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문제가 커졌고, 그게 지금의 시리아를 만들었지”

제3탄, 스무 살의 나이에 시리아 내전을 경험한 한 청년의 이야기.

“시리언트웬티스” 시리즈 기획의도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 시중의 주간지만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반도의 청년이든 저 이역만리 타국의 청년이든, 청년에게 말을 거는 법은 누구보다 자신있습니다.

카메라에 담겨 있는 청년들의 답변들을 겹쳐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 보입니다. 전쟁이 나서 가족들이 피신을 왔고, 정착을 해서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까닭없이 서글프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정치/군사 세력들은 지리멸렬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의 어느 접경지대에서,
시리아의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재 / 도수정
촬영 / 도수정
번역 및 통역 / AbdulWahab Al Mohammad Agha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압둘까들 (Abdelkader) 나사니

20세 남성. 시리아 외곽 지역 알레포 출신.
8개월 전에 시리아를 탈출하였으며, 현재 가전제품을 파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어요

Q

제일 처음 터키에 올 때 시리아 상황이 어땠어? 그리고 최근에 다시 나왔을 때는?

압둘까들

3년 전에 시리아에 여러 문제가 생기면서 일자리도 없어지고 살기 위험해졌어. 그래서 아버지가 내가 걱정이 되니까 터키로 보내주셔서 1년 정도 살았어. 그런데 혼자 지내기에 심심하기도 하고, 고향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돌아갔어. 그런데 얼마 안 있다가 다시 상황이 나빠져서 터키 가지안테프로 나왔어. 터키에서 고등학교 3학년 4개월 재학 중에 문제가 교육 정책에 문제가 생긴 거야.

(※역자 주: 아마 터키 정부에서 교육 과정을 인정하지 않기로 된 모양)

결국 공부를 끝마치지 못하고 터키 다른 도시 메르신으로 일을 하러 갔지. 메르신에서 3개월 정도 있다가 시리아에 다시 돌아가서 1년 정도 살았어. 그 때는 터키보다 상황이 더 괜찮았던 것 같아. 가족이 내 곁에 있으니 편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외국보다 고향에서 사는 게 더 좋은 법이니까. 그러던 중에 터키로 다시 나올 수 밖에 없게 되었어.

시리아에 돌아가고 나서 4개월 후에 고향 알레포 상황이 엄청 복잡해지고 위험해져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어. 그래서 가족 모두가 고향을 떠나기로 했어. 터키와 가까운 시리아 국경에서 한 달 반 정도 가족을 기다렸지. 지금 살고 있는 이즈미르에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어. 나하고 동생은 일을 하고 있고, 전보다는 상황이 괜찮아. 시리아에서는 18살부터 25살까지 남자들은 군대를 가야 하니까 시리아를 빠져나와 이즈미르에 많이 왔어.

시리아 정부군

위키백과에 따르면 시리아 육군은 징병제다. 복무 기간은 과거 36개월이었으나 현재는 30개월로 줄었다. 한국 돈으로 약 6000만원을 내면 면제도 된다고.

Q

터키와 시리아를 꽤 왔다갔다했구나.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 이동이야?

압둘까들

지금은 시리아로 돌아갈 생각이 아예 없어. 왜냐하면 시리아에는 미래가 없거든.

Q

시리아를 떠날 때 무슨 생각을 했어?

압둘까들

마지막으로 떠날 때는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다, 떠나서 다시는 시리아로 못 올 수 있겠다’ 생각했어. 시리아는 이제 젊은 사람들한테 살기에는 문제가 많아. 징집 문제도 심각해졌고.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일 거야. 나는 시리아로 돌아갈 수 없어. 내 자식이나 손주도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야.

Q

누가 너희를 징집하는데?

압둘까들

IS. IS가 강제로 젊은이들을 군대로 데려가고 있어. 그리고 시리아의 젊은이들은 고향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떠나. 아버지 어머니는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 군대 때문에 못 돌아갈 거라 생각해.

Q

왜 희망이 없다 하는 거야?

