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그렇다. 바야흐로 이별의 계절이다.
내 소원은 구남친이 대머리가 되는 거라고 말해도 길가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릴 것만 같다. 지난 연애...?아무리 부처님같이 마음을 먹어도 생각하면 태워버리고픈 그 단어. 이후에 남은 것은? 인생 샷이지만 지워야만 하는 커플사진과, 제일 비쌀 때 사서 똥값으로 팔아야 하는 금반지 뿐.
연애의 끝,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와는 조금은 다를까?
폭망한 연애 이후 남은 것들에 대하여, 에디터들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모든 예외였던 너라는 이름
힘들게 하는 사람은 곁에 두지 말자. 나의 원칙이었다.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가차 없이?쳐냈다. 애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힘들어도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한다? 미련이라고 생각했다. 애인이 나를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면 나는 항상 먼저 이별을 고했다. 이런 나의 생활 방식에 후회는 없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굳건했던 기준이 그에게서 쉽게 깨졌다. 그는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는 내게 항상 1순위였다. 하지만 그는 나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견디다 못해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일주일을 밤낮없이 울다가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제발 다시 만나줘. 구질구질한?전 여자친구의?모습을 보이고?만 것이다.?하지만, 카톡의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졌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이전의 쿨하고 굳건한 나의 세계가 무너진 것이다. 이제는 조금 미련하게 참고 산다. 물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던 그의 연락을 떠올리면, 그에게 모든 것을?맞췄던순간들을 기억하면 무엇이든 참을 만 했다.
쿨하고 미련 없이 사람들을 대하던 과거의 내가 종종 그립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시련들을 덕분에 잘 견뎌내고 있으니 고마울 일이다. 가끔 그의 집 앞을 지나갈 때가 있다. 고마움을 한껏 담아 외치곤 한다. 고오맙다 씹새끼야.
- 무파마먹는무파사 (23)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닌 너의 내일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게 좋다. 도전보다는 안전을 선택한다. 그런 내가?한때는?세계여행을 꿈꿨다.
'태국에서는 마사지를 배우고, 스페인에서는 탱고를 배울거야!'
이런 황당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왜냐고? 그때는 같은 꿈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널 보고 있으면 널?갈아먹고?싶다는 오지은의 엄청난 가사를 내게 이해시킨 사람이 있었으니까.
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처참하게 헤어졌다. 버스 환승 보다 짧은 텀을 두고 다른 사람과 사귄다는 그 사람의 소식을 듣고 나는 내 방에 붙은 세계지도를 떠올렸다.?헷갈렸다. 세계여행이라는?꿈은 우리의 것이었나, 아니면 너만의 것이었던가.
이후 세계여행이라는 꿈은?전 남자친구의?회사가 망하길 바라는 소박한 꿈으로?대체되었다.?겁 많은 나는 혼자가 되어 나의 미래여행 계획을 세워본다.
'다음 휴가에는 태국 가서 마사지를 받고,?차오산 로드에?가서 맥주를 마셔야지!'
'아니야, 혼자 가면?위험한가? 동행을 구해야겠다! 그러면...동행을 어떻게 구한담?'
뭔가 느리고 허술하다. 하지만 이제는 온전히 내가 담긴 계획을 만드는 중이다.
?- 카우카우 (25세)
마지막까지 네게 숨긴 나의 모습
네가 고시생이라는 사실이 힘들지는 않았다. 신림동에서?네가?나오는 날, 너의 거창한 감사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원래 나는 타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이 괴로웠다. 그리고, 나의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고시생인 네에게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 덕분일까. 이별 직전까지 우리의 연애는 큰 싸움 한 번 없이 이어졌다.
우리의 몸이 맞닿는 순간들을 기억한다. 너의 살을 쓰다듬을 때, 너의 가슴에 나의 머리를 기댈 때,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마음들을 너에게 올려놓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한 일들, 가슴 설레는 일들은 얼마든지 네게 자랑할 수 있었지만,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이 차오르던 그 나약한 순간들에는 입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입을 닫았다. 그리고 너에게 고개를 기댔다.
강남역에서?언주역으로?걸어가는 길에는 높은 계단들이 많았다. 함께 가위바위보를 하며 계단을 올랐지만,?그날따라?운이 없었는지 너는 점점 멀어져 갔다. 기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이 멀어지자 다급하게 너를 쫓아갔다. 너를 올려다보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아찔했지만 나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네 손을 잡고 고개를 기댔다.
아직도 모르겠다. 나의 유치한 불안을 표현했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계단을 오르는 너는 나를 기다렸을까. 같이 계단을 오르기에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을 계단 아래에 놓아둔다. 많은 것을 바랄 용기가 없었던 나를 탓하면서.
- ?비밀의 시크릿(23살)
너를 위해 준비했던 지난 날의 나
데이트가 끝나가는 마지막, 너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집에 간다면 서러워서 잠들지 못하고 말한다. 급하게 오늘의 기억을 되돌리기 시작한다. 더운 날씨인데 너무 돌아다녔나. 아까 먹었던 저녁이 별로였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싸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이제 습관이 되어버린 단어를 뱉는다. 미안해.
만족이란 말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다. 나는 그것을 두고 만족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너는 달랐다. 하나의 흠집을 발견하는 순간 나머지?구십아홉 개가?쓸모없다고?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연애를 떠나 사람을 잘 모르는 나이, 그때의 나는 내가 마냥?모자란다고?생각했다. 소녀시대의 노랫말처럼 그때는?네가?나를 존재하게 만드는 신인 줄 알았으니까. 마음에 드는 진로를 바꿨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네가?웃는 모습을?한 번이라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너를 위해 약속했던 것들로 밥벌이도 하며 산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긍정 받지?못하던 순간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는 않네.
- 인생반야근반 (27)
너를 잃고서야 찾게 된 나의 모습
원했던 전공과 다른 과로 진학을 했다. 속이 상했다. 그때는 전공으로 내 삶이 결정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하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앞에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는 내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다. 그와의 시간을 빼니 내게 남는 시간이 없었다. 허무했다. 그와 헤어졌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끝났다. 그리고 끈질긴 스토킹이 찾아왔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지난 연애에 회의감이 들었다. 동시에, 그동안 방치한 내 인생에게 미안했다.
남은 불씨를 꺼트리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더욱 다양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해보고 싶었던 것을 소화할 수 있었다. 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내가 내 인생의 1순위가 된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을 찾기 위해 너무 많은 과정들을 돌아온 기분이다. 잃은 것이 너무 많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 앞에 어떤 연애가 찾아올 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나를 잃고 싶지 않다.
- ?뜻밖의라푼젤 (22)
정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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