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켈렐레가 나간 레알 마드리드는 왜 망했을까?

“그의 테크닉은 평균 이하이며, 그는 발도 느리고, 스피드도 없다”

슛도, 화려한 세레모니도 없지만

스페인의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가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팀이던 시절이 있었다. 갈락티코(은하수)라는 정책 아래, 몸값만 수백억에 달하는 지단, 피구, 라울, 베컴과 같은 톱클래스 선수들을 영입해 나갔다. 그 결과, 축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로 화려한 팀이 완성된다. 외계인 축구팀에 맞서 지구를 구할 축구팀이라는 뜻에서 ‘지구 방위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이때 위닝일레븐을 하면 암묵적으로 레알을 고르지 않는것이 매너였다

이때 위닝일레븐을 하면 암묵적으로 레알을 고르지 않는것이 매너였다

마블의 히어로들을 연상케 하는 최고의 선수들 틈에 콩고 태생의 선수 마켈렐레가 있었다. 그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화려한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를 오가며 둘 사이의 공을 전달해주는 이음새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유명하지 않고 플레이가 화려하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선수들보다 한참 적은 주급을 받고 있었다. 2003년 여름, 마켈렐레는 구단에 주급 인상을 요구했지만, 페레즈 회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는 결코 마켈렐레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테크닉은 평균 이하이며, 그는 발도 느리고, 스피드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90%는 뒤로 빠지거나 밖으로 새는 공을 잡는 것뿐이다."

단순한 플레이만 하던 마켈렐레가 떠난 후, 지구 방위대 레알 마드리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말 그대로 ‘붕괴’되었다. ?프리메라 리가 우승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를 이뤘던 팀의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페레즈 회장은 그의 플레이 90%가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다며 욕했지만, 실은 그 단순함이 화려한 팀플레이를 지탱하던 근간이었던 것이다.

 

시스템은 하나의 역할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단순한 역할'로 취급 받으며 마켈렐레에게 퍼부어진 부당한 악담과 처우는, 축구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프렌차이즈 피자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일을 하고 있는 경비원을 폭행했고,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은 여름이면 비지땀을 흘리고도 편히 씻을 샤워실이나 잠깐 쉴 수 있는 휴게실조차 여전히 갖지 못한다.

대학노동자

전문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 노무직의 임금이 낮게 형성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휴식 권리조차 박탈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매일 평균 10시간 이상 서서 일하는 백화점 직원들이 30분간 다리를 펴고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전날 소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쇄되는 일은 온당한가? 이러한?불이익이 대법관,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에게도 과연 공평하게 적용될 것인가?

캡처111이 사회는 어떤 직업의 시간당 임금, 명예, 권력을 통해 곧 그 사람 자체를 판단하고 낙인 하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경비원을 폭행한 회장과 골프 캐디를 성희롱하는 고위 공무원의 행태는, 개인의 끔찍한 부도덕성 때문에 일어난 일이 맞지만, 애초에 그들의 군림을 가능케 한 것은 ‘사회의 왜곡된 직업 인식’이기도 하다.

직업이, 곧 그 사람의 가치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결정하는 걸까? 직업은 역할의 차이일 뿐, 가치의 차별일 수 없다. 판사의 판결, 변호사의 변호, 기자의 취재 같은 소위 ‘화려한 일’만큼이나 환경 미화원의 청소, 경비원의 순찰, 농부의 농사, 공장 노동자의 제품 조립과 같은 '단순한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 AE가 프레젠테이션 하는 신제품은, 결국 공장 생산라인 노동자의 조립 과정을 거쳐야만 출시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을 자꾸 해야하는 시대.

당연한 말을 자꾸 해야하는 시대.

화려함을 지탱하는 가장 강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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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레알 마드리드를 떠난 마켈렐레는 무리뉴의 첼시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시즌 EPL 역대 최소실점의 기록(15실점)의 주역이 된다. 기네스북에 올라간 이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마켈렐레는 어느 루트로 오는지에 관계없이 중원 전체를 활동량과 집요함으로 공격을 사전에 차단해버렸다. 이후 본인이 전진패스를 하지 않고 최대한 안전한 패스로 공격력이 뛰어난 램파드나 아니면 왕성한 활동량의 에시엔에게 볼을 줌으로써 공격의 시발점이 되었다.

볼을 탈취하여 팀의 볼 점유율을 늘림과 동시에 가장 빌드업을 잘 풀어나갈 선수에게 안전하게 패스함으로 볼점유율을 빼앗길 확률을 최대한 낮춰 궁극적으로는 팀의 볼 점유율의 상승을 유도하면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축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 나무위키, '클로드 마켈렐레' 항목 中

참고로, 마켈렐레의 이적 당시, 지단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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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벤틀리의 엔진을 잃어버리면서, 금색 페인트로 겉치장만 하려 하는가?”

언제나 '화려한 플레이', ‘멋진 골’만을 갈망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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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훈

김다훈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