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인의 것은 없다는 말에 익숙해져야 해”

제 5탄, 이슬람교를 전공한 수잔 아트라쉬의 이야기.

“시리언트웬티스” 시리즈 기획의도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 시중의 주간지만큼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반도의 청년이든 저 이역만리 타국의 청년이든, 청년에게 말을 거는 법은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카메라에 담겨 있는 청년들의 답변들을 겹쳐 보니,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 보입니다. 전쟁이 나서 가족들이 피신을 왔고, 정착을 해서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까닭없이 서글프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정치/군사 세력들은 지리멸렬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의 어느 접경지대에서,
시리아의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재 / 도수정
촬영 / 도수정
번역 및 통역 / AbdulWahab Al Mohammad Agha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 난민 수잔 아트라쉬

 

수잔 아트라쉬

24세 여성. 시리아 알레포 출신.
알레포 대학 샤리아(이슬람교)학을 전공하고 2년 전에 남동생과 함께 터키에 왔으며, 이후 가족 전체가 터키로 난민이 되어 왔다. 현재 샤리아학 석사 과정을 재개할 방법을 찾고 있음.

 

원래는 이렇게 오래 살 것이 아니었는데

Q

언제 어떻게 터키에 오게 된 거야?

수잔

처음에는 남동생이랑 단 둘이 터키에 왔어. 남동생이 치대 5년 중 4년을 마친 상태였는데 동생 대학이 수도 다마스쿠스 근처에 있었어. 그런데 다마스쿠스에서 알레포로 오는 길이 전쟁 때문에 너무 위험해져서 터키에서 1 년 더 공부해서 졸업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왔었지. 그게 2년 전이었지.

터키 이즈미르는 고무보트를 타고 그리스로 넘어가려는 난민들이 많이 모인 곳이다 ⓒBBC

터키 이즈미르는 고무보트를 타고 그리스로 넘어가려는 난민들이 많이 모인 곳이다 ⓒBBC

Q

그 때는 어떤 마음으로 시리아를 떠나 터키로 오게 된 거야?

수잔

올 때는 그냥 여행으로 왔어. 계속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그래서 작은 짐만 가지고 왔어. 동생은 자기 학업을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터키에 도착한 후에 모든 상황이 바뀌었어. 국경 문은 닫혀서 시리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동생은 학업을 마칠 수 없게 되었지.

터키 가지안테프에서 동생이 갈 만한 학교를 찾아봤어. 입학 조건이 너무 어렵고 복잡한 거야. 아예 새로 1 학년으로 입학하거나 터키어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어. 그런데 터키어를 배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 터키어 배우기까지 1~2 년이 걸릴 테고, 그 사이에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해. 했던 공부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공사장이나 식당 같은 단순 노동뿐일 테고.

그래서 이스탄불이나 이즈미르에 있는 대학을 모두 찾아가 봤는데 방법이 없었어. 그런데다가 국경은 닫혔으니 고향 알레포로 돌아갈 길도 없어진 셈이 된 거야.

간도 동포의 생활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수탈로 농토가 없어진 농민들이 난민이 되어 간도, 연해주 등으로 이주해 갔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Q

처음에는 시리아를 떠나는 게 아니라 터키에 잠시만 있을 생각이었구나.

수잔

시리아를 떠날 생각 자체가 없었어. 잠시 나왔다가 돌아가려 했지. 지금 아빠는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주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버티고 계셔. 물이나 먹을 것은 없지만 그냥 시리아에 남아 계신 거야.

Q

국경이 갑자기 닫혀서 고향에 못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은 어땠니?

수잔

사실 그 당시에는 시리아로 못 돌아가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겨서 생각할 경황이 아예 없어졌어. 시리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터키에서 공부를 마칠 수도 없는 동생의 사정을 아시고 네덜란드에 있는 외삼촌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연락을 하셨어. 거기서는 숙소며 학교, 다 지원받을 수 있으니 빨리 오라고.

유럽, 그 중에서도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고 있는 독일까지 가기 위한 여정. 4500km를 가야한다 ⓒespenrasmussen.com

유럽, 그 중에서도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고 있는 독일까지 가기 위한 여정. 4500km를 가야 한다 ⓒespenrasmussen.com

그래서 동생이 나에게 모든 서류와 핸드폰을 맡기고 먼저 네덜란드로 출발했어. 나도 동생이 그곳에 도착해서 필요한 서류와 물건을 네덜란드에 긴급송달로 보내야 해서 정신이 없었어. 안타깝게도, 내 동생은 네덜란드로 배를 타고 가던 중에 사고로 죽었어. 이 문제 때문에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어. 그 이후 다른 동생, 엄마, 아빠, 모두 나를 따라 터키로 왔어.

