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탄생] 9화: 1000일간의 만남… 이젠 버티는 사랑은 하고 싶지 않아

그 1천 일 동안의 연애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3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1000일.

이들은 그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때로는 몰아치는 어려움에 흔들리기도 하고, 가끔은 터질 것만 같은 두근거림으로 서로를 마주보곤 했었다.

그런 그들이 헤어졌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1000일간의 만남은, 그리고 이별은 과연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지난 시간 동안 그 사이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무엇을 견뎌왔을까?

인터뷰이 소개

윤경(가명), 24세. 서울 4년제 대학 재학 중.
동갑 남자친구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 약 3년간 교제 후 이별.

 

 

같이 알바 하다 만났다고 했지?

응. 저기 학교 앞에 거기. 평일 오픈이었는데, 아무래도 가게가 크진 않으니까 한 타임에 둘밖에 없었어. 그러다 마감 조 애들 오면 같이 정리하고 나오고. 그때 난 첫 알바였거든. 아는 것도 별로 없어서 걔한테 또 많이 배우고 그랬지. 그러면서 서로 이런저런 말도 많이 하고.

 

누가 먼저 마음을 보인 거야?

사귀고 난 다음에야 안 건데, 걔가 처음부터 나한테 마음이 있었대. 어쩐지 알바 마치고도 카톡이 오더라(웃음) 근데 솔직히 원래 내 타입은 아니었어. 그래도 계속 그렇게 붙어 있고 그러니까 없던 마음도 생기고 그러잖아. 아무튼 그랬어.

 

어떤 모습에 끌린 걸까(웃음)

그냥 뭐 평범했어. 딱히 요란하게 꾸미는 타입도 아닌데 그렇다고 막 촌스럽지도 않고 그래선가 사실 처음엔 눈길도 잘 안 갔어. 첫인상은 그냥 괜찮은 알바 동료1 정도였지 뭐.

그러다 친해지고 보니, 되게 자기 일에 열심이더라구. 꿈이 바리스타라고 했었고, 학교는 지방에서 4년제 다니다가 그만뒀다고 하더라고. 올라와서 저녁엔 학원 다니면서 낮에는 일하고. 솔직히 일하는 거 보면 대충 사람 보이잖아.

 

그럼 확실히 마음을 연 건 언제야?

그때 생활비를 아빠 카드로 썼거든. 그럼 내역이 다 아빠한테 가니까 막 쓰기 힘들고, 따로 정해진 용돈으로 받질 않으니까 현금도 없고 좀 그랬어. 그 얘기를 지나가는 말로 걔한테 했었는데, 내 핸드폰 케이스에 만원을 넣어 뒀던 거야. 돈 만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 얘가 참 나를 많이 생각해주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계속 친해지고, 언젠가부터 알바 끝나고 늘 같이 밥을 먹고 있더라고. 그렇게 하루가 쌓이다가 자연스럽게 사귀었던 것 같아.

 

자연스러운 시작이 확실히 편해.

응. 그러다 보니까 밥 먹고 영화 보고, 이런 뻔한 기본적인 것들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서 좋았어.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했었어. 축제에서 둘이 칵테일 만들어서 팔기도 했고.

 

어떻게?

남자친구가 만들고 내가 손님 모으고. 그때 한번 더 반한 게, 준비를 되게 열심히 하더라고. 남자친구가 바리스타 자격증 말고도 조주기능사 자격증이 있었거든. 엄청 꼼꼼했어. 재료부터 원가 하나하나 다 따지고, 이 정도면 몇 ml정도 줘야 하고, 얼음도 몇 개 이상 주면 안 되고. 그런 식.

 

되게 성실하다. 주변에서도 평 좋았겠는데.

특별히 별 말은 없었어. 내가 그렇게 티를 많이 내는 타입도 아니라 주변 친한 애들만 좀 알았어. 아, 사귀던 초에 그런 말 들은 적은 있었어. 엄마한테 남자친구 생겼다고 하니까 이것 저것 묻더라고. 몇 살이냐 부모님은 뭐 하시냐 학교는 어디 다니냐… 대강 대답해드리니 혼잣말 중얼거리시더라. 아직 뭐 시간 많으니까” 하고. 그땐 별 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까 참..

