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툰, 지금은 고민이 필요한 때

작가의 일상을 만화로 그린다고 무작정 좋기만 하진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생활툰’이 많아진 것일까

말 그대로 생활을 그려내는 만화인 생활툰. 자기 생활을 소재로 만들기 때문에 다른 장르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고, 만화를 보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하는 품이 덜 들기 때문에 보기도 쉽다. 특이하든 평범하든 자신의 생활이 있으면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고, 특별히 수려한 그림체를 요구받지도 않는다. 이러한 ‘생활툰’들은 타블렛의 대중화, 네이버 도전만화나 다음 웹툰리그의 등장, 레진코믹스를 필두로 한 웹툰 연재처의 확장 등을 만나 상당히 성장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범람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특징들 때문에 이제는 너도나도 생활툰을 그리고 읽는다. 당장 네이버의 원로인 ‘낢이 사는 이야기’가 일단 떠오르고, 다음의 고전 ‘어쿠스틱 라이프’나 신흥 강자인 ‘나는 엄마다’ 같은 것들이 또 생각날 것이며, ‘오빠 왔다’나 ‘앙영의 일기장’ 같은 편안한 공감물에 ‘달댕이는 11년차'까지 뭔가 고민하게끔 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네이버 베스트도전이나 다음 웹툰리그, 잘 알려지지 않은 웹툰 전문 사이트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 훨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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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일상’ 장르 분류가 따로 있을까

뭐든지 종사하는 사람이 많고 일이 쉬운 업계에는 최강자부터 어중이떠중이까지 다양한 분포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의 대다수가 어디로 기우느냐에 따라 그 업계는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이제는 생활툰이 그런 업계로서의 분기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 살펴보자. 대체 이 ‘생활툰’이란 것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네임드’들이 어느 날 찾아낸 생소한 세계

생활툰을 ‘작가의 신변잡기적 만화를 인터넷에 업로드하는 형태로 유통하는 것’ 정도로 정의하자면, 그 시초는 정철연 작가의 ‘마린블루스’로 보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물론 이와 비슷한 시기에 연재처 없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활동했던 일기형 생활툰 작가들로 루나(‘루나파크’), 스노우캣, 이다 등이 있었는데, 이 시절의 “생활툰”의 인기 요인은 ‘신기함’이었다. 아직 웹툰이라는 것 자체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던 시절(첫 연재가 2001년 11월이다!), 귀엽고 독특한 그림들로 그려진 어떤 사람의 일기를 읽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좋았던 것이다.

마린블루스 초기 연재분

디스 정가 1천원이 소재였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시는지? ⓒ정철연

그들이 생활툰이라는 세계를 모험하고 돌아온 이후에는, 안정적인 웹툰 연재처들이 등장함에 따라, 이러한 연재처에서 생활툰을 연재하기 시작한 개척자 작가들이 눈에 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네이버와 다음 웹툰 서비스를 통해 생활툰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들로는 낢(‘낢이 사는 이야기’), 조석(‘마음의 소리’ 초기 한정. 지금은 생활툰이라 보기 힘들다), 워니&심윤수(‘골방환상곡’) 등을 들 수 있다.

아직 ‘웹툰’이라는 것 자체가 세간에는 낯선 개념이었고, 무료로 누군가의 일상을 다룬 컬러 만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한 도전이었던 때였다. 그래서 생활툰이라는 장르 자체가 어렸던 그때는, 일단 자기 일상을 만화로 그려 연재하기만 하면, 그 감성이나 방향에 상관없이, 대체로 무난하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골방환상곡 초기 작품 중

어썸데이툰 사장님이 제 한 몸 불살라 망가져 주시던 시절도 있었더랬다 ⓒ워니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만의 특별한 감성을 담은 것이나, 특이한 일상을 재미지게 그려내는 등 전략적으로 포지셔닝을 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쯤에서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때 이후로 ‘일상을 그린 만화이기만 하면 무조건 좋은’ 시절은 사실상 끝이 났다고 보아야 한다.

