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탄생] 7화: 이별은 누구나 겪는 거고, 늘 아쉬운 거 아닌가요?

뉴스펀딩 반환점을 돌면서, 그간 자주 받은 질문에 답해 보았습니다.

‘이별의 탄생’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분들이 메일과 댓글을 통해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그간의 질문들을 모아 한 자리에서 답변하는 자리를 가지고자 합니다.

 

1화. 사랑으로 감당하기 힘든 군대라는 변수

Q. 누구나 이별은 겪는 거고, 늘 아쉬운 이별은 있는 거 아닌가요?

A. ‘이별의 탄생’을 통해 다루고 있는 이별들은 특정한 사회적 구조가 계속된다면 언제든지 생산될 수 있는 형태의 이별입니다. 남은 에피소드에서도 지금의 20대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을 이별을 통해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Q. 우리 때는 군대가 3년이었는데, 아직 철들려면 한참 멀었다.

A.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자신의 다리를 묶여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Q. 그래서 군대에 가지 말자고?

A. 아닙니다.

 

Q. 저는 제대할 때까지 잘만 기다렸는데요? 군대가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못해줬거나 한 사람이 믿음을 못 줬겠죠! 서로 잘하는데 왜 군대 간다고 헤어져요?

A. 군복무가 무사히 끝날 때까지 예쁜 사랑을 이어나가신 점,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하지만 많은 연인들이 군대 앞에서 좌절을 겪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서로를 갈라놓고 그 믿음을 흔드는 분명한 현실이 기다림의 결실로만 포장되는 일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화. 사람은 보지 않고 오로지 학벌만 보더라

Q. 학벌 보면 사람에 대한 답이 나온다.

A. 학벌은 보통 10대까지의 삶으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이후를 완벽하게 보증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뒤늦게 재능을 찾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학교의 간판 하나만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도 정말, 괜찮을까요?

 

Q. 학벌이 문제라서가 아닌 그냥 사람이 글렀다. 뚜렷한 비전과 바른 생활을 사는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면 같이 못 살 이유가 없다.

A. 1971년 필립 짐바르도 박사는 스탠포드 감옥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건장한 남성들에게 주어진 과제란 오직 하나 뿐이었습니다. 진짜처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 결과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그대로입니다. 권력을 가진 '간수역할자'들은 자신의 역할에 몰입했고,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었던 '죄수역할자'들은 그들의 가학에 어느새 굴복하기 시작했습니다.

특정한 학벌을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 ‘죄수’로 취급 받는 현실 안에서, 개인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들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좋은 대학을 들어가고 졸업하기 위해 누군가가 십 수 년간 흘렸을 피땀 어린 노력은 무시하는 거냐?

A. 아닙니다.

 

Q. 학벌에 대한 편견은 학벌이 낮은 사람들도 가지고 있다. 정작 학벌 낮은 사람들도 자기처럼 학벌 낮거나 본인보다 학벌 더 낮은 사람 우습게 보더라

A.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생각 깊숙이 편견이 심어져 있고, 그렇기에 한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는데 본 프로젝트가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화. 우린 잠시 ‘재수’라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지

Q. 무슨 재수하면서 연애를… 그러니 재수를 하지

A. 6.25때도 애를 낳았다고 합니다.

 

Q. 여자애가 허영심이 심했겠지. 알뜰하게 연애하는 사람이 더 많다… 학식만 먹어도 좋아 죽는 그런 사이가 되거라

A. 검소함은 미덕의 문제이지 강요의 문제가 아닙니다.

 

Q. 순수하지 못한 사랑이네요. 저 때는 그냥 사람이 좋아 만날 때 아닌가요?

A. 2015년의 연애에서 경제력이란 절대적인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어느새 일정 규모 이상의 충분조건으로 자리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엄연하게 지갑 사정이 이별의 한 이유로 존재하는 현실에서 순수한 사랑의 힘과 같은 낭만적인 수사로 모든 것을 수습하려는 시도는 해결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4화. “원래 다 그런 거야” 회사는 삼켜버렸다… 우리의 관계를

Q. 회사가 우리의 관계를 삼켜버린 게 아니라 그 상황을 그 남자가 선택한 게 아닌가?

A. 지면 관계로 서술하지 못하였지만, 취재 과정에서 상대방 남자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야 (당시) 여자친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자신이 힘들다는 이유로 회사를 포기하고 나오기 힘들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둘의 감정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외부 조건’이 둘의 사랑을 과거형으로 만든 걸까요?

