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청년을 연구한 결과

과연 우리 20대는 우리 자신에게도 연구대상이었다.

청년,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다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이하 청년허브)는 서울시 청년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청년 스스로 자기 삶의 문제를 연구할 수 있는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청년허브는 “청년,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다”라는 제목의 연구 발표회를 개최했다.

2014년도 청년허브 연구사업 결과공유회 포스터

“청년,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다: 2014 청년허브 연구사업 결과공유회”

타이틀이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을 만들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지금 하필 대체로 20대인 특정 세대는 “이행기”에 있다든가(잠시 후에 소개) “세대 담론을 해체”(이것도 잠시 후에 소개)해야 이해할 수 있다든가 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 설명을 곰곰이 읽어 보니, ‘자기 경험과 시선을 통해 사회문제를 들여다보고 삶에 기반을 둔 정책 및 현장의 연구’를 박람회 형식으로 공개하고 이야기를 나눠 본다는 것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참가신청을 넣었다.

 

청년이 청년을 연구하게 된 12가지 이유

행사는 일정대로 6시 30분이 되자 칼같이 개회됐다. 진행자와 청년허브 센터장이 각각 짧게 인사를 했고, 이어서 열두 팀(!)의 2분 소개 프리젠테이션이 안내 포스터에 적힌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발표들을 주제별로 재배열해 보자면…

먼저는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의 연구 주제의식이 있었다. 이에 대해 지식순환협동조합은 ‘이행기’에 접어든 지금의 세계 사회를 그 이유로 들었고, 고함20 발행인은 우리를 “분석하기 위해서 이름지은” 세대 담론의 실패를 거론했다. 아니면, 정말 다양한 저마다의 이유로 대안 교육을 받고 졸업한 사람들이 세상에 청년으로 나와 보니 느끼는 게 너무 달랐다던가. 아무튼 우리가 이전 세대와 분명히 다르고, 그 다름의 정체가 그리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들 모두의 공통 관심사로 보였다.

다음으로는 “내 취향과 내 인생을 어떻게 설명해야 최선인가”를 고민한 연구들이 있었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아무튼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가는데, 이걸 뭐라고 규정해서 이해를 구하면 좋을까? 어떤 20대는 직업활동가로 살고 있었고, 사부작연구소는 업사이클링을, 어떤 20대는 사회적 노동을, “짓”이라는 단체는 청년 장애인 예술 활동을 하고 있었고 ‘영희야 놀자’라는 이름의 20대들은 소자본 예술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에게는 연령대가 20대라는 사실 외에도 뭔가 공통된 것이 있음에 틀림없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또는 살기 싫은가)”가 주요 테마로 다루어졌다. 문화기획단 활활은 20대가 시간을 잃어버리고 산다고 보았고, 민달팽이유니온은 20대에게 제대로 된 주거환경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마포는대학은 고립되어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블랭크라는 팀은 지역과 연계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활을 제안했다.

이쯤 되면 이들의 연구 계기는 열두 가지가 아니라 사실 다음의 하나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어쩌다 이렇게 살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린 지금 이렇게 살고 있고 앞으로 살고 싶은 세상이 있는데,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우리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이 이러니, 이후 순서에서 각 연구자들에게 주어진 40분의 연구 공유 시간이 짧을 만도 했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죽이거나 할 말이 없어서 머뭇거리는 모임이 단 한 곳도 없었다.

 

1부: 7시 20분부터 8시까지

대안학교 졸업생 연구 모임에서는 연구 결과 발간된 무가지를 다함께 읽어 보며 대안학교 졸업자가 대다수의 20대와 같으면서도 다르게, 다르면서도 같게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했다. “우리끼리는 그런 얘기도 해요. 대안적 주입식 교육이라고. (일동 웃음)”

소자본 예술가-창업가 연구 모임에서는 이태원 회나무길과 우사단길에서 소자본 창업을 해 보았던 예술가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상권’에 창업할 기대에 부푼 창업주와, 그 골목을 자주 오는 인테리어 시공업자의 냉담한 반응이라든지.

직업활동가의 삶 관련 연구 모임에서는 NGO, 사회 공익 단체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급여 정도, 근속 년수, 애로사항 등 실제적인 데이터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발표됐다. 그래서 참가자들도 ‘중간 허리가 없다’ 같은 심층적인 질문을 던졌다.

