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뭐라하든 앞으로도 나는 나! 김풍 ②

‘멘토’와 ‘진보팔이’, ‘꼰대’ 중 어느 것도 되지 않으려고 느긋하게 애쓰는(?) 서교동 오빠 김풍을 만난다.

김풍 인터뷰

만화가 김풍, 교실만화가 김풍

② 꼰대를 거부하는 김풍

 

등장인물 소개

<찌질의역사>를 집필하고 <노오븐디저트>에 출연하는 “요리하는 만화가” 김풍. 본명 김정환, 본업은 트위터리안.


어진

TAILER 피처 에디터. 본명 김어진.


상일

TAILER 피처 에디터. 본명 김상일.

김풍인터뷰2

 

‘나는 이걸로 돈 벌 거야’, 그건 이미 지치는 거예요

어진

우리끼리만 재밌으면 되는 거다 하셨는데, 오히려 지금 ‘멘붕’이다 ‘힐링’이다 하는 지금의 20대층의 심정이란 사실 그냥 붙여진 말일 뿐이고 실체는 어떤 거냐면 교실에서 만화 끄적거려서 재밌다, 재밌다 하는 반응 받는 그 자체가 재밌어서 교실만화가 하다가 저 같이 그만두게 된 사람들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지레 겁을 먹었다고 할까? 자기가 그림을 잘 못 그리는 것 같고, 네이버 웹툰에 가 봤자 까일 것 같고, (궁극적으로는) 그때 재밌게 즐기면 되는 걸로 끝나는가 하는 그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밴드 공연 같은 걸 해도, 할 땐 재밌는데, ‘언제까지고 밴드를 할 순 없다’ 해서 밴드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식으로 만화라든가 꿈이랄까 그냥 희망사항, 자기 하고 싶은 것마저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김풍님은 그런 걸 하고 계신 것처럼 보인단 말이죠.


그건 이런 거죠. 요즘 네이버에서 인기 있는 작품 중에서 <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작품이 있어요. 말도 안 되는 병맛 만화예요. 그림체도 종이에 연필로 그린 것 같은 그림체고. 근데 그 친구가 제가 알기로 베스트도전에서 3년 동안인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러니까, 그냥, 그냥 그리는 거예요. 거기서 자기들끼리 그리고 자기들끼리나마 보는 거죠. 그쪽은 보는 사람이 얼마 없잖아요. 자기들끼리 재밌어했던 만화였고, 이게 나왔더니 어느 순간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는 거죠.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잘 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건 뭐냐면, 즐기는 사람은 지치지 않거든요.아침마다 조기축구 나가서 볼 차는 게, 즐거우니까 차는 거잖아요. 즐기니까 차는 거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마다 나가서 공을 찬단 말이에요. 지치지 않는 거예요. 에너지를 얻는 거죠, 그걸 하는 동안만큼은. 지치지 않는 건 최고의 무기거든요, 뭘 할 때.


어진

“지치지 않기 위해서 즐긴다”,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그렇죠. 즐기는 거는 지칠 수가 없기 때문에. 즐기는 건 항상 얻는 거잖아요.


어진

지금 사실 언론이라든가 (사회의) 분위기에서 회자되는 바 20대 청춘들 자체가 다 지쳐 있단 말이에요. 사실 전반적인 분위기 때문에 지쳐 있는 건데, 실제로도 지레 겁먹어서 지쳐 있는 것 같아요. TV에 나오는 것들은 화려하고, 너무 스케일이 크고. 그래서 ‘아, 나는 슈퍼스타는 못 된다’ 해서 즐길 수 있는데 못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요.


지친다는 건, 사람들이 하기 싫은 걸 할 때 지치거든요.


어진

아.


하기 싫은 걸 할 때는 10분 만에 지쳐요, 누구나. 빡세게 돈을 버는 일들은 대부분 하기 싫은 일들이에요. 지치지 않는 일들은 돈이 안 되는 일들이고. 돈이 안 되는 일을 해서 돈이 되게 하면 그게 최고잖아요, 사실은.

