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원래 나이보다 더 성숙해 버렸습니다”

제 7탄, 형제가 증언하는 젊은 난민으로서의 희망과 걱정.

“시리언트웬티스” 시리즈 기획의도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 시중의 주간지만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반도의 청년이든 저 이역만리 타국의 청년이든, 청년에게 말을 거는 법은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카메라에 담겨 있는 청년들의 답변들을 겹쳐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 보입니다. 전쟁이 나서 가족들이 피신을 왔고, 정착을 해서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까닭없이 서글프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정치/군사 세력들은 지리멸렬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의 어느 접경지대에서,
시리아의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재 / 도수정
촬영 / 도수정
번역 및 통역 / AbdulWahab Al Mohammad Agha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인터뷰이 소개

압둘 라흐만 쉬이크 아메드 (Abdul Rahman Chikhe Ahmed, 이하 라흐만)
아흐마드 쉬이크 아메드 (Ahmed Rahman Chikhe Ahmed, 이하 아흐마드)

이 형제는 시리아 알레포 출신이며 2년 전에 가족과 함께 터키 킬리스(Kilis)에 정착하였다.
라흐만은 21세, 아흐마드는 20세.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처럼 비슷한 사정

Q

어쩌다 시리아를 떠나게 된 거야?

라흐만

공부를 계속 하고 싶은데 시리아 폭격이 워낙 심해져서 집을 떠났어. 터키는 안전하다는 게 장점이지. 시리아에는 반대로 남은 게 없어. 교육, 안전,아무것도.

Q

터키에 정착 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아흐마드

시리아에서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어.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점이 터키 생활의 좋은 점이야.

라흐만

다만 일자리가 없고 일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곳 생활의 가장 힘든 점이지.

syrian refugee camp in kilis turkey

그들은 사정이 나은 편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리아 난민들은 킬리스의 난민 캠프에서 콘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다. ⓒ Anadolu Agency

Q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이야기해 줄래?

아흐마드

원래 기술자가 되고 싶었는데 터키에서 기술 공부를 하기가 어렵더라고.그래서 일단은 인근 대학 경제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야.

라흐만

좋은 회계사가 되는 게 내 꿈이야. 나도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어.

Q

일자리 외에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점은 뭐야?

라흐만

일자리가 없으니까 개인적으로도 힘들어. 왜냐하면 변변한 일도 없이 계속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낼 수는 없으니까. 물가는 비싸. 그런데 돈 벌 일은 없어.

Q

우울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이 있니?

라흐만

답답할 때는 주로 엄마와 대화를 하면서 조언을 많이 받아. 엄마는 주로 코란을 읽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다, 모든 게 잘 될 거다 말씀해 주셔. 그럼 기분이 조금 나아져.

Q

자기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야?

라흐만

나에게 제일 소중한 존재. 가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열심히 하고 싶어.

아흐마드

가족은 같이 살면서 함께 행복하고 슬퍼하고, 좋은 시간도 안 좋은 시간도 함께 보내는 사람들. 내 인생.

시리아 난민 압둘 라흐만 쉬이크 아메드

압둘 라흐만

 

속마음과 다르게, 타향에서 겉늙어 버린 청춘들

Q

가족 이외에 가장 소중한 것, 좋아하는 것은 뭐야?

라흐만

나에게 소중한 것은 일자리, 그리고 교육받을 기회야.

아흐마드

시리아 음식. 시리아 음식은 터키와 많이 달라. 그리고 물건 중에는 내 컴퓨터. 컴퓨터 안에 친구 사진, 친척 사진, 메모들이 다 있거든.

Q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얼까.

아흐마드

어렸을 때 어른이 되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한 다음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생각한 대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른이 되어가는 증거라고 생각해.

Q

너는 스스로가 어른이라고 생각해, 아님 애라고 생각해?

아흐마드

많이 컸다고 생각해. 시리아를 떠나온 이후 원래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어. 가족 떠나고, 집 떠나고, 친척 다 떠나 살다 보니 나이를 많이 먹었단 느낌이 들어.

syrian refugee kids

그리고 그것은 ‘시리아 난민 어린이’들의 대부분이 그렇다.

Q

그럼 넌10년 후에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아흐마드

상상할 수 없어.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 경제학과를 잘 졸업하고, 좋은 회계사가 되어 좋은 아내를 만나 결혼해서 자식 낳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Q

‘시리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아흐마드

내 가족, 친척, 친구들, 동네 사람들 전부 다 생각나. ‘시리아’ 단어만 들으면 생각나.

Q

고향 꿈도 꾸니?

아흐마드

많이 꾸지. 아름다운 고향 풍경이 나오는 꿈을 가장 많이 꿔.

시리아 난민 아흐마드 쉬이크 아메드

아흐마드

 

분쟁이 종식되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수 있는 삶

Q

시리아를 떠날 때 가장 후회했거나 아쉬웠던 점은 뭐야?

라흐만

동네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어. 내 나라는 시리아니까 기왕이면 시리아에서 안전하게 공부하며 살고 싶었는데 떠나야 해서 슬펐어.

Q

시리아 전쟁에 많은 원인이 있을 거야. 하지만 누가 제일 나쁘다고 할 수 있어?

아흐마드

바샤르알 아사드 대통령. 현 시리아 대통령과 정부군의 책임이 가장 커.

라흐만

IS. 참수로 사람을 너무나 많이 죽였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도 많이 힘든 상태야.

Q

지금 시리아에 들어가서 한 가지만 들고 나올 수 있다면?

라흐만

딱히 가지고 나오고 싶은 것은 없어. 한 번만 들어갈 수 있다면 친구들, 이웃들,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

시리아 난민 쉬이크 아메드 가족

쉬이크 아메드 가족. 뒷줄 왼쪽 끝에 압둘 라흐만, 뒷줄 오른쪽 끝에 아흐마드가 앉아 있다.

Q

2시간 후 시리아에 평화가 온다면 무얼 할 거 같아?

아흐마드

신께 감사를 돌릴 거야. 그리고 바로 시리아 고향으로 돌아갈래. 외국에 또 나오는 건 절대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라흐만

당장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서 친구들과 사람들한테, 특히 집을 떠났던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축하하고 싶어. 우리 나라는 제일 좋은 나라, 예쁜 나라니까.

 


그러나 그의 바람은
그리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지난 19일 터키 앙카라에서는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불의의 총격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현장에서 범행 직후 몇 마디 말을 외쳤는데,
“신은 위대하다”, 그리고 하필이면
알레포와 시리아를 잊지 말라”라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더욱 복잡하게, 그리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범인과 관련이 있는 조직의 종교재단이 압수수색됐고
관련자를 체포한 일이 있었는데,
그 재단이 있는 곳 역시 하필이면 이즈미르였다고 한다.

우리가 여기서 만난 꽤 많은 청년들이 지금도 하루하루를 지내는,
바로 그 도시 말이다.

시리아 난민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그러니 우리 집을 부수지 마세요.” ⓒ NBC News

암살범이 고래고래 외쳤던 대로
이제 사람들은 과연
시리아, 알레포, 이즈미르에 다시 눈을 돌리고
그곳을 똑똑히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과연 어떤 식의 기억이고 시선이 될지,
지금도 거기 살고 있을 우리 또래의 그 청년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설 뿐이다.

(연재 끝,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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