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인습] ② 누군가 조국의 모습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기안대를 보게 하라

어딜 봐, 우리 얘긴데.

나의 대학 신입생 시절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상당히 진보적이라는 대학이었는데도 말이다. 다행스럽게, 뉴스와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정도와 강도의 사례들을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동기주를 먹인다든가, 남학생에게 여장을 시킨다든가 하는 등의 풍경들은 분명 존재했다. 나 역시 강제로 여장을 당한 일이 있고.

이런 학내 인습들을 차근차근, 그러나 기묘할 정도로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기안84의 네이버 수요웹툰 ‘복학왕’이 그것이다. 기안84는 기안대학교라는 가상 공간을 바탕으로, 익히 들었거나 보아서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대학 내의 악?폐습들을,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과장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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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명을 중심으로 각 등장인물의 개인적인 학교 생활 이야기를 큰 맥락이나 두서 없이 그려내는 복학왕은 특히 OT, MT, 축제 등 큼지막한 사건 속 악폐습에 관련한 에피소드에서 유난히 강렬하다. 그는 어떠한 가치 판단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런데 작가 특유의 화풍과 겹쳐 묘하게 ‘추한’ 학내 장면들을 보여준다.

여기서 만화보다 재밌는 것은 독자 의견란이다. 이게 현실 속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며, ‘인서울이 치인트라면 지잡대는 복학왕이 맞다’라며 수긍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누군가는 실제로도 저러냐며 겪어보지 못한 대학의 풍경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지잡대’를 다니며 느낀 점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리고 이 모든 감상과 의견 교환은 대체로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결론으로 모이는 것 같다. 저런 대학에 가게 되면 인생 망하니까, 알아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의 각종 악폐습 장면은 특정 층위의 것이 아니다.?이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해악’이다.

복학왕 독자의견 갈무리

정도와 종류의 차이가 있을 뿐, ‘학내 인습’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나 발견될 정도로 전방위적이다. ‘복학왕’ 축제 에피소드에 나오는 ‘VIP석은’ 강원 K대학교의 일이었다. OT에서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은? 정확히 서울 S대학에서 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선배님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XX학번 XXX입니다!”를 복창하는 ‘관등성명’은? 이름을 대면 알만한 체육대학의 일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지독한 전통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수련회’는 항상 무슨 이상한 유스호스텔까지 가야만 했고, 수련회 ‘조교’는 ‘선착순’ 몇 명만 통과시킨다며 군대식 기합을 줬다. 우리는 또 그걸 고분고분 따라했고. 그렇게 시스템이 가진 강압성과 부조리함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대학교에 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바다체험캠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바다체험캠프'

스무 살, 자유의 시기. 우리 보고 알아서 해 보라고 한다. 어디 보자,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더라?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숙련된 조교의 시범’으로 봐왔지 않던가. 열심히 따라하거나, ‘빠릿한 학번’이 되어서 더 굉장한 악폐습을 만들어 주거나.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는 낯선 사람과 교류하기 위해 필요한 공동체적 언어를 이딴 식으로 밖에 익히지 못하였다. 그러니 그럴 수 밖에.

단체라는 배경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단체에 속해있지 않으면 지독한 상실감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이러한 미친 짓거리는 계속해서 재생산될 것이 분명하다. 아, 혹시 아직도?이 모든 것이 ?‘일부’의' '수준없는' 특정한 곳'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오케이. 존중한다. 그렇다면 아무쪼록 더욱 열심히 '공부' 하시길. 그러면?알아서 피할 수 있겠지. 물론, 운이 좋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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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