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햇 ① 머리에 바가지 한번 얹어보실래요?

리안나도 썼고 타블로도 썼다. 다음은 당신 차례다.

모두의 모자가 되어버린, 스냅백

뻣뻣한 챙을 가진 일명 ‘뉴에라(New Era) 모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캐주얼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유행 이전에 뉴에라 모자(정식 명칭은 ‘59FIFTY Cap’)를 즐겨 쓰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힙합 음악과 문화에 심취해 있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그쪽에 약간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자는 미국에서 출발한 힙합이란 장르 음악을 상징하는 일종의 장르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미국의 팝스타이자 래퍼인 제이지(JAY Z)와 칸예 웨스트(Kanye West)가 자신들의 합작 앨범 [Watch The Throne]에 수록된 “Otis”의 뮤직비디오에서 스냅백(Snapback)이란 걸 쓰고 나오면서 판도는 뒤바뀐다.

그들이 들고 나왔던 스냅백은 90년대에 유행했던 뒤가 터진, 소위 ‘똑딱이’가 달린 모자였다.

그들이 들고 나왔던 스냅백은 90년대에 유행했던 뒤가 터진, 소위 ‘똑딱이’가 달린 모자였다.

앨범의 인기 때문인지, ‘유행은 돌고 돈다’는 진부하디 진부한 말이 맞는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스냅백의 시대는 그때부터 다시 급작스럽게 시작됐다. 그리고, 이때의 한국은 2012년을 기점으로 지드래곤(G-Dragon)이 아티스트 그 이상의 셀렙으로서 영향력을 슬슬 발휘하기 시작하던 동시에 블락비(Block B), 방탄소년단, B.A.P 등 힙합을 표방하던 아이돌 그룹이 속속들이 데뷔하거나 활동 중이었다.

여기에 엠넷(M.Net)에서 힙합을 기반으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가 처음으로 방영되기도 했다.즉, 스냅백을 쓸법한 사람들이 매스컴을 많이 타기 시작한 것이다.

스냅백_국민템_등극순간.jpg

그러다 <런닝맨>에서 송지효가 햇츠온(Hat’s On) 표 스냅백을 자주 쓰는가 싶더니, 국민템이 되었다.

이 시대의 스냅백은 종류도 다양하다. 과하게 ‘귀척’ 작렬하는 햇츠온 표 스냅백부터 천 몇 쪽 이어 붙여 만든 5천 원 짜리 별무늬 스냅백까지, 가끔은 나와 함께 2010년대 중반을 사는 사람이 맞는지가 의심될 정도로 미적 감각에 하자가 있어 보이는 스냅백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취향입니다. 존중하시죠.”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부모님이 주셨거나 당신이 직접 번 돈을 그렇게 쓰는 건 사람과 돈 모두에게 예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하나의 유행이 끝을 보이는 지금, 남들 쓰는 스냅백은 지겹고 뭔가 특별하고 다른 걸 원한다면 이 모자는 어떠한가? 단 한 번도 큰 규모의 유행을 탄 적은 없었지만, 언제나 우리 주변에 존재했던 아이템이 있다. 벙거지 모자 버킷 햇(Bucket Hat)이 그것이다.

버킷햇? 아~ 벙거지 모자?

대세 아이템 스냅백을 이기려고 소개하고자 하는 모자가 지하철역 어느 한쪽에서 구걸해야 할 것만 같은 벙거지라니, 생각보다 당황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모자는 생각보다 은근한 매력이 있다. 최근 화려한 패턴이나 적절한 핏으로 나온 제품도 늘어나고 있기에 더욱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말이다.

버킷햇은 1960년대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챙을 통해 햇빛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데님과 캔버스 같은 뻣뻣한 천 소재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실용성을 우선으로 만들어진 모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과거의 버킷햇은 누가 봐도 예쁜 정도까지는 아닌, 하이 패션에서만 활용되는 그저 ‘취향 타는’ 아이템일 뿐이었다.

