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보이] ① “반발에 없던 일로” HOT 5

무려 ‘하루 만에’ 없던 일 된 것들도 많았다.

지난 22일, 야구장에서 생맥주를 판매하는 맥주보이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세청에 의해 없어질 뻔했다가 고작 사흘 만에 현행 그대로 유지하는 걸로 결정이 났다. 여기에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며 반발했던 야구계와 야구 팬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이는 인터넷과 SNS가 활발하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대중들의 반응이 훨씬 더 즉각적으로 시스템에 전달되는 현 시대의 새로운 풍경이다.

그런데 시스템이 이렇게 빠르게 반응하는 풍경이 결코 낯설지 않다. 지금부터 소개할 것들은 바로 그런 사례들을 모아 만든, ‘반발에 없던 일로’ 시리즈다. 찾아보니, 시스템이 뭔가를 하거나 하지 말자고 했다가 대중들의 빠르고 강한 반발에 부딪혀 취소된 사안들이 많았다. 제도와 그 변화의 부실함, 그리고 여기에 즉각 반응하는 대중들의 태도를 살펴보자.

 

5.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 담뱃값 인상도 모자라서?

2015년, 새해가 밝자마자 정부는 그 전년도에 무산됐던 주민세와 영업용 자동차세를 인상하는 방안을 재추진했었다. 명목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심각한 재정난을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주된 부분을 살펴보면, 자동차세는 3년 동안 단계적으로 50%, 75%, 100% 올리고, 주민세는 2년 동안 1~2만 원을 인상한다는 것이다.

과거 박근혜 소주 담배 서민 발언

이랬던 그녀가… ⓒjTBC 썰전

하지만 이러한 인상 계획은 그 해 1월부터 시행된 담뱃값 인상에 이어 또다른 서민 증세냐는 여야 정치권과 대중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1월 26일 이에 대해 발언을 한 지 딱 하루 만에 말이다. 서민 증세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부가세 인상 VS 법인세 인상 등의 구도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정부 부채 문제 역시 간단치 않은데, 단지 자동차세 50% 인상과 주민세 2만 원 인상으로 이 상황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엿보인 뉴스였다.

 

4. 강력범 병역 면제 ? 범죄자는 국민 아닌가요?

이번엔 병무청이다. 병무청은 지난 2013년 11월, 강도, 강간 등의 죄질이 나쁜 강력범을 대상으로 보충역 소집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강력범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민 가까이에 근무하는 것 자체를 막기 위한 방안이었는데, 오히려 강력범들의 병역 의무를 면제해줌으로써 형평성 측면에서 어긋나 큰 논란이 됐었다. 결국, 병무청은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지 하루 만에 이 방안을 보류한다며 한 발 물러났다.

교도소 다큐멘터리 3일

기회를 주지 않으면 변하지도 못하는 건 사실이다. ⓒKBS 다큐3일

여기서는 유달리 병역 문제에 민감한 국민 여론이 인터넷을 통해 큰 역할을 했다.?물론 이 문제를 마냥 없던 말인 셈쳐두고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다만, 강력범들이 각 복무 기관에서 무사히 복무를 끝마칠 수 있게끔 어떻게 계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을 단순히 사회에서 배제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 방식이 아니며, 그저 꼴 보기 싫으니까 한쪽 구석으로 치워두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은 모두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이치를, 제도가 부정했다가 면박을 들은 꼴이었다.

 

3. 건강보험료 개편 ? 네? 저희는 좋은데요?

이번에도 세금 얘기지만 아까와는 조금 다르다. 일부 여론만을 받아들여 정책을 철회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2014년말에서 2015년초,?세금에 관련한 문제들로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지만, 그 중 건강보험료 개선안에 대해서는 ‘왜 공약대로 이행 안 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 공약으로 내세웠던 개선안 내용은, 고소득자가 부담을 많이 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를 돌연 백지화하면서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2015년 브리핑

이분의 뜻인지, 다른 분의 뜻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SBS

이는 피부양자에게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등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었기에 그들의 눈치를 본 결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섣부른 판단만이 있고, 깊은 논의가 없었다”라는데, 핑계에 가깝게 들린다. 딱 봐도 상위 1~6%의 고소득자들에게만 세금이 더 부과되는 정책인데,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고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물리는 효과가 있는 건강보험료 개편안에 ‘반발’해서 ‘없던 일로’ 만든 것은 누구였을까? 음모론이라고 생각해 보기조차도 민망한 일이다.

