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자전거 ‘따릉이’를 만난 순간, 나는 바람이 되었다

따릉아…넌 어디에 있니?

시청 근처에서 일하는 비루한 계약직 노동자는

후불 교통카드에 찍힌 액수를 보고 가슴을 세 번 쳤다.?한량이었던 나날과는 달리, 어느덧 회사란 곳에 나가게 되어 일주일에 거진 만 오천원 씩 앗아가는 교통비란 것에 울분이 찬 탓이었다. 어느덧 육만원이 훌쩍 넘어가버린 차비. 학교 앞 자취 이후 2만원 이상의 교통비 따윈 듣도 보도 못했던 뚜벅이 통학러는 그저 낙엽처럼 울었다. 그러던 내게 상사가 스치듯 말했다.

이 세상엔 따릉이란게 있다고.
너와 같은 이들을 구원하러 왔노라고.
사용료는 육개월에 단돈 만 오천원이라고.

나는 그가 흘린 말을 수 차례 되뇌었다. 따릉이, 따릉이라...

따릉이- 란 단어에는 왜인지 유치한듯 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청량함과 상쾌함, 그리고 저 동쪽에서 불어오는 초원의 풀내음으로 가득찬 묘한 울림이 있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날이 시원해지면 따릉이란 것을 타고 출퇴근을 하리라. 그리고 내 통장의 안녕과 육신의 건강을 모두 성취하리라.

지랄맞던 더위가 잦아들고 마법처럼 시원해진 어느 가을날이 왔다.?나는 일이 끝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채 시청 근처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따릉이 정류장을 찾아나섰다. 네이버 지도를 켜고 청계천 근처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저 멀리 초록 자전거들이 늘어서있는 광경을 발견했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오아시스를 발견한 낙타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섰다. 물론 사용법에 대해서 1도 아는 바가 없었기에 얼마간은 자전거가 참 좋구나- 하고 구경할 뿐이었다. 여하튼, 따릉이에 대한 첫인상은 깔끔했다. 흰색과 연두색이 조화된 날렵한 바디에 가방을 놓기 위한 바구니, 그리고 3단 기어까지.

따릉이라는 것은 꽤나 맘에 드는 탈것이었다.

SK서린빌딩앞 정류장의 모습. 매일 6시 15분쯤이면 초췌한 모습의 에디터를 목격할 수 있다.

SK서린빌딩앞 정류장의 모습. 매일 6시 15분쯤이면 초췌한 모습의 에디터를 목격할 수 있다.

 

따릉이 설명서가 적혀 있는 입간판을 유심히 읽어보았다.?글자가 이것저것 많았다. 내가 까막눈인지, 도무지 모를 말이요 닿지 않는 언어들뿐이었다. 그저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앱’ 하나였다. 나는 충실한 앱등이답게 앱스토어를 켜고 따릉이를 찾았다.

 

따....릉....이... 검색....

따....릉....이... 검색....

 

없는데?

없는데?

그랬다. 아무리 찾아봐도 앱스토어에는 따릉이는 커녕 유사한 앱도 없었다. 서울자전거? 역시나 없었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있을리가.?실없는 농담인가- 여겨 검색을 했다. 똑똑한 네이버는 '아이폰용 앱 같은 건 애초에 없단다' 하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서러움 많은 앱등이의 인생이랄까. 재밌다- 하는 앱을 찾아보면 언제나 없었지. 쓰라렸던 옛일을 되돌아보니 복받치는것은 설움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비회원으로 일일권을 구매하기로 했다. 초록색 비석처럼 쓰인 입간판 설명서를 읽으며 따릉이 사이트에 접속했다.

 

디지털 가시밭길이 시작되었다.

약관 동의, 휴대폰 본인인증, 반복되는 네트워크 오류, 그리고 실수로 인한 재시도... 시원한 가을 하늘 아래에서 나는 폭포같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청계천 한가운데서 우두커니 얼마나 서 있었던 걸까.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바로 그때, 비로소 비회원 결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결제를 마치자 곧 문자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날아왔다. 아아, 드디어 따릉이와 함께 달릴 수 있는가?

크나큰 오산이었다. 잠금장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이모저모 살펴보다가 핸들 밑의 굉장히 누르고 싶게 생긴 버튼을 발견했다. 망설이지 않고 눌렀다. 성우누나의 우아한 목소리가 카드를 찍으라 명령했다. 카드? 그런건 없는데? 순간 패닉에 빠진 나는 나라사랑카드를 들이대었다. 당연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꽤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다시금 입간판을 골똘히 읽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스마트폰 화면과 입간판 문자들을 번갈아 쳐다보는 나의 모습이 흡사 영단어를 처음 배우는 원숭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쓰인 대로 따릉이 홈페이지 메뉴에 들어가 자전거 대여하기를 찾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메뉴에 있어야 할 '자전거 대여하기'는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마법같은 일이었다. 아무리 부르고 화를 내봐도 없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kakaotalk_20160909_172431912

없어...없다구...! 왜 난 행보칼수없어!