버킷햇은 60년대 TV 시리즈 로 인해 널리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60년대 TV 시리즈 <Gilligan's Island>로 인해 버킷햇이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통 버킷햇을 보고 ‘낚시꾼 모자’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Fisherman’s Hat’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아마 낚시꾼들도 낚시터에 나갔을 때, 해가 쨍쨍한 것을 대비해 버킷햇을 쓰는 그림이 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모자를 낚시꾼 전용으로 퉁치기에는 생각보다 그 종류가 다양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버킷햇은 스트릿 패션 계로 진출하게 된다. 특히 1990년대 초중반에 걸쳐 활약한 몇몇 미국의 힙합 스타들이 어느 정도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전설적인 3인조 힙합 그룹 런 디엠씨(Run-DMC), 최초의 힙합 스타였던 엘엘 쿨 제이(LL Cool J), 그리고 커티스 블로우(Kurtis Blow)는 지금도 유명한 패션 브랜드 캉골(Kangol)의 버킷햇을 주로 착용했었다.

시대를 앞서간 엘엘 쿨 제이 형님

최초의 힙합 스타 엘엘 쿨 제이

그 외에도 라킴(Rakim), 고스트 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와 같은 래퍼들은 물론, 서문에서 잠시 얘기가 나왔던 비욘세(Beyounce)의 남편 제이지도 “Big Pimpin”이라는 히트 싱글의 뮤직비디오 속에서 버킷햇을 쓰고 보트 위에서 몸매 좋은 여자들과 춤을 췄었다. 그러나 버킷햇의 인기는 2000년대가 되면서 식어버렸고,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치고 나가지는 못했다.

내가 쓰면 다를걸? 버킷햇에 숨을 불어넣은 그들.

항상 대세와는 조금 멀었던 이 펑퍼짐한 모자에도 볕들 날이 찾아 왔다. 근래 들어서 버킷햇이란 아이템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컨트롤 대란’의 원조인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같은 레이블에 소속되어 있는 래퍼 스쿨보이 큐(ScHoolboy Q)가 그 주인공이다.

스쿨보이 큐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뜨기 시작한 래퍼인데, 거친 음악 스타일도 매력적이지만 뮤직비디오, 무대 등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버킷햇을 빈번히 착용하곤 했다. 특히, 그가 쓴 버킷햇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기존에 출시되던 버킷햇이 가지고 있던 투박함과는 다른 화려한 패턴으로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버킷햇을 벗으면 훨씬 잘 생겨진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어쨌든 스쿨보이 큐는 버킷햇이 떠오를 수 있었던 데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어쨌든 스쿨보이 큐는 버킷햇이 떠오를 수 있었던 데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또다시 특이한 취향을 가진 래퍼의 특이한 초이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박은 따로 있었다. 바베이도스 출신의 팝스타 리아나(Rihanna)가 지난해 상반기부터 버킷햇을 꾸준히 착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찍힌 사진 중에서도 농구 경기를 보러 갔을 때 찍힌 사진은 특히나 더 화제였는데, LA 레이커스(LA Lakers)의 게임을 보러 갔을 때는 카모플라쥬 패턴의 버킷햇을, 마이애미 히트(Miami Heats)의 게임을 보러 갔을 때는 플라워 패턴의 버킷햇을 착용했었다. 매혹적인 비주얼의 리아나였기에 90년대의 아이템을 소화할 수도 있었던 거라는 말과는 별개로, 분명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인지도의 셀렙까지 버킷햇이 도달한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lakers game 2013 에서의 리아나

lakers game 2013 에서의 리아나

아, 여담이지만 리아나의 ‘구남친’인 팝스타 주먹요정 크리스 브라운(Chris Brown)도 지난해 발표한 히트 싱글 “Loyal”의 뮤직비디오에서 플라워 패턴의 버킷햇을 착용한 바 있다. 리아나… 때문에 착용했다기보다는 그냥 트렌드라서 착용했던 거로 보인다. 이 밖에도 퍼렐(Pharrell), 마일리 사이러스(Miley Syrus)와 같은 팝스타들도 최근 들어 버킷햇을 쓴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바가지 모자가 뭐가 좋은 건데?