압둘까들

미래가 없어졌으니 희망도 없어진 거지. 5~10년 안에 시리아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 않아. 아마 10년 그 이후에나 우리 미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 정도 시간이 지나야 나라도 회복하고 안전해지고 상황도 좋아지겠지.

육군 두돈반

위키백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육군은 징병제다. 복무 기간은 ‘김신조 사건’ 때 36개월까지 연장되었다가 지금은 20개월로 줄었다. 국방 의무를 돈으로 면제받을 수 있는 합법적 경로는 없다고.

 

언제까지 여기서 살 수 있을까 걱정해요

Q

터키 생활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건 뭐야? 좋은 점은?

압둘까들

좋은 점은 터키 정부가 시리아 난민을 받아준다는 것이고, 난민을 위한 특별 시민증도 발급해 주었다는 거야. 이걸로 살 집도 빌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언어가 다르니 생활하기 쉽지 않아.

그리고 시리아에서는 편하게 생활했는데 터키에서는 확실히 고생이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Q

심리적으로 받은 타격이 있어?

압둘까들

당연히 마음이 아파. 안타까워. 시리아에서는 잘 살았었는데 여기 와서 모르는 사람들, 모르는 언어, 모르는 나라에서 적응해야 하고 그게 어려워. 혼자 터키 와서 터키어 배우기 전까지 엄청나게 고생했어. 심리적으로 100% 안정되었다 할 순 없지만 75% 정도는 괜찮아.

그런데 계속 시리아로 돌아가고 싶어. 내가 다니던 학교, 고향, 친구들, 사람들, 미래를 찾으러 시리아에 가고 싶어. 터키에는 가족도 있고 일자리도 있고 안전하지만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게 가장 큰 바람이야.

시리아 난민 압둘까들 나사니

Q

시리아 상황이 잘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압둘까들

특별한 원인은 없어. 작은 문제로 시작했고 그 작은 문제가 점점 커져 간 거야. 왜 커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문제가 심각해져서 누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어졌어.

Q

시리아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압둘까들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은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야 해. 다른 나라의 도움을 기다려봤자 아무 소용 없거든.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야. 우리 시리아인끼리 서로 손 잡고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난민이 되어 나라 밖을 떠돌면서 고향으로 못 돌아갈 거야. 결국엔 당연히 신의 뜻대로 될 거야.

Q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해 줘.

압둘까들

아침 8시에서 8시 반 사이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길을 나서서 회사를 가. 출근하면 물건들을 가게 밖으로 내다 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손님이 오면 가격이나 물건에 대해 설명해 줘. 점심 시간에는 집으로 가서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점심을 먹고 다시 가게로 돌아와 같은 일을 해. 저녁 8시에서 8시 반쯤 가게 문을 닫아.

집으로 돌아가 가족이랑 저녁 식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든가, 그냥 집에서 계속 쉬든가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 일요일에는 친구들이랑 바다로 가거나 커피숍이나 친구 집에 가거나 아무튼 하루종일 친구들이랑 놀아. 가족이랑 외출을 할 때도 있고. 이게 지금 내 일상생활이야.

일상스타그램

구글 이미지 검색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청년의 일상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맛있는 음식, 하루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 좋은 경치,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만의 소중한 순간들.

Q

현재 생활 중 가장 불만족스러운 건 뭐야?

압둘까들

걱정 내지 불만족스러운 건, 우리가 언제까지 터키에서 살 것인가야. 우리가 시리아에서는 괜찮게 생활했었거든. 꿈도 있었고. 나는 그냥 일반 기술자나 건축 기술자가 되고 싶었는데, 옛날처럼 시리아에서 살려면 언제쯤이 되어야 할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지금 생활이 불만족스러워.

Q

고등학교를 끝까지 못 마쳤는데, 공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압둘까들

고3 공부를 마치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은데, 할 수 없으니 걱정이야. 내년에 고등학교 공부를 할까 생각 중이긴 해. 일을 아예 접어두고 공부할까, 일하면서 홈 스터디로 공부할까 고민 중이야.

