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언트웬티스” 시리즈 기획의도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 시중의 주간지만큼 잘 알지는 못합니다.?하지만 우리는 이 반도의 청년이든 저 이역만리 타국의 청년이든, 청년에게 말을 거는 법은 누구보다 자신있습니다.
카메라에 담겨 있는 청년들의?답변들을 겹쳐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 보입니다. 전쟁이 나서 가족들이 피신을 왔고, 정착을 해서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까닭없이 서글프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정치/군사 세력들은 지리멸렬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의 어느 접경지대에서,
시리아의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재 / 도수정
촬영 / 도수정
번역 및 통역 /?AbdulWahab Al Mohammad Agha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인터뷰이 소개
무하마드 나스르 (Muhamad Nasser, 23, 남)
일들리브(Idlib) 출신. 알레포 대학에서 토목공학?전공 중 알레포를 떠나 하타이(Hatay)를 거쳐 지금의 이즈미르에 정착하였다. 현재 터키 난민 생활 3년차이며, 카팁 첼레비 대학(?zmir Katip ?elebi ?niversitesi) 2학년이다.
무하마드 바크리 간남 (Muhamad Bakry Ganame, 21, 남)
다마스쿠스 출신. 시리아에서 2년 동안 전기공학 전공 중?터키로 왔다. 현재?터키 난민 생활 3년차이며, 대학 2학년이다.
무하마드 다르위샤 (Muhamad Darwisha, 27, 남)
알레포 대학에서 토목공학 전공 중 지금의 이즈미르에 정착하였다. 현재 터키 난민 생활 4년차이며, 이즈미르 대학 3학년이다.
살기 많이 위험해져서 어쩔 수 없이 떠났습니다
시리아를 어떻게 떠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줄래?
나는 수니파라서 더 위험했어. 반군의 95%가 수니파거든. 그래서 정부군이 수니파 남자들이?반군에 참여할까 봐 더 잡아들이려고 애를 쓰지. 특히 내 고향 일들리브는 내전 초기부터?반정부 시위를 했던 지역이라 정부에서 더 경계하고 있어. 홈스, 다라, 다마스쿠스 지역?출신 남자들을 경계해.
그래서 터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 하타이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서 어떻게?나갈지 의논했어. 그 당시만 해도 터키에 시리아 사람들이 많지 않았거든. 다행히 여권이?있어서 바발하와(Bab al Hawa) 국경을 통해서 터키로 입국할 수 있었어. 마침 여권이?있었으니 내가 운이 좀더 좋았던 거지.
리할리(Reyhanlı)에 있는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고민했어. 시리아로 돌아갈까, 터키에 계속?남아 있을까, 이집트로 가서 공부할까. 이집트에 있는 이스켄다리아 대학에 입학서류를?내 봤는지 비자를 안 주더라고. 시리아 난민한테는 비자를 안 준대. 지금까지도. 그래서?진지하게 유럽으로 가야 하나 여러 번 고민하다가 다행히 터키 카팁 첼레비 대학에서?받아줘서 유럽에 갈 계획을 접었지.
가족이랑 다마스쿠스에서 살고 있었는데, 수도 지역 중에서도 꽤 격전지야. 우리 집은 아예?폭격으로 무너져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서 집을 빌려 살았어. 거기서 계속 공부도 하고?생활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검문소에서 날 자꾸 잡는 거야. 검문소의 악질들 때문에 고생을?많이 했어.
셰비하 때문에 계속 힘들었어. 시리아 나가기 불과 1주일 전에 셰비하가 나를 잡아서?일주일이나 감옥에 가두었다가 풀어 줬어. 나오자마자 바로 터키로 빠져나왔어. 레바논으로?도망간 다음에 비행기 타고 터키 아다나(Adana)로 갔다가 이즈미르(Izmir)로 온 거야. 나는?다행히 터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지만 가족은 아직 다마스쿠스에 있어.
지금도 가족이랑 연락할 수 있어?
응, 연락할 수 있어. 매일 연락해.
가족은 안전한 거야?
응. 안전해.
2011년 4월, 알레포 대학 시위 당시 영상.
