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해도 ‘몰카’라고 하면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제일 먼저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성을 관음적인 시선으로 몰래 찍는 성범죄 몰카가 절로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새로운 수법의 다양한 ?범죄들이 쏟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자신의 모습이 찍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무엇이든 알아야 예방도 하는 법. 주로 몰카가 많이 발생되는 케이스를 모아 보았다.
1. 지하철 (feat.일상용품)
최근 5년간의 법원 판결문을 조사한 결과 적발된 몰카 범죄중 지하철에서 발생한 범죄가 51%로 절반 넘게 차지했다. 특히 에스컬레이터나 계단같이 경사가 있는 곳에서 많은 인파에 정신이 없는 틈을 노리고 있다. 조심한다면 몰카를 예방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엔 성급하다. 초소형 몰래카메라의 종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초소형 카메라’를 검색해봤다. 판매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뜬다. 그 중 한 사이트를 들어갔다. 전체 상품의 개수는 무려 92개.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안경부터 생수, 넥타이, USB, 차키, 펜, 모자, 단추 등등. 그냥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 있는 종류의 물건 전부라고 생각하면 쉽다.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다는 사람들에게 이 현실을 알려주고 싶다.
2. 공중 화장실 (feat. 나사)
사람이 가장 무장해제 되는 곳 중 하나는 화장실이다. 인간의 본능적인 ‘배설’ 욕구를 해소하는 곳이지 않던가. 하지만 최근의 화장실은 여성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장소 중 한 곳이 되었다. 많은 공중화장실의 연결 부분은 나사로 고정돼 있고, 이점을 악용한 더럽고 치사한 나사형태의 몰카가 등장한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때 몰카를 분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날카로운 물건으로 십자 나사의 가운데 부분을 찔렀을 때, ‘톡’하고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난다면 몰카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나사들을 찔러본 다음에야 배설을 할 수 있다는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부터 최근의 몰카까지, 이제 화장실은 고민을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해우소’가 아니다.
3. 여행지 (feat. 방심한 틈을 노리는 몰카들)
짜증 나는 기분을 떨치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맘 놓을 수는 없다 제주의 곽지 해수욕장에서는 30대 남성이 노천탕을 촬영하다 적발된 ?경우가 있었다. 멀리서?여성 관광객들을 몰래 촬영한 것이다. 그밖에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수욕장 불법 몰카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푹 쉬려고 간 여행지에서도 스트레스만 잔뜩 쌓일 뿐이다.
해외는 좀 다를까? 최근 에어비엔비를 이용자는 여성여행자가 화재경보기 속의 몰래카메라를 발견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다. 숙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침대에 누울 때까지 자신의 모습이 모두 찍혀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에어비앤비 숙소의 침대 밑에서 몰카가 발견되기도 했다. 몰카의 공포는 어디서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4. 내 방 내 집 (feat. 담배, 드론)
이렇게 된 이상 외출을 포기한다. 마음 편히 있으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슬프게도, 더 이상 내 방 내 집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몰카로 도어락 비밀번호까지 알아내기 때문이다. 검거된 범인은 휴대전화를 담뱃갑 안에 넣어 문 앞 계단에 놓아둔 다음, 혼자 사는 여성의 원룸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는 무더운 여름철을 틈타 드론 몰카도 기승을 부린다. <삼시세끼>에서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보여주던 최첨단 장비가 이렇게 더러운 일에 쓰일 줄이야. 몰카범들의 기발함에 감탄이 나오는 동시에, 그 창의력을 다른 데에 썼다면 인류가 더 진보할 수 있을 거라는 진한 아쉬움이 몰려온다.
제발 좀 그만하자 미친놈들아
“몰카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몰카영상물을 유통시키는 사이트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고 피해자들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치유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 주기 바랍니다."
8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몰카 범죄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주문했다. 몰카 범죄의 심각성을 청와대도 깨달은 것이다. 이와 동시에 몰카 판매 및 유통 규제에 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런 제도들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편협한 시선을 바꾸는 것이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보는 것이 아닌 관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현실이 여전한 이상, 일상을 노리는 몰카의 위협은 여전히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을 것이다.
주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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