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서프라이즈] ① 이제는 식상해진 ‘속보’와 ‘단독’

왜 요즘은 언론사들의 뉴스 알림이 별로 달갑지 않을까.

띠리링,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이따금 들리는 구식 알림음이다. 꺼져 있던 휴대전화 화면을 켜서 보면, 신문사 어플의 뉴스 알림이 와 있다. [속보] 우○○ 비자금 의혹 제기 문건 “가능성 높아”… 여러 번 고쳐 읽는다. 별 대단치 않아 보이고 궁금하지도 않은데, 뭐가 그렇게 중요하기에 속보로 알림까지 보내주는 걸까 싶어 메시지를 눌러 본다. 나오는 기사는, 음, 물론 꽤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글쎄, 이걸 지금 당장 내가 읽어야 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끄고 휴대전화를 있던 자리에 놓으려는 순간 또 다른 구식 알림음이 띠딕, 촌스럽게 들린다. 방금 끈 화면을 다시 켠다. 날씨 알림 받으려고 깔아둔 뉴스 통신사 어플이다. [단독] 이○○ 최측근 기습 인터뷰 👉보러가기. 계속 이런 식이다. 흠, 단독 보도라고? 안 보기로 결정하고 하던 일로 돌아간다. 어차피 한 30분쯤 뒤에 누군가 그 “단독” 뉴스를 잘 캡처하고 정리해서 타임라인에 올려줄 테니까. 정말 그럴 가치가 있다면.

 

뭐가 속보고 뭐가 단독인가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어언 6년. 그동안 휴대전화를 몇 번 바꾸면서도 뉴스 어플 한두 가지는 꼭 깔아놓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특히 더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뉴스 어플들의 [속보], [단독] 알림이다. 내가 유난을 떠는 게 아니다. 최근 들어 실제로 알림을 보내는 횟수가 늘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그 알림에 ‘속보’라든가 단독 보도라는 점을 덧붙이는 경우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뉴스 어플 알림 설정 화면

그때 그 알리미를 설정하지 말았어야 했다…

문제는 그 숱한 알림 속 소식들이 그다지 중요하거나 긴박하거나 색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아는 게 맞다면, 원래 속보라는 말은 사람들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소식에 붙이는 것이고, 단독이라는 것은 모두가 같은 주제로만 입씨름을 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정말로 완전히 독특한 주제를 꺼낸 경우에 부여하는 훈장 같은 것이다. 사실, 낚일 걸 뻔히 알면서도 [단독]이니 [속보]니 하는 말머리의 기사를 읽어보는 것은, 바로 그런 걸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기대와 다르게 그 말머리들이 붙은 기사들이 어딘가 싱겁다. 그 속보가 다루는 사안이 아무리 봐도 그다지 긴급해 보이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고, 단독 보도치고는 뉴스 속 내용이 다들 부실하거나 지나치게 불충분한 것이다. 아주 관대하게 보아서, “누구보다 빠르게” 말하는 걸 ‘속보’로, “남들과는 다르게” 말하는 걸 ‘단독’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그제서야 좀 괜찮은 정도인데, 그건 랩퍼의 가사에나 어울리는 덕목이다. 지금 쏟아지는 ‘단독’과 ‘속보’는, 도무지 그 이름값을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가장 고상한 버전의 “충격 헉 알고보니”

따지고 보면 모든 좋은 뉴스는 근본적으로 단독이고, 본질적으로 속보다. 남이 이미 한 이야기에 중복되는 얘기가 어떻게 ‘news’가 될 수 있으며, 남들보다 한 발 늦게 전달하는 ‘뒷북’을 어떻게 새 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안 하던 이야기를 제때 빠르게 전한다는 점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뉴스는 ‘단독’이고 ‘속보’인 것이다. 그런데도 전통적인 뉴스 매체들이 갈수록 별일 아닌 소식에까지 단독과 속보를 굳이 내세우는 것은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혹시 그것은 “충격, 경악, ~한 그것은?” 등의 키워드를 쓰는 ‘어뷰징’과 궤를 같이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아주 관대하게 읽으면, 어뷰징 기사들의 제목은 과장이 심할지언정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 그 기사들의 실제 기능이 약간 놀라운 ‘가십 스토리’를 풀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걸 보고 “헉”할 수도 있는 건데, 제목에 그걸 못 넣을 이유는 뭔가? 그러면 호기심에 그걸 눌러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마찬가지 원리가 [단독]과 [속보]에도 적용된다. 어쨌든 지금 막 들어온 아무도 언급한 적 없던 ‘뉴 팩트’니까 그런 말머리도 붙일 수 있는 거고,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니까 눌러보게 된다. 그리하여 언론사 기사 노출수는 오른다. 나 같은 사람들이 번번이 눌러서 확인해 주니까.

