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이 10주년이래요] ① 여전히 그 채널엔 눈이 간다

이 방송국은 뭐가 재밌는 내용인지 아는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해서, 10주년을 맞은 tvN의 지금 모습은 신기하기만 하다.?분명 그 채널은 ‘엑소시스트’, ‘리얼스토리 묘’ 같은 것을 아주 진지하게 제작하고 틀어 주던, 코메디TV와 히스토리 채널 사이의 어딘가에서 헤매던 방송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 채널은 언제나 ‘그래도 어디 한번 계속 지켜봐야겠다’ 하고 계속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tvN 엑소시스트

맨날 이런 거나 하던 곳이었는데… ⓒtvN

어쩌면 그 묘한 매력이 이 방송국의 가장 큰 매력이자, 생존 유지의 비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조금 얘기해 보겠지만, 다른 예능계는 별다른 내용 없이 그저 독하고 ‘쎈’ 방향으로만 폭주하고 있었으므로.

 

‘1박2일’이 충격을 주던 시절의 ‘재밌는 TV’

tvN은 2006년 10월 9일에 런칭했다. 이 월요일을 전후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노무현은 기어이 한미FTA 협상을 개시했고, 수능 완전등급제는 예고대로 시행됐다. 청계천 상인들을 동대문 운동장에 몰아넣던 이명박은 “한반도 대운하“ 따위의 공약을 내걸고도 ‘경제 대통령’이 됐고, 북한은 연일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내었다. tvN 런칭 5개월 전까지 ‘개콘’에서 볼 수 있었던 한 코너에서 ‘현대생활백수’가 남긴 유행어는, 생각해 보면 꽤 의미심장한 암시였다.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니? 다 되지.”

‘이제 딱히 못할 것이 없다’라는 감각은 2007~2008년을 전후해서 우리나라 전반에 퍼지고 있었다. 이 경향이 TV 예능 쪽에서는 더 ‘리얼’한 구성과 포맷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당시에는 등장 자체가 충격이었던 ‘1박2일’이 꼭 그랬고, 대놓고 공개 연애를 하는 ‘우결’이 그랬고 희한한 특집을 자꾸 쏟아내던 무한도전이 그랬다. 정말 연예인들끼리 이런 걸 하는 게 ‘프로그램’이 되나? 근데 된단다. 그리하여 ‘리얼 버라이어티’란 말은 비하적 표현이었다가, 점차 대세를 묘사하는 용어로 바뀌어 갔다.

그런데 개국 2년째가 되도록 휘청거리고만 있던 tvN은, 이때 조금 다른 행보를 걷는다. 포맷과 구성은 아주 전통적이면서도, 그 속의 내용을 가장 쎄게 표현하고 있었다. 앞서 말한 ‘엑소시스트’나 ‘리얼스토리 묘’는 말할 것도 없고, “재밌는 TV 롤러코스터”가 가장 그랬다. 사실 정형돈과 정가은이 보여준 것은 구성상으로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농담이었다. 하지만 ‘롤코성우’ 서혜정이 기계 느낌으로 “오 마이 갓. 아주 뭐 됐어요.” 같은, 방송에서 허용될 거 같지 않은 텍스트를 읽는 것이 우스웠다. 여기서부터 tvN은 일보 전진한다.

 

