸러진’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에필로그 : 우리는 무사히 그곳으로부터 탈출하지만

사랑하는 너는 무사히 깔때기의 긴 목을 통과했고, 이제 나는 허름한 내 고무신을 상자에 넣는다. 곧 허락된 탈출의 순간이 밝아오면, 위병소를 지나 성큼성큼 걸어오는 너를 데리고 그곳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도망쳐야 하겠지.

매년 군대라는 키워드가 나오면 인상된 월급, 복무기간의 단축과 인구 절벽, 여성 징병에 대한 이야기가 어수선하게 떠돈다. 그리고 얼마 전 , 한 남성이 초등학교로 들어가서 아이들을 인질로 삼았다. 인질범은 군에 복무하는 동안 부조리, 폭언, 협박과 같은 가혹 행위를 당하는 바람에 뇌전증과 조현병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대한 지 4년이 지나도록, 세상은 그에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범인은 제대 이후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질까. 정말로 나아질 수 있을까? 깔때기는 여전히 새로운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또 걸러낸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건 간에 그 사실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얼마 전 너와 함께 봤던 영화 속 대사가 자꾸만 떠오른다.

“분단국가의 국민은 분단 그 자체보다,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더 고통받는다.

탕-. 어디선가, 다시 총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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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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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행복하고 싶은 개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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