나는 시리아 정보기관원에서 18살 때부터 감시당하고 있었어. 외국에 나갈 때마다 허락을?받아야 했어. 2011년 까지는 괜찮았는데, 그 해 5월에 허가를 받아서 가족 행사에 참여하러?요르단을 다녀왔더니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래. 뭐 했는지, 누굴 만났는지, 무슨 활동을?했는지 물어보더니 아예 출국 자격을 없애버렸어.
2011년 4월에는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서 1주일 간 구금되어 있었다가?대통령 지시로 풀려났어. 그리고 5 월에 다시 한 번 잡혔지. 형제가 바니아스 지역에서?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었거든. 이틀 후에 형제가 잡혔다고 나는 풀어 줬어. 한 달 반 이후에?우리 형제도 풀려 났어. 그리고 대학 때문에 알레포를 계속 왔다갔다 했거든. 시민증에?고향이 다마스쿠스라고 써 있어서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지.
출신 지역 때문에?
아까 나스르가 말한 주요 경계 대상인 다마스쿠스 출신 남자가 바로 나니까. 그래서?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왜 알레포에 가느냐’며 조사받았어. 욕도 먹고 차별에 무시도 당했지.?2012년 여름까지 알레포에 살고 있었는데, 그 때 즈음에 알레포에서도 시위가 격화돼서?대학을 다닐 수 없는 상황까지 된 거야. 시리아에서는 공부한다고 입대를 미루고 있었는데?공부가 중단되니까 3개월 안에 입대를 해야 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터키로 왔어.
처음엔 이스탄불로 갔어. 아버지가 2009년부터 그곳에 살고 계셨거든. 9개월 동안 아버지?집에서 생활했어. 터키어와 영어를 공부하면서 대학을 찾아봤지. 아랍 걸프 국가 중 한?곳으로 가려도 방법을 찾아봤는데 시리아인에게는 아예 비자를 안 준대. 카타르, 오만,?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리트 모두 안 된다는 거야. 그 지역에서 일자리를 열 개는?구했는데 비자를 받을 길은 없었어.
비자를 안 내주는 이유가 뭐야? 같은 중동 국가잖아.
시리아인은 다 테러리스트일 거라 생각해. 터키에서 지내는 첫 9 개월 동안 언어 익히고,?자잘한 일 하면서 먹고 살았어. 괜찮은 일 자리는 언어가 안 되고, 터키 정부에서는 시리아에서의?내 학력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힘든 일만 했어. 나한테 남은 선택은 두 개 뿐이더라고.?터키에서 학교를 찾아 학업을 계속 할 것인가, 다른 난민들처럼 유럽으로 갈 것인가. 여러?대학을 지원해봤는데 카팁 첼라비 대학에 합격해서 지금 다니고 있어.
고문을 당하느니 차라리 미사일에 맞아 죽는 게 나아
시리아를 떠날 때 기분이 어땠어?
일고향 일들리브에서 살면서 많이 무서웠어. 정부군에 납치 당하거나 감옥에 갈까봐. 가족이나?친구한테는 감옥에 갈 바엔 차라리 폭탄이나 미사일을 맞아 죽는 게 낫다고 말하곤 했어.?친구들이 감옥에서 고문을 많이 당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
안전한 곳에 살고 싶었을 뿐인데. 난 아직 젊은데 시리아에서 즐거운 시간도 못 보내지,?공부하던 알레포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 나라는 자꾸 엉망이 되어가니 우울했어. 친척,?친구들이 있는 시리아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기분이 좀 그랬어. 기분이 너무 복잡했어.?뭔가 무섭고, 두렵고, 불안하고, 떠나고 있는 그 순간에도 시리아가 그리웠어. 조국을 영원히?다시 볼 수 없는 느낌.
나스르 말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야.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난다는 건 정말 이상한 기분이야. 나도 떠날 때는 기분이 아주 우울했어. 정신없이 차를?타는데 엄마한테 인사도 안 한 거야. 엄마가 자동차를 뒤따라오시면서 어떻게 나한테?인사도 없이 떠날 수 있냐고 하셨어.
그렇게 레바논에 도착하고 보니 갑자기 혼자가 되어 있는 거야. 이제 모든 걸 혼자 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무서웠어. 나라를 떠나는 결정은 내 인생에서 아주 엄청난?결정이었던 것 같아.