저 같은 경우도 맨 처음 습작 만화는 즐기는 만화였어요. 그때 제가 회사도 다니고 바쁠 때였어요. 정신없고, 항상 끝나면 밤 10시 넘었고. 집에 가면 디시 하고 앉아있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 이거 만화로 한 번 그려볼까?’ 해서 그때가 일요일인가 그랬을 거예요. 일요일 밤 새벽에 잠도 안 오고 하니까 그냥 막 그리는 거예요. 그러고 띡 올렸는데 그게 갑자기 팍 뜬 거예요. 저도 즐기니까 그렇게 된 거거든요.

지금 제가 올리브TV에서 <노오븐디저트>를 하고 있고 지금 올리브TV에서 요리방송을 3년째 하고 있어요. <만만한레시피>부터 시작해서. 그때 제가 유일하게 즐기는 게 요리하는 거였거든요. 집에서 막 이것저것 뚜닥뚜닥 만들어서 먹고 하는 게 재밌어서, 즐기는 거다 보니까 섭외가 들어왔어요. ‘방송 앞에서도 즐겨 달라.’ TV (방송 카메라) 앞에서 요리를 한 번 해 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근데 진짜로 나와서 뭔가 하다 보니까 이게 얼마나 재밌어요. 그게 어느 순간 업이 되어 버리고 그러더라고요.

지금 그밖에는 지금 즐기는 거라고 치면… 요즘 친구들하고 RC 같은 거 즐기거든요. 그것도 즐기는 건데, “아 오늘 바쁘다, 이것만 끝나면 가서 RC 해야지, 새벽 몇 시에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하고 잘 거야”, “게임은 하고 잘 거야” 이런 것들 있잖아요. 피곤해도 하겠다는 건 즐기겠단 거잖아요. 그걸 일로 삼은 사람들은 프로게이머잖아요. 그거랑 똑같다고 생각해요. ‘나는 만화가로 돈을 많이 벌 거야’ 하면 이미 질리는, 지치는 거지요. ‘나는 이걸로 해서 돈을 벌 거야’, 지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아 난 이게 너무 좋아, 돈이 되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난 이게 좋아”라고 할 때 있잖아요.

그는 여기서 잠시 이 인터뷰가 누구를 대상으로 한 잡지에 실리는지를 물었다. 다시 한 번, 신중하게 말을 고르려는 그의 의지가 비쳐 보였다.

20대라는 때는, 돈을 떠날 수 있는 시기란 말이에요. 저는 이해가 안 되는 게, 20대 때부터 ‘돈, 돈’ 한단 말이에요. 20대부터 돈 운운하는 건 부모들이 만들어놓은 거(성미)예요. 강남 쪽, 대치동만 가더라도 초등학생들이 뭘 안다고 생일선물로 ‘주식’을 사 달라고 해요. 지들이 뭐라고 주식이 뭔지 알겠어? 다 부모가 만든 거란 말이에요, 천박하게. 사실 20대는 가난한 데이트를 해도 운치가 있는 거예요. 데이트를 하더라도 매일같이 만나려면 돈이 되게 많이 든단 말이에요.


어진

네, 그것 때문에 연애 못 한다고 연일 신문에서 때려대죠.


그러니까요. 최대한 싼 데 가고 최대한 싼 걸 먹더라도 어디서 공짜 공연을 한다니까 그런 거 보러 가고 하는 게 20대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말이죠. 우리나라는 안 그래도 계속 주입시키고, 10대 때 제일 놀아야 하는데 놀지 못하게 교육시키고. 20대 땐 갑자기 돈 벌게 만들고,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옆에서 다른 친구들이 취업 때문에,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뭐, 놀랜다, 20대 때는’…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저는 삼수를 했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이미 대학교 2학년이고 3학년을 올라가는데 저는 이제 막 대학을 들어온 거예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저는 2년이 엄청나게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막상 늦었고 (보니까) 체념하게 되더라고요. 그 생각을 하니까 역으로, “2년이란 세월이 그렇게 갭이 큰 게 아니구나, 그럼 또 2년 동안 놀아도 괜찮은 거 아냐?”