수잔 동생 무하메드

인터뷰 이후 수잔은 동생 ‘무하메드’의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터키와 관련 없는 외국 사람들'

Q

시리아 상황이 완전히 어려워졌어. 누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수잔

시리아에 원하는 게 있는 나라들이야. 시리아 상황을 악화시키고 갈등을 유지하도록 하는 모든 나라에게 그 책임이 있어.

Q

외국뿐 아니라 시리아 내부에도 여러 세력이 있잖아. 그 중에 누가 책임이 가장 클까?

수잔

시리아 내에 있는 모든 세력은 외국과 연결되어 있어. 모두 시리아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전쟁을 하고 있어. 나의 단순한 의견으로는, 지금 시리아 전쟁에 관여하고 있는 모든 외부 국가들이 당장 손을 떼면 전쟁을 멈출 거야.

Q

시리아 사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야?

수잔

무기 들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지. 그리고 시리아 전쟁에 관여하고 있는 나라도. 손해를 입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이야. 국민만 피해를 입고 있어.

Q

국민들에겐 전혀 책임이나 잘못이 없고?

수잔

국민들은 그저 고통만 받을 뿐이야. 책임은 없어. 결론은 국민들은 고통받는데도 (죄가 없는데도) 그 책임을 떠맡은 상태야. 국민들이 가장 큰 패자야. 책임을 져야 할 쪽은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야.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곡물, 식물에게도 피해를 준 모든 사람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어야 해. 시리아를 무너뜨린 모든 나라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해. 이 모든 상황의 가해자이자 억압자이니까. 결과적으로는 국민에게는 책임이 없어.

만주 독립운동 기지 간도 용정

만주는 오래 전부터 조상들이 살던 곳이고 특히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 때문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던 땅이다. 지금은 ‘조선족 자치구’가 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Q

시리아에서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뭐야?

수잔

우리 집, 친척, 친구들, 아빠, 이 모든 게 나에게 소중해. 우리 추억, 생활 다.

Q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언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수잔

그럼 당연하지. 아마 전쟁 끝난 후에 돌아갈 수 있겠지. 물이 있고, 생활이 가능해지면 돌아갈 수 있겠지. 안전하고 기본적인 생활 요건이 갖춰줘야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전기, 물, 교육이 가능하면 조국에서 살 수 있을 거야.

다른 시리아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거야. 요르단, 레바논, 터키, 유럽, 어디에서 살고 있든 시리아에서 생활이 가능하다 생각되면 바로 돌아갈 거야. 그들이 시리아를 떠난 이유가 전기, 물, 안전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니까.

Q

옛날처럼 평화로운 시리아로 돌아갈 희망이 있을까?

수잔

그 희망으로 현재를 살고 있어. 그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어.

Q

2시간 동안만 시리아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다면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래? 들고 나오고 싶은 게 있어?

수잔

내 노트를 들고 나올 거야. 나의 모든 시리아가 그 노트에 있어. 그 2시간
동안은… 아빠랑 같이 시간 보내면서 서로 헤어져 있던 시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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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 우리 자리는 없다는 말을 듣고 사는데

Q

터키 생활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과 달라진 점이 뭐야?

수잔

사실은 시리아 문화와 터키 문화가 가까운 지점이 많아. 문화, 사람들, 언어가 그래. 예를 들어 터키 단어 중에 800개 정도가 아랍어에서 왔어. 그래도 새로운 생활이니까 살기엔 아주 어려워. 차이점은… 잘 모르겠어. 갑자기 생각하려니 대답을 못하겠어.

Q

제일 어려운 점은?

수잔

가장 큰 어려운 점은 언어야.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리아인들도 비슷할 거야. 말이 통해야 생활을 할 수 있는데 말이 안 통하니 바디 랭귀지로 의사소통을 해. 바디 랭귀지를 써도 터키인들에게 의미 전달이 안 돼. 예를 들어서 나는 터키인들에게 아랍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말이 안 통해서 터키어를 배우기 시작했어. 그 학생들이 아랍어를 제대로 배우기 전에 내가 터키어를 배우게 된 거지.