 

 

“엄마 입장도 이해는 가는데,
그래도 좀 섭섭했어”

 

음…

아직 어릴 때고 어차피 헤어질 테니 굳이 지금 나서서 막지는 않겠다 하는 거. 드라마 보면 부모가 반대하면 꼭 더 붙어가지고 더 난리 나잖아. (웃음) 솔직히 마음에 차진 않으셨던 거지 뭐. 서울로 기껏 좋은 대학 보내놨는데, 막말로 고졸 학력인 애 만나는 거잖아. 그렇다고 걔네 집이 대단한 부자인 것도 아니고.

이해는 가는데, 그래도 좀 섭섭하고 그랬어. 인정도 받고 그러고 싶었는데, 썩 좋게 보진 않으신다는 거 아니까. 차라리 대놓고 뭐라 하면 말이라도 꺼내고 싸우기라도 하겠는데 가끔씩 “걔는 요새 한다는 건 좀 된대?” 하고 압박을 주니까 그게 더 미치겠더라. 어디다가 말도 못하고.

 

둘 관계는 전반적으로 어땠어?

걔가 성격이 좀 집요한 면이 있었어. 만나면 무조건 계획대로 해야 하고. 근데 나는 정한 계획이 있더라도 못 하면 그 뿐이고. 그런 부분에서 계속 충돌하다 보니까 가끔은 싫었어. 연락도 나는 좀 느슨하게 하는 편인데, 걔는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면 짜증내고..

나중에야 서로 이해하고 그랬지. 내가 싫어하는 걸 아니까. 서로한테 익숙해지니까. 처음보다 마음이 더 커진 것도 있고.

 

“그렇게 맞춰 가는 거지 뭐.”

 

군대도 기다렸었잖아?

그 때도 연락 문제로 많이 싸웠어. 차라리 밖에 나와 있을 땐 그런 불만 같은 건 바로 싸우고 풀고 하는데, 물리적으로 연락도 마음대로 못하고 자주 보지도 못하니까 더 불안했나 보더라.

처음 훈련소 갔을 때 있잖아, 걔가 편지를 엄청 보냈어. 한꺼번에 여러 통이 왕창 오더라. 근데 난 그동안 인터넷편지 두 번 쓰고, 손 편지는 한 번 정도로 답장하고.

 

사회는 또 바쁘게 돌아가고 그러니까

그때 3학년 올라가고 학점 관리한다 토익이다 공모전이다 뭐다 바쁜데 어떻게 그것만 붙잡고 있어. 근데 서로 제대로 말할 틈이 없으니까. 또 군대라서 그런 건지, 걔는 더 감성적이 돼서 한 번 전화라도 놓치면 엄청 속상해하고 그랬어. 불안도 했겠지, 내가 밖에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러다 깨진 커플도 많고

실제로 같이 기다리던 친구들 많이 깨졌어. 기간이 많이 줄어서 2년도 안 되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힘들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버티기엔 너무 길어. 하지면 별 수가 없잖아. 다들 간다고 하는데. 커플들한테 선택권이 있나.

 

그래도 기다려줬네 끝까지.

아냐 이건 내가 항상 말하는 건데, 우리의 사랑이 각별해서 끝까지 기다린 게 아냐. 진짜 운이 좋았던 거야. 훨씬 더 진지했던 커플이 군대 때문에 깨진 거 보면 내 마음이 더 아파. 잘 아니까. 서로의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휴가 때 함께 찍었던 셀카

 

그렇군. 제대하고 나선 좀 어땠어?

연락이야 뭐 훨씬 자유로워지긴 했는데, 제대하고 나와서도 많이 보긴 힘들었어. 내가 바빴지. 한창 마케팅 쪽 인턴 하고 있었으니까. 진짜 바쁠 땐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 퇴근도 쉽게 못하지. 괜히 나중에 안 좋게 보이면 큰일이잖아..

