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본 내용은 영화 <숲속으로>에 대한 내용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엄마, 이거 겨울왕국보다 재미없어"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영화를 선사하겠다며 야심차게 등장한 영화가 있었다. 개봉일도 2014년 12월 24일. <숲속으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겨울왕국>으로 한참 상승세를 타고 있는 디즈니의 영화다 보니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최종 관객수는 고작 34만명. 디즈니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관객들에게는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리뷰란에 가보면 분위기는 좀 더 심각해진다. 한숨만 나오는 125분, 별 하나도 아깝다와 같은 평이 대부분. 맞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명작은 아니다. 사실 조니 뎁, 메릴 스트립과 같은 명배우들과 뮤지컬 <위키드>제작진을 데리고 어떻게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숲속으로>는 그저 별로인 영화로만 치부하기에는 아쉬울만큼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디즈니의 BEFORE & AFTER
1989년 <인어공주>를 시작으로 미녀와 야수(1991) , 라이온킹(1994), 뮬란(1998)이라는 흥행을 통해 황금기를 맞이한 디즈니. 어여쁜 공주와 항상 나이스 타이밍에 등장하는 멋있는 왕자, 그들의 겉모습만큼이나 아름답게만 끝나는 엔딩은 보는 이로 하여금 Happily Ever After 라는 문구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어린이의 영원한 친구로 남을 것 같던 월트 디즈니도 나이는 속이지 못하는지 예전만큼의 명성을 떨치지 못했던 암흑기가 있었다.
디즈니를 황금기로 이끌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수장 제프리 카첸버그가 경영진과의 충돌로 사퇴, 드림웍스의 수장이 되면서 판도는 급하게 바뀌기 시작한다. 공격도 적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법. 제프리 카첸버그는 드림웍스에서 디즈니의 진부한 캐릭터와 설정을 풍자하는 작품인 <슈렉>을 발표하며, 동화의 허구적인 행복관을 풍자하는 시도를 성공적으로 선보인다.
이는 디즈니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보수적인 가치관, 극단적인 선악구조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혀 들어갔고, 애니메이션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극찬까지 받게 된다. 더군다나 3D 그래픽 애니메이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그간 디즈니의 강점이었던 2D 셀 애니메이션 시장은 어느덧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하여 디즈니도 반격을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2007년작 실사영화 <마법에 걸린 사랑>을 시작으로 기점으로 최초의 흑인 공주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공주와 개구리>, 금발에 대한 21세기적 새로운 해석 <라푼젤>, 더 이상 나약한 공주님이 아닌 <겨울왕국> 등을 통해 새로운 여성상과 현실적인 사랑이야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가장 최근 작품인 <숲속으로>에서는 이런 변화의 끝판왕을 볼 수 있다.
디즈니, 시도, 성공적
빨간모자, 라푼젤, 잭과 콩나물 등 그림형제 이야기들을 새롭게 해석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등장한 <숲속으로>를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작품에 신데렐라는 왕자보다 현명하며 훨씬 용감하기까지 하다. 왕국에 거인이 쳐들어와 위기가 닥치자 신데렐라는 ''구해줘요 왕자님''을 외치기 보다, 숲 속에 남아 아이들을 보호하며 끝까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뿐인가. 잘못을 저지른 왕자에게 먼저 쿨한 이별을 고하기도 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민하는 현명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간 남자를 통해 신분상승을 하는 얄미운 캐릭터로만 여겨졌던 신데렐라의 스테레오 타입이 머릿속에서 잊히는 순간이다.
살다보니 느낀건데, 세상에는 멋있는 슈퍼 히어로처럼 무엇이든 척척 해결할 수 있는 남자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 비겁하고 못난 남자도 참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에서의 왕자님 역시 그렇다. 무능하며 불륜을 저지르는, 백마 탄 그분과는 너무도 먼 모습이다. 이렇듯 뻔한 이야기 안에서 진행되기 보다는 우리의 스테레오 타입을 깨는 황당한 장면으로 관객에게 즐거운 긴장을 주는 것은 <숲속으로>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물론,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스토리에 조바심이 느껴지게도 한다. 거기다 공주님과 왕자님은 행복하게 살았다는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닌 것을 확인하는 순간, 느껴지는 익숙한 꺼림칙함의 또 다른 이름은 현실이다. 완벽히 달콤하진 않지만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삶을 꿋꿋이 버티는 모습 뒤에 숨어있는 용기나 희망은 그 어떤 해피엔딩의 가르침보다 진하다.
거인은 작품 속에서 왕국을 짓밟고 숲을 무너뜨리는 전형적인 악역으로 묘사된다. 과거였다면 아무런 설명도 없이 타도해야 할 절대 악으로 묘사되는데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거인도 미치지 않고서야 아무 이유 없이 인간에게 횡포를 부리겠는가. 얼마 전 개봉했던 디즈니의 실사영화 <말레피센트>에서도 악역의 미워할 수 없는 사정이 나타났듯, 여기에도 이유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알고보니 거인의 난동은 남편을 죽인 인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실은 선과 악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악한 것도 속사정이 있을 수 있고,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약간의 어두움과 타협을 하기도 한다. 작품 속 신데렐라가 마지막에 많은 것을 잃고 부르는 노래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잘못된 것과 옳은 것 중 무엇이 진실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 " ㅡ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디즈니 언니 잠깐 숨 고르셨답니다
작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점을 찍었던 지브리 스튜디오가 돌연 해체를 했다. 2D 애니메이션 제작으로 인한 과도한 인력비가 결국 시대를 호령했던 회사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반면 월트 디즈니는 마블과의 콜라보를 통해 선보인 <빅 히어로> 등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가동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숲속으로>는 디즈니의 최근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근 디즈니가 보여준 확장을 생각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최초로 영화화한 이 첫걸음은 동화에서 벗어나 ''디즈니''식으로 선보일 영역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은 조만간 우리를 찾아올 또 하나의 디즈니 프린세스, 신작 모아나에서도 엿볼 수 있다. 폴리네시아의 전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작품 역시 전통적인 동화스러움에서 벗어나 최근의 문법에 맞는 진취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디즈니는 이제 다가올 3월에 실사영화 <신데렐라>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원조 공주 언니의 귀환, 당연히 기대하고 부응하는 것이 예의 아니겠는가.
디즈니의 전통과 새로움의 성공적인 조화는 강력하게 지속될 것이다. 그 행보 안에서 <숲속으로>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욱 기억될 실험이 될 것이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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