어진

(웃음) 재수를 2년 하고 또 2년 노셨다?


이런 거죠. 뭐냐면, 그 2년 동안 나는 입시 공부를 했었는데 내가 만약에 운이 좋게 한 번에 들어갔다 하면 이후 2년은 놀아도 되는 시간이잖아요, 따지고 보면 그러니까 그만큼 ‘내 옆의 친구는 지금 레포트 한 장을 더 쓰는데 어떡하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러면 이번에 한 학기 제끼고 다음 학기 들어가지 뭐 하고 차라리 그 시절에 즐길 수 있는 게 뭔지 찾아야 된다는 거죠.

 

멘토도 진보팔이도 꼰대도 되지 않기 위해서

어진

대부분의 평범한 20대들이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피처가 기대했던 반응은 잠시 창문 너머를 응시하며 “음…” 고민하다가 어렵게 yes 또는 no의 답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 기대는 (좋은 의미로) 멋지게 배반됐다. 평범하게 20대를 살지 않았던 그는, 질문을 듣더니,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못 사니까 지금 이런 힐링이며 멘토며 TV에 나오려고 하고 내보내는 거잖아요.


어진

네, 그것도 그러네요. 사실 <Twenties Timeline>도 지금 스테레오타입적으로 제시되는 청년상이라든가 “멘토 강연” 운운하는 사회상을 비웃고 본격적인 걸 하려고 하고 있거든요. 근데 저는 (작가님이) 부끄럽다고 하시는 <폐인의세계> 에필로그 있잖아요, 거기에 “언젠가 이 모든 것들을 웃으면서 되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오리라고 믿으며 살아왔다”라고 쓰셨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당황, 웃음)


어진

네. 그런 에필로그가 있어요. 여기. (책을 펼쳐 보여준다) “지금 겪고 있는 이 고난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듯 에필로그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어진

근데 저는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막 들어가고 할 때 되게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삼수했다고 하시면서 이런 얘기를 하시니까. 확 오는 거죠. 자기가 실제로 즐기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 ‘여러분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하시면 이게 전형적인 멘토의 줄거리거든요. 혹시 이런 강연은 하실 일이 없으신 건가요?


저 같은 경우는 사실 그래요. 남들 앞에서 “즐기며 살아라” 대놓고 얘기는 못 해요. 왜냐면 누구한테는 당장 생업이 달린 사람들도 많단 말이에요. 부모님이 일을 못 하시는 상황이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면 그런 친구한테 “어 왜 그러세요, 즐기면 되는데”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어진

분위기부터가 그렇고.


분위기가 그렇다는 거죠. 저도 모든 사람한테 이렇게 살라고는 얘기 못 해요. 다만 어느 정도, 적어도 당장 돈을 벌어야 된다는 절박한 상황이 아닌 사람들한테는 얘기를 하죠. “네가 돈 때문에 당장 네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지 않다면, 좀 즐겨도 상관없다.” 앞에 전제를 달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일

말씀 들으면서 공감했던 게, 힐링을 외치는 사람들이 진짜 힘든 사람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사실 우는 아기한테 제일 특효는 ‘울지 마, 울지 마’ 하는 것보다 그냥 뭘 먹여야 해요.


풍+어진

그지.


상일

임시방편으로 땅이 얼어 있는데 오줌 누는 거랑 똑같은 식으로 멘토(열풍)가 흘러가고 있는데, 사실 그렇잖아요? 내가 고등학교 때 등수 몇 등 떨어진 게 지금 나한테 아무 영향을 못 미치지만 그땐 굉장히 컸던 것처럼, 지금 20대들도 어른의 입장에서 봤을 땐 ‘지금 저걸로 왜 저러지? 나중 되면 생각도 안 날 거’ 하는데, 저희들한테는 되게 아픈 게 있잖아요.


그렇죠.


상일

그런 걸 흔히 말하는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멘토들이 안일하게 말을 하는 걸 봤을 때 화나지 않으세요?