나는 떠나와서 생활을 잘 하고 있지만 다마스쿠스에 남아있는 가족 걱정은 여전히 많이 해.?거의 모든 나라가 시리아인을 받아 주지도 않고, 국경 문도 닫아버렸어. 가족이랑 여기에서?같이 살고 싶지만 데려올 여건이 안 되는 게 안타까워.
처음 경찰에 한 두 번 잡혔을 때는 절대 나라를 떠나지 않겠다 생각했었어. 내가?용감하다는 건 아냐. 그냥 원칙적으로 정의롭지 않은 상황은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생각했었으니까. 터키로 처음 왔을 때는 일주일 후에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려고 짐도?간단하게 챙겨왔어. 그런데 그 사이에 국경 근처에서 일어난 전투 때문에 터키 국경이?닫혀서 못 돌아가게 된 거지.
시리아에서도 구호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아주 떠날 생각은 없었어. 짐을 간단하게?챙겼던 이유가 중간에 잡히면 어차피 감옥에 갈 텐데 하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어. 국경?게이트에서 4시간이나 잡혀 있었거든. 정보기관원이랑 군인, 형사, 경찰 모두가 날?잡아 세워서 왜 터키에 가느냐, 아버지는 뭐하고 있느냐, 어머니는 의심스러운 사람 같다,?친척이 수상한 활동을 하지 않느냐 물어봤어. 나도 모르는 친척인데 말야.
본인도 모르는 친척을 물어봤다고?
응. 이 친척이 지금 미심쩍은 활동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더라고. 너랑 형제?모두 잡힌 적 있으니 그 사람들이 무슨 활동을 하는지 알거라면서 계속 물어봤어. 두어 번?잡힌 경험 이후에는 분노가 커져서 끝까지 맞서 싸워야겠다 생각했어. 옛날 페이스북에?내가 ‘외국에 나가지 않고 시리아에서 죽겠습니다’라고 쓴 적도 있어.
그러다가 잠깐 나온 게 다시는 못 돌아가게 되었어. 한참 후에 잠깐 반군 지역에만?들어갔다 나온 적 있어. 거긴 다들 총 들고 전투를 치르고 있어서 나도 총 들고 싸울까?6개월 동안 고민했지.
이 문제로 어떤 사람이랑 진지하게 이야기했어. 그 사람 조언은 시리아 내로 들어가서?싸우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 도우라는 것이었어. 지금은 한두 명이 전투에 참여한다고?해서 그 차이가 크지 않다면서. 그래서 전투 참가는 포기하고 2012년 라마단부터 터키에?남기로 했어. 물론 시리아로 돌아갈 희망은 계속 품고 있지.
그럭저럭 살고는 있지만, 편하지는 않아
터키에서 난민 생활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뭐야?
알레포에서 공부할 때는 고향 일들리브와 가까워서 주말에 왔다 갔다 하면서 가족을 볼 수?있었어. 터키로 오고 나서는 가족을 볼 수 없어서 6~7개월 동안 답답하고 마음 고생 심했어.?터키에서도 시리아인 친구들이랑 어울리긴 하지만 외국이라서 답답해.
하타이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이즈미르는 문화, 언어가 완전히 달라 어쩔 수?없이 터키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 터키인들도 외국이나 모르는 사람에 대한 편견도 있고,?아랍어로 하던 공부를 여기에서 영어로 하려니 첫 학기에 너무나 힘들었어.
지금은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지만 완전히 적응한 건 아니야. 다른 친구들도 나랑 비슷하게?고생했을 거야. 그래도 조금씩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어. 여기에서 서로 도와주려 하고,?학교나 난민 관련 터키의 새로운 이야기, 거주권 같은 중요한 소식이 있으면 공유하고 있어.
일단 여기에서는 내가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해. 믿을 게 나 자신밖에 없으니 독립적으로?살아야 하지. 가족이 없는 삶이 어떤지도 많이 배웠어. 일도 하고. 그래도 뭔가 명확한?목표를 갖고 노력하고 있어. 그 목표란 열심히 공부해서 미래에 조국을 크게 돕는 거야.?가족과 내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말이야.
