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축제, 누군가의 입장] ② 대학 행사 전문가들

대학 축제 무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B급 가수”의 입장.

이것은 사실에 근거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바야흐로 학교 축제 시즌이어서인지 타임라인이 떠들썩하더군요. “대학 축제를 점점 아이돌이나 유명인으로만 때우려는 것 같아서 별로다”, “라인업만 화려하지 너무 내실이 없다” 등등 말이죠. 그런데 마침 먼탐라 6주차를 준비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상당수의 대학 축제에서, ‘별로 안 유명한 래퍼’가 심심치 않게 1번 주자로 등장하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각종 행사, 특히 대학교 축제 공연에서 오히려 더 잘 나간다는 ‘대학 축제 전문’ 래퍼들이, 대학 축제에 대해 말한다면 어떨까??이제부터의 가상 인터뷰는 실제로 대학 축제 무대를 다니는, 혹은 예전에 많이 다녔던 다수 아티스트들에 대한 인터뷰를 취합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Tory"를 소개합니다.
여러 대학 축제를 7년째 두루 섭렵한 그의 입장에서, 대학 축제 무대를 한번 돌이켜 보시면 어떨까요.

 

"Tory"

“Tory”입니다.

Q

언제부터 축제 행사를 돌기 시작하셨나요?

A

아, 그게 아마도, 2012년? 2013년부터였을 거예요. 음반 내고 활동하는 건?2010년부터 해 왔는데, 축제나 행사에 맞춰 전문적으로 섭외를 맡아주는 대행사 쪽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저야 뭐, 회사가 대단히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인디 뮤지션이니까 직접?찾아왔던 거죠. 아마 가격이 싸게 먹히면서도 분위기도 어느 정도 띄워줄 수 있을 법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제가 그래도 막 큰 회사 끼고 있는 아이돌이나 유명 밴드는 아니다 보니까.

대략 이렇다고 한다. ⓒ0좋아요0

Q

분위기를 띄워줄 수 있을 법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시는 음악이 좀 그런 느낌이 있나 봐요?

A

아, 그렇죠. 일단 랩을 하고요. 요즘 트렌디한 스타일의 힙합을 추구하는 편이어서요. 대략은 아시겠지만, 힙합이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비트도 쎄고, 분위기가 신나는 편이 많으니까 행사하는 데에 딱 적합하거든요. 굳이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괜찮은? 그런 축에 속하죠. 그리고 저는 힙합 말고도 간단하게 메들리 식으로 EDM에 랩을 얹어서 할 줄도 알고 하니까요.

예전에는 유명 아이돌 그룹 노래 MR 위에다가 랩하기도 하고, 댄스곡에 춤까지도 추고 그랬는데, 요즘은 “연결고리”가 유명해지니까 트랩이 대세거든요? 트랩은 막 아무 생각 없이 듣기에도 좋으니까 축제 돌 때 안성맞춤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연세대다 그러면, 두 글자씩 끊어서 ‘연세, 대학, 최고, 멋져, 워!’하면 좀 촌스러워도 친구들이 좋아해요. 무슨 뭐, 심오한 메시지 어쩌고저쩌고 할 필요도 없고…

일리네어 레코즈 연결고리

축제! 와의! 연결! 고리! 워! ⓒ일리네어 레코즈

Q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니,?본인만의 축제 세트리스트 같은 게 있으실 것 같은데요?

A

아, 그럼요. 그런 거 없으면 행사 시즌에 못 버텨요. 매번 다른 세트 들고 가서 하기가 어렵거든요. 살짝 알려드리자면, 요즘은 처음에 제일 잘 나가는 아이돌 그룹 노래 중 힙합스러운 곡 위에다가 방방 뛸 수 있는 랩을 뱉으면서 시작하고요. 그러고 나서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목은 몰라도?한 번쯤?들어봤을 법한 곡 위에 적당히 후크 만들어서 외치고, 제 랩 하고 그래요. 스크릴렉스라든가 캘빈 해리스, 데이비드 게타 같은.