그니까 그런 게 되게 불만인 거죠. 제 주변에는 나이가 저보다 형인데도 정말로 궁핍하게 살았던 그런 분들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궁핍하진 않아요. 실제 삶은 궁핍하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다양한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중요한 건 뭐냐면, 나도 예상치 못하고 막 던진 말이 누구한테는 박탈감으로 다가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아 요즘에 삼시 세끼 못 먹는 사람 없잖아?”(라고들 하지만) 분명히 있거든요, 못 먹는 사람이. 방학이 되면 점심을 굶어야 되는 결식아동도 많단 말이에요. 그런 애들 앞에 가서는 “요즘 삼시 세끼 굶는 사람은 없잖아”라는 전제하에 얘기를 하면, 얘들은 ‘나는 예외적 인간인가?’ 박탈감이 들고 마는 거죠. 그러면 그들은 어떡합니까, 그렇잖아요. 멘토며 힐링이며 이러면서 나올 수 있는 자격의 사람이라면 그 모든 걸 아우를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누구지? 팔다리 다 없는 사람 있잖아요.


상일

닉 부이치치.


그 정도 급은 돼야지 나와서 멘토다 힐러다 나올 수 있지…


어진

그럼 강연 초청 같은 거 받으셔도 안 나가실 것이다?


몇 번 가긴 했어요. 갔는데, 가더라도 이런 부분은 피해서 얘기를 하죠. 힐러로 얘기해주는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러로 얘기해 주죠. 삶을 살 때, 기왕이면 이렇게 살면 어떨까? 그 정도지, 누구한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말하는 건 사실은 되게 오만한 거죠.


어진

예전에도 알고 있었고 지금도 확인이 되는데, 사회 인식이라든가 어떤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생각)이 있으신 분 같아요. 하다못해 예전에 <폐인의세계> 그리실 때도 <이시대의비극> 같은 작품 있었고.

ⓒ김풍, 2004

<이시대의비극>은 <폐인의세계>에서 가장 이질적인 에피소드로, 두 이야기가 병렬되어 진행된다. 어떤 여동생과 오빠가 그럭저럭 화목하게 지내고, 어떤 선배와 후배가 한미관계를 논하며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여동생은 어떤 가수 팬클럽에 들게 되고 학교 후배는 군대에 가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햏자 오빠와 여동생은 빠수니들 ‘방법’ 전투에서 마주치고, 전경이 된 후배와 시위대 선봉의 선배는 한미방위협정 반대 시위에서 마주친다.
그는 이 단편을 “콘티도 짜지 않고 일거에 그렸는데 그려놓고 봤을 때 자기도 놀라는” 만화 중 하나였다고 자평했다.

어진

기억나세요?


아. (웃음)


어진

분명히 이분은 개그만화간데, 잊을 만하면 절묘한 빈도와 타이밍으로 그런 걸 드러내시더라고요. <럭키곰스타> 때도 촛불 들고 있는 그림 올라가 있고. 트위터 하시다가도 투표 시즌이다 그러면 꼭 한마디씩 하시고. 근데 또 신기한 건 뭐냐면 ‘개념 트위터리안’ 쪽으로는 분류가 안 돼 있단 말이에요.


저 그런 거 되게 싫어합니다.


어진

되게 신기해요.


개념은 무슨 개념입니까?


어진

(웃음) 바른말 곧은 말 좀 한다 싶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 게 결국 자기한테는 독이 돼요. 바른 말을 한다는 건 어렵지 않아요. 바른 행동을 한다는 게 어렵죠. 자기가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 거잖아요. 따지고 보면 저도 그렇게 바른 삶을 산다고는 할 수 없어요. 빨간 불이라도 그냥 건너자 하면 건너고. 살면서 실수도 많이 하고 상처도 입힌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나와서 마치 자기는 안 그랬던 사람처럼, 태어날 때부터 고결한 사람처럼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얘기한다는 건, 그거야말로…


어진

개념 없는?


개념 없는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죠. 있어 보이는 말을 하는 걸 좋아하고, 그런 말을 하면 반응이 좋아요.


어진

그러게요.


