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어조를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유치원에 갔다온 아이가 팔을 위로 쭉 뻗었다가 허리를 흔든다. 특히 아이가 따라하려고 애 쓰는 부분은 예쁜 아이돌의 표정이다.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돼라는 가사에는 갑자기 뾰로통한 얼굴이 되다가, 여자니까 이해해달라는?구절에서는 정말 부끄러운 듯 두 눈을 꼭 감고 만다. 그렇게 아이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이돌의 행동을 즐겁게 따라한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그런 행동을 교육받은 나는 그 노래들이 전혀 즐겁지 않다.
혼자 자취한다고 말하면 주변 남자들이 모두 눈을 번쩍 뜨곤 했다. 그때 나의 공간은 유혹이 존재하는 곳으로 뒤바낀다. 하지만 정작 내 집에 들어오면 세탁기 안을 확인할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는 날들이 많았다.
낯선 사람이 창문으로 들어왔다고 친구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쇠창살로 바꾸기 위해 집주인과 실랑이를 했다. 여자라서 사는 게 무섭다고 말을 하면 남자들은 자기가 옆에 있어주겠다고 말한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과방 문을 열면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서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화이트보드에는 같은 학과에서 몸매와 얼굴 별로 가장 괜찮은 여자를 투표한 흔적이 있었다. 어떤 남자는 내게 ?'학과 퀸카인 너와 사귀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나를 기쁘게 할거고 믿었다. 나는?그와 헤어진 뒤에 훨씬 더 웃음이 많아졌다.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려 어렵게 직장을 잡았다. 회식 자리에서 나이 든 사람들은 여자가 따르는 술이 더 맛있다고 말했다. 토요일 저녁, 지금 뭐하고 있냐고 상사가 문자를 보내왔다. 연차가 지나면서 여자 동기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도 아이가 생겼다. 눈치를 보다가 끝내 밀려난 사람들은 기억한다. 나는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집에서 할 일들은 정말 많았다. 빨래와 설거지를 모두 마치고 남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할 만한 일들을 찾는다. 아이에게 눈을 돌릴 수 없던 지난 2년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내가 살전 이전의 삶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야근에서 돌아온 남편을 위해 부인이 칠첩반상을 차려준다. 너도 내조라는 걸 좀 하고 그래. 남편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원래 그렇다는 가사가 라디오에서 나온다. 한숨을 쉬며 전원을 끈다.?한국에서 사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냐고 묻는 가사를 조용히 흥얼거린다. 하지만 지금 유치원에 간 딸에게 이런 노래가 들릴까 싶다.
나는 내 딸이 사랑받는 여자에서 멈추지 않기를 바라고, 자신의 가능성에 한계를 재지 않기를 바란다.?여아 낙태가 가장 심하게 일어났던 시기에,?가장 평범한 이름을 가진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노래를 부른다. 마치 들릴 것 처럼, 더욱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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