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탄생] 5화: 데이트 코스는 모두 서울에 있더라고요

지방에 사는 20대 장거리 커플의 속사정을 들어 보았다.

서울에 올라온 지 3년이 지났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아니 서울 근처에라도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지를. 동시에, 그녀의 아쉬운 기억들이 끝없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인터뷰이 소개

민주(가명). 29세. 충남 모 도시에서 성장 후 대학까지 졸업 현재 서울에서 직장 생활 중.
당시 남자친구와는 21세 때 만나?1년 정도 교제 후 이별.

 

그간 잘 지내셨어요?

늘 비슷하죠. 일하는 사람 생활이 특별할 게 있나요. 요즘 진행중인 뉴스펀딩은 잘 보고 있어요. 얼마 전엔 직장인과 학생 얘기 올라왔던데,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행이네요. 본격적으로 얘기를 들어보려고 해요. 그때 남자친구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어요?

그 친구는 정말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초등학교 동창인데 사실 그 땐 그렇게 친하진 않았어요. 중학교부터 같은 학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알게 되었고요. 사실 얜 남중-남고, 난 여중-여고라 만날 일도 없었지만. 지방에서 다닐 만한 학원이야 빤하니까 만난 거죠.

더 친해진 건, 지방이 워낙 좁고 놀 곳이 거의 정해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끼리 시내 나갔다가 걔네 친구 무리들 계속 마주치고, 그렇게 같이 어울려 놀고 하다가 서로 잘 알게 된거죠. 특별히 걔 하나랑만 친했던 건 아니고.

 

그러니까 그냥 요즘 말로 ‘남사친’이었네요?

남사친? 아, 그렇죠. 남자 사람 친구. 생각해보니 그런 남사친 중에서도 베스트. 서로 연애상담도 자주 해주고.

그 뒤로는 다들 알만한 얘기예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마음에 들어왔고, 고백하던 날도 걔가 힘든 일 생긴 걸 위로해 주고 있다가 그랬네요. 그렇게 힘들면 나한테 오라고. 뭐 그런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케이스죠.

 

같은 고향 친구였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뒷말 같은 건 없었어요?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주변 친했던 애들 몇몇은 알고 축하해주고 그런 정도? 근데 진짜 지역사회 좁다고 느꼈던 게, 사귄 지 딱 사흘 만에 엄마한테 말이 들어가더라고요. 엄마들끼리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니까. 그리고 혹시, 전 여자친구 길에서 만난 적 있어요?

 

음… 아뇨. 그쪽 근처는 안가요.

아픈 상처가 있나 보네.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웃음)

네 뭐. (웃음) 근데 여긴 동네가 좁고 시내가 한 군데니까, 그런 일이 꽤 자주 있었어요. 한번은 데이트 중에 남자친구 표정이 갑자기 안 좋아져요. 뭔가 해서 살펴보니 저기 길 반대편에 남자친구 전 여자친구가 있더라고요. 물론 나도 걔 얼굴을 너무나 잘 알고. 그러면 그 날 데이트는 괜히 좀 우울해지고 그랬죠.

스펙터클하네요.

그거 말고도, 데이트 내내 아닌 친구들이랑 마주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어디서 뭘 하는지 계속 노출되고, 불편하죠. 유일한 장점은, 덕분에 서로 바람 필 수 없다는 거? 나머지는 나쁜 점이 훨씬 많더라고요. 어디서도 맘 편히 있기 힘들고.

 

장거리 커플이라고 들었는데?

그 친구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고 난 집 근처로 다녔으니까. 학기 중엔 자연스럽게 장거리 커플이었죠. 그래도 방학에는 집에 내려와 있으니까 자주 만나고.

 

그럼 많이 힘들지 않았어요?

친구였던 시간이 길어서인지 서로 보고파서 죽고 뭐 이런 건 없었어요. 다만, 많이 못 만나는 것보다 힘들었던 건 괴리감..같은 그런 거. 아무래도 데이트하기엔 서울만한 데가 별로 없으니까, 내가 올라가는 일이 많았죠. 가서 강남이나 홍대, 이태원 이런 데 가 보면 또 한참 놀라고. 와 얘는 이제 이런 걸 보고 있구나, 정말 다르구나.

매번 제가 서울에 올라갔어요. 그러다 보니 몸도 힘들고, 아직 학생이라서 버스비가 부담도 되고. 이렇게 좀 서운한 마음이 터져서 가끔은 네가 내려오면 안되겠냐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그러더라고요.

 

“거기는 뭐?아무것도 없잖아?”

 

아이고.

그냥 기분이 그랬어요. 스물한 살 때고 한창 노는 거 좋아할 나이잖아요.

부럽죠. 서울에선 나가면 발에 채이는 게 볼 거리 즐길 거리인데, 여기는 딱히 그럴싸한 맛집도, 특색 있는 거리도, 하나 못해 놀이공원 같은 것도 없고. 아니 솔직히 이런 것 말고도, 서울은 널린 게 버○킹인데, 당시 우리 동네엔 롯○리아 하나 있었으니까. 벌써 차이가 나는 거죠.

 

그렇죠 아무래도.

걔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걔한테도 고향인 만큼 걔도 잘 알죠. 진짜로 할 게 없다는 걸. 노래방, 영화관, 카페 아니면 맨날 가는 술집이 전부고 식당도 이미 갈만한 데는 옛날에 다 갔고. 가 봤자 이전에 친구 사이였을 때도 맨날 같이 다니던 곳이라 그런지 감흥도 별로 없었고요.

 

그래도 찾으면 놀 데는 다 있지 않아요?

