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스러지다

너무도 반짝인 탓에 너무나 멀리 가버린 누군가들.


BGM '서울은흐림' - MOT

20, 스러지다.

세상 모든 사라짐은 가슴 아프다. 젊음의 절단은 더욱 시리다. 만물이 쇠하는 겨울이 오기도 전에, 너무도 꽃다운 나이들이 생을 마감했다. 추모의 마음과 그들을 여전히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너무나 반짝인 탓에 너무도 멀리 가버린 누군가를 기려본다.

그리고 기억하자. 지금 우리가 누리는 생명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닌, 내 곁의 사람에게도 지분이 있는 하나의 공공재임을.

 

1. 서지원 (1976년 2월 19일 ~ 1996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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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환한 미소로 가장 슬픈 비보를 전하던 그는 서지원.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시로선 보기 드문 모성애를 자극하는 귀여운 얼굴과 큰 키, 그리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큰 인기를 얻었다. 풋풋하면서도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예능까지 섭렵하며 주말 버라이어티 MC 자리까지 차지했던 그가 그렇게 빨리, 자신의 명을 중단시킬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응답하라 1994”에서 고아라가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며 눈물짓던 장면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반갑지 않은 추억을 환기시킨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던 그의 곁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 역시, 추억팔이를 하며 예능쇼에 얼굴을 비치는 미중년 연예인이 되어있었을까? 그저 상상이나 할 수밖에.

2. 김환성 (1981년 2월 14일 ~ 2000년 6월 15일)

김환성

H.O.T.이전에 이미 중국을 집어삼켰던 원조 한류 아이돌 그룹. 한중수교 6주년 기념 공연차 중국을 방문하며, 이미 K-POP의 가공할 위력을 선보인 후, 중국의 CF시장까지 섭렵하고 나선 것은 NRG가 처음이었다. 뛰어난 실력과 수려한 외모를 전면에 내세웠던 이 꽃미남 아이돌 그룹의 중심에는 리드보컬이자 비주얼 담당이었던 김환성이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승승장구하던 새천년 어느 날, 김환성의 사망 소식이 마치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던 연예인 찌라시처럼 신문을 도배했다. 급성 바이러스성 폐 질환으로 정확한 병명은 밝혀지지 않았기에 더욱 어이없고, 슬픈 소식이었다. 재인박명‘이라 했던가. 과연 하늘도 시기했다고 보지 않고선, 그의 안타까운 젊음을 달랠 길이 없어 애석하다. 멤버들은 그의 사후, 네 번째 정규앨범에서 '비(悲)'라는 곡을 발표하며 떠난 고인의 넋을 기렸다.

3. 김다울 (1989년 5월 31일 ~ 2009년 11월 19일)

김다울

대한민국 모델계에서 김다울의 존재는 독보적인 것이었다. 밀라노, 파리, 뉴욕등 세계 3대 컬렉션에 오르며 청담동의 Daily Project에서 개인전을 갖기도 하는 등, 코리안 모델의 붐을 주도한 모델. 그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조건들을 뒤로하고, 왜 세상을 등져야만 했는지. 어릴적부터 기괴한 악몽을 꾸며, 현재까지도 어릴 적의 트라우마로 인해 괴롭지만 취향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인터뷰를 봤을 땐, 그런가 보다 했다.

10년 후에도 변치 않을거라는 최고의 모델은 그녀를 위한 수식어나 마찬가지였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 그렇기의 한창 아름답던 때의 그녀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사진 속 그녀처럼, 하늘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이길 바란다.

4. 우정호 (1988년 9월 30일 ~ 2012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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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지탄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존재로서,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의구심을 제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프로게이머 우정호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신한은행 위너스리그와 프로 리그에서 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당시, 그가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투병중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디씨인사이드 KT 롤스터 갤러리를 비롯한 많은 코치와 선수들이 너도나도 자발적으로 헌혈에 동참하였고 수많은 팬들이 헌혈증을 기부하고 또 모으기에 나섰다. 이토록 눈물겨운 모두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신은 그를 데려가고야 말았다. ‘모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랑한다.’라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마지막 메시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가 마지막까지도 붙잡으려고 했던 삶의 끝자락을 너무나 쉽게 쥐고 있는 것 같다.

5. 이언 (1981년 2월 5일 ~ 2008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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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거룩하고 아름답지만 때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어려운 무언가 같다. 위트 넘치는 그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통해 데뷔하여, “커피프린스 1호점“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이언의 능청스러운 표정은 미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동시에, 씨름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 15Kg의 체중을 늘리는데 주저하지 않은 진지한 연기파 배우였다.

”최강칠우“의 비중 있는 조연으로 승승장구하며 주가를 올리던 시점, 왜 하필 그는 그때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을까.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젊음의 스러짐이 결코 찬란하게 그려질 수 없다면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뿐인 것은 어쩔 수 없다.

6. 이은주 (1980년 12월 22일 - 2005년 2월 22일)K0000021_lej[W578-]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가 예감했을 것이다. 저 맑은 미소의 그녀가 조만간 만인의 그녀가 될 것이라고. 납득할만한 말이다. 이은주 특유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내뱉는 대사를, 특히 남자라면 마음 한 켠에 담아준 첫사랑이 속삭이는 듯한 설레임을 느꼈을테니 말이다.

1996년 선경 스마트 학생복 모델 선발대회에 은상으로 세상에 나온 이은주는 SBS 드라마 카이스트를 통해 발돋움한다. 영화 첫 주연작 <오! 수정>이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과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가장 손꼽히는 20대 여배우로 주목받게된다. 그리고 소설가 김영하의 화제작을 영화화한 <주홍글씨>를 촬영한 그녀를 인터뷰한 기사의 서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ㅡ "영화의 개봉을 3일 앞두고 만난 이은주는 스크린에서 막 걸어나온 듯 보이는 가희의 모습 그대로였다. 영화 속의 슬픔에서 미처 헤어나오지 못한 듯, 한층 야위어 보이는 얼굴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그녀는 '아는 척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게 될까봐요' 라는 대사를 남겼다. 9년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그녀의 죽음을 아는 척 하고 싶지 않다. 그녀를 알던 모든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게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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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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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말은 하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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