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 좋아요] ③ ‘그 작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어쩌면 상영 일정이 문제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로 보고 싶었다

나는 양병간 감독의 “무서운 집”을 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다.

농담이 아니다. 일단 보고 싶었다는 얘기부터 진심이다. 여러분이 그랬듯 나도 시시껄렁한 뉴스를 쏟아내는 한 사이트를 통해 예고편을 봤고, 일단 어이가 없어지긴 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뭔가가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홈 비디오와 상업영화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있어 보였고, 내용적으로도 뭔가 속뜻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났다. 요컨대, 그게 진짜인지 어떤지 직접 확인하러 가고 싶었다.

물론 이런 영화 하나쯤 “구해서 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기왕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마당에는, 시간을 내어 어딘가의 상영관에 차분하게 앉아 찬찬히 지켜보고 싶었다. 영어 표현에 “한 번의 시도를 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딱 그런 차원이다.

그런데 왜 정작 상영 당시에는 안 봤느냐고? 못 봤다. 하필 그 시절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별로 많지도 않은 상영 일정에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 속속 올라오던 “무서운 집 감상 소감”들을 애써 외면했다. 그걸 보면, 상영 시기를 놓쳐 버린 나에게 괜히 화가 날 거 같아서. 그리고 이제 “무서운 집”은 네이버 영화 등에서 몇천 원을 주고 내려받는 식으로밖에 볼 수 없게 됐다.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는데...

 

이런 영화들 하나쯤은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시기를 놓쳐서 못 본 영화들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주님의 학교”라든가,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라든가.

‘주님의 학교’는 다큐멘터리다. 어린이대공원역 옆의 한 대학교에서 몇 년간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정말 ‘인디 돋게’ 찍어 재구성한 영화인데, 보통 다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박진감과 현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원래는 좋아하던 아티스트가 참여했다고 해서 우연히 알게 됐는데, 예고편을 보고 정보를 찾아볼수록 흥미가 생겼다. 좋아, 이제 이걸 극장에 가서 봐야겠군,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아뿔싸. 극장 상영은 애저녁에 끝나 있었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사춘기 청춘들이 얼키고설키는 성장물이고, 대단히 ‘일반적' 이면서 덜 오타쿠스러워 보이는 영화다. 하지만 이 바닥에서는, 겉보기에 오덕스럽지 않은 작품이 더 강력한 “덕질 화력”을 과시할 때가 왕왕 있다. (예컨대 “아노하나”가 그랬다.) 그래서 나 역시 “야 이건 한 번 극장에서 봐 둬야겠는데” 생각했고, 이번에도 역시나 상영 일정에 맞출 수 없는 삶을 살다가 어영부영 때를 놓치고 말았다.

이것들을 나는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명작영화 재개봉이라는 트렌드가 반갑다.?그때 못 본 거 다시 볼 수 있으니까. 언젠가 이 영화들도 재개봉이라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지. 그러면?시간을 내어 어딘가의 상영관에 차분하게 앉아 찬찬히,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혹자는 작년 말 전까지만 해도 깜짝 이벤트에 불과하던 재개봉에 대해 음모론과 시장 분석 사이의 어딘가에 걸쳐 있는 ‘썰’을 풀기도 한다. 어차피 스크린이라는 시장은 포화 상태이고, 상품 경쟁력을 갖는 상영 일정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과거에 히트했던 달달하고 추억 돋는 로맨스 작품들을 “다양성 추구”니 “관객을 위한 결정”이니 적당히 구실 갖다 붙여서 틀어놓기만 하면, 망한 최신 영화 열 번 트는 것보다 더 반응도 좋고 표도 잘 나가는, 모두의 이해 관계가 합치하는 계산이 된다 등등.

그럼에도 그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

아주 허튼소리는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 재개봉이 결정된, 혹은 재개봉할 예정으로 알려진 영화들이 대체로 고전 명작 로맨스인 걸 보면. 하지만 단지 그뿐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딱히 로맨스는 아니지만 모두가 극장에서 한 번 (더) 보고 싶어하던 다양한 고전 명작들이, 심심찮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세대는 오직 케이블 TV로만 보았을 뿐 한 번도 극장에서 본 적은 없었던 “벤허” 같은 대작이 그렇다.

아조씨가 어릴때는 말이야, 이 말들이 어마했거든! ⓒ영화 '벤허'

아조씨가 어릴때는 말이야, 이 말들이 어마했거든! ⓒ영화 '벤허'

모든 영화는 그것이 영화인 이상 한 번쯤은 극장에서 개봉될 권리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 개봉관의 수는 한정돼 있기에, 지금의 스크린은 “잘 될 것 같은 영화는 많이, 별로일 것 같은 영화는 조금” 배치한다는 간단한 경제 원리대로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크게 알아주지 않지만 나름의 재미와 의미가 있어 보이는 작품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대로 유배되어, 잠재 관객을 만나지 못하는 일이 그동안 너무 많았다.

이런 영화들에게 2차 시도의 기회를 준다는 것,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 영화를 안타깝게 놓쳤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영화라면, 재개봉 때 의외의 히트를 기록하며 화제가 될지 누가 아는가. 나는 그래서 재개봉의 행렬이 좀더 일상적으로, 체계를 잡아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이건 농담인데, 그러다 보면 어느 날인가는, “디 워”나 “클레멘타인” 같은 영화도 재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클레멘타인 포스터

상영관 대여해서 틀면 보러 오실 분 구합니다 (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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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