Q

대학에 가면 무슨 공부가 하고 싶은데?

압둘까들

건축가가 되고 싶은데 터키에서는 아마 불가능 할 것 같아. 일단 언어 때문에 그렇고, 학위를 받는다 하더라도 시리아인에게 일자리를 주지는 않을 거야.

 

시리아는 조국이니까 꼭 돌아가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Q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압둘까들

어머니, 아버지, 가족이 제일 소중해. 두번째는 시리아. 하루라도 빨리 시리아로 돌아가고 싶어. 어떤 상황에서도 조국이니까 시리아를 사랑해.

Q

희망이 없는데 돌아가고 싶어?

압둘까들

시리아에 희망이 없어도 내일이 아니라 오늘 돌아가고 싶어.

Q

2시간만 시리아를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면 뭘 할래?

압둘까들

가능하면 바로 우리 집에 가서, 어딘가에 앉아 어릴 때, 10대 때, 어른이 되고 나서 추억을 하나씩 다 생각하면서 쉴래. 터키에 가지고 나가고 싶은 물건은 딱히 없어. 시리아에 관련된 모든 게 다 소중하니 딱 하나만 집어 나올 수는 없어.

Q

같은 처지의 시리아 난민 20대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물어보면 뭐라고 조언해줄 거야?

압둘까들

우리 젊은 사람들은 두 가지 길이 있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대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무사히 마치는 거야. 공부하지 않을 사람들은 자기 직업에 충실하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도록 좋은 직업을 갖는 게 목표가 되겠지. 지금 상황은 시리아로 돌아갈 수 없으니 터키에서 자리를 잘 잡아야 해.

오찬호 불안의 시대 자기계발 하는 20대 대학생들의 생존전략

사회학자 오찬호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20대는 불안한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자기계발을 통한 경쟁 생존 담론을 수용하고 있으며, 여기서의 자기계발은 ‘스펙’이지 ‘인격수양’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찬호, 서강대학교 도서관

Q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싶어?

압둘까들

이제 스무살이고 20대의 시작이니까 큰 일을 하고 싶어. 개인 프로젝트. 그리고 내 삶을 크게 편하게 해줄 만한 일을 찾고 싶어. 사업이든 그냥 일이든. 바닥에서 정상까지 성공적으로 가보고 싶어.

Q

전쟁이란 뭘까?

압둘까들

전쟁이란... 죽느냐, 사느냐. 군대 두 팀이 있어서 서로 싸우고 결국 한쪽만 승리하는 것. 강한 팀만이 이기는 것. 그런데 시리아 상황에는 여러 팀이 관여되어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 몰라. 그래서 누구를 지지해야 할지도 몰라. 시리아 상황이 우리의 인식보다 어려워서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를 모르겠네.

Q

평화란?

압둘까들

서로 공감하고 사랑하고, 어렵고 힘든 시기에 서로 도와주고, 서로의 작은 문제는 괘념치 않고, 좋은 마음 가지고 형제들이나 이웃들이나 친구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자발적으로 돕는것. 그런 게 다 평화지.

Q

한국 20대에게 시리아를 설명해 줄래?

압둘까들

우리 나라는 정말 좋은 곳이야. 아름다워. 첨단 기술은 없어도 좋고 편하게 살았었어. 전쟁 중인 지금 이 순간에도 시리아 사람들의 심장에 시리아가 있어.

자기 나라를 잘 돌보도록 해. 조국이란 너무 소중한 것이야.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고 갈등을 만들려 하지 말고,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같은 이상을 세워. 그리고 개인과 나라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꿈으로 이상을 만들어.

시리아 난민 압둘까들 나사니

 

시리언트웬티스 기사 목록

① “일하고, 일하고, 일하지만 희망은 없어요”

② “그들은 이 국제분쟁을 해결할 생각이 없어요”

③ “작은 문제가 커졌고, 그게 지금의 시리아를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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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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