본질적 재미라는, 대세 아닌 대세

경연 오디션 프로그램들

한때는 ‘이런 걸 자꾸 해도 괜찮은가’가 논쟁거리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 불황 때문이었을까? 2008년 이후로는 그저 더 독하고 더 강하고 더 지독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고, ‘리얼 예능’은 서바이벌 경연, 오디션 따위를 붙여서 더욱 가속해 나갔다. 하지만 tvN은 그 대세에 곧장 탑승하지 않았다. 해외에서 검증된 포맷을 가져오든지(‘코리아 갓 탤런트’), 원래 하려고 했던 분야에 경연의 구색만을 붙이든지 했다(‘코미디빅리그’, ‘대학토론배틀’). 아니면, 저걸 왜 하나 싶은 교양성 오락을 하든지(‘피플 인사이드’, ‘시사랭크쇼 열광’).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꼬박 3년간 별별 포맷과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망하기를 반복한 결과 ‘빵상아줌마’와 ‘남녀탐구생활’ 정도를 거둔 이 방송국은 이때쯤 깨달았던 것 같다. 본질적으로 내용과 소재가 재미있지 않으면, 어떤 유행을 따라 어떤 형식을 씌워도 소용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tvN의 앞뒤 분위기가 확 바뀐다. SNL이 정식 라이센스 한국판으로 런칭했고(솔직히 굉장하다고 생각했고, 이제 감 잡았다고 생각했다), ‘강용석의 고소한 19’가 나왔고, 기어이 ‘응답하라 1997’이 터졌다.

tvN 연대기 2012년

이때부터 전성기가 시작됐다 ⓒtvN

따지고 보면 tvN은 애초부터 포맷이 아니라 내용에 경쟁 우위가 있었다. 공중파가 각종 제약 때문에 보여주지 못하는 것들을, 케이블 방송은 할 수 있으니까. 그 본질을 캐치해 재미있는 소재에 집중하기 시작한 이후의 tvN은 걷잡을 수 없이 대세로 떠올랐다. 다들 방송국 이름은 몰라도 ‘노란복수초’나 ‘코빅’, ‘응칠’은 알게 되었다. 어디서 하는 거라고? 아 그 17번인가 하는 채널 보면 나오는 거 있어. ‘슈스케’와 ‘위대한 탄생’ 따위에 질려 가던 나도 이때쯤부터, ‘어? 이 방송국 갑자기 잘 하네?’ 하고 더욱 지켜보게 되었을 정도니.

 

10년 역사의 케이블 방송국이 ‘원탑’이 된 지금

그렇게 다시 가라앉지 않는 대세로 떠올라 ‘꽃할배’, ‘더지니어스’, ‘삼시세끼’, ‘집밥 백선생’, ‘미생’, ‘치인트’, ‘수요미식회’ 등을 연일 히트시킨 tvN은, 지금도 여전히 예능계의 큰 흐름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 흐름에 탄 예능 프로그램들이 ‘안 되는 게 어딨냐’는 듯 더 빠른 편집, 더 자극적인 자막, 더 무자비한 구성으로 가고 있는데, 그리고 그렇게 아등바등 매달려도 살아남기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비해, 정작 tvN 자신들은 10주년 기념 어워드 내내 꽤나 여유로워 보였다.

tvN 어워즈

반가운 얼굴들도 보이고 ⓒtvN

짐작컨대, 이제 10년 세월을 버틴 tvN은 생존 비결을 알고 있는 것이다. 구성과 형식이 아무리 독하고 강하고 스케일 크다 한들, 그 속의 내용과 컷 하나하나가 실제로 재미있지 않고서는 다 부질없다는 점을 말이다. JTBC를 제외한 종편 채널의 예능들이 이를 너무나 잘 반증해 준다. 신박한 포맷, 상당한 규모의 투자, “토렌도 좀 읽은” 기획의도만 보면?대박 재밌어 보이는데, 막상 틀어서 보면 그 ‘리얼’한 겉껍데기 안에, 별다른 내용이 없으므로, 도저히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어떡하면 사람들의 눈을 붙잡을 내용을 만들어서 보여줄까를 연구하고 알아내며 버텨 온 tvN은 그동안의 스스로를 칭찬하듯 자체 어워드를 개최했고, 이는 별로 거만해 보이지 않았다. 나도 한동안은 이 잘 하는 오락 방송국을 계속해서 지켜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젠 물 빠졌다고 다들 비웃던 SNL코리아가, “늦게 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님”을 시전하며 아직 죽지 않았음을 과시하게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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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