그래, 이제 버킷햇의 역사도 알았고, 유명 팝스타들도 쓰기 시작하는 아이템인 것도 알았다. 그런데 아직 당신 주변에는 이 모자를 쓴 사람이 정말 별로 없을 것이다. 있다면 그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스쿨보이 큐와 리아나를 알 거나, 아니면 그냥 집에 있는 거 아무거나 주어서 쓴 거 거나.

이 상황에서 저 혼자 과감하게 쓰기가 참 껄쩍지근하고, 민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잘만 쓰면 당신의 옷장 속 그 어떤 옷과도 잘 매칭되는 베이직 아이템이 될 수도 있으니까.

잘 쓰면 의외로 괜찮다. 타블로를 보라. 진짜라니까?

잘 쓰면 의외로 괜찮다. 타블로를 보라. 진짜라니까?

지금부터는 이 마법 같은 모자의 장점 3가지 정도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1) 매칭이 잘 된다.

재질, 색깔, 핏, 패턴 등 버킷햇의 속성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일단은 무난무난한 버킷햇을 전제로 한 장점이다. 버킷햇은 맨투맨, 후드, 셔츠, 니트, 코트, 자켓, 파카, 티셔츠, 심지어 나시에도 잘 어울릴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별 특징 없이 둥그스름하고 펑퍼짐한 느낌이 특징이라 그런 게 아닐까 한다.

물론, 여름에 아크릴, 나일론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제품을 쓴다든가, 겨울에 폴리에스테르로만 만들어진 얇은 제품을 쓴다든가 하진 말길 바란다. 차라리 사시사철 쓸 수 있는 면 소재의 버킷햇을 권유한다.

그렇다고 이런 식은 좀 곤란하다….

그렇다고 이런 식은 좀 곤란하다….

 

(2) 머리 크기, 두상이 상관없다.

사실 이거야말로 모자 계의 진정한 혁명이다. 사실 스냅백은 의외로 아무 두상, 아무 머리 크기에나 다 잘 어울리는 종류의 모자가 아니다. 쓰는 방법이 가지각색인데, 그중 한 방법을 골라 써도 전혀 원하는 핏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여성들의 경우에는 앞머리를 내놓고 쓰다 보면 금방 헝클어져서 체육 시간에 단거리 달리기를 하는 여중생처럼 외출 내내 앞머리를 가리게 될지도 모른다.

버킷햇이라고 무조건 앞머리 안 망가지고, 원하는 핏이 나온다는 건 아니지만, 스냅백보다는 실패 확률이 낮은 건 확실하다. 실은 쓰는 방법이 꾹 눌러 쓰거나, 머리 위에 살포시 얹거나 두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번 눌러쓰면 특별히 다시 고쳐 쓸 필요도 없다. 방법도 심플하고, 대충 써도 편하고 이쁘고.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편하게 쓰자 편하게.

편하게 쓰자 편하게.

 

(3) 패턴이 예쁘게 펼쳐진다.

큰 페도라와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버킷햇은 다른 모자에 비해 면적이 꽤 넓은 편이다. 또한, 모양이 한쪽으로 튀어나오질 않고 360도 기준으로 모든 부분이 평평해 패턴 디자인으로 된 버킷햇은 그 패턴이 주는 느낌을 배가시킨다. 아무래도 패턴하면 플라워 패턴인데, 그래서 플라워 패턴의 버킷햇은 마치 꽃들이 한없이 흐드러져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밋밋한 코디에 마지막 포인트가 되어주는 아이템으로도 적정하기 그지없다.

머리 위에서 눈부시가 빛나는 포인트를 보라

머리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포인트를 보라

 

자, 이제 구매 의욕이 생겼다면 취향대로 나만의 버킷햇을 찾아볼 차례다. 그런데 특별히 어떤 국내 셀렙이 착용하지도, 대중적인 아이템이지도 않기에 정확히 어디서, 뭘 사야 할지 모를 수도 있을 수도 있을 테다. 그래서 준비한 ㅡ 버킷햇 큐레이팅.

다음화에 계속된다. 믿고 기다리시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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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