삶을 보는 시간도 달라졌어. 이제는 원칙과 목표가 생긴 거지. 터키에서 언어 두 개를 배우고,?새로운 문화도 익히고, 시리아에서 배우지 못한 여러가지를 여기에서 배워. 원래 외국?생활이란 배울 게 많잖아. 시간이 갈 수록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
2016년 9월, 알레포는 러시아의 폭격으로 인해 시 전체가 초토화되었다.
터키에 잠깐 있으려다가 아예 시리아에 못 돌아가게 되어서 실망스러우면서 분노, 미안함을?동시에 느껴. 전쟁이 우리 삶을 멈추었으니, 시리아 상황을 해결한 후에는 다시 삶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처음 터키에서 6 개월 동안 갈등이 많이 일었지. 가고 싶지만 갈 수?없고, 도와주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으니까. 갑자기 혼자 있고 싶단 생각도 들었어.
그러다가 시리아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랑 연락을 아예 끊고 터키에서 새로운 사람들을?만나기 시작했어. 시리아에서는 모두가 생각하는 게 비슷비슷했는데 여기에서 다양한?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생각, 이슬람에 대한 호불호, 정치적인 좌우, 진실이 무엇인지?탐구하게 되었어. 그래서 책도 많이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토론하면서 인생을 보는 눈이?달라졌어.
내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시리아 안에서 대단한 일을 찾는 것만이 시리아인을?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터키를 도우면 인류 전체를 돕는 일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
인류 전체?
시리아만 도울 게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을 생각해야 해. 전세계 사람들이 시리아를?도와야 하니까. 이런 생각 때문에 학업을 계속 하기로 마음 먹었어. 시리아를 돕는 건?단순히 내 의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의무이기도 하니까.
터키 생활하면서 자유도 느끼고, 내 자신도 많이 바뀌었어. 전에는 배타적인 마음으로?상대방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아. 지금은 누구를 만나든 좀더 쉽게 수용하고?배우려고 하지. 심지어 이슬람도 마찬가지야. 올바른 이슬람을 배우게 된 것 같아. 아마?내가 시리아에서 이슬람을 잘못 배웠나 봐.?그래서 앞으로 공부해서 좋은 일 하고 싶어.?시리아도 도와주고 내 도움 필요한 사람이라면 모두 도와주고 싶어.
전쟁 영화처럼,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거지
시리아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누구라고 생각해?
시리아 정부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어. 정말이지 범죄자 집단이야. 국민을 독재로 통제하고?억압하고 자유를 빼앗고 괴롭히고, 1980년에는 하마 학살도 저질렀지. 진짜 나쁜 정부야. 시리아 발전을 막은 것도 정부야. 교육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하페즈 알아사드(시리아 전 대통령이자 현 대통령의 아버지) 정권 이전이 차라리 더 나았던 것 같아. 반정부 시위 초기였던 2011년 3월에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아예 상황을 이해를 못 해서 국민들을 되레 공격했어. 그리고 이란과 러시아에서 지원을 받아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지원한 이란과 러시아에게도 책임이 있어.
왜 잘 해결되지 않는 걸까?
너무나 많은 국가가 시리아 사태에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상황이 복잡해졌어.?이젠 그들조차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어. 결국 IS 같은 이상한 극단주의 세력이?탄생한 거지. 그들은 이슬람을 망치면서 나쁜 짓을 많이 하고 있어. 그런데 시리아 정부와 비교하면?온건해 보여. 정부가 한 나쁜 짓이 훨씬 더 많거든. 여러 세력이 여기저기에서?활개를 치고 있으니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된 거야.
모든 사람들이 짧은 기간 내에 시리아 사태가 해결이 안 될 거라고 말해. 내 생각은 달라.?다만 개입하고 있는 나라들이 해결을 원하지 않아.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을 계속 불안한?상태로 두길 원해. 사실 지금이 오히려 속이 편할걸. 싸움이 끊이지 않도록 세력을?이용하고 있어. 한 세력이 약해지면 상대방 세력으로 가는 지원을 끊어서 힘의 균형을?맞추는 방식으로 말야. 다른 세력이 어딘가에서 지원을 받아오면 상대 세력에 지원을?해 주면서 싸움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지. 전쟁 영화처럼 시리아 상황을 그저?즐기고 있을 뿐이야.