...그 후, 수없는 고뇌와, 비명과, 절규 끝에서야 나는 ‘자전거 대여하기’ 메뉴를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비회원 로그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문뜩 눈물이 차 올라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랬다. 꽤나 시간이 지나 있었다. 시위의 메카 청계광장에 계속 서 있는 내가 아무래도 의심스러운지, 저 멀리서 경찰차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시 한번 메뉴얼을 준수한 결과, 드디어 멀짱한 따릉이에 탑승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에 기어가 고장난 자전거를 집었다가 다시 반납하고, 계속된 네트워크 장애와 같은 분노의 과정이 있었지만 지면이 모자란 관계로 적지 않도록 하겠다. 어쨌거나, 집에 가면 도끼자루가 썩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칠 즈음에 모든 것이 끝났다. 안장에 올라타자 구구단 2단을 처음으로 익혔을 때 느꼈던 환희가 온몸을 감쌌다.

이미 칼로리 소모는 삼일치 운동량을 가뿐히 능가한 후였다.

kakaotalk_20160909_172432237

참고로 여기서 이동 버튼을 누르면 나처럼 모든 것이 허사가 된다. 꼭 저 돋보기 모양 검색버튼을 누르도록 하자.

 

따릉이와 함께 바람을 느끼다

따릉이가 주는 속도감은 정말인지 엄청났다. 음속과 가까운 속도로 달리면서 로미를 그리워 하던 비트의 정우성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바람이 취해 차도로 돌입했다. 그 순간,?나는 바다가 청무우밭인 줄만 알았던 배추흰나비였음을 깨달았다.?수많은 승용차며 SUV, 트럭과 오토바이들이 기다리는 종로의 거리는 아우토반이 아니라 사바나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물론 연약한 자전거를 보호하고자 자전거우선도로라는 것이 있었지만,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내게 허락된 공간은 인도와 노란선 사이 칠십 센티미터 남짓한 공간 뿐이었다. 폭만 놓고 보자면 고시원 복도에서 스피닝을 하는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도 손님을 태우는 택시와 버스, 그리고 갓길에 주차한 차들 탓에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택시에 의해 치이고 있는 자전거 우선도로.

택시에 의해 치이고 있는 자전거 우선도로.

조금만 느리게 가면 빵빵거리는 거대 버스와, 크릉거리며 옆으로 지나가는 무시무시한 트럭들은 가냘픈 따릉이와 앱등이를 한껏 위협했으며, 앞에서 끊임없이 뿜어내는 매연은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문득 세렝게티 초원의 톰슨가젤은 항상 이렇게 살고 있겠구나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덩치 큰 차들에 놀라 인도로 눈을 돌렸다. 퇴근길의 종로거리는 인산인해였다. 또한 깊숙히 꽂은 이어폰에 따릉-하는 구슬픈 종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들과 스마트폰 카톡이며 동영상에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자빠질 뻔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물끄러미 차도와 인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립국의 주변인이 된 것만 같아, 괜스레 애먼 코를 스윽 닦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따릉이는요

그래도 가끔씩 도로가 한산할 때 따릉이와 함께 서울 하늘 아래를 힘차게 내달리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었다. 신나게 페달을 밟고 있자면 까마득한 과거, 네발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렇게 깝치다 논두렁에 자빠져 서럽게 울었었지. 오랜만에 떠오른 추억과 동심을 되새기며 광장시장 근처에서 마주친 초등학교 저학년 라이더와 피 튀기는 경주을 펼쳤다.

기어 세컨드를 외치며 허벅지가 터지도록 밟아 쟁취한 승리는 넥타르만큼 달았다. 다만 승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중학생이 탄 전동 퀵보드가 비웃듯 나를 추월해 지나갔다. 강한 모멸감에 입맛이 썼다 .그렇게 여기저기 길을 헤매며 종로구를 방황하던 따릉이 라이더는 녹초가 되기 직전, 서울대병원 앞 원남동 업힐을 통과하고 나서야 혜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삼십여분 간의 지난하고 보람찬 여정. 행군이라도 다녀온 기분이었다.

그제서야 집에 돌아온 프로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집에 돌아온 프로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따릉이로 출퇴근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2주 째, 어느 정도 홈페이지와 사용법에 익숙해지자 자전거를 대여하는 일은 그닥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 따릉이는 확실히 좋은 이동수단이다. 서울 곳곳에 설치된 정류장과 한 달에 2500원 꼴인 대여료도 여타 대중교통과 비교가 불가한 장점이다.

누군가 내게 따릉이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버스와 지하철의 교통비 폭탄으로부터 날 구원해준 따릉이를 사랑한다.
나는 어제도 따릉이를 탔고, 오늘도 탔으며, 내일도 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따릉이를 증오하냐고 묻는다면,
역시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애증의 모바일 홈페이지, 부재하는 전용도로.
그리고 끔찍한 안드로이드 편애는 나를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따릉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답할 것이다.

e7723-63

따릉이...? 제가 만나본 자전거 중에서... 최고의 자전거였어요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Pin on Pinterest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The following two tabs change content below.
조태홍

조태홍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비 오는 날과 밤 산책을 좋아합니다.
조태홍

조태홍의 이름으로 나온 최근 기사 (모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