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피드백에 휘둘리는 당신에게

적당한 ‘곤조’는 몸에 이롭습니다.

어느 글쟁이의 일갈

“맛칼럼니스트가 왜 정치, 경제, 역사 등등 영역을 가리지 않고 읊어대냐고요? 원래 그런 직업이니까요. 누가 그렇게 정했냐고요? 내가요. 맛칼럼니스트는 내가 처음이고, 그러니 내가 그러면 그런 일을 하는 게 맛칼럼니스트 맞습니다. 내가 만든 내 직업에 딴지 걸지 마세요. 대한민국에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으며, 나도 댁들의 직업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

2015년 이슈의 중심, 황교익 ⓒ강연 100도씨

2015년 이슈의 중심, 황교익 ⓒ강연 100도씨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자신의 SNS에 남긴 말이다.

최근 인지도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는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꾸준히 글을 써온 정통 글쟁이다. 13년간 농민신문에서 근무하고, 잡지 새농민을 만들면서 전국의 먹거리에 관해 취재한 내공은 기본. 음식에 관해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전국 각지의 음식을 취재한 <맛따라 갈까 보다>, 음식에 관한 자신의 인사이트를 풀어놓은 <미각의 제국> 등 다수의 저서까지 써낸 바 있다.

이렇듯 글쟁이 중에서도 가장 정도를 걸어온 그가 왜 지금에 와서 저만치나 격렬하게 자기 자신을 변호해야만 했을까?

 

비 오리지날, 킵 잇 리얼

최근 황교익은 <수요미식회>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을 이전보다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음식 철학에 입각해 한국의 외식 문화에서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치킨에 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백종원을 '사업가'로 칭하며 선을 확실히 긋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정부의 천일염 명품화 사업에 관련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천일염에 대한 위험과, 그것을 '자연 그대로의 것'이라는 이유 등으로 명품화하려는 정부와 미디어의 움직임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천일염 산업화 5개년 계획 수립 및 우수천일염 시범단지 조성을 통해 1조원 규모로 육성하는 '국책 사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었다.

많은 반대도 잇달았다. ⓒ시민신문

많은 반대가 이어졌다 ⓒ시민신문

'매국노'라는 극단적인 반박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2015년 9월 13일 SBS스페셜에서 소금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천일염 논란 방영과 같이 공론화되는 한편, 그동안 신성 불가침의 영역에 있던 천일염에 대해 다양한 논쟁이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자신이 쌓아온 지식과 믿어 왔던 신념 없이 누군가에게 휘둘렸다면 절대 만들지 못했을 성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날이 선 그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급작스러운 인기에 따른 오만함은 아니다. 황교익은 오래 전부터 자신이 정립한 분명한 철학을 중심으로 한 말과 글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지금은 그것들이 방송 혹은 온라인 매체와 같은 파급력 있는 채널로 공개되고 있을 뿐이다.덕분에 황교익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응원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상당한 반감도 사고 있다.

그럼에도 황교익은 그 무엇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예전처럼 자신이 해온 것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이를 두고 소통하지 않는 꼰대의 똥고집 혹은 오만으로 해석해야 할까? 글쎄. 나는 이러한 태도가 온라인 에서 자신의 산물을 공개하는 지금의 창작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과정도 결과도 '내가' 만드는 겁니다.

이쯤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잠시 정리하도록 하자.

일각에서 지나치다고 평가받기도 하는 황교익의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옹호는 어디까지나 창작자가 가져야 할 태도적인 측면에서 적용된다. 창작자는 자신의 분야에서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원칙을 강력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 원칙에 타인의 의견을 반영하거나 반하는 의견을 더할 수는 있어도 아무런 기준 없이 휘둘리는 건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나가야 하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행동이다.