 

인기를 얻기 위해 자기만의 전략과 실력이 요구되다

시간이 지나며 웹툰이 하나의 컨텐츠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생활툰 또한 파이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생활툰=일상”의 공식에 변수들이 들어왔다. 일단 가장 기본형인 자기 평범한 일상을 자기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그려 승부하는 작품들의 수준과 경쟁작 수가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어쿠스틱 라이프’가 있고, 고시생의 즐거움과 애환을 담아낸 작품인 ‘고시생툰’ 등이 이때 데뷔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조금 더 최근작까지 포함하자면, 본인이나 주변인의 결혼을 다룬 ‘아랫집 시누이’나 ‘유부녀의 탄생’도 꼽을 수 있겠다.

선천적 얼간이들 일부

돌아와요 작가님! ⓒ선천적 얼간이들

또한 ‘특이한 생활’을 그림으로써 주목받는 작품들도 여럿 등장하게 된다. 영국인 남편과 사는 한국인 여성의 나날을 다룬 ‘Penguin loves Mev’, 어찌 저런 친구들만 만나서 무사히 살아왔는가 싶은 작가 주변인들과 작가 본인의 인생을 독특하고 꽉 찬 그림체로 그려내는 ‘선천적 얼간이들’ 등이 그러한 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유형의 웹툰들 중 소수자들의 삶을 다룬 생활툰들 역시 여럿 나왔다. ‘모두에게 완자가’(레즈비언), ‘이게 뭐야’(게이), ‘나는 귀머거리다’(청각장애자), ‘학교를 떠나다’(고등학교 자퇴인) 등.

심지어 등장인물이 사람이 아닌 유형도 나왔다. 대표적인 분파가 동물툰과 음식툰이다. 동물툰들은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 ‘개와 토끼의 주인’, ‘탐묘인간’ 등의 작품의 인기에 힘입어 일상계 웹툰 쪽에서 상당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으며, ‘코알랄라’, ‘오무라이스 잼잼’, ‘역전! 야매요리’ 등의 음식툰은 연재작 갯수 자체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각각이 워낙 유명해서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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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륜과 표현력이 워낙 좋으니 카카오페이지라는 연재처가 문제가 아니다… 옹동스 커여어… ⓒ스노우캣

생각해 보면 희한하지 않은가? 장르의 규칙대로라면 작가의 일상과 작가가 나와야 하는데, 음식이 나오고 반려동물이 나오는 ‘생활툰’까지 나왔다는 사실. 이처럼 생활툰이 다양한 유형으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서서히 사람들은 ‘생활툰’을 하나의 (포괄적인) 장르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활툰이라는 게, 더 이상 소재가 일상이기만 하면 되는 장르가 아니게 됐다.

이제는 생활툰 역시 단순히 일상을 그림으로 그려낸 ‘그림일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담고 있는 ‘작품’이기를 기대받게 되었다. 그 ‘무언가’가 다른 작품에 없는 이야기든, 작가만의 탁월한 표현력이든 뭐든 간에. 반대로, 그런 남과 다른 뭔가가 없는 ‘생활툰’을 보는 독자들은 과감하게 눈살을 찌푸리게 되었다. 한때는 연재하기만 하면 무난하게 인기를 얻었던 일상툰이었는데, 이젠 얘기가 달라진 것이다.

 

변변한 대책도 없이 생활툰이라고 들고들 나오니

예전에는 생활툰이라는 장르에 대해 ‘작가의 일상이 소재’라는 정의만이 합의되어 있었지만, 다양한 창구의 확보, 하나의 장르로서의 넓이와 깊이 확보, 양적 팽창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생활툰에 원하는 것은 생활만이 아니게 됐다. 그 소재를 다루는 ‘질’이 중요해지고 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최근까지 이어져 온 일상툰의 양적 팽창과 고도화가, 이 바닥의 전반적인 질적 상승을 가져왔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필살의 대책을 마련해 꾸준히 잘 하는 작가들이 따로 있고, 그런 대책 없이 무작정 연재하며 냉정한 평가를 받는 작가들이 따로 있다.

