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가 말했지 자기는 스물셋이라고

그리고 뒤돌아본, 우리들의 지나간 스물셋.

아이유의 스물셋(Twenty-three)을 처음 들었을 때, ‘어쩜 이렇게 내 스물셋 얘기 같을까’하는 생각에 놀랐었다. 가사 하나하나가 모두 과거 스물셋 시절 느꼈던 모든 감성, 감각, 경험들을 환기했다. 열여섯에 데뷔해 이른 나이부터 일반인과 전혀 다른 ‘스타’의 삶을 살았던 가수의 스물 셋을, 그렇게 듣고 또 들었다.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다른 이들의 스물셋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노랫말에 맞춰 뒤돌아본, 우리들의 스물셋.

현수 (26. 이대로 백수로 살고 싶다)

1

한 떨기 스물셋 좀
아가씨 태가 나네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얄미운 스물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

받침에 ㅅ이 붙으면 중반이라고 한다. 인정하기 어려웠다. 아직 20대의 1/3밖에 지나지 않았는데,중반이라는 무게는 내겐 아직 너무 무거웠다. 길게만 보였던 대학교 4년 중 벌써 나는 3학년이 되어있었고, 주변 친구들은 인턴, 토익, 교환학생 등으로 분주해 보였다. 아직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데 벌써 중반이라니. 조금만 더 놀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휴학을 신청해버렸다. 그래, 정말 마지막으로 한껏 놀아보자. 주변에는 이제 열심히 살 거라며 큰 소리를 쳤다. 어떡하지.

사실은 무서웠다. 이대로 나는 뒤쳐지는 건 아닐까 하고. 어서 나만의 경험을 쌓고 어른이 되어서, 남들처럼 당당히 나를 내세우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이 부담이었다. 부담이 무거운 만큼 스물셋은 중반이 아니라고 떼를 썼다. 무엇을 할 지도 결정하지 못한 주제에, 무턱대고 남들 다 하는 토익, 텝스, 공모전 같은 곳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님께는 우격다짐으로 얘기했다. 무엇이든 할 거니까 그냥 지켜봐달라고, 나도 이제 스물셋이라고. 내 삶이니까 내가 알아서 하고 싶다며 다 큰 체를 했다.

부모님은 그런 억지를 받아주셨다. 특별히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쯤은 아마 부모님 눈에 뻔했을 것이다. 지금에야 느끼지만 아마 부모님의 눈엔 무던히도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의 바람대로 나를 밀어주셨고, 그런 나의 스물세 살은 많은 소중한 것들로 채울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내 의지로 새로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할 수없는 여행과 활동들을 하며 나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곳에서 찾은 나의 알리바이는 태어나 가장 빛나는 시간이 되어 내 등을 밀어주었다.

그렇게 스물셋은 끝났다.
곧 후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어른이란 확신은 없다.
하지만 이제, 내 안의 아이는 그만 내려 놓아야겠지.

 

창식 (26. 여전히 글쟁이)

001

난, 그래 확실히 지금이 좋아요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사랑이 하고 싶어
아니 돈이나 많이 벌래
맞혀봐

스물한 살 여름부터 시작했던 CPA를 그해 초에 때려쳤다. 일년 반, 도전했다고 하기엔 짧은 시간이고 도전하지 않았다고 하기엔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더 이상 이 공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이 길이 내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휴학도 하고 군대도 미루고 모든 걸 다 걸었었는데. CPA 시험을 앞두고 나는 한동안 잠을 잘 수 없었고, 잠조차 잘 수 없는 내가 한심했다. 그 시간들을 견뎌 어떻게든 스물셋이 되었고, 나는 스물셋이 되자마자 CPA를 때려쳤다.

'대학생같이' 살겠다고 선언했다. 글을 쓰겠다고도 선언했다. 책을 많이 읽고, 과외를 해서 돈을 벌고, 연애를 하기로 선언했다. 그동안 너무 고시생처럼 살았다고 생각했다. 학부 내 독서클럽을 만들었다. 과외를 시작했고, 소개팅을 하기 시작했다. 고시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해방된 기분이었다. 영화를 많이 보았고, 군대는 졸업하고 가기로 했다. 그럼 또 다시 장래를 고민할 시간이 있으니깐. 나는 '대학생다움'에 행복했고,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었다.

글을 쓰겠다는 건 정말 어줍잖은 얘기였다. 아무것도 아닌 글이나 끄적이고 있었다. 당장 취업을 위한 학회를 들지 않고, 당장 스펙을 쌓지 않고, 당장 중국어 공부를 하지 않고, 당장 지난 학기에 받은 평점 1.8의 학점을 만회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닌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나 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뭐라도 될 거니깐. 그리고 나는 그 무엇도 안 될 거니깐. 자기확신과 자기불신이 교차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토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핫식스를 까먹었다. 그건 격려가 아니라 학대였다. 도망칠 수 없었다. 왜냐면 여기가 내가 도망 온 곳이니깐.

3년 전의 스물셋을 돌아보자면, 나는 항상 화장실에서 혼자 하던 헛구역질을 떠올린다. 그래도 그때, 나는 글을 썼고, 영화를봤다. 곧 망할 것만 같던 독서클럽을 유지해냈고, 과외로 돈을 조금 모을 수 있었다. 나름 행복했다. 언제 토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수민 (24, 이제 할 말은 하는 스물 넷)

2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스물세 살, 대학에서 만난 많은 ‘좋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다. 우리에게 관심 많던 좋은 선배는 꼰대가 되었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의 남자친구는 지독한 바람이 났다. 축제를 즐기면서 친해진 동기는 어느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싫었지만 3학년, 나는 회장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함께해야 했고 그들이 나를 따를 수 있도록 행동해야 했다.