 

2. 레진코믹스 접속차단 ? 성인이라서 성인물 보겠다는데…

KQL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클린사이트로 선정된 대표적 국내 유료 웹툰 사이트 레진코믹스. 이곳이 지난 2015년 3월 24일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법 유해 사이트로 분류되어 차단된 적이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레진코믹스 내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부 콘텐츠에 음란성이 강하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레진코믹스도 독자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레진은 정상적인 본인 성인인증절차를 거치고 있었으며, 내부적으로도 음란적 요소에 대한 자체 모자이크 등의 방법으로 적절히 조치하고 있었다.

레진코믹스 할인전 홍보 이미지

그래서인지 이 와중에 유쾌(?)한 우리의 레진. ⓒ레진코믹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경우에 따라 공공의 안전과 복리를 위해 긴급히 조치해야 할 때는 즉각 처리할 때가 있다고 해명했지만, 어쨌든 이는 절차적으로 아무런 과정이 없었던 대단히 부당한 처사였다. 웃지 못할 사태는 바로 다음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시정요구를 철회하며 일단락됐다. 끝나긴 했는데, 그 황당함은 아직도 가시지 않는 사례다.?다 큰 성인이 자신이 성인임을 인증하고 성인물을 보려 하는데, 그걸 막는다니. 이쯤 되면 높으신 그분들이 생각하기에 우리에게 자유란 없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 광역 버스 입석 금지 ? 타보시긴 하셨어요?

경기도 위성 도시, 혹은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빨간버스’를 타봤을 것이다. 서울에서 수도권 외곽으로 나갈 때, 전용차로를 달리는 광역 버스는 훌륭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그래서, 가뜩이나 많은 승객들이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자주 입석 만원 버스가 되곤 한다. 2014년 5월, 이 부분에서 위험성을 감지한 국토교통부가 광역버스 입석을 금지했었다. 그 전 달에 터진 세월호 사태 이후에 대중교통을 비롯한 여러 이동 수단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니 서둘러서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었다.

경기도 이층버스 8601

입석 타지 말라고 도입한 이층버스. 현재 수도권에 9대 돌아다닌다고 한다. 19대도 아니고 아홉 대. ⓒ경기도 공식블로그

그러나 이 역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채로 그저 위험하니까 하지 말자고 한, 대표적인 ‘무대책’ 사례다. 자주 오지 않는 광역 버스를 타 본 사람은 안다. 광역 버스 승객들은 위험하게 버스를 타는 게 아니라, 없는 버스에 어떻게든 탑승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입석 금지 규정은 이용객들의 반발로 하루 만에 시행이 중단됐다. 그러나 이후 재도입을 추진해 끝내 같은 해 7월 시행했는데, 실상은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입석으로 타는 이용객들이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0. 야구장 ‘맥주보이’?←NEW!

우리 속담에는 ‘눈 가리고 아웅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라는 말도 있다.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고 정확한 방향으로 움직여야지, 덮어놓고 무작정 금액 인상이니 전세버스 투입이니 일단 금지니 하는 식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조상님들의 지혜이다.

맥주보이 퇴출 반발에 없던 일로

ⓒ다음

그리고 오늘, 주요 뉴스 포털에서 ‘반발에 없던 일로’를 검색하면 야구장 ‘맥주보이’ 퇴출 취소에 관한 뉴스가 1페이지에 올라 있다. 아직 식지 않았을 뿐, 여전히 ‘이거 대체 뭐야?’라며 우리가 열을 냈던 사안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하긴 아직도 생각해 보면 괜히 욱한다. 야구장에서 ‘치맥’을 시켜먹을 수 없게 되면, 그 다음에는 한강공원이 금지될지 누가 아는가? 그 다음은? 어휴 생각도 하기 싫다.

한강공원 치맥 앞으로는 과연

과연…?

어쩌다 보니 이 모든 일이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지난 3, 4년 간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그동안 대체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길래 이 모든 일들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부지런히 반발해야 했던 걸까.?당연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기존의 제도에 하나하나 억지로 부딪힐 때마다,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범위가 강제로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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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