 

Q. 우리 때는 선배들 4차까지 모신 다음에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가?

A.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지면 자신의 다리를 묶여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2)

 

Q. 여자는 공부도 안하고 남자만 쫓아 다니는지..

A.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인터뷰이의 학점을 추가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졸업 예정학점은 3.9 정도라고 합니다. 업무에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우리나라 회사 문화상 개인 삶 없는 게 당연하다.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Q. “원래 다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사회로부터 받는 커다란 무게들을 온전히 개인이 참아 넘기길 바라는 것은 이미 정도가 넘은 것 같습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이네요.

A. 본 기획 역시 ‘원래 다 그런 거야’와 같은 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사회의 무게들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짓누르고 있는지를 이별이라는 가장 사적인 이야기 속에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연재되는 기사들을 통해, 당연시되는 이런 어려움들이 조금이라도 주목되기를 바랍니다.

 

5화. 데이트 코스는 모두 서울에 있더라고요

Q. 다들 데이트 코스를 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만 가려고 하지? 동네 도서관도 데이트 장소가 될 수 있는데. 눈을 크게 떠라

지면 관계로 싣지 못한 이야기를 조금 더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해당 커플이 가장 많이 갔던 데이트 코스는 캠퍼스 산책이었으며, 그 다음으로 동네 단골 카페, 마지막으로 술집이라도 답변해였습니다. 모두 북적거리지 않고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고 합니다. 눈을 크게 뜰 일도 이유도 없이, 그곳밖에 갈 곳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Q. 문화적 박탈감은 이해하는데 글 쓴 의도가 점점 지방을 무시하고 서울만 찬양하는 느낌이 난다.

A. 지방 소도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으며, 더욱 깊게 농, 어촌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서울이라는 공간에 집중된 문화 인프라는 이미 현실이며, 지방의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박탈감 역시 진행형의 문제입니다. 더 자세한 현실은 고함20에서 진행 중에 있는 ‘지방 빼는 세상에서 살아남기’를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나는 아내와 지금도 자주 데이트하며 삽니다. 그냥 주변 단골 일식집 가거나 새마을식당 7 분 돼지김치나 먹고 편의점 천원커피 마시며 손잡고 걷습니다. 가끔 극장에서 영화보고 돌아오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 콘 하나씩 사서 롯데백화점 후문의 비치파라솔에 앉아 이야기하는 등등. 때로는 사는 건물 옥상에서 맥주 캔 마시며 야경 바라보면서도 합니다. 돈 때문에 멋진 곳 찾아 다니기만 할 수 없어서요. 하지만 작은 여유에 늘 행복합니다. 아내는 제가 돈 걱정 말하는 거 제일 싫어합니다.

A. 지방에는 일식집, 새마을식당, 편의점, 극장, 맥도날드, 롯데백화점이 없는 곳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겐 ‘그냥’ / ‘당연한’ 것들이 어딘가에서는 당연하지 않음을,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Q. 서울도 막상 오면 할 거 없다..하다 보면 다 지겨워.

A. 선택지를 가져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지겨울 수도 없는 한정된 선택지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6화. 나는 ‘언니’와 만나서 평범하게 사랑했었습니다

Q. 적당히 해라. 애들 물들까 겁난다.

A. 동성애가 외부의 강요로 바뀌는 것이 아니듯, 동성애에 대한 기사를 접한다고 이성애자인 사람들이 동성애를 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Q. 글쓴이는 동성애자냐?

A. 아닙니다.

 

Q. 개나 소나 인정하랜다. 그럼 개랑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고, 소아성애도 사랑이냐?

A. 언급하신 경우는 성적 결정권이 없는 대상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입니다. 폭력에 대한 치료는 많은 상담센터와 시설이 있으니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반면, 동성애는 어떠한 폭력의 개입 없이, 서로의 합의하에 진행되는 사랑입니다.

 

Q. 원래 사람은 남녀가 만나는 게 원칙이다~ 원칙은 바꾸는 게 아냐~

A. 1955년까지 흑인은 버스 맨 앞 좌석에 앉을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Q. 조금이라도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듯한 댓글을 달면 항상 미래에 자녀가 동성애를 하면 응원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댓글이 달리는걸 봐왔어요. 저는 제가 미래에 사랑으로 낳은 자식이 혹여 소수자일까봐, 지금 세상이 소수자에게 기본적인 법적 보호나 인권존중이 되어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A. 성별, 인종 등에 대한 혐오와 멸시를 당연시하던 과거가 지금처럼 바뀌었듯,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에피소드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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