길간단하게 딱 한가지만 이야기할게. 국제사회, 그 국제사회의 일원인 국가들은 진지하게?시리아 내전을 끝내기 위한 최종 결정을 하지 않고 있어. 도덕 원칙들이 땅에 묻혀 있어.?동물이 이렇게 죽임을 당하면 국제사회가 움직이는데, 사람이 처참하게 죽어나가고?있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 5년 동안이나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어릴 때 어머니가 나한테 하셨던 말이 있어. ‘나에게 생기는 일의 원인은 바로 나 자신이다.’?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따라온다는 거지. 역사를 보면 하페즈 알아사드가?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그 사람이 1982년 하마 학살을 자행할 때 우리 국민이 어떻게?반응했는지 봐야 해. 그리고 그때도 국제 사회는 모르는 척했지.
시리아 국민들이 가만히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분열되어 있었어. 그래서 35 년 독재를?참으면서 고생도 많았지. 좌절도 맛보고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가기도 하면서 말야. 2011년?혁명 전까지 이런 상태가 반복되어 왔어. 초기에는 젊은이들이 작은 칼이나 어떤 무기도?없이 평화적으로 시위했어. 그런데 정부에서 그 사람들을 잡아다 감옥에 보내고 고문을?하다가 5월부터 총으로 아예 직접 쏘아 죽이기 시작한 거야.
정부군이 시민을 직접 쏘아 죽였으니 반응이 엄청날 수밖에 없겠다.
동생, 아버지, 자식들이 총에 맞아 죽는데 가족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계속 시위를?했겠지. 나는 초기처럼 평화적 시위만 했다면 더 큰 영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 하지만?이젠 시위가 아니라 양측의 본격적인 싸움이 되더니 외부에서 개입을 하면서 더?복잡해졌어.
시리아가 자원 갈등에도 연루되어 있니?
시리아, 이스라엘, 키프러스 사이 지중해 삼각지역에 가스가 많아. 이 가스를 두고 다들?싸우고 있어. 원유 생산국인 아랍 걸프 국가들은 이 가스 생산을 막으려고 하고 있고,?러시아도 이 가스가 유럽으로 가는 걸 원하지 않지. 그래서 그들에겐 이 지역을 불안하게?유지할 필요가 있는 거야.
어떤 국가들은 알아사드를 지지하고, 어떤 국가들은 알아사드를 저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이 지역이 일종의 냉전(cold war)에 들어선 셈이 되어버려서 그 가운데서 시리아 국민들만?고생하고 있어. 정부와 싸우는 시리아 반군 또한 책임이 커. 내부적으로 분열도 많고 올바른?전투 방향이나 고민도 없이 운영을 잘 못했으니까.
그러다가 시리아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도 덩달아 불안해졌지. 예를 들어 레바논, 요르단,?터키에까지도 갈등이 번졌어. 심지어 서방 국가들까지도 반군에 개입하게 되었지. 이런 불안?자체가 이스라엘에게는 유리해. 여러 아젠다가 겹쳐져 있어. 나에게 해결책을 물어본다면,?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어.
그 이야기는 30년이나 참은 국민, 국제사회, 분열된 반군 모두가 책임이란 뜻이야?
응. 정리하면 그렇게 돼.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건 뭐야?
그냥 우리는 신의 도움만을 바랄 뿐이야. 그리고 우리 각자 모두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해. 우리 각자 손에 가지고 있는 돌을 맞는 위치에 두면 제대로 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처럼.
무슬림으로서 나도 알라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할 것이라 믿고 있어. 그리고?엄청나게 어렵고 불가능하겠지만 반군들 모두 단결하면 시리아 상황이 다 끝날 거라?생각해.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믿음 외에도 행동, 헌신, 진실이 필요해. 이것만 있으면 모든 게 잘 풀릴 거야.