마지막에 제 홍보 잠깐 하죠. 제 이름이 뭐고, 음반 냈고 어쩌고저쩌고… 제 노래 중에 제일 축제랑 좀 맞을 법한 노래가 “난 놈이네”거든요? 그게 거의 노래 내내 라임이 다 “난 놈이네~”로만 끝나요. 그러니깐 사람들도 따라 하기 어렵지 않고요. 물론, 제가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이 같이 따라 해주셔야 더 신나는 노래에요. 같이 해주실 거죠?” 이런 멘트 치면서 나름의 훈련? (웃음) 같은 걸 시켜요. 그러고 나서 제 노래 시작하면 진짜 다 신나서 따라오거든요. 그때만큼은 인기 가수 부럽지 않습니다.

Q

혹시 본인만의 대학 축제 무대 노하우가 있다면?

A

대학 축제 같은 경우에는 멘트 칠 때 평범하게만 치면 좀 재미없어해요. 그래서 그 대학 공식 사이트나 대나무숲도 들어가 보고, 그날 누가 나오나 사전에 체크도 하고 그래요. 분위기 익히려고 당일날 좀 미리 가기도 하고요. 그러면 뭐라도 하나 걸리거든요. 그럼 그걸 멘트 칠 때 자연스럽게 섞어서 쓰는 거죠.

예를 들면, 고려대학교 다니는 친구 중에는 안암 사는 친구들이 많단 말이에요. 그 친구들을 보통 ‘안아머’라고 부르거든요. 그런 거라도 좀 섞어가면서 말하는 거죠. 이게 생각보다 빵빵 터져요. 처음 보는 래퍼가 학교 사정을 알려고?하는 게 보이거든요. 귀엽달까 대견하달까. 그래서 그런 체크는 꼭 해요.

Q

이번?본교?대동제?중앙무대에서?몇?번째에?서는지?알고?계신가요?

A

네. 여기서도 제가 오프너 하던데요. 맨 첫번째.

Q

여기서도요? 축제 공연 순서로?원래부터 첫?번째를?많이 들어가셨나 봐요?

A

거의 보통이 첫 번째, 아니면 인기 가수 직전에 들어가요. 되게 명확하죠? 아예 처음 나와서?파티?분위기를?만들어주거나,?메인?이벤터?분들 나오기 전에 불판 달궈 놓는 거죠.?이게?목적이?확실한?건데,?가끔 보면 인기 가수 분들 무대 하실 때보다 제 무대 때가 더 호응 클 때도 있어요.

"Tory"

“Tory”입니다.

Q

그런 경우도 있군요? 보통 어떤 때 많이 발생하나요?

A

음… 이건 좀 민감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사실 행사를 많이 다니시는 걸그룹 분들 같은 경우에는 정말 바빠서 별다른 멘트도 안 하고 정해진 대로 딱 세 곡 하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순서 직전이나 좀 늦어서 딱 공연하고, 바로 밴 다시 타서 다른 행사 장소로 가야 하고 이런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그러면 이제 사람들도 “와~ 누구다!”하면서 몰려왔다가 쓸려나가요.

이런 게 있어요. 유명한 분들이 왔다고 할?때는?처음엔?함성이 커져요. 그런데?막상 무대 시작하면 그냥 짜여진 대로 히트곡들?쭉 하고 가니까 생각보다 별로 흥이 안 나는 거죠. 그리고 평소에 들을 때는 좋다 싶어도 축제 무대에서는 안 먹히는 노래들이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음악이 뛰어놀기 좋다든가, 섹시한 퍼포먼스가 특별히 있다든가 하지 않으면, 오히려 축제 분위기가 좀 가라앉을 때도 있어요.

Q

특히, 아이돌이 온다든가 하면 축제가 있는 그 대학의 학생보다 외부인들이 더 많이 오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어요.

A

네, 맞아요. 저도 제 무대 끝나고서 다음 순서 무대를 가끔 볼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제 순서 때부터 슬슬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요. 그러다가 그분들이 등장하면 엄청 몰려들죠. 거의 뭐, 앞에 관객분들 압사당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아질 때도 있는데, 보면 딱 봐도 여기저기 공방부터 각종 축제 등등 많이 다녀본 듯한 분들이 곳곳에 보여요.

제 기억에 아마 지방 쪽으로 가면 갈수록 아무래도 그런 분들을 보기 어려우니까 더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때는 교복 입은 중학생, 고등학생 친구들이 플랜 카드 같은 거 들고 오기도 하고요.?그렇게 되면 그 순간의 분위기는 어떨지 몰라도,?과연?이게 이 대학 축제인가, 아니면 그냥 연예인 초청 행사인가 싶기도 해요.