언제 없어질지 몰라서 전 이거 카톡 이모티콘도 못 지우고 있음요… ⓒ정철연

언제 없어질지 몰라서 전 이거 카톡 이모티콘도 못 지우고 있음요… ⓒ정철연

잘 하는 사례들에는 이유가 있다. 예컨대 이제는 레전드가 되어 버린 ‘마조앤새디’는 작가 정철연만의 확실한 비결과 대책이 있는 생활툰이었다. 귀여운 그림은 그대로 가되, 밝으면서도 안정된 분위기를 확보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특성을 잘 살린 의인화 캐릭터에 ‘남성 주부’라는 특이한 생활까지 갖춘 것이다. 트집 잡을 곳 없이, 생활툰으로서 사랑받을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러니 인텔코리아 페이스북이라는 불편한 연재처에 사람들이 굳이 찾아갔겠지.

감히 생활툰의 최강자 중 하나라 부를 수 있는 ‘어쿠스틱 라이프’ 역시 괜히 최강자가 아니다. 학창시절 내내 특별한 공부 없이 언어영역 1등급을 받았다던 그는, 과연 그만이 가진 시선과 표현력으로 만화를 만든다. 하나의 주제를 들고 자잘한 생활 소재들을 데려와 여백에 잔잔하게, 하지만 절대 부족하지 않게 보이는 색채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을 보면, 이 고르게 높은 추천수들이 허풍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참고로 193화 ‘나의 사랑하는 딸’에는, 2015년 11월 11일 기준으로, 18,945명이 추천 버튼을 누르고 갔다.

좌우로 넘겨 가며 직접 보시라. 어떻게 이런 간단한 선으로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만들지? ⓒ난다

‘나는 엄마다’는 또 어떠한가. 작품 전반에 탁월하게 묻어나는 자식 사랑과 진솔한 감정은, 연재 초기에 “이래도 되나” 싶었던 화풍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여러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완결작 ‘결혼해도 똑같네’ 역시 타고난 유머감각과 염장질, 귀여운 캐릭터, 감각 있는 연출이 확실했기에 연재 내내 큰 사랑을 받았고, ‘선천적 얼간이들’ 또한 화려하고 꽉 찬 그림과 범상치 않은 생활(및 인물)이 고유하고 파격적인 조화를 만들어냈다. 심지어 둘 다, ‘일상툰에 써먹을 일상 소재가 떨어졌다’를 소재로 다뤘었다!

그런 우연의 일치가 뭐가 중요하냐고? ‘생활툰이 생활만 늘어놓는다고 끝이 아니다, 대책이 필요하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제 생활툰 작가들은 누구나 이 문제를 고민하면서, 각자의 요령과 호흡으로 그걸 해결해야만 하게 되었다. 마린블루스의 정철연이 바로 그랬다. ‘마린블루스’ 연재 당시 분위기가 너무 어둡다거나 템포가 왔다갔다한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는, 자기의 과거 인기나 생활툰 장르에 대한 확신을 접어두는 대신 열심히 고민해서 대책을 내놨고, 그것이 실력 증명으로 이어졌다.

권기린툰 2화 캡처

월요일을 그림으로 그렸다. 끝. ⓒlezhin, 권기린

한편 못 하는, 안이한, 대책 없는 생활툰들은 어떤가? 당장 네이버 ‘나도만화가’만 들여다 봐도 ‘아침에 일어나서 이 닦고 학교 갔다가 친구를 만나고 집에 왔다’ 하는 그림일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작품들이 참 많다. 거긴 원래부터 제대로 된 만화를 연재할 능력이 아직 안 된 지망생들이 그림 한두 장 올려보는 곳이니 눈감아 주자고? 그러면, 페이스북 페이지나 작가 계정, 다른 공식 연재처 등을 굳이 확보해서 좋아요 많이 받고 열심히 공유되고 있는 컨텐츠들은 사정이 다를까?

