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말하다

먼 훗날 손자 손녀들에게 감동적인 썰을 풀어줄 수 있는 값진 휴학기간을 보내보자.

엄마 나 학교 안 갈래! …근데 이제 뭐 하지?

방학은 잘 보내고 있으신가. 교수님의 씨뿌리기 공격에 당한 당신은 아마 지금쯤 휴학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뭐하고 먹고 살지 모르는 이 상황, 졸업만이 답이 아니라는 주변 사람들의 달콤한 말도 많다. 괜히 휴학한다는 친구 말을 들으니, 다음 학기에는 누구랑 밥을 먹어야 하는지 걱정도 된다. 사실 졸업을 늦추기 위해 휴학 한번쯤 하는 일은 크게 대수롭지 않기도 하다.

놀자! 아… 이 놀자가 아닌가?

근데, 휴학하면 뭘 할 건가. 굳이 타입을 나누라면 4가지 정도가 되겠지.

인간은 휴학 때 무엇을 하는가?

1. 스펙을 쌓으려고 닥치는 대로 공부를 함. (study)

2. 학기 중에 즐겨보지 못했던 여흥을 위해 여행을 감. (travel)

3. 돈이라도 벌고자 아르바이트를 함. (alba)

4. 아니면 요즘 대학생들의 기본 스펙이라는 어학연수라는 것을 감. (u-hak)

근데, 그거 아나? 너는 휴학하면 백 프로 망한다. 지금부터 완벽히 망하는 휴학의 정석을 보여주겠다.

 

 

1. study

공부하기

영어 마스터의 꿈을 품고 빨간 토익책을 방금 사온 김모 군 (22, 학생)

온갖 계획을 세우고 나서 인강을 듣기 시작한 김모 군. 이대로만 하면 성시경과 허지웅처럼 뇌가 섹시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하고 걱정도 된다. 그런데… 집중이 잘 안 된다. 잠시 인강을 멈추고, 산책을 하거나, TV를 본다. 집중이 되는 시기는 정말 어쩌다 한번만 찾아온다. 그렇게 신선 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시험 3일 전. 급 똥줄이 타서 방안에 틀어박혀 2배속으로 인강을 듣기 시작한다. 하필 그때, 책꽂이에 놓인 안 보던 책들이 그를 유혹하기 시작하고. 그러다 토익 당일날, 결국 멘붕.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공부한 것도 아니고…

일단 너는 집에서 나와라. 괜히 학원! 학원! 하는 이유가 다 있다. 학원가면 스터디 그룹이란 게 있거든. 꼭 들어라. 안 들으면 망한다. 물론 스터디에서 공부는 안하고, 친목 쌓는 분들도 있음. 걔들은 또 망하는 거고.

경험상 그냥 스파르타식으로 모질게 가르쳐주는 곳이 기분은 드러워도 차라리 결과는 좋더라. 나는 의지가 강하니까 상관없다고? 지난 학기 성적표 기억 안 남?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가 야무지게 망하기 전에 어서 정신 차리길 바란다.

 

2. travel

해외여행을 위해 야무지게 알바해서 돈 다 모은 강모 양 (24, 학생)

해외여행을 위해 야무지게 알바해서 돈 다 모은 강모 양 (24, 학생)

자력으로, 즉흥적으로 여행하는 것이 젊음의 낭만! 이라는 한 블로거의 뻘 글에 취해, <엔조이 파리>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파리행 비행기를 탄 강모 양. 여행사 패키지, 루트, 항공사 경유, 숙소, 이동 수단 그런 거 개나 줌. 낭만! 이 없으니까. 그리고 낭만의 파리 도착. 트렁크 찾는 것부터 헤매기 시작. 막상 어디 갈지 몰라 에펠탑 근교만 얼쩡거리고, 지하철 잘못 타서 길 잃고, 맥도날드로 끼니 때우다, 몽마르뜨 공원에서 흑형한테 돈 뜯기고, 지친 마음에 호텔 글씨가 반가워 덥썩 들어가고. 그러다 여행기간 반도 못 채우고 돈이 없어 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

어머 쟤 좀 봐라 쟤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흔히 ‘엔조이’ 시리즈 같은 가이드북만 달랑 챙기고 떠나는 사람들 참 많은데, 겁도 없다는 진짜. 예를 들어, 군인들은 여섯 시간 행군을 위해 한 시간 넘게 준비를 함. 그런데 며칠씩 가는 여행은 왜 이렇게 만만하게 생각함? 여행의 안락함과 준비기간은 비례하는 법. 기왕 돈 들여서 가는 거니까, 몸 상하고 맘 상하는 일 없는 게 장땡. 그러기 위해, 알아보고 또 준비하시길 바란다.