다르위샤의 말처럼 헌신, 진실, 행동과 통일이 필요해. 그렇게 된다면 시리아 상황도 빨리?끝내면서 독재 대통령을 물리치고 더 나은 국가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시리아 국민들은 대단해. 외국에서 훌륭한 일 많이 하는 시리아?국민들도 많거든. 하페즈 알아사드 정권 때 지식인들이 외국으로 많이 떠났었어. 미국, 유럽,?아랍 걸프 국가나 터키로 간 훌륭한 시리아인들이 꽤 있어. 의사, 기술자, 무역 사업가 등등?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했어.
시리아 정부가 이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일부러 국민 사이를 분열시켜 놓았어.?그래서 더 국민이 단결하기 어려워졌어. 그래서 시리아 문제를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리더들의 입장이 통일되어야 해. 물론 나는 시리아 내에서 직접 싸우는 사람만을 신뢰하고?있지만 말야.
베트남 국민들도 미국에 비해 힘이 약했지만 합심해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을 이겼잖아.?많은 국가들이 단결한 국민 덕분에 독립해서 더 나은 국가를 만들었어. 어떤 공공의 의지가?있어야 하는데 지금 시리아에는 그게 부족해서 힘들어.
하페즈 알아사드 정권 이전에는 국민들 사이에 분열도 없었고 생각이나 사회가?개방적이었어. 그 정권 이후로는 교육 체계가 무너지고 국민들 생활도 힘들어졌지.?결론적으로는 알아사드 대통령 가족에게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 생각해. 원래 있던 아름다운?문화는 훼손하고 새로운 문화로 오염시키고 있어.
예를 들어 다마스쿠스는 원래는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였지만 알아사드 대통령이?도시 여기저기에 군인 경찰 시설을 만들고 주둔시켰지.
나는 반대 의견이 좀 있어. 시리아 정부가 모든 책임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아. 알아사드?가족이 국가를 점령했으니 나쁜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어. 그런데 국민들은 그저 오래?참고만 있었으니 그것도 잘못이라 생각해.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우리는 순수한?피해자일 뿐이다, 무조건 힘들다고만 떠들면서 외부 도움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그것도 옳지?않다고 생각해.
가족 걱정이 유난히 됩니다
지금 제일 큰 걱정은 뭐야?
지금 생활이 불안정하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야. 터키에서 보내는 난민으로서의 삶, 내가?살고 있는 지역 모든 것이 불안해. 결국 개인 생활까지 영향이 크게 미쳐. 먹는 것, 사는 것,?자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아지지. 우리 가족도, 경제적 위기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걱정이 돼.
학업, 졸업 후 취업, 가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조국이?불안하니까 한층 더 강해지고 많아지지. 예를 들어 내가 지금 터키에 살긴 하지만 터키?밖으로 나갈 수 없어. 그리고 지금 받은 터키 거주권도 공부, 일 때문에 나온 게 아니라?정말 임시적인, 인도적인 차원의 거주권이야. 내가 지금 터키에 사는 건 내가 원한 것이?아니라 어쩔 수 없는 강요된 상황이야.
만약 터키에서 정치적 상황이 바뀌며 언제든지?난민으로부터 등을 돌릴까 봐 불안해.
개인적인 걱정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가족이야. 개인 생활도 물론 걱정이지. 터키 생활을?언제까지 해야 하나, 언제까지 공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시리아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처럼?될까 봐 걱정돼. 1948 년부터 난민으로 흩어져 아직도 고향에 못 돌아가고 있잖아. 혹시나?시리아 난민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 계속되는 시리아 내 학살도 걱정돼.
나도 친구들이랑 비슷한 문제를 걱정하고 있어. 추가적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세대들이 3~4 년 이후에 극단적인, 혹은 이상한 생각을 할까봐 걱정돼. 시리아 내 교육?시스템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정부군이 없는 지역에서 학교를 다시 열려고 노력하지만?문제가 많아.
첫번째는 언제 폭격을 받을지 모르니 위험하고, 두번째는 그런 위험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학교에 보낼 수 없어. 세번째는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IS 같은 이상한 세력이 아이들에게?이상한 교육 내용으로 가르친다는 거야. 아이들이 절대 배워선 안 되는 내용도 있지. 그?아이들이 그 상태로 자라면 5년 후에는 극단적으로 할 수도 있어. 이건 나뿐만 아니라?모든 시리아인에게 심각한 걱정거리이지.
