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법칙 : 필요한 사람은 정말 필요한 순간에 없다

정작 나를 잡아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취급했던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알고보니 양다리였던 내 첫 남자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다. 이런 류의 문장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자신의 의지는 크지 않았다는 말을 함축한다. 다음으로는 이 일을 되돌릴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물론,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말이 늘 부정적인 건 아니다.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자꾸만 보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고 어쩌다 보니 헤어지기도 한다.

한때는 자매 같았던 친구와 더 이상 연락도 주고받지 않는다. 처음엔 죽도록 미워했던 직장 동료와 친구가 되어 같이 밥 벌어먹고 산다. 이런 흔하디 흔한 몇 가지 사례는 천성이 게으른 나 같은 사람에게 상당히 매력적이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노력해도 안되니 노력하지 말자는 식의 결론은 간편하다. 한 뼘만 간격을 유지하면 상처받을 일도 없으니까.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얼굴만 아는 사람, 아는 언니, 안 친한 친구, 조금 친한 친구, 친한 친구 등등 수없이 많은 기준으로 층층이 사람을 나누곤 했다. 그리고 분류에 따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딱 그만큼의 노력을 했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별로 안 친한’ 친구였던 A가 팔짱을 꼈을 때 난 슬그머니 팔을 뺐다. 내가 누군가와 팔짱을 끼는 건 ‘정말 가까운 사람’으로 분류되는 몇 명뿐이었다. 친언니와 극소수의 친구 몇 명 그리고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는 아홉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 아홉 명의 자식을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자신의 무릎에 앉힐 만큼 고루 예뻐하셨다. 그 아홉 명이 결혼해서 스무 명이 넘는 손주를 낳았고, 할아버지는 그 많은 손주를 한 명 한 명 자신의 늙은 무릎에 앉히셨다.

할아버지의 주름진 무릎 위에서 자라난 손주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마치 내 부모인 양 꺼이꺼이 울고 자기가 가장 귀염받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사람을 향한 노력이 관계를 영원히 지속시켜주지는 않지만, 기억은 끝없이 이어준다는 걸 그때 배웠다.

앞서 말한 남자친구와 헤어진 나를 가장 많이 위로해준 건 '별로 안 친한 친구' A였다. A는 '괜찮다'고 말하며 뒤돌아서려는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자존심이 상해서 울지도 못했던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피곤했던 A가 밤새 술을 마셔줬을 때, '이제는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A가 내 이야기를 듣고 대신 화를 내줬을 때 나는 '실은 조금도 괜찮지 않다'고, '나쁜놈이지만 아직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서, 그 사람에게 못 해준 게 자꾸 생각나서 괴롭다고' 말했다. A와 내 사이의 간격이 솔직함으로 채워질수록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어느샌가 A와 팔짱을 끼고 걸으며 나는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했다. 할만큼만 하는 관계 속에서 나는 안전했지만, 뒤돌아서는 발끝에는 늘 미련이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누구도 올려두지 못한 내 휑한 무릎 사이로 지난 사람들에 대한 후회가 드나들었다.

당연하게도, 모든 관계는 언젠가 끝난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분명한 끝이 있기에 마치 모두가 영원할 것처럼 무릎에 사랑하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 그리고 가끔은 괜찮은 척 지나치려 하는 친구의 팔을 잡아야 한다.

누군가와 헤어지는 순간에 웃지는 못하더라도, 미련 없이 뒤돌아서기 위해서라도.

ⓒ영화 '연애의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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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미

정우미

Twenties Timeline 에디터. 낯선 곳에서 맥주를 마실 때 가장 행복합니다. 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