아무도 당신의 선택을 책임지지 않는다 ⓒ넥슨

아무도 당신의 선택을 책임지지 않는다 ⓒ넥슨

자신만의 야구를 '창작'하는 프로야구 감독을 예로 들어 보자.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스포츠인 프로 야구는 그 높아진 인기만큼이나 많은 응원과 질타를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10개 구단의 감독들은 가장 도마에 자주 오르내리는 존재다. 이들은 구단을 지원하는 대기업의 의향을 맞추는 동시에, 상황이 어떻든 간에 무조건 좋은 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하는 의무에 시달리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여론이란 이름으로 존재하는 팬들의 의중을 반영하지 않는 순간, 상상하지도 못한 농락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시즌을 끝까지 소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로지 야구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다. 그런 사람만이 명장이라는 칭호와 함께 우리에게 오래토록 기억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21세기 삼성 왕조'를 만든 류중일 감독이 있다.

'관중일'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있었다 ⓒ삼성앤유

'관중일'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있었다 ⓒ삼성앤유

 

전임 감독이었던 선동열의 이름값에 비해 너무도 약한 인지도 탓에 환영받지 못했지만, 이런 시선에 굴하지 않고 그는 데뷔 첫 해 부터 자신만의 철학을 자신있게 선보인다.

그때 류중일이 가장 많이 들은 조언이 있었다. 바로 “장원삼을 빨리 1군으로 올려 선발진을 강화하라”는 것이었다.

“장원삼을 빨리 1군으로 올리면 당장 팀 성적 향상엔 좋을지 몰랐어요. 하지만, 빨리 댕겨 썼다가 다시 탈이라도 나면 시즌 내내 (장)원삼이를 못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큰 부상이라도 당하면 장원삼 본인에게 가장 마이너스가 될 일이었고요. 그래 결심했죠. ‘누가 뭐래도 장원삼의 컨디션이 100%가 되기 전까진 절대 쓰지 않겠다’고요. 지금 돌아봐도 원삼이 복귀를 인내심 있게 기다린 건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해 삼성은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올랐고, 전해 한국시리즈에서 4패의 굴욕을 안겨줬던 SK를 상대로 4승 1패로 승리하며 2006년 이후 5년 만에 우승컵을 들었다. ‘초보 감독’ 류중일의 호기가 허언이 아니었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참아서 성공한 남자, 류중일>

지나치게 반응을 일일이 살펴가며 자신의 야구를 숙였던, 그래서 지금은 사라진 수많은 감독들과 분명히 비교되는 행보이다.

 

아무쪼록, 오래 살아남읍시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나 콘텐츠를 더 빠르고, 더 쉽고, 더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어떤 사람이든 온라인에 공개된 것이라면 그에 관해 손쉽게 자신의 의견을 내뱉을 수도 있다. 편리해진 도구 만큼 피드백은 깊은 사고 없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창작자와 달리, 자신이 누구인지 조금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그 뿐인가. 논지를 파악하지 못한 채로 논쟁을 벌이거나 대상이 가지고 있는 맥락을 알지 못한 채로 의견이나 감상을 개진하는 경우도 많다.

여고생 몰카범 기사에 달린 댓글. 이런 사람들이 당신의 글을 피드백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고생 몰카범 기사에 달린 댓글. 이런 사람들이 당신의 글을 피드백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대를 사는 창작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 자신만의 철학이 요구되고 있다. 피드백을 아예 보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일이 체크해가며 자신의 생각 혹은 다음 결과물에 반영할 필요도 없다. 내용조차 없는 한 줄짜리도 수두룩 한 의견 속에서 내가 나로서 온전히 서 있기도 힘들고, 그것에 휩쓸려 한순간에 벼락 스타가 되거나 인간 말종으로 매장되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러니, 다만 움츠러들지 말자. 당신이 그리고자 했던 그림을 더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두 발을 붙이고 굳건하게 서 있도록 하자. 자칫 발이 떨어진 채로 부유하는 순간, 당신이 그리던 그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훗날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그런 기억으로 남기 전에.

ⓒ내멋대로 고민상담

생존 그 이상을 꿈꾸는 이 시대의 창작자들에게 건투를 빈다 ⓒ내멋대로 고민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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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