레진코믹스에서 월급 받고 연재되는 “권기린툰”이라는 일상툰이 있다. 작가의 오너캐로 추측되는 기린의 일상 공감을 다루고 있다. 뭐 기린 자체는 독특하진 않아도 안정적으로 귀엽긴 하다. 그런데, 생활툰으로서 당연히 스스로 검토를 끝냈어야 하는 요소들, 예컨대 ‘누군가의 일상을 통해 보는 어떤 새로운 감상’이 여기에 있나? 내가 지켜본 결과, 이 만화는 ‘월요일’ 같은 흔한 소재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들 느끼는 감상을 그냥 그림으로 다시 그려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공감, 태그, 그리고 남은 것은? ⓒfb.me/pts77

넘쳐나는 생활툰의 세계에서 별다른 대책 없이 외형적 인기만 끌어당기는 유형은 다들 이런 식이다. ‘청춘공감’, ‘남자/여자공감’ 전략으로 나가든, 독자층의 반대편에 서 있는 ‘개저씨’ ‘한남충’ 등을 별 고민 없이 대충 까는 방향으로 가든, 작가의 생각, 생활, 고유한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철저하게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들을 ‘그림만 붙여’ 내놓을 뿐이다.

물론 이런 “작품”들을 지나가다 보고서 “야 이거 완전 너네 ㅋㅋ” 태그하고 놀거나 “크 사이다~” 통쾌함을 느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만화들이 변변찮은 실력과 재능을 값싼 공감이나 거친 입장표명 등으로 숨기고 거품 같은 인기를 누리기 위해 매일 찍어내는 상품에 불과하다면, 난 그것들을 생활툰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건 애초에 카툰이 아니기 때문이다. 줄거리, 작품성, 우리의 삶에 끼치는 좋은 영향,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것, 사실은 뭐 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다시 고민과 개척이 필요하다

사실 생활툰이라는 장르의 양적 임계치 도달 상황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길게 설명하면 서로 피곤하니, 여기서는 ‘미날생’의 그 유명한 장면으로 갈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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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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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이게 비단 이 작가 한 명의 의견이 아니다. 들개이빨 역시 ‘먹는 존재’ 특별편 ‘썩는 존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 만화판의 ‘존잘’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 추세에, 깊어가는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인해 내린 결론이 다음과 같다고. ‘내가 굳이 그릴 필요가 있나? 내가 표현하려는 정서를 훨씬 더 잘 그려낼 사람이 최소 한명 이상은 있을 거 아냐.’

맞는 말이다. 사실 그건 생활툰이라서 더 도드라지는 특징일 뿐, 연재물 창작의 근본적인 해결 과제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지금은 우리가 생활툰으로 무엇을 더 그릴 수 있는지, 무엇을 더 읽고 싶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 ‘나만의 특이하고 웃긴 경험 몇 개’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만의 독특한 그림체와 유머 코드를 발굴해 내든지, ‘우리집 고양이 발이 정말 귀엽다! 젤리 젤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던 자도 주저앉게 하고, 죽은 자도 다시 살리는 묘족교의 기적’(탐묘인간) 같은 찰진 표현으로 바꿔 쓰기라도 해서 말이다.

물론 들개이빨은 아직 그만의 감성을, 생활툰은 아닌 장르를 통해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 말을 보고 한 번쯤은 고민해볼 만하다. 과연 이 많은 ‘자칭 일상툰’ 모두를 내가 굳이 읽어야 하고 공감해야만 하는지를. ‘다른 수많은 존잘’들에 비해 뭔가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그래서 이렇게나 범람하는 생활툰들 속에서 주목받을 자격이 있는 작품을 찾아 읽고 그리려면, 어떤 자세와 눈높이를 가져야 하는지를.

미쳐날뛰는 생활툰 1화 갈무리

이젠 누구도 김맥의 이 독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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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못하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그냥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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