“진보 장사”라고 하잖아요. 진보라는 걸 가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그게 제일 위험한 거라고 생각해요. 진보라는 개념은 가장 깨지기 쉬운, 아슬아슬한 개념이에요.


어진

깨지기 쉽다 함은?


(일어나며) 저 물 한 모금만.

이 주제가 그의 종래 인터뷰에서 다루어진 적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는 그렇게 잠시 목을 가다듬을 시간을 요청했다. S와 E는 그 짬에 막판 작전회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예를 들면 그런 게 있죠. (생각 중) 같은 팀원끼리 ‘팀킬’을 할 수가 있죠.


어진

(납득)


내가 그런 삶을 살면서 ‘진보팔이’를 하면 잘 먹히거든요. 왜냐면 이쪽 사람들은 가슴이 뜨겁기 때문에.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가슴이 뜨거워요. “아 이 사람 진보구나! 밀어주자!” 이런 게 있어요. 근데 이 사람이 알고 봤더니 (예컨대) 성범죄를 일으켰다, 그러면 이 집단 전체가 매도가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되게 위험한 거예요.


어진

그래서 일부러 피하고 계신 건가요?


(손사래) 되게 싫어합니다.


어진

꼭 필요할 때만?


글쎄요, 필요한 거랄까 내가 제때 투표하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죠.


어진

그런 점에서도 부럽다고 할까, 보고 따라 배워볼 만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트위터를 우리말로 열심히 하는 사람들 중에는, ‘진보팔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개념 있는 연기를 하려고 억지 부리는 사람들도 간혹 보이는데, 인식이 없지 않은 분이 그걸 굳이 안 드러낸다고 할까? 평소엔 까뽀에이라 같은 것 얘기하고 하시니까.


(‘까뽀에이라’를 듣고 웃음)


어진

사람들 생각 속에서는 (사회정치에 관련된) 그런 것은 싹 사라져 있고 이를테면 한남동 카페에서 커피 내리면서 가끔 병맛 나는 재미를 추구하면서 잘 사는 그런 분으로 각인이 돼 있단 말이에요.


상일

맞어.


그런 게 좋아요. 왜냐면 제일 유치한 게 다이렉트로 설명해 주는 거거든요. “나 이런 사람이에요” 설명해 주는 것보다, 행동을 가만 보고 있으면 ‘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즐거워 보이지?’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런 느낌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게 사실은 가장 좋거든요. 사람들에게 “이게 이러이러해서 옳은 거야”라고 강연을 해 주는 것보다는, 그냥 ‘어, 이 사람을 보니까 이게 옳은 것 같애’, ‘이 사람 방향이 이렇구나’ 하고 느끼게 해 주는 게 사실은 가장 고급스런 표현 방법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사람마다 해석은 다르지만, 방송 나와가지고 가끔 웃기기도 하고 퀴즈 풀고 앉아 있고 다양한 걸 하고 있는데, 그런 모습의 저를 보기도 하고 만화를 보는 팬들도 있고 다양한 제 모습을 본단 말이에요. 적어도 저를 봤을 때 사람들이 제가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아니라고 인식하길 바라죠. 가볍게 보이는 사람이 저는 좋거든요.


어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가볍게 보이기만 하는?


상관없어요. 어쨌든 간에 무거워 보이는 사람보다는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 좋아요. 왜냐면 가벼워 보이는 사람은 적(敵)이 없거든요. 두려운 사람이 없고, 받아들이기 좋은 사람이잖아요. 무거운 사람인 척, 근엄한 사람인 척하는 사람보다는 “그래 맞어 나도 그거 좋아해” 하는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 편하더라고요. 제가 살기 편한 방식이죠.

김풍인터뷰2

상일

소위 ‘꼰대’랑은 거리가 먼…


저는 꼰대는 정말, 어흐… (질색)


상일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말할 테니까 너희는 들어”, 그런( 게 꼰대죠).


꼰대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말이, 자기가 누군지가 사람들에게 어필이 안 돼서 그런 거예요.


상일

어떻게든 보여주려고 하고.


