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글은 오로지 한국의 노벨상 受賞(수상)에 대한 念願(염원)을 담아 쓰여졌다. 이런 憂國衷情(우국충정)의 마음을 보여주려면 온갖 무례와 비논리쯤은 感受(감수)함이 마땅하다.
民族文化(민족문화) 부흥,
대마 非범죄化에 달렸다
노벨文學(문학)상의 歌手(가수) 수상자가 최초로 등장했다. 한국의 글줄 쓴다는 자들은 한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위해 번역 지원과 신진작가 발굴에 힘쓸 것을 주장했다. 그들의 거짓말이 문학을 사랑하는 韓民族(한민족)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金泰源(김태원)이나 申海澈(신해철)을 육성해야 했다. 그들은 모두 기타를 다루(었)고, 새로운 음악을 개척하였고, 가사도 서정적이며, 마지막으로, 大麻草(대마초)를 피웠다. 그들이야말로 밥 딜런을 따라갈 수 있는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후보였다.
우리가 새로운 노벨상급 大文豪(대문호)를 탄생시키려면, 정부는 서둘러 대마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대마가 별것이 아니고, 그저 삼베옷 만들 때 쓰는 삼을 말린 풀에 불과하다. 천연에서 나는 것인 만큼 해는 적다. 다만 사람의 정신을 잠시 꿈처럼 朦朧(몽롱)하게 만들고, 온몸의 말초신경이 수백 배 예민해지게 할 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니, 누구도 겪지 못한 그의 감각은 詩想(시상)을 강타하여 전혀 새로운 에토오스를 담는다. 일반적인 마약처럼 극한의 快樂(쾌락)을 가져오지 않으니 윤리적이고, 또 한낱 미천한 인간의 心身(심신)과 創意(창의)를 충전하는 데 대마만 한 것이 없다 하겠다.
미국 민족은 그들이 영광스럽게 차지한 또 하나의 노벨상을 대마의 功(공)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밥 딜런이 있게 만든 명곡의 가사는 모두 대마의 힘이 아니고서는 어느 英才(영재)도 一筆揮之(일필휘지)로 써내려갈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Blowin' in the Wind”를 살펴보자. 話者(화자)는 현실로 이뤄질 수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彈丸(탄환)이 언제 멈출지, 산이 언제 바다에 쓸려 없어질지, 울음소리에 언제 귀 기울일 수 있을지, 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알기 위해 얼마나 죽어야 하는지 묻는다. 이런 대답 없는 극단적 空想(공상)은 전형적인 左派(좌파)의 亡國(망국)적인 弊習(폐습)이지만, 밥 딜런은 대마의 힘을 빌려 일반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좌파의 감각을 가사로 따내고 말았다. 게다가 바람에 대고 답을 들으려 하다니,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속과 풍향을 말소리로 讀解(독해)할 수 있는 高度(고도)의 말초신경 감각이 없다면 가당키나 한 이야기인가.
그 뿐인가. “Knocking on Heaven's Door”는 生死(생사)가 갈리는 짧은 순간을 4분으로 확장해서 쓴 곡이다. “점점 어두워져서 볼 수가 없고” “더 이상 총을 쏠 수 없으며” “天國(천국)의 門(문)을 수도 없이 두드리는” 이야기는 막연하던 죽음을 한층 실체화한다. 이 노래가 히피들의 反戰(반전) 노래라느니, 알량한 서부극 노래라느니 하는 중상모략은 중요하지 않다. 찰나의 시간 동안 느끼는 감각을 一時(일시)에 停止(정지)하여 글로 풀어내는 것은 대마의 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昨今(작금)의 한국 음악 가사는 어떠한가. 치기 어린 자들이 晝夜(주야)를 가리지 않고 유혹과 이별과 性交(성교)를 들먹이는 시정잡배의 가사만이 썩어 넘친다. 우리 사회가 가수들을 방관하여 생긴 폐습이다. 그들이 집중하여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온통 그런 것뿐이기 때문이다. 小兒(소아)적 오만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대마가 그들의 잠든 自我(자아)를 깨워 새로운 문화의 復興(부흥)으로 이끌 것이다.
반세기 전 대마를 피기 시작한 밥 딜런의 결단은 노벨상과 미국 민족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그가 비틀즈를 비롯해서 수많은 서구 가수들에게 대마를 알려줬으니, 한동안 서구 우위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반만년 동안 받은 핍박을 恨(한)의 문학으로나 풀어냈던 우리 민족의 한 줄기 희망은 무엇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비록 우리 세대가 맛보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증손들에게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줄 책임이 있다. 백년대계를 위한 정부의 용단을 촉구한다.
(趙顯益 에디터=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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