 

3. alba

무작정 ‘높은 시급보기’로 알바헤븐을 뒤적거리고 있는 최모 군 (21, 학생)

무작정 ‘높은 시급보기’로 알바헤븐을 뒤적거리고 있는 최모 군 (21, 학생)

더울 때는 시원하게, 추우면 뜨신 곳에서 있어 보겠다고 사무보조 알바를 구한 최모 군. 그리고 지옥이 시작됨. 한 통신사의 사무 및 상담 알바였는데, 아니 별 그지 같은 고갱님들이 단체로 더위를 드셨나, 다짜고짜 ㄱ으로 시작해서 ㄲ로 끝나는 전화를 하루에 몇 십 통씩 받는다. 절로 담배가 늘고, 주름이 늘고, 욕이 느는데, 딱 수명만 줄어드는 이 기분. 괜히 어른들이 공부가 제일 쉽다고 한 게 아니더라.

문득 교수님 얼굴이 보고 싶다.

괜찮은 알바 구하기가 공기업 취업 수준이다. 제대로 알아야 고생을 안 하지. 일단 시급에 너무 무게 두지 말자. 어디로 잡혀갈지 모른다. 위 사례처럼 의자에 앉아있는 알바는 스트레스가 심하고, 몸을 쓸수록 더 돈은 되더라.

간단한 알바 브리핑. 술집 알바라면 낮과 밤이 바뀌는 생체리듬을 잘 조절하길. 카페 알바라면 진상 손님아가들의 머그컵 도난질을 조심해라. 강사보조 알바라면 정식 강사들의 로드 매니저급 뒤치다꺼리 각오해라. 퀵서비스나 이삿짐 나르기 등의 몸 쓰는 알바는… 살아서 돌아와라.

 

4. u-hak

외국에 어학연수 갔다가 좀 외로워서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귄 박모 양 (23, 학생)

외국에 어학연수 갔다가 좀 외로워서 한국 친구를 많이 사귄 박모 양 (23, 학생)

원어민 발음을 혀에 장착해서 오리라고 야무지게 결심한 박 모양.

그러다 그냥… 외로워서.
그냥… 친구들하고 놀다 보니.
그냥… 그 친구들이 한국인이고.
외국친구는… 어쩐지 낯설고.
그래도… 추억이 남았으니까!

근데 한국에서도 친하게 지내자던 그 친구들!
연락이… 이상하게… 안 되네?

거짓말이지 그럴 리가 없잖아.

거짓말이지 그럴 리가 없잖아.

외로워도 슬퍼도 말을 배우러 갔으면 푸른 눈의 사람들과 부대끼자. 갔다 와서는 꼴에 외국 물 먹었다고 유학파 코스프레 하지 마시고. 진짜 별루다. 이성들의 기피대상으로 거듭나는 가장 빠른 길임. 만약에, 타지에 나갈 자신이 없는데 나가본 적도 없는 한반도 밖의 냄새가 그립다면, 그냥 이태원이나 가자. 교통카드 하나로 인터네셔널이 뭔지 맛볼 수 있다.

 

결론

바쁜 인생, 낭비는 좀 아깝지 아니한가? 젊음과 열정이라는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휴학을 결정하는 삽질은 하지 말자. 유일하게 제 맘대로 주무를 수 있는 시간이 휴학기간.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방탕하고 잉여로운 시간 보내지 말고, 진짜 말년에 손자 손녀들에게 감동적인 썰을 풀어줄 수 있는 값진 휴학기간을 보내길.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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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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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말은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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