시리아에 돌아가지 못하는 동안 자기 계발, 공부 열심히 하고 가족들을 잘 돌보면서 기다릴?거야. 시리아 상황이 나아지고 내가 시리아에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면 돌아갈 거야.?지금은 아직 학생이라 큰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해. 아마 납치당하거나 감옥에 갈지도?모르지. 이 모든 게 다 걱정거리야.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아. 그럼 어떻게 해?
시리아에서는 계속 뉴스 보면서 흥분할 수 밖에 없고, 기분이 안 좋았지. 정부군?점령지역이라 마땅히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어. 시리아 혁명도 5 년 째에 접어들고, 매일?사람들은 죽고 있고, 폭력에 전투, 학살이 있으니 나도 익숙해져 버렸어.
스트레스가 정말 많을 때는 친구들이랑 이야기 해. 우리 어떻게 할까, 왜 상황이 어렵게?되었을까, 해결책은 뭘까 계속 이야기 해. 이런 이야기 하다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져. 그냥?친구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어.
어떤 친구와의 대화는 맘에 안 들고, 어떤 대화는 계속 질문이 생기고, 어떤 대화는 잘 알?수 없는 내용일 때도 있지만, 힘들 때, 기분 나쁠 때는 이 방법 뿐이야. 친구들과의 대화.
시리아 상황이 너무 어려워 뭘 해도 기분이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아. 다만 기도하거나 울고?나면 조금 도움이 되지. 다른 방법은 없어. 그래서 어려운 상황을 강제로 잊고 싶기도 해.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시리아 상황에 대해 화가 나지 않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 내가?아직 인간인가? 짐승인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해. 시리아 내에서 직접 어려운?전투라든가,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봐서 무뎌진 건가? 감옥에 같이 있던 사람이?죽는 것도 봤어. 그러다 보니 (사람들 죽는 걸 보는) 이게 일상이 되어 버렸어.
나는 아직 인간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 하는데 일상이 바쁘고, 내 목표를 달성하느라?바쁘다 보면 시리아의 어려운 상황은 점차 잊어버리게 되어버려. 시리아 상황에 대한 고민,?내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반복해. 다른 사람은 정말 겪지 않았으면 하는 불쾌한 일이야.
제가 이 상황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은 20대는 어떻게 보내고 싶어?
내 행동을 보면 19살, 20살 같아. 일상생활은 하고 있는데 시간이 멈춘 것 같아. 장소만?바뀐 것처럼. 내 안의 시간은 멈추어져 있어. 나의 20대는 2009년에 시작했어. 시리아에서?2년 20대를 보내다가 5년째 시리아 혁명을 겼고 있지. 5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났고 내?스스로 5년의 나이를 먹지 않은 것 같아.
20대가 1년 반, 2년 남짓 남았지만 계획은 세우고 싶지 않아. 몇 가지 세워봤지만?실천하면서 더 힘들었거든. 대학 생활, 개인 생활을 편하게 즐길 수가 없어. 예를 들어?페이스북에 어떤 재미있는 사진을 올렸는데, 시리아에서 뻔히 고생하고 있을 친구들이 내?글에 ‘좋아요’하거나 답글을 달면 왠지 양심에 찔려서 개인 생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해.?그래서 즐기는 건 비밀로 하거나 가까운 친구들하고만 공유해.
만약 30대가 되기 전에 시리아 상황이 종식돼 있으면 휴식 시간을 갖고 싶어. 여행을?좋아하니까 터키를 여행하고 싶어. 터키는 아름다운 나라거든. 하지만 즐기는 것보다 중요한?일도 많지. 학업도 끝내야 하고, 일자리도 찾아야 하고, 가족도 도와주어야 하고, 날?도와줬던 분들을 다시 찾아가 도와드려야 해. 당장 아니라 60세 이후에나 즐거운 시간?보낼래.
어려운 질문이야. 대답을 어떻게 해야 되지. 다른 사람처럼 대학 생활 끝나고 취업하고 좋은?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싶어. 그래서 개인 계발도 해야 하고, 여기저기 좋은 일도 많이?해야겠지.