나는 거짓말을 잘 하게 되었다. 휴가 나온 선배를 최대한 피하다가도 만나면 언제 나오셨냐며 반가워했고, 모두가 싫어하는 친구가 어쩌다 술자리에 끼면 그 앞에 앉아 함께 얘기하는 역할은 나였다. 친하지 않은 친구들은 나를 착하고 털털한 아이라고 부러워했고, 친한 친구들은 나를 친한 척 참 잘하는 친구라고 부러워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완전범죄의 주인공처럼 쾌감과 죄책감을 함께 느꼈다. 죄책감이 조금 더 컸다. 배가 살살 아려왔다.

친한 친구들 중에서도 표정관리가 힘들다던 친구는 나에게 대단하다며 방법을 물어왔다. 나는 대답했다. 쉬워. 그 사람에 대한 연민을 꺼내면 돼. 나는 그 사람을 싫어하지만 안타깝기도 하거든. 싫어하는 마음은 제쳐두고 그 안타까운 마음만 모아서 그 사람을 대하면 돼. 나는 그게 ‘거짓말을 잘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내 스물셋의 가을, 나와 동갑내기 아이유는 <스물셋>을 노래했다.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 다 내 마음이구나. 아이유도 그렇고, 모든 사람이 그렇지. 어쩌면 나도 사람을 대할 때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도, 안타깝단 것도 둘 다 내 마음이었다.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게 아니라 그게 내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부럽다는 말을 들을 때도 더이상 배가 아려오지 않았다. 나는 솔직한 게 맞으니까.

스물넷이 되고 더 이상 싫은 사람을 억지로 볼 필요가 없어졌다. 기뻤다. 그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냉정하게 쳐낼 수 있는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이제 카톡도 씹고, 술자리에선 쳐다도 안봐야지

 

재희 (26. 여전히 스물셋이고 싶은)

4

겁나는 게 없어요
엉망으로 굴어도
사람들은 내게 매일 친절해요

 

스물셋이 되면서 학생기자 대외활동을 하게 됐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부모님, 점수에 맞춰 들어가야 하는 대학과 달리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일이었다. 학교 밖 집단에서 느껴지는 소속감과 자부심은 상당했다. 스스로 얻어낸 자리라는 생각에 자신감도 생겼다. 당연하지 않은 곳에 내가 속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 받은 것 같았고, 나로서 인정받은 것 같았다.

정식 기자가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았는데, 뒤에서 학생기자들을 지지해주신 담당자 분과 편집장님이 계신 덕분이었다. 자주 칭찬을 받았는데 무언가를 써오거나 아이디어를 낼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올 때도 그랬다. 사실 칭찬의 말은 어색한 사이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내가 스물셋이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그 어느 해보다 칭찬받고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할 수 있었다.

취재를 다니면서 만난 어떤 어른들은 내게서 빛이라도 나는 것처럼 쳐다보셨다. 그때는 내가 ‘기자’여서 멋져 보이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기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학생’기자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랬기 때문에 편집장님도 나의 형편없는 기사를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을 것이다. 내가 늘 엉망은 아니었지만 어른들은 내게 항상 친절했다. 혹시 엉터리라도 아직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의 ‘아직’은 이미 지나버린 지 한참이다.
벌써 이제는 괜찮지 않은 나이.
이제 난 스물셋도 아닌데 왜 아직 여전한 것일까.

 

지연 (24.  불안함은 이제 싫어)

3

인사하는 저 여자
모퉁이를 돌고도 아직 웃고 있을까
늘 불안해요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모든 사람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없다지만, 나는 굳이 모두의 마음에 들고 싶어했다. 중간에 끼인 샌드위치 나이. 스물세 살이 되며 나의 눈치보기는 더욱 심해졌다. 저마다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맞추기 위해, 나는 시시각각 내 모습을 바꾸곤 했다. 어느 누구를 만나던,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내 모습을 찾아내는 게 내 특기였다. 이제는 상대를 파악하는 것도 익숙해서, 금세 호감을 얻고 하하호호 웃으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늘 불안했다. 이렇게까지 당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데, 만약 싫어하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지금까지 똑똑한 ‘척’ 또는 잘 모르는 ‘척’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면 어떡하나 하면서. 또한 언제나 ‘이 사람도 결국 나처럼 내 앞에서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돌아서는 순간 전부 바뀌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

스물셋의 나는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싫은 것들에 대해 선을 그을 줄 몰랐다. 아직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그것부터 확실하지 않았다.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려 했다. 날 싫어하는 사람이 무서웠던 건 그 사람에게 거부당해, 내가 가진어떤 걸 잃어버릴 것 같다는 감각이었다.

어느 날 친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모든 사람이랑 너무 잘 지내려는 것 같다며, 내게 좋은 사람이 나를 좋은게 더 편하지 않느냐고. 내겐 큰 충격이었다. 그래,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는 없겠지. 살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거야 말로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걸 받아들이고 나니 이제야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참으로 불안하던 스물세 살도 끝났다.

OUTRO

000

데뷔 부터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은 아이유는 어느날, ‘얄미운 스물셋’답게 ‘단 한 줄의 거짓말도’ 하지 않은 노랫말을 이 세상의 스물 셋들에게 선물했다.

아이와 어른의 중간에서, 나와 타인의 중간에서 고민하고 또 갈등하는 나이, 가장 빛나는 동시에 또 가장 힘겨웠던, 나의, 스물셋. 이미 그 시간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시간이 내 앞에 나타난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순간을 노래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언젠가 그녀를 만나면 꼭 말해주고 싶다.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Pin on Pinterest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윤형기

윤형기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졸리면 밥먹고, 배고프면 잡니다.
윤형기

윤형기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