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신청 백년전쟁] ② ‘참전’하지 않는 사람들

20대의 누군가는 ‘그런 수강신청’을 하지 않습니다.

그걸 휴대폰으로 하고 다시 잤다고???

어느 토요일, ‘8월 먼탐라팀’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전 멤버 회의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모여 8월 먼데이스타임라인 구성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이때가 마침 수강신청 기간인데 그거 가지고 뭐 해 보죠”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구성도 금방 나왔다. 1번은 아주 쉽고 재미있게 수강신청하는 사람들 유형을 다루고, 2번은 ‘장바구니’며 ‘마일리지 제도’ 같은 걸 도입하는 희한한 수강신청 방법들을 다루고, 3번은 수강신청에 그다지 목매달지 않아도 되는 몇몇 학과 학생들 얘기를 다뤄 보자고. ‘와꾸’도 나오겠다, 얘기도 재밌겠다, 그냥 “콜”했다. 뭘 채워넣을지는 주중에 맞춰 보기로 하고 자리를 파했다.

그런데 잠시 후 3번을 맡기로 한 에디터 P가 나를 긴히 부른다. 웬일이지?

P

어 근데 어진 선배님 제가 지금 생각을 좀 해봤는데… 저 진짜 수강신청 할 얘기가 없어서요…

읭? 왜 할 얘기가 없어? 어떤 사람들은 딱히 수강신청을 전쟁처럼 하지 않는다, 그 얘기면 되는 건데?

P

그니까요 그게 문제라니까요. 저 저번 수강신청 때는 그냥 자다 일어나서 폰으로 올킬하고 다시 잤단 말이에요. 진짜 그게 다였어서…

뭐??? (진심으로 놀람) 수강신청이 휴대폰으로 돼???

P

(놀란 모습에 놀람) 네… 뭐 되기는 되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

20대의 누군가는 이렇게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혹시 당신이 나처럼 P의 무심한 한 마디에 굉장히 놀랐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시라. 아직 당신에게는 수강신청 대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이 한창 더 남아 있으니까.

 

‘수강신청 대란’이 성립하지 않을 조건

P의 얘기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P네 학교도 수강신청 서버가 열리기는 오전 10시에 열린다. 그런데 전날 늦게까지 알바를 하고 돌아온 P는 다음 날이 수강신청 당일이건 말건 기숙사에 돌아와 곤히 꿀잠을 잤더란다. 룸메가 P를 깨운 것은 9시 50분이었고, 일어나 보니 P 본인보다 P를 깨우는 룸메가 더 당황해 있더란다.

룸메

P야 수강신청 안 해? 너 오늘이라지 않았어? 지금 10시 10분 전이야!

P

(비몽사몽) 응? 아니 뭐… 괜찮아… (이불을 머리 위로 올린다)

룸메

(기막혀하며) 에라 몰라 난 너 분명히 깨웠어! 나중에 내 탓 하지 마라?

P

어? 어 그래… 고마워… 음냐.

그렇게 다시 몇십 분 정도 꿀잠을 더 자다가, 10시 반이 좀 넘자 슬슬 머리가 깨어나더란다. 그때 했던 생각은, ‘그래도 생각날 때 해 두는 게 좋겠지?’였다고. 듣다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생각났을 때 해둬야지 하고서 한 게 수강신청이야? 무슨 신발 깔창 사 온 얘기 같다?” 내 질문이 더 어이가 없다는 듯이 P가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얘기를 끝까지 들어 봐요.”

그래서 대략 15분 정도 딴짓을 하다가, 휴대폰 인터넷 주소창에 학사 시스템 주소를 쳐서 수강신청 서버에 들어갔다고 한다. 빵빵하게 터지고 있는 와이파이로 접속해 봐도 느리긴 느렸지만, 마음은 여유롭다. 클릭, 신청, 클릭, 신청. 완료됐습니다. 아 이제 다시 자야지. 하고 다시 잤단다. 그 흔한 서버시계 프로그램 창도, 시간표 플랜 B와 C가 적힌 메모장도, 과목번호 입력하는 매크로 프로그램도 없이, 폰 하나로 한 학기 전체 세팅이 다 끝난 것이다.

네이비즘

이것도 없이 올킬이라니… ⓒ트위터 ‘zoo030730’

그리고 이어진 문답에서, 이 어이없음은 일말의 단서를 찾게 된다.

네이비즘도 안 썼다고?

P

네. 그게 뭔지는 아는데 딱히 쓸 일이 없죠. 저는 솔직히 이 교수냐 저 교수냐 고르는 것밖에 딱히 할 게 없었으니까.

무슨 얘기야?

P

왜냐면 이번에 들어야 되는 게 하나는 정치 쪽 교양과목이었거든요. 근데 ‘정치 사상’이라는 게 있고, ‘정치 윤리’라는 게 있는 거예요. 솔직히 이건 어느 쪽 들어도 별로 차이가 없을 거잖아요. 강의계획서도 보진 않았지만 뭐 서로 비슷할 거 뻔하고. 그래서 그냥 아무거나 골랐어요. 뭐였더라? 기억도 안 나네.

다른 하나는?

