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줄 뒤에 선다. 고개를 살짝 들어 사선 위 메뉴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직 생각이 채 끝나기 전에 아니 마저 다 읽기도 전에, 어느덧 앞에 선 점원이 묻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손님?"?대충 떨떠름한 표정으로 당신은 말할 것이다. "빅맥 세트요." 그리고 다음엔 꼭 다른 메뉴를 주문하겠다고 다짐한 당신의 내일 주문은 상하이 세트. 그리고 멀리 벗어나 도착한 곳은 결국 쿼터파운드 치즈. 아니면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초보자나 고수나 시킬 것 없기는 매한가지다. 아예 모르면 눈 감고 도전이라도 할 텐데, 그런 도전의 결과를 아는 입장에선 다시 '안전빵'을 찾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라는 게, 늘 같은 버거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정체도 모르는 버거 적잖은 돈 내고 시켜서 직접 실망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 직접 먹고 대신 추렸다. 버거 좀 먹어 본 당신은 알 수도 있지만, 마니아가 아닌 당신은 먹어보지 않았을, 그리고 제법 괜찮은 녀석들.
맥도날드 : 토마토치즈버거 (feat.로스트커피) ?/ 3,000원
맛 ?★★★☆
가격 ★★★★?
포만감?★★
너무 짜지도, 너무 시지도 않다. 어느 쪽으로도 넘치지 않는 맛은 '버거'의 원형原形을 담아냈다. 들어간 것은 빵, 양상추, 토마토, 치즈, 패티. 그 안에 전혀 특별하지 않은 케첩과 마요네즈가 전부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모든 잔재주를 쳐내 버거 맛의 핵심만을 살린다. 패티의 심심함을 치즈가 살리고, 치즈의 느끼함을 토마토가 잡는다. 아삭한 양상추는 씹는 감을 올려준다. 케첩과 마요네즈는 서로의 맛이 넘치지 않게 막아준다. 이 구성에 다른 소스나 재료는 사족일 뿐이다. 마치 계산된 것처럼 촘촘하다.
그럼에도 비죽 내미는 맛은 콜라가 아닌 커피로 막아보자. 맥도날드는 괜히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커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의외의 멋진 궁합으로 버거를 즐기는 당신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개운하면서도 입 한 구석에 남는 탄산음료와는 다른,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당신의 미각을 다시 살려주는 멋진 페어가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배고픈 당신의 한 끼 식사가 되어주기에 이 콤보는 (당신이 건장한 20대 성인 남성이 아니더라도) 조금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것.
롯데리아 - 미트포테이토 버거?/ 2,000원
맛?★★☆
가격 ★★★★
포만감?★★★★
배는 고프고 주머니는 허전하다면, 이 메뉴를 고려해 보자. 세트 주문이 불가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성비에 있어선 충분히 만족스러운 메뉴다. 기본 패티 위에 올라간 해시브라운이 풍족한 포만감을 자아낸다. 부족하지 않은 배부름이 최대의 강점이다.
맛은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데, 전반적으론 어디까지나 롯데리아 특유의 심심한 맛을 정확하게 따른다. 과하지 않은 케첩소스와 짜지 않고 고소한 해시브라운은, 자극적인 맛이 부담인 사람을 위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패티는 육즙 대신 마요네즈를 둘러 부드러움을 어필한다. 무리하게 자극적이지 않고, 살짝 새콤하면서도 고소하다. 한편으로 이런 밋밋함은 어딘가 부족하거나 느끼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치즈 토핑을 한 번 추가해보자. 2%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제법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KFC - 트위스터?/ 3,200원
맛?★★★☆
가격?★★★
포만감?★★★☆
혹시, 햄버거는 먹기에 너무 불편하다 생각한 적이 있는가? 한 입 베어물면 옆으로 새는 마요네즈 잔뜩 묻은 양상추, 소스와 함께 뒤로 밀려나는 패티,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따라 빠져나오는 토마토에 짜증을 낸 적이 있는지? 트위스터는 이런 불편함을 말끔하게 해결해 준다. 트위스터는 햄버거 빵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텐더 스트립, 양상추, 토마토 등 재료를 또띠야 위에 올려놓고 돌돌 말았다. 대롱처럼 길쭉한 이 녀석은 내용을 흘릴 일도, 입을 크게 벌리다 앞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 일도 없다.
구성만 놓고 본다면 꼭 타코 같기도 한데, 살짝 뿌려진 겨자소스는 타코 이전에 케이준 치킨 샐러드를 먼저 연상시킨다. 치킨 텐더 스트립 또한 기름기가 적고 부드러워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며 최소한의 소스는 패스트푸드 특유의 텁텁함을 크게 줄인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맛을 보여주는 편이다. 크기 자체도 메인 메뉴답게 제법 넉넉해서, 이전 끼니를 거른 게 아니라면 아마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버거킹 - 베이컨 더블 치즈버거?/ 6,200원
맛 ★★★★★
가격 ★☆
포만감?☆
진짜 치즈다. 진짜 치즈버거다. 일말의 채소도 없이, 두꺼운 두 장의 패티 사이로 흘러내리는 치즈는 보기만 해도 이건 진짜다, 싶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옆 가게의 어떤 메뉴와 비교해 크기는 더 작아도, 맛만큼은 진짜다. 본래 커스터마이징으로 만들어진 메뉴가 입소문을 타고 정규 메뉴로 올라간 것이니 나름대로 검증된 메뉴인 셈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모두가 잊었고,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 메뉴가 되었다. 그리고 이 망각 덕택에, 이 메뉴는 스탁(미리 만들어 두는 것)된 것이 없다. 즉 당신이 만약 이 메뉴를 주문한다면 100% 갓 만든 따끈한 버거를 받는다는 뜻이다.
사실, 조그만 덩어리 따위가 가격은 와퍼보다 비싸고, 크기는 너무나 작아 먹은지 3분 만에 벌써 배가 고프다. 황당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진짜 치즈맛을, 고기맛을 보고 싶다면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면 당당히 이 메뉴를 주문해라. 베이컨과 두툼한 두 장의 패티는 '진짜 씹는 맛'을 가르칠 것이다. 가득하게 맛을 채우는 치즈의 맛은 전혀 가볍지 않다. 그것이 전부다. 당신이 정말 '치즈버거'를 원한다면, 그리고 맛을 위한 각오가 섰다면, 직접 맛보기를 권할 뿐이다.
마치며
버거는 간편하고 꽤 맛있는 음식이지만, 부디 1주에 2회 이하로 즐길 것을 권한다. 이 글을 위해 일주일을 버거와 함께 보내며, 소화계통부터 시작해 신체가 실시간으로 망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밥이 최고다. ?진짜.
윤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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