보여주려는 거죠. 자기가 다이렉트로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꼰대들은. “나 이런 사람이거등?”이라고 말해야 해요. 그러니까 꼰대가 되는 거고 그게 꼰대의 특성인데. “아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구려?” 하더라도 “어 맞어 나 구려” 하고 넘기면 돼요. 그걸 가지고 (건달 자세로) “야 내가 왜 안 구린지 설명해 줄게” 하는 순간 구린 사람이 되는 거예요.


상일+어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쿨하게 넘길 수 있어야죠. 어차피 행동에서 드러날 거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제일 멋있는 거잖아요.


어진

트위터에서도 그렇고 인터뷰에서도 그렇고 ‘절대 꼰대로 늙지 않을 것이다’ 하시네요. 그러면 꼰대로 늙지 않기 위해서 혹시 앞으로 무엇을 보여주시겠다 하는 게 있나요? 못 해 본 게 있다든가.


저는 이제 어지간한 건 다 해 본 것 같아요. 살면서 해 보고 싶은 건 다 해 봤고.


상일

직접적으로 묻자면 노후 계획 같은 거?


어진

사실 지금 세우셨을 것 같지 않긴 한데.


노후라기보다 이제는, 사람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이 내 주변에 남는 것일까 하는 거 있잖아요.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말도 있고. 옛날에도 그렇지만 지금 그런 걸 더 많이 느끼고 있어요.

예를 들어 방송 같은 걸 가끔 해요. 저번(금요일)에는 <트루라이브쇼>에 나가느라고 그걸 하게 됐는데, 맨 처음엔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라서 한번 게스트로 나갔어요. 바쁘고, 딱히 땡기지 않는데 ‘MC가 누구예요?’ 했더니 현무 형이래요. 전현무. 현무 형이랑은 라디오도 같이 하고 친하거든요, 술도 같이 먹고 하니까. ‘어 현무 형이요? 그리고 또 누구 있어요?’ 그러니까 개그우먼 김영희씨. “앙~대요” 하는 친구. 그 친구도 몇 번 본 친구고. 최희 아나운서도 몇 번 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 자리인 거예요. 거기 PD님도 따로 개인적으로 아는 형이고. 그러면 그냥 ‘노는 셈치고 나가서 놀지 뭐’ 했는데 재밌더라고요.

사람이라는 게 결국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 하는 것들이 나중에 자기한테 큰 재산이 되더라고요, 꼭 일적인(업무상의) 것만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둘러보며) 여기 쫄깃센터도 되게 좋은 게, 메가(쑈킹) 형도 가끔 저희 집에 오거든요. 저도 센터 와서 멍때리면서 일하면서 술이라도 한 잔 먹고 와서는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는 사람 오면 ‘왔어?’ 하면서 술 한 잔 먹고. 결국 이런 게 즐거운 삶이 아닌가.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별거 없잖아요.


어진

아는 분들이 이렇게 많아서는 노후 준비가 철저하신데요?


사람들이 재산이고. 20대들한테는 저는… 20대들에게도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해요. 20대 때는 서로가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잖아요.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란 말이에요. 부모님은 부자일지언정 자기는 가난한 게 20대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자기가 직함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친구가 되기 힘들어요. 예를 들어 이건희 회장이 너무 좋은 사람처럼 보여요. 귀엽고 내 스타일이야. 그래 친구가 되고 싶어서 “저는 당신의 돈이고 명예고 필요 없고 당신이 인간적으로 너무 좋습니다, 저랑 친구가 되어 주시겠느냐” 전화를 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대하겠어요?


어진

안 받겠죠.


“야 이 ㅅㄲ 누구야” 하고 뒷조사 시키겠죠. 자기가 가진 게 생긴 경우에도 누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 왜 다가오는지 의심하게 돼요. 그리고 내가 가진 게 없고 저 사람이 가진 게 있을 경우에도 다가갈 때 ‘이 사람이 나를 좀 그렇게 보지 않을까’ 하고 못 다가가요. 있는 사람들끼리 다가갈 땐 어떻게 다가가는지 아세요?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다가가요. “어 ○○ 하신다면서요? 저도 ○○ 하는데. 우리 같이 만나서 얘기 좀 해 볼까요?”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친구가 되는 거예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에 만들어지는 친구는, 고등학교 중학교 땐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오래 가요. 내가 (가진 게) 없을 때 다가왔던 친구기 때문에. 20대는 아직까지 그래도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진

“친구를 만들어라”.


