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펙 실패기 ③대학생 창업프로그램

총체적으로 난국이던 대학생 창업프로그램

‘아이디어’만 가져오라고 하기에

마침 친구들과 나는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었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막연히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창업프로그램’에 지원했다. 하지만 3개월여가 지나 깨달은 건 ‘창업’이라는 건 만만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을 ‘남한테 받아 쓰는 건’ 더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름의 회의를 거쳐 아이디어를 기획서로 완성하고 얼마 후 ‘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리 높은 경쟁률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디어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합격했으니 주말에 학교에서 ‘OT’를 들으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아이디어와 관련한 피드백은 주겠지’하는 기대를 안고 갔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모임 장소는 10여 개의 팀, 100여 명 정도의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외에도 다른 학교에서 같은 규모의 사람들이 더 뽑혔다고 했다. 나름 ‘좋은 아이디어여서 뽑혔다’고 생각했는데 ‘내면 다 시켜주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계자의 피티 설명, 이전 창업 사례에 대한 설명으로 세 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야 ‘피드백’ 시간이라는 게 주어졌다. 하지만 사실 말이 피드백이지, 그냥 우리끼리 회의하는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강사님은 단 2명이었고, 그조차도 찾아가 묻지 않으면, 뒤에 줄 서서 기다리지 않으면 이야기할 기회를 얻을 수도 없었다. 뭔가 이상한 오티가 그렇게 끝났다.

 

이후에도 제대로 된 피드백 기회는 몇 번 없었다

딱 한 번 제대로 가졌던 피드백 자리에서, 우리 팀의 아이디어는 ‘너무 거창해서 현실성이 없다’는 말만 듣고 끝났다. 우리가 지금 능력이 없다는 거,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우리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거였는데. 그러나 ‘창업 강사’라는 사람은 ‘너네 이렇게 해서는 절대 창업 못 한다’는 매우 ‘현실적’인, 그러나 ‘누구나 알 만한’ 말만 늘어놓았다.

어떻게 해야 그 현실을 극복하고 창업을 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는 아주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매우 뻔하고, 뻔하고, 뻔하고도, 뻔한….

매우 뻔하고, 뻔하고, 뻔하고도, 뻔한….

그 창업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우리가 한 일은, 팀 활동 보고서를 쓰는 일, 청년창업박람회에 참여하는 일, 몇 번의 강연에 출석하는 일이었다. 정해진 '활동시간’을 채우고, 보고서 수를 채워야만 창업자금을 주겠다고 했고, 그 때문에 3개월이 지날 때까지도 창업자금은 받을 수가 없었다.

또한, 우리 팀은 특성상 ‘시장’에서 물건을 사야 했는데 ‘현금 사용’에 대해선 지급할 수 없으니 알아서 ‘카드’로만 지출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이디어 통과 과정부터 이러한 특성이 양해된 것이 아니냐고 어필했지만 원칙이 그렇다는 건조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학기 중 학교에 다니며 72시간의 교육 및 활동 시간을 채우고, 10개 정도의 보고서를 쓰고, 1번의 중간점검 피티 후에 우리는 지쳐버렸다. 이게 과연 ‘창업’을 위한 활동인지, 활동 시간과 보고서를 채우기 위한 활동인지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매 회의마다 활동 보고서를 쓰고, 영수증을 제출한 후 지출비용을 돌려받기 위해 한 두 달을 기다리는 일이 반복됐다. 시간이 지나며 팀에서는 ‘우리끼리 돈 모아서 창업하는 더 빠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전히 피드백 과정은 짧았고, 대화 몇 마디 못한 채 돌아오는 대답은 ‘아이디어가 현실성이 없다’는 똑같은 말 뿐이었으며, 여전히 창업에 왜 필요한지 모르겠는 활동들에 계속 참여하며 시간을 채우느라 진짜 창업을 위한 활동은 시작도 해보지 못했다.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창업하기가 싫어졌다.

마법의 소라고동님. 제가 이 프로그램을 계속 해도 괜찮을까요?

마법의 소라고동님. 제가 이 프로그램을 계속 해도 괜찮을까요?

팀 카톡방엔 아무도 말하지 않고 침묵만 지속되는 날들이 많아졌고, 회의에 빠지는 팀원에 대한 서운함도 커질 때쯤, 우리는 창업프로그램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솔직히 이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이런 것이 창업이라면 하고 싶지 않았다. 3개월 동안 활동 시간을 다 채운 후 그만두겠다고 하니 학교 창업센터 담당 선생님은 ‘아이템은 뭐라도 아무거나 좋으니, 취직할 때 스펙이 될 테니’ 끝까지 해보라고 했다.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때 확신이 들었다. 더 이상 이곳에 쏟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란 걸. 이 프로그램은 진짜 창업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란 걸.

아니.

아니.

 

창업프로그램을 함께한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 그만두길 정말 잘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는 ‘의지가 부족해서 그만둬놓고 남 탓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 프로그램의 취지는 ‘될놈 될, 안될 안’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창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지 않을까.

‘창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세상은 꿈이 있다면, 청춘이라면 반드시 창업에 도전해야 할 것처럼 말한다. 진짜 창업 과정에서 맞닥뜨릴 어려움에 대해선 알려주지 않은 채, 창업을 시작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것처럼 대학생들을 부추긴다. 아니, 사실은 그 ‘열정’을 이용해 자신들이 운영하는 창업 프로그램의 '실적'을 올린다. 지금도 창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창업 프로그램’ 위에서 놀아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다고요? 그 꿀 창업, 너나 하세요.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다고요? 그 꿀 창업, 너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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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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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에디터. 천천히 모자란 대로 삽니다. 아직 진화중. 메가 진화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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