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랏! 의정부고!!] ② 그들만의 가장 확실한 연말결산

이 학교 졸업앨범을 사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이유.

윤두준 졸업사진

웃지 마라. 졸업 앨범 들춰서 당신을 찾는 수가 있다.

 

웬 고등학교 졸업 앨범 하나가 이렇게 특별해지는 이유

시험공부가 안 될 때, 이사 갈 때, 동창이 집에 놀러 왔을 때 우린 졸업 앨범을 들춰본다. 그리고는 추억에 잠긴다. 얘는 어땠고, 또 얘는 어땠으며, 난 그때 어떤 애를 좋아했었고 등등을 되뇐다. 그것들이 이미 다 아는 사실임에도 매번 볼 때마다 끊임없이 의미를 갖는 건, 어쨌든 그 앨범 속 사진들이 과거의 ‘나’와 그 시절을 공유했던 주변의 친구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의정부고 졸업사진 쏘우

(졸업사진 찍기) 게임을 시작하지…

그런데 2010년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국민적(?) 행사처럼 자리잡은 의정부고의 졸업 사진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졸업 사진이 우리 자신의 그 시절을 상기하고, 연상시키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의정부고의 것은 지금의 10대 후반, 20대 초반 세대의 공감대와 취향을 보여주고, 지난 1년간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았던 무언가를 눈앞에 재현해낸다. 그래서 그것은?자신들을 기록하는 그들만의 방식임과 동시에, 만인이 즐기는 대중문화를 모아놓은 진정한 연말결산이기도 하다.

 

올해는 무엇이었습니까? 함 보여주쎄요!

400~500여 명의 열아홉 살 남정네의 이 획기적인 짓(?)은 최근 트렌드를 그야말로 물화하고 시각화한다. 그것은 사람이기도, 동물이기도, 심지어 사물이기도 하다. 백종원? 웃는 자기 얼굴에 프라이팬과 설탕을 더하면 된다. 알파카? 다리 두 개를 더한 새하얀 복장으로 운동장을 뛰어다니면 그만이다. 초록 타이즈로 그들이 사 마실 수 없는 ‘순하리 처음처럼’이 되거나 에어 조던(Air Jordan)의 마크를 따라하는 건, 이제 대수롭지도 않을 지경이다.

이러한 트렌드의 재현이 문헌정보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명백하다. 현재 시점에서는 시간이 조금 지나 잊힌 것을 떠올리게끔 해 주지만, 이후 먼 훗날에는 당시 우리 삶에서 어떤 것이 가장 인상 깊었었는가를 보여주는 증빙 자료가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다소 생략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의정부고 졸업 사진은 분야를 막론하고 ‘짤방’적인 요소들을 아무 제한 없이 자신의 의지를 반영해 현실에 옮겨다 놓은 것으로 훗날에 참고될 것이다.

의정부고 졸업사진 수학의정석

정성이 갸륵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인터넷과 SNS가 이전보다도 더 활성화된 2010년대의 오늘날, 대중문화는 어떤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학습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맥락을 어렴풋이만 알고 있더라도 곧바로 이해되는 강렬하고 단편적인 이미지로 각인된다. ‘짤방’은 그런 랜선상의 문화를 상징하는 요소다. 그리고 의정부고 졸업사진들 한 장 한 장은, 그들의 시대를 풍미했던 ‘짤방’들, 즉 단편적이나마 강렬했던 문화적 공통 경험의 정확한 재현이 되고 있다.

그래서 의정부고 졸업사진 촬영 행사는 ‘상반기 결산 코스프레 대잔치’ 이상이다.?이것은 차라리, 우리 세대의 머릿속에 무엇이 강력하게 각인돼 있는지를 조각조각 확인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예컨대?그들은 갓 나온 영화나 FPS 게임의 주인공으로 분(扮)하기도 하지만, 윤봉길 의사 같은 위인, 곰돌이 푸나 마지 심슨 같은 유명 만화 캐릭터, 혹은 진작에 ‘옛날 사람’이 된 서태지 역시 묘사의 대상으로 삼는다.?그들의 졸업 사진에 ‘피카츄’는 나오지만 ‘아구몬’은 등장하지 않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랜선으로 하나되는 우리 모두의 축제

물론 일개 고등학교의 졸업 사진들에 ‘가장 훌륭한 연말결산’이니 ‘새로운 문화’니 하는 딱지를 붙여 가며 거창한 부차적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는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불허전이었다고는 하지만, 왜 올해에 하필 그들이 ‘개비스콘’ CF 캐릭터 같은 것들을 골라 따라했는지는 사실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의정부고 졸업 사진이란 콘텐츠 그 자체만으로 재미있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닌, 대규모 해프닝일 뿐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T24 소셜 페스티벌

왜 옛날에 이런 것도 있었지 않던가 ⓒ노컷뉴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의정부고 졸업사진은, 이제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층으로 접어들게 될 그들이 무엇까지를 알아보고 즐기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참고자료로 기능한다. 여기엔 창의력의 폭발과 진심어린 열정만이 있고, 성역이나 필터링, 사회 권력의 개입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책에서 “와이파이 신호”와 “빠빠빠” 시절의 크레용팝(Crayon Pop), 가문 논에 물을 뿌리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을 동시에 보겠는가? 오직 의정부고 졸업 앨범에서만 가능하다.

적지 않은 ‘연말결산’이 역사적 의미, 공정성, 당위성, 체면이니 권위 따위의 것들 때문에 실제 사람들의 취향 혹 성향을 적극적으로 내비치지 못하고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이 고등학교의 졸업 앨범 사진 촬영은 우리 모두가 각자 1년간의 삶 속에서 보고 느끼고 즐겼던 것을 가감 없이 고스란히 되돌아보며?즐길 수 있는 일종의 대규모 ‘랜선 연례행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즐겨라. 어딜 가도 이 순수함에서 나오는 자유로움은 느낄 수 없을 테니.

의정부고 졸업앨범 구매 수요

그러니까 내 말은… 셧업 앤 택 마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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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