있기야 있죠. 근데 진짜 다른 데 가서 놀려면 차 한 대는 있어야 해요. 진짜로. 그래서 부모님 차라든가 끌고 다니는 애들도 몇 있었어요. 허세가 아니라 차라도 있어야지 뭔가 할 수 있는 폭이 확 늘어났거든요.

이게 어떻게 예를 들면 좋을까, 얼마 전에 친구들끼리 대학로에서 점심을 먹다 석촌호수 판다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바로 지하철을 타고 보고 왔는데, 서울은 이런 게 자연스럽게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지방은 불가능해요. 자동차라는 수단이 없으면.

저희 본가에도 꽃게탕 진짜 잘 하는 곳 있는데, 거기도 차 없이는 못 가요…

지방에선 이동 문제가 무지 크잖아요. 버스 배차간격도 막 30분이나 1시간 이런데다, 그것마저 빨리 끊기고… 물론 차 없어도 연애 못하는 건 아니에요. 차 끌고 다니는 애들이 다수였던 것도 아니고.

근데 지방에서의 차는, 없던 선택지가 늘어나는 문제예요. 그래서 형편이 되면 경차나 소형차라도 마련하거나, 아니면 장기 렌트 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어요.

 

서울이, 지도를 보니까 버스로 2시간 30분 정도인데,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네요?

헬스장만 해도 1시간 거리에 있는 거랑, 집 앞 5분 거리에 있는 건 확 다르지 않아요? 예전에 부산 친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외지 사람들은 바다 보러 가려면 ‘준비’를 하고 오는데, 부산 사람들은 그냥 마음 먹으면 갈 수 있잖아요. 그런 차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지방이라고 지방만의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많이 좋아졌다곤 해도 아직 서울이랑 비하면 다르죠. 정말 부산이나 전주 같은, 진짜 일부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지역 음식 같은 걸 내세울 곳도 없잖아요.

요즘 페북에 어디 갈 만한 곳, 맛집, 식당, 여행 명소 하고 확인해보면 적어도 90%는 서울인 것 같아요. 지금은 서울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에야 서울 살고 하니까 그냥 시간 나면 친구들과 놀러가고 하는데, 예전 같았으면 날 잡고 가야 했으니까요.

그러면 이런 격차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됐던 거예요?

네 뭐. 잘 만나지도 못하는데 늘 나만 서울로 올라가는 것도 힘들고, 근데 또 말해도 막상 서울 아니면 이 동네에선 할 것도 마땅히 없고. 그래서 또 지루하고 그러면 불만만 쌓여가고, 점점 지치는 거죠. 그렇다고 내려오라고 말도 못하겠고…

 

그래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물론 초기에는 그랬죠. 그냥 시내 걷는 것만으로도 좋고. 그런데 정말 연애 조금이라도 길게 해보신 분들은 다 알 거예요. 사람이다 보니까 감정이 언제나 같을 순 없는 거잖아요. 어느 순간 권태기가 오고, 그게 늘 같은 일만 겪어서 그런 거니까 그걸 극복하려면 새롭게 자극이 될 만한 것들을 해야 하는데…

 

“지방에서는 자극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근데 사람들은 보통 ‘마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근데 난, 마음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아직 환상에 갇힌 진짜 어린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요.

 

마음만 있으면, 노력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다들 첫사랑이랑 결혼하셨나 봐요. 실패하셨다면, 마음과 노력이 부족하셨네. 아니면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셔서 온 우주가 들어주지 않으신 건가…

 

뭐 아무튼 그렇게…

네, 그렇게 사실 어쩌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르는 것 때문에 다투다가 헤어졌죠. 지금에야 별 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게 작은 문제가 아니었고요. 같은 문제라고 해도 사람들 각자가 느끼는 무게는 다 다른 거고, 그런 걸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가 연륜이나 경험의 차이겠죠. 근데 그 시절엔 둘 다 그러기엔 너무 어렸고요.

헤어지던 날도 “가끔은 내려와 주면 안되겠냐”고 서운한 걸 말하고 있었고, 늘 같은 얘기만 돌고 도는 게 참을 수 없어서 마음과는 다르게 심한 말을 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결국 끝나게 된 거죠.

 

29살의 눈으로 그때의 연애를 돌이켜보면?

서로 거리가 멀었고, 환경이 달라졌던 이런 문제만 빼면 순탄하고 소박한, 그래서 달리 할 말은 없는 연애였던 것 같아요. 서로를 잘 아는 만큼 배려하고 맞추기도 좋았고, 바람이라든지 그런 일도 없었고.

다만 항상 생각나는 건 만약 우리가 서울에서 만났더라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그리고 함께 했던 순간의 추억들이, 심심한 무채색 같은 게 아니라 조금은 다양한 색들로 칠해져 있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들도 들고요.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바쁘게 살다 보니 아직 연애를 못 했는데, 남자친구 생기면 가고 싶은 곳들 생각해 둔 게 있어요. 오히려 올라와서 지내다 보니 그런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네요(웃음). 주변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부탁해요.

평범한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누군가는 드라마를 요구한다. 어떤 비극적인 상황과 환경 아래에서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길 바라며, 이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던지지 않으면 사랑의 진실됨을 의심한다. 감정적으로 완벽하길 바라며 사소한 잘못조차 용서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제3자들이 바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문화 인프라는 이미 서울을 중심으로 조성되고 있고, 그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어느새 하나의 소외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자연스럽게 만나고 사랑했던 이들에게 다툼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지금 당장 해결책을 요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현실의 환경과 조건들이 누군가를 분명히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선명한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할 뿐이다. 일단은, 이것이라도 하나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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