걔는 걔대로 다시 바리스타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그때부턴 아예 아침부터 마감까지 풀타임으로 나가고 그랬어. 그러다 보니까 서로 평일에는 그냥 못 본다 생각하고 바로 밤 늦게 전화나 하고 그랬지. 그러다 토요일에나 간신히 볼까 말까.

 

일요일은!

일요일엔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까. 무리하면 서로 손해야. 그래서 만약 토요일에 누가 일이 생기면 그 주는 그냥 못 보는 거야.

 

서로 마음이 식은 거 아냐?

매일 보고 싶지. 그럼 뭐해. 돈을 벌어야지. 학자금도 갚아야 하고. 여하튼 그냥 서로 힘든 거 이해하니까, 힘들지만 꾸역꾸역 참아갔던 거지.

 

오래 만나서 좀 지친 적은 없어?

난 힘들다 같은 건 전혀 없었어. 시작도 자연스러웠고, 연애도 자연스러운 그 분위기가 좋았어. 아, 나보다는 우리 엄마가 지쳤을 것 같다. (웃음)

지쳤다기보다 초조함? 아까 말했잖아. 대놓고 반대는 안 하셨지만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고. 걔가 군대 전역했을 때쯤부터 그런 말씀을 더 자주 하시더라고. 어디 대기업에 들어간 아들이 있는데, 다음에 걔랑 한번 보자라고 말하시거나, 어느 집 아들이 무슨 사업이 잘 됐다고 하시거나. 그럼 내가 “왜, 걔도 돈 모아서 자기 가게 차릴 거랬어.” 하고 대꾸도 하고.

 

서울에서 카페 차리기 힘들 텐데..

응. 사실 걔도 그랬어. 아무래도 서울이나 수도권에선 가게 못 낼 것 같다고. 고향 내려가서 차릴 생각이라고. 그리고 주변 이야기 들어봐도 서울에선 카페 차려도 원금도 못 건지고 1년 내로 망한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지방은 아직 땅값도 싸고, 경쟁자도 없어서 할 만 하다고.

 

장거리 커플 예약이네..

내가 기다렸다면 그랬겠지. 사실 끝을 생각했던 것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아.

 

아, 헤어진 이유가..

응. 마음이 떠났다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냥, 현실적으로 우리가 계속 함께 할 수 없겠구나, 그런 거. 걔는 꿈을 위해서 결국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고, 나는 회사에 계속 있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결국 우리는 멀어지겠지”

 

음.

물론 굳이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어. 그냥 언젠가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끝날 테고, 만날 수 있는 데까지는 잘 만나야지 하고 생각했으니까. 걔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아 잠깐만. 생각하니까 괜히 슬프네…

 

 

헤어진 지 얼마 안됐잖아.

2달 좀 넘었지.

 

그래도 잘 만나왔었는데.

잘 모르겠어. 우리도 헤어진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어. 그냥 모든 것들이 우리를 갈라놓는 그런 기분이었어. 그래서인가, 헤어질 때도 큰 소리 내고 싸우지도 않았고, 막 울지도 않았어. 걔가 조용히 그러더라. 우리 여기까지만 할까? 하고.

아직도 잊혀지진 않는 게, 표정이 너무 진지했어. 내가 걔 만나면서 본 중에 제일.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말이 잘 안 나오더라. 그리고 계속 말했지. 여기서 끝내는 게 서로에게 제일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하더라.

 

정말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딴 여자 생겼다. 뭐 그런 거. 근데 그건 아니야. 장담할 수 있어. 그냥 많은 것들을 버티다가, 결국 서로 지쳤던 거라고 생각해.

 

그립겠다.

보고 싶어. 근데 연인으로 다시 만나고 싶은 건 아니고. 정확히는 걔랑 만났던 시간을 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뭐 잘 지내고 있겠지. 내가 조금 더 맞춰주지 못한 부분은 좀 미안하기도 하네.

 

다음 번에는 어떤 연애를 하고 싶어?

그냥, 더 이상 뭔가를 버티거나 이겨낼 필요가 없으면 좋겠어. 이젠 편하게 연애하고 싶어.

그 동안 많이 버텼잖아. 아닌가? 더 버텨야 하나?

 

다음 주에 ‘이별의 탄생’ 에필로그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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