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우주에서도 외계인과 교감하는 시대인데

왜 ‘어른’과 우리는 이토록 멀기만 할까

1월 6일 아침 10시, 우리 은하계 한쪽 구석

외계인 탐사 연구의 새로운 실마리가 발견됐습니다.

거기까지만 들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채널을 돌려 버렸을 것이다. 심심하면 나오는 외계인 관련 뉴스. 하지만 그날따라, 이번엔 무엇이 다르다는 건지 딱 한 마디만 더 들어 보자 싶었다. 덕분에 의외의 사실을 접할 수 있었다.

우리 은하계 안에도 150여개가 있다고 알려진 구상성단(globular cluster),
그 별들 사이에 외계 생명체가 살 만한 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과학자들은, 구상성단에 외계인이 살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고 한다. 별들이 공 모양으로 뭉쳐 있는 그곳에서 중력은 성단 바깥으로 작용하게 마련인데, 어떻게 생명체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느냐면서.

구상성단 NGC 6362의 모습

구상성단 NGC 6362의 모습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이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은 같은 사실을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비슷비슷한 별들이 서로 이렇게나 가까이 붙어 있으니, 이쪽 별의 생명체가 여차하면 저쪽 별로 옮겨갈 수 있었을 것이고, 이 과정을 오랜 세월 반복해서 충분히 발전한 생명체가 저 많은 구상성단 중 하나쯤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주는, 생각보다 외로운 곳이 아니었다.

 

1월 6일 낮 3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

지난 6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 1212차 일본군 위안부규탄 수요집회에서는 여러가지 구호가 등장했다. “아베 신조 책임인정 사과 적극 환영”이라는 구호가 누군가를 할퀴고 지난 다음에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같은 정언 명령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서 누군가가 말했다.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루 사이에 접한 두 개의 소식이 한동안 머리 속에서 내내 맴돌았다. 같은 곳에 있으면서 이토록 멀어져버린 이 광경은 대체 무엇일까. 몇천 광년 너머 우주 어딘가의 존재조차 불확실한 외계인은 못 찾아 안달이면서, 같은 나라 사람으로 나고 자란 사이는 왜 이렇게 멀기만 하지.

그러다가 친구가 공유해 준 어떤 글을 읽고서야 겨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효녀연합 홍승희 씨가 문제의 시위 다음날에 올린 글이다.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을 너무 심하게 욕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증오로 가득차, 웃음이 사라진 할아버지들이 안쓰럽습니다. 누군가의 아버지고 할아버지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군인이셨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Posted by 홍승희 on 2016년 1월 6일 수요일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마주치지 못하는 것은 그 거리 때문이 아니다. 그 거리를 넘어서라도 기어코 접근하려는 시도, 그 거리를 좁힐 방법을 찾을 생각이 부족한 것이 서로의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이치는 우주에서든 종로구에서든 마찬가지다. 마주치지 않겠다고 작정하면, 아무리 ‘가까워도’ 결코 만날 수 없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마이뉴스 권우성

어쩌면 20대라고 불리는 우리는 그 세대 모두를 ‘가스통 할배’로 집약되는 집합적 관념으로 단순화해 놓고 아예 ‘상종’을 않겠다고 작정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소를 짓는다는 방법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처음 ‘만나는’ 사람을 향한 가장 기본적인 접근법이, 그렇게나 대견하게, 낯설게, 반짝반짝하게 보였겠지.

 

1월 15일 새벽 4시, 태양계 어딘가

가끔 세상이 지리멸렬 찢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많은 칸막이들이 들어서고, 보이지 않는 벽이 각자의 마음에 이중 삼중으로 둘러쳐지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서로 상종하지 않으려 하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목격하곤 한다. 고도의 개인주의가 발전을 이끄는 현대 사회에서 17세기 어딘가의 사회 생활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서로 거리를 두며 사는 삶을 무조건 나무라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기에, 세대라는 이름으로 갈라서있는 우리가 더욱 마주치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더 많은 우리들이 낯선 세계와 사회를 탐색하고, 될 수 있으면 다가가 이웃해 살면서, 서로 조금씩 영향을 주고받기를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직 기회를 만들 수 있고, 시도할 용기가 남아 있으며, 실패를 용납받는 시기에 있기 때문이다.

세대융합형 룸셰어링에 참여한 최모(60,여)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경쟁적인 환경에 놓여 있고 쫓기듯 사는지도 알게 됐다”며 “마냥 쉽게 산다고만 생각했던 청년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세대융합형 룸셰어링에 참여한 최모(60,여)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경쟁적인 환경에 놓여 있고 쫓기듯 사는지도 알게 됐다”며 “마냥 쉽게 산다고만 생각했던 청년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이것은 '빨갱이'들이 말하는 연대나 우익이 말하는 대통합의 차원이 아니다. 어차피 다들 이 태양계의 눈꼽처럼 작은 어느 행성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인데, 아직 외계인 한 명도 제대로 못 만나 봤으면서, 우리끼리마저도 서로 완전히 남남으로만 살 거냐는 뭐 그런 이야기다.

그건 정말이지, 이 컴컴한 우주공간 속에서, 도대체 서운한 일일 것만 같아서다.

ⓒyairmor.deviantart.com

ⓒyairmor.deviant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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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