충격고로케의 충격에 대한 정의

ㅂㅂㅂㄱ ⓒ 충격 고로케

그 기사 속 내용들이 아주 무가치하거나 내용이 없다거나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요즘 언론사들의 ‘특종 어필’이 아주 잘못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현상 자체가 아니다. 너무 많은 이슈가 단독이고, 너무 많은 소식이 속보라는 점을 성토하고 싶다. 매일 쏟아지는 이 특종들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구별할 수가 없어서다. 오죽하면, 예전에는 단독 붙어 있는 기사를 죄다 저장해 두고 체크하던 내가, 요즘은 그것들을 무슨 스포츠 뉴스 보듯이 ‘스크롤’하고 지나가게 되었겠는가.

 

되는 대로 아무거나 주워섬긴다고 ‘보도’가 아닌데

이 ‘특종 인플레이션’이 언제부터였던가를 생각해 봤는데, 세월호 참사 때부터였다. 4월 16일 그날부터 꼬박 두 달 동안 우리는 도대체 저 ‘팽목항’ 앞바다에서 무엇이, 누구에 의해, 왜,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단서가 필요했다. 다이빙벨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보다는, ‘그래서 그 다이빙벨 내리면 사람들 구해올 수 있냐’의 여부가 어쩔 수 없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좀 사소해 보여도 [속보]를 붙일 수 있었고, 조금 뻔하게 들릴 수 있어도 [단독]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그건 세월호 참사 같은 ‘영문 모를 비상사태’에나 허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안들은 전체 정황과 안팎의 맥락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고, 그래서 되는 대로 아무 정보나 수집해다가 실시간으로 띄우기보다는 관점과 접근법을 가미해서 정돈을 해야 제대로 파악된다. 아마 그게 저널리즘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불거지고 있는 청와대 최측근의 비리 문제나 모 재벌 그룹 수뇌부 가족의 갈등 양상에 대해서 무슨 비상사태쯤 되는 양 ‘경마 저널리즘’을 하고 있는 언론들을 보면, 진지하게 묻고 싶다. 이걸 이렇게 자주, 짧게, 전부 다 중요한 것처럼 다루는 게 과연 옳은가?

글쎄, 어쩌면 그 사안들은 실제로도 중요하고 민감하고 복잡해서, ‘아무개 혐의 부인’ 운운하는 싱겁기 짝없는 “사실”에조차도 ‘특종’ 훈장을 붙여줄 만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부 다 차치하고라도 딱 한 가지 때문에 나는 요즘의 속보 경쟁, 단독 경쟁이 지나치다고 믿는다. 그 한 가지란, 도대체 뭐가 중요하고 뭐가 핵심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실종된 단원고 학생의 학교 책상’은 보도할 것이 못 된다는 걸 알아볼 수 있었지만, 거기서 아주 약간 더 내 삶과 동떨어지기만 하면, 어디에 [특종]을 붙여도, 솔직히 말해서, 그냥 다 특종인가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도대체 세상에 뭐가 그렇게 놀랄 게 많은지

꾹 참고 그 뉴스 통신사 알림을 지운 다음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다른 알림음이 또 울린다. 음악 듣는 어플의 라디오 채널 홍보 알림이다. “이번 주 ○○ ○○○ 역대급 무대 음원 들어보세요!” 역대급? 내가 지금 이 어플에서 역대급이란 말을 본 게 17번쯤 된 거 같은데? 왠지 점점 더 짜증이 나서 기분을 전환하려고 페이스북을 켠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페친이 GMO 관련 웹사이트 기사를 링크하며 “여러분 식량주권 위험합니다. 반드시 꼭 한 번 읽어보십시오. 경악하게 되네요” 덧붙였다. 속으로 답한다. 뉘예 뉘예, 이번에도 또 무슨 정말 큰일이고 무서운 일이 생겼네요.

만연한 놀라움, 흔한 공포, 반복 등장하는 ‘레전드’, 이번에는 다르다며 등장하는 새로움. 이것들이 낳는 것은 되풀이되는 비판, 뻔한 감동, 식상한 재미, 똑같이 거듭되는 한결같은 반응들이다. 조금 더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따라 내려가며, 뉴스뿐만이 아니고 온 세상이 다 이렇다는 것을 확인한다. 다 놀랍고, 다 새롭고, 다 끔찍해서, 다 주목받아야 하고, 다 중요하고, 다 문제다 보니, 이제는 그 무엇도 별게 아니거나 별것 아닌 것 취급을 받거나 하고 있다. No surprise, 순순히 놀랄 일이 없다. 2016년 8월의 끝에서, 우리는 드디어 이 경지에 도달했다. 이거야말로 특종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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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