P

그거는 뭐냐면 전공 쪽인데, 강의명이나 강의하는 내용은 다 똑같고 교수님만 달라요. 그래서 아 누구 꺼 듣지~ 하다가 교수님 이름이 더 마음에 드는 쪽으로 골랐어요.

그래도 돼?

P

네. 어차피 저희 학교가 애들끼리는 ‘직업교육 학원’이라고 부르는 그런 데라서요. 진짜 딱 2학년 되자마자 바로 커리큘럼이 딱 고정되더라고요. 딱히 뭐 더 할 것도 없고, 그냥 들으면 되는?

중학교 시간표

이런 느낌으로. ⓒ오마이뉴스

 

‘전쟁’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조금 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학과 특성상 전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이걸 듣든 저걸 듣든 큰 차이가 없는 과목들이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어차피 배워야 할 것이 정해져 있는 학과들은 아마 다들 그럴 거라면서, P는 한 마디 덧붙였다.

P

아마 공대 쪽도 그럴걸요? 저도 잘은 모르는데 걔네들은 수강신청 때마다 막 서버 터지고 하는 거 별로 공감 못 한다고 들었어요. 그냥 이번 학기 뭐 들어야 한다 하는 게 딱 정해져 있다고.

설마 싶어서 주변 공대생들에게 수소문해 물어봤다. 아뿔싸, P의 말이 어느 정도 맞았다. 최근 신설된 융복합 전공을 하는 사람들은 약간 ‘케바케’였지만, 화공, 기계 등 배우는 내용이 뻔히 정해져 있고 커리큘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공대 쪽 지인들은 역시나 “수강신청 서바이벌”에 대해 딱히 별 생각 없다는 듯 시큰둥했다.

학교 사물함 위 책들

공대생1

듣고 보니 그러네. 수강신청 전쟁이라는 걸 1학년 때 교양 과목 들으면서 딱 한 번인가 해 봤고, 한동안 맨날 ‘올킬’하다가 지난 학기에 복수전공 하기로 결심해서 경영학 쪽을 신청해 봤거든. 와 거기는 확실히 순식간에 튕기더라.

공대생2

저희는 수강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 건 뭐 TO 모자랄 일이 거의 없던 듯? 솔직히 수업을 듣는 게 문제가 아니고 학점이 나오는 게 문젠데, 랩(lab)에서 밤 새고 수백 번 실험하고 해도 결과 안 나오고 이게 더 공감이지, 수강신청 튕기는 거는 글쎄 그냥 뭐 그러네요. 그럴 수도 있는 거고.

문득 나의 수강신청이 어땠던가도 생각해 봤다. 마지막 학기 수업 신청을 할 때는 심지어 원래보다 하루 늦게 신청했었다. 어차피 들을 과목의 수가 두어 개밖에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쪼렙 저학년들과 강의실 앞자리를 놓고 다툴 일이 없는 4학년 대상 심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슬슬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다. 어쩌면 수강신청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공감대가 적은 이야기가 아닐까?

 

그 ‘백년전쟁’은 혹시 과장되어 있지는 않은지

각종 매체와 ‘뉴 미디어’ 그리고 20대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수강신청은 ‘대란’으로 묘사된다. 오전 10시만 되면 모두가 새로고침을 누르며 서버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전산실은 ‘다운’이 되고, 학교 서버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라면 ‘올킬’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컴퓨터 실습실에 모여 앉아 있던 학생들은 저마다 탄식과 환희를 오락가락 내뱉는 것이다. 이 아수라장에 대한 나와 우리의 인상은 그간 크게 변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1976년 서울대 새학기 수강신청 모습

70년대에는 정말로 전쟁 같았단다. OMR카드를 들고 강당에 줄을 서서 신청했다고. ⓒ네이버 블로그 s5we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거짓은 아닐지언정, 지나치게 일반화되고 과장된 장면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컨대,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마우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경험은 그리 많은 사람들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같은 전공이지만 더 인기 있는 과목이 있고, 어떻게 들으라고 정해 주는 커리큘럼이 없고, 그래서 누구의 어느 수업을 듣느냐에 따라 본인 전공의 내실이 크게 좌우되는 전공의 소유자들만이 ‘수강신청 전쟁’에 열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전공은 아무래도 인문학이나 경제경영, 사회과학 분과 학생들일 가능성이 높고, 그들은 ‘문송’한 사람들이 되어 잉여 인력으로 떠돌다가, 전공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는 자신들의 회한을 담아 20대의 이야기를 하는 매체 산업에 뛰어들게 되고, 이것이 수강신청에 대한 악의적이고 대표성 낮은 관점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되어 사회에 확산된 결과, 우리는 장기화된 청년 실업의 최전선에서…

치즈인더트랩 수강신청

P

…배, 선배, 선배!

어? 어 P구나. 왜? 불렀어?

P

무슨 생각을 아까부터 그렇게 골똘하게 하세요? 혹시 제가 맡기로 했던 부분 때문에 그러세요? 정 안 되면 제가 다른 기획 하나 가져와 볼까요?

어? 어? 어? 아 아냐 아냐 그럴 필요 없어. 그러면 아까 그 아이템은 내가 한번 써 보면 안 돼? 나 써보고 싶은 거 생긴 듯.

P

읭? 네… 뭐 그러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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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진

김어진

Twenties Timeline 피처 디렉터. 상식이 모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