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인증서보다 더 접근하기 쉬웠던 '사설도박'
휴가를 나오면 돈이 부족하다. A도 그랬다. 시스템과 규칙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다. 은행 어플리케이션보다 입금과 출금이 더 쉬웠다. 도박이라는 생각도 없이 도박을 시작했다. 단지 휴가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약간의 돈만 따낼 생각이었다.
10만원이 30만원으로 불어났다. 일을 하지 않고도 앉은 자리에서 20만원을 딴 것이다. 달콤했다. 풍족한 휴가를 보내고 복귀를 했다. 내무반에 누워있는 내내 그 짜릿함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말년휴가를 나온 A가 급하게 스마트폰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주일의 휴가 기간 동안 그는 20만원을 90만원으로 불릴 수 있었다.
전역을 했다. 돈이 필요했다. A는 다시 불법 도박을 시작했다. 10만원 넣었다. 잃었다. 다시 10만원을 넣었다. 잃었다. 그렇게 다섯번을 반복하자 조금 정신이 들었다. 최저시급 기준 80시간을 넘게 일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이 단 한 시간 만에 날아갔다. ?그러나 A에겐 20만원을 90만원으로 불린 경험이 있었다.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아는 형에게 10만원을 빌렸다. 잃었다. 학교 친구에게 10만원을 빌렸다. 잃었다. 아는 선배에게 다시 10만원을 빌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A는 자신의 사연을 말하는 도중에도 어머니에게 받은 용돈을 도박사이트에 다시 충전하고 있었다.
분석도 해봤지만...결과는 마찬가지
사설도박에서 잃는 일을 반복하던 B는 구간을 파는 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구간을 판다'라는 표현은 전 회차에 나온 통계를 바탕으로 결과를 예측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파악한 패턴을 바탕으로 돈을 걸었다. 승률이 오르기 시작했다.
하루에 20만원씩, 그렇게 일주일을 벌었다. 매일 이렇게만 벌자고 결심했다. 10만원은 저축하고, 나머지 10만원을 쓰기로 결심했다. 비싼 음식을 먹고 좋은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날, 문제가 생겼다. 예측한 패턴이 맞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허무하게 잃는 날들이 많아졌다.
생활비는 손대지 말자. B가 사설도박을 시작하며 결심한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생활비 통장에는 7만원이 남아있었다. 충전버튼을 눌렀다. 보다 신중하게 구간을 파기 시작했다. 그는 일주일동안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고 말했다. 달아오른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목이 시큰거렸고 눈이 시뻘게졌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 그렇게 80만원을 다시 만들었다.
본전을 복구했지만 B는 그만두지 못했다. 다시?50만원을 충전했다. 딱 200만원을 만들고 그만 두자고 결심했다. 일주일만에 50만원이 날아갔다. B는 여전히 복구에 열중하고 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잔인한 게임
그들은 말했다. 불법 도박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돈을 잃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롤링’이라는 규칙에 의해 건 돈의 두 배 이상을 배팅했을 때만 그 금액을 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만원을 입금했다면 그 금액의 두 배인 20만원을 여러 번에 걸쳐서 배팅해야만 인출액에 도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통계를 낼 수 있는 스포츠라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가령 야구를 예로 들어보자. 단순한 승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수가 먼저 안타를 친다던가, 처음으로 포볼이 나오는 팀을 베팅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어느 팀에서 선수 교체가 진행되는지와 같은 예측 불가한 항목을 베팅 종목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2월 발표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2015년 연간 불법 도박 규모는 최대 160조원 규모라고 한다. 참고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올해의 대한민국 정부 예산은 약 400조. 이 예산의 약 40%에 달하는 액수가 불법 도박 시장에서 오가는 액수다. 이들이 6개월도 안되는 짧은 시간 사이에 날린 금액을 따져보면 놀랍게도 납득이 간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단속이 진행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사설도박 사이트들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기 때문에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설령 물증을 포착하더라도 정작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오너들의 경우에는 사업장 명의를 실장이라고 불리는 '바지 사장'에게 돌리는 식으로 법망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끝이 없는' 도박의 늪
얘기하는 내내 그들은 스마트폰을 손에서놓지 못했다. 가끔 쉬는 시간에 놀이터(사설 도박 사이트), 한강(실패하면 자살한다는 의미), 똥배 (낮은 배당)등의 은어를 자연스럽게 섞어가며 얼마를 배팅했는지, 얼마를 따고 나면 출금할 건지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그들에게 물었다. 후회하지는 않냐고. 도박에서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마인드 컨드롤이라고, 잃어도 멘탈만 잡으면 무조건 딸 수 있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득 지난번에 본 기사가 기억났다. 지난 1월, 제주 경찰에 따르면 2014년부터 수십차례에 걸쳐 돈을 받고 외국어 능력시험을 대리 응시한 한 대학생이 검거되었다고 한다. 범행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사설 도박을 통해 진 빚을 만회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취재 막바지, 갑자기 A가 한숨을 쉬었다.
조금 땄던 금액에서 다시 본전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쉽게 끝나지 않을 지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조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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