“버려지는 자원이나 쓸모없는 제품을 더 좋은 품질의 제품 또는 더 높은 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만드는 작업”으로서의 업사이클링은 다소 생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부작연구소는 업사이클링에 개인적인 재미에서부터 ‘쓰레기의 경제학’까지 다양한 결이 있음을 알기 쉽게 이야기했다.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 소속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소외받고 있다고 직접 말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청년예술정책에 (빈)틈이 있다”라며 시종일관 말을 골랐다. 그럴 만도 했다. “(같은 장애예술단체라도) 신생 단체는 진입이 어렵다” 같은,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으니까.

문화기획자그룹 ‘활활’은 사실 “놈펭”이라는 페이스북 그룹으로 더 유명하다. 그들은 그걸 의도했다고 한다. 청년들끼리 하루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보내는 ‘가장 놈펭스러운 시간’과 연구발표 체험활동 자리 덕분에, 시간이 모자랄 만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약 10분의 쉬는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에 파스타 등의 주전부리가 재공급되어 요기를 끝낸 참가자들이 다시 분주하게 발표장소를 찾아 흩어졌다. 40분이 짧다는 걸 모두들 눈치챘는지, 이번엔 서로가 좀더 준비된 자세를 잡고 있었다.

 

2부: 8시 10분부터 8시 50분까지

BLANK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가는 커뮤니티 디자인 플랫폼을 표방하는 만큼 발표도 그들의 활동과 그로부터 얻은 반성들 위주로 편성되었다. “어떤 걸 하겠다고 하면 주민들이 협조를 잘 안 해 줘요.” 같은, 직접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와닿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영롱, 명수민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청년의 사회적 노동 경험 관련 연구 발표 자리에서는, ‘하고 싶은 걸 해서 사회에 임팩트를 주려고 사회노동에 뛰어들었는데 하다 보니 새마을운동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참석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만한 자리였다.

지식순환협동조합 발표자에 따르면, 지금 시대는 거대한 전환기 혹은 ‘이행기’에 있다고 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한두 줄짜리 경제 담론만으로 포괄되지 않는, 그러나 “동료들을 만나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었음을 이 자리에서 알 수 있었다.

모 대학 영상커뮤니케이션 석사 과정 중인 김선기 씨의 발표가 끝날 쯤 이런 물음이 던져졌다. “청년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그건 그리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몇 살까지가 청년인지도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세대 담론이 멋지게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 세대의 주거 환경 문제에 집중하는 사회 단체이다. 그들은 그야말로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그래서 각자의 경험 사례가 나올 때마다 공감의 웃음과 탄식이 쉴새없이 터져나왔고 이어서 진행된 간단 교육에는 모두가 집중해서 임했다.

마포는대학의 경우 그들의 연구는 고립사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 형식이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그래서 발표 시간 40분은 온전히 이 영화 시사회로 사용되었다. 오늘도 영등포, 서울역, 이 나라 어딘가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사라지는 수많은 ‘김경한 아저씨’를 기억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여전히 주고받을 이야기가 많다

2014년의 막바지를 살아가는 이 나라의 우리 20대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도 기성세대가 그렇게 하듯 관리비를 내고, 이태원 골목에 샵을 차리고, 예술 활동을 하고, 사회적 기업과 NGO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어쩐지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느끼며, 자기가 선택한 자신의 학력(學歷)에 대해 매일같이 신경을 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기성세대가 산 (그리고 물려준)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두 마디 세대론에 강박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의 무연고 장례를 치르고, 나름의 지역 문화를 탐색하고, 나름의 업사이클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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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클링 관련 연구공유 모임은 9시가 넘어서도 완전히 해산하지 못했다. 왜일까 궁금해서 찾아가 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업사이클링이 얼마나 재미있고 사회에 공헌하는 일인지 열변하던 사부작연구소 소속 연구 발표자와 일반 참가자가, 사뭇 진지한 분위기로 일대일 상담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일단 예뻐야 해요.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SNS가 필요하고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나가서 물건을 판다고 하면,
일단은 그게 예쁘고 사고 싶은 물건이어야 하고요…”

참가자는 업사이클링에 관련된 뭔가를 시작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궁금해 보였다. 발표자는 업사이클링을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전하고 있었다. 그렇다. 여기까지가 우리 20대다. 우리에게 아직 결정된 정답으로서의 방향은 없고, 있다손치더라도 매우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걸어나가야 할 잡초 자란 산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청년연구는 시간이 모자랐고, 우리는 아직 더 할 이야기가 남아 있으며, 청년허브의 열두 가지 연구들은 다음 연구와 새로운 연구를 기다리고 있는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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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