상일

단순히 페친 말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고, 그런 게 재산이 되는 거고요.


어진

그 즐긴다고 하는 것이 딱히 돈 많이 드는 것 아니어도 되니까.


사람이 재산이 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이제 좀 알 것 같더라고요.

 

못다 한 질문들의 정리와 마무리

이쯤 되자 인터뷰이가 인터뷰어의 녹취를 걱정할 만큼 분량이 충분히 나온 상황이 되었다. 마침 준비된 질문 대부분이 해결되었기에 잠시 농담을 좀 주고받은 다음, 마무리 단계로 넘어갔다.

어진

저번에 인터뷰 요청하면서 이메일에 그런 걸 적었었어요. ‘김풍님의 풍미는 “병맛”으로 일축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질문지도 안 드렸었고 지금 진행 중에도 이 주제가 안 나와서 이걸 꺼낼까 말까 하고 있었어요.


아, 네. 하세요 하세요.


어진

사실 ‘병맛’이라는 말은 너무 포괄적이랄까 의미가 없는 용어고, 저도 ‘굳이 정하자면’ 병맛으로 분류될 만한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라… 사실은 ‘정확하게 자기 그림이 안 잡혔는데 재미가 있는 것’을 병맛이라고 부르는 거 아닐까요?


이런 거죠. ‘폐인’이라는 말 자체가 지금은 그렇게 네거티브한 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전에 ‘폐인’이라는 말은 진짜 인간이 완전히 끝난 사람한테 썼단 말이에요. 그게 어느 순간 사람들한테 네거티브에서 꽤 포지티브한 데까지 올라왔죠. 병맛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병신 맛이잖아요. ‘병신’이란 것도 네거티브한 것이 해학적으로 올라온 것으로서 똑같다고 생각해요. 네거티브한 것이 올라오게 되는 건 뭐냐면, 해학이거든요.


어진

아직 포지티브가 되지 못한 네거티브?


(못내) 그런 셈이죠. 적어도 ‘나는 병맛이에요’ 하면…


어진

어 병맛이다.


사람들이 더 이상 공격하지는 않아요.


어진

아 이제 알겠네요.


“어 나 병신이야” 그러면 얘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어차피 지가 병맛이라고 했으니까 탕감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 게 병맛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너무 딱딱하게 살지 말자는 거죠. 병맛 동영상도 찍고 그런 건 뭐냐면, 병맛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진짜 병맛 나는 사람처럼 살지는 못하죠.


어진

본인이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그렇게까지 보지는 않는 것 같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추구하는 삶이죠. 생각 없는 사람처럼. 무위자연. 그런 사람처럼 되고는 싶은데 제가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삶을 지향하는 그런 의미라고 보시면 되겠죠.


어진

(상일을 보며) 혹시 더 할 거 있나?


상일

맘 같아서는 그냥 더 붙잡고 있고 싶은데…


일동

ㅋㅋㅋ

바쁘신 분 붙잡고 있을 수 없어서 정리하기로 했고, 팬미팅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단체 인증샷 타임을 가졌다. 부러우면 너도 <Twenties Timeline> 편집부에 들어오든가.

어진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 있으시면?


상일

인터뷰어들이 너무 시끄러웠다거나 애로사항이 있으시면…


(웃음) 저는 이런 식의 편하게 얘기하는 인터뷰 좋아합니다.

찌질의 역사 (네이버 금요일 웹툰),

노 오븐 디저트 (올리브TV 목요일 21시 30분).

많이 봐주세요.


어진

<노오븐디저트> 앞으로도 계속 하시는 거죠?


네, 앞으로도 계속 할 것 같아요.


상일+어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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