걸스데이 행사 시절

열심히들 산다. ⓒdatanews

Q

대학?축제?‘오프너’ 공연을 다니면서 인상적이었던 일화가 있다면?

A

음,?가끔, 행사 진행하는 친구들이 발만 동동 구르다가 저한테 혹시 조금만 더 길게 해주실 수 없느냐고 해요. 제 바로 다음 순서인 걸그룹 분들이 늦는다는 거죠. 정말 간절해 보여서 멘트를 길게 친다든가, 한 곡 정도 더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한두 번 도와준 적이?있어요.?그게 근데 5분, 10분 딜레이 되는 거면 모르겠는데, 막 30분, 40분이다 그러면 솔직히 그건 (도와드리기) 어렵다고 해요.

이게?돈 받고 일하는 거라서?그런?것도?있는데,?오프너가?너무?길면 분위기가?죽거든요. 제가 “여러분 좀만 더 기다려줄 수 있죠~?” 하면서 붙잡아놀 순 있어요. 그런데 그랬다가 늦게 오신 분들이?딱 15분 공연하고?가?버리면,?되레?분위기가 더 김이 샐?수 있어요. 솔직히 이건 기획사 탓이지 학생회 분들 탓은 아닌데, 분위기를 일부러 그렇게 죽일?건 없잖아요. (그럴 땐) 차라리 진행본부가 막간?게임을 한다든가 해서 시간을 버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섭외한 연예인들한테 의존하는 것보다는.

Q

그런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보니,?개인적으로는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드실 거 같아요.

A

저 자신만 생각했을 땐 페이(pay)나 그런 것에 회의감은 별로 없어요.?어쨌든?냉정하게?말해서?전?무명 프리랜서고,?그분들은 인기 있는 분들이니까요.?근데?이게 대학?축제잖아요.?그런?점에서는?좀?그래요.?저는 제가 분명히?준비도 더 많이 하고, 대학 축제에?경험도 있고?열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다들 돈 많이 쏟아 부으면서 축제 꾸미시는 건데, 그냥 연예인 초청 행사처럼 되어서 다른 거 하나도 없고 ‘누구누구?온다더라’만 남고,?외부인만 그득그득 있고 그러면 아깝잖아요.

저도 대학교를 졸업했고, 대학 축제를 많이 경험해 봤지만, 매번 할 때마다 속으로 그런 생각 많이 했거든요. “아, 이게 정말로 대학교의 축제가 맞나?”?제가?싸이(Psy)?급으로?잘?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딴엔 항상 맞춤형으로 준비하려 한단 말이에요. 근데 인기 있다고 덮어놓고 유명한 연예인 분들만?찾는?거는,?TV 음악방송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요. 정작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은 그 자리에 없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고.

그래서 저한테도 일 많이 던져주실 겸, (웃음) 축제의 의미도 되살릴 겸 괜히 돈만 많이 쓰지 마시고 우리 축제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무대를 꾸며줄 분들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고 다들 더 멋지게 준비하시고,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불러 주시기만 하면 어디든 달려갈 테니까요. (웃음)

Q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끝으로 토리 씨를 곧 만나게 될 본교 재학생들에게 한 말씀 남기신다면?

A

네. 안녕하세요, 토리라고 합니다. 아마 무대에 올라와도 아는 분들이 거의 없을 거예요. 이 인터뷰를 보셔도 ‘누구야?’ 하실 거고요. 그래도 제 15분짜리 짤막한 무대 보고 나시면 제 이름이 은근 기억에 남을 수도 있어요. 축제 맞춰서 분위기 띄우는 건 나름 도가 텄거든요. (웃음)

그러니 다른 인기 있는 분들 순서만 너무 기다리지 마시고, 제 순서 때도 같이 열심히 놀아주세요. 그래야 저도 덜 뻘쭘하고 (웃음) 여러분도 좋잖아요? 대학생 분들 축제가 연예인들 공연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본인들이 주인이 되어서 신나게 노는 그런 자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드릴 테니까요. 곧 무대에서 뵐게요! Yes Yes!

"Tory"

“Tor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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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