나는 시리아에서나 여기에서도 시간 낭비 많이 하고 있지만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다른 걸?배워보고 싶어. 20대가 끝날 때까지는 아직 7년쯤 남았어. 대학 졸업 후에 석박사도 계속?하고 싶어. 터키에 온 이후로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져서, 유럽으로도 가 보고?싶어. 자기 계발도 계속 잘 해서 가족도 잘 도와주고 싶어.
가족 곁에 계속 있고 싶어. 나는 이쪽 나라, 가족은 저쪽 나라에 사는 건 원하지 않아.?시리아 문화이기도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가족 곁에 있고 싶어. 그렇게 살 수 있는 환경을?준비해야 해. 자기 계발 잘해서 성공하면 내 곁에 머무르게 하면서 가족을 도와줄 수?있겠지.
앞으로 뭘 하고 싶어?
그냥 좋은 엔지니어 하면서 사회에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 기술자 뿐만 아니라 정치인,?사업가, 미디어 활동 다 하면서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졸업하고 석박사를 하고 싶어. 근데 학교생활이 쉽지가 않아서 ‘학부 생활도 제대로?못하면서 석박사를 어떻게 하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기도 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희망은 계속 갖고 있어. 어딜 가든 사회에 큰 영향을 주려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시리아 상황이 어려우니 강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약자로 남지 않을 거라 생각해. 아랍?국가들도 국적을 먼저 보거든. 제대로 공부를 해서 좋은 교육을 받으면 국정을 논할 이유가?없는 위치가 되겠지. 그래서 고등교육이 필요해.
짧게 의미있는 이야기를 하지 뭘 그리 길게 해. ㅋㅋ
결론은 석박사 하고 싶다는 건데 되게 자세히 얘기하네 ㅎㅎㅎ
2시간 후에 시리아 사태가 해결이 된다면 어떨까?
믿지 못할 거야.
그건 불가능해. 가망이 없어.
난 가망 있다 생각해. 그런 소식은 언젠가 올 거야. 다만 그게 언제인가가 중요해. 내가 그?소식을 들을 땐 뭘 하고 있을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겠지. 상황이 괜찮으면 축하하러?시리아에 들어갈 테고, 여건이 안되면 자기 계발 열심히 하면서 내가 세우고 있던 탑을?계속 세우고 있겠지.
그런 소식을 듣고 나면, 뛰는 거, 웃는 거, 우는 거, 소리 지르는 거 다 할 것 같아. 다 할?거야.
나는 이 소식을 들으면 당연히 행복하겠지만 조국에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 내가 가더라도?시리아는 바로 나를 도와줄 상황은 아닐?거야. 내가 강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 상태라면 바로?돌아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못 돌아갈 것 같아.
이 질문 자체가 굉장한 행복감을 줬어. 시리아 상황이 끝나고 독립하는 걸 상상만 해도?행복해. 나는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이 사라질 때도 너무나 행복했어. 이집트 무라바크?대통령이 쫒겨날 때도, 튀니지 재스민 혁명에도 행복했어. 2005년 시리아 국민들이?레바논을 떠날 때, 레바논이 알아사드 정권과 헤어질 때도 나 너무 행복했어. 미국이?이라크에서 철수할 때도 행복했어.
다른 나라 때문에 그렇게 행복했는데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더 행복하겠지. 두 배, 세 배 더?행복할지 몰라.
시리아에 2시간 동안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면 뭘 할래? 갖고 나오고 싶은 거라던가.
한 가지뿐이라면 시리아에서 가족을 데리고 온다. 끝.
2시간을 4번으로 나눠도 돼? 가고 싶은 장소가 많아서. 첫번째로는 다마스쿠스?우마이야(Umayyad) 모스크를 들르고 싶어. 다마스쿠스에서 처음 가본 이후 매주 갔었거든.?그리고 두번째 30분은 가족이랑 보내고, 친구랑도 30분, 마지막 30분은 내가 시리아에서?제일 좋아했던 장소에 갈 거야. 시리아 바다. 그 앞에서 나의 고민을 바다에 이야기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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