두 번째 어려움은 길 찾기야. 다른 시리아인들도 터키에서 길 찾기가 쉽지 않고, 집 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어. 그래서 많이 울기도 했어. 집 구할 때 부동산에 가서 “집을 찾고 있어요” 말 꺼내자마자 “시리아인에게는 팔 집이 없다”라는 답을 들었어. 모든 난민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터키어가 “없다”야.

Q

없다?

수잔

“시리아 사람에게 줄 집이 없다”라는 거예요. 시리아인이라서 터키에서 집을 구할 수 없어요. 대부분의 터키 사람들은 착해서 우리를 도와주고 싶어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 있긴 하지. 이유는 잘 몰라. 아마 터키 뉴스 때문에 시리아 이미지가 나빠진 것 같아. 모든 터키 뉴스에서 시리아인들은 터키 정부로부터 월급 같은 지원을 받고 있다는 말이 계속 나오거든.

옛날 동료가 나에게 진짜로 월급을 받고 있냐고 물어본 적도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시리아인에 대한 이미지가 안전하게 살려고 온 사람들에게 월급 받으러 왔다는 이미지로 바뀌어서 거부감이 생긴 것 같아. 사실 터키인들이 모르는 내용이 더 많아. 시리아인이 일자리를 구했다손 치더라도, 터키인 월급의 절반 수준 정도야. 그리고 어떤 노동 조건 관리도 없이 일하고 있고, 일의 양이나 시간도 두 배 더 많아. 시리아인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도 있고.

교포사절 공고

먼 얘기가 아니다. 간도 난민 출신이 주를 이루는 중국 동포는 흔히 ‘조선족’이라 불리며, 여전히 다양한 영역에서 ‘교포 사절’ 등의 차별을 겪고 있다. ⓒ사람인 모집공고 캡쳐

Q

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야?

수잔

학업이야. 학업을 마치는 게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해. 일자리는 나를 포함한 모든 시리아인들에게 중요해. 터키 정부가 시리아에서 받은 학위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어. 터키에 지금 의사, 약사 등 시리아 전문직 학위를 받아온 사람들이 많은데도 인정해 주지 않아.

그걸 인정해 주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 의사, 약사들이 일하면서 시리아 난민들을 도울 수 있겠지. 그저 수혜를 받는 입장에만 머물고 싶지 않아. 터키 정부가 시리아 정부의 협조를 받아 학위의 진위 여부만 확인해서 정리하고 인정해 주면, 터키 내 시리아인들의 생활 문제가 많이 해결될 거야.

Q

너의 가장 큰 걱정은 뭐야?

수잔

시리아 전쟁이 끝이 나지 않는 게 가장 큰 걱정이야. 서류가 없는 시리아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어. 국적 취득이 불가능한 채로 서류 없는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고 있는 건 가장 큰
문제야. 지금까지 1,500명 정도의 아이가 터키에서 태어났는데 시리아에 등록이 불가능해.

아마 파악이 안 되는 숫자는 더 클 거야. 이즈미르에만 등록된 시리아인의 수만 9만 3천 명이지만 사실은 14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거주권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시리아 난민 아이들은 터키로 넘어왔더라도 학교가 아닌 공장, 넝마주이 등 저임금 노동에 내몰리게 된다. ⓒTheStar

시리아 난민 아이들은 터키로 넘어왔더라도 학교가 아닌 공장, 넝마주이 등 저임금 노동에 내몰리게 된다. ⓒTheStar

Q

거주권이 그렇게 중요해?

수잔

거주권을 받는 이유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야. 거주권이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어. 이마저도 (터키 의료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어서) 6개월 기다리다가 가기도 해. 터키인 의사는 시리아인이 오면 눈으로만 진단한 후에 그냥 집으로 보내기도 해. 이게 시리아인이 받는 의료 서비스야.

거주권이 있으면 약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 그런데 시리아인에게 무료로 약을 줄 수 없다면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어. 다시 설명하고 자료를 보여주면 그때서야 무료로 약을 내어 줘. 왜 터키 정부가 약사에게 난민들도 거주권만 있으면 약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걸 설명하지 않는 걸까?

Q

너의 개인적인 걱정은 뭐야?

수잔

안전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데 시리아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고 터키 생활은 어려워. 그래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기 어려워.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을까, 학위를 받을 수나 있을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터키 정부가 시리아에서 받은 학위를 인정해줘서 우리가 여기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거주권 받는 조건이 소용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시리아로 돌아가야 할까? 시리아 내전은 과연 언제 끝날까, 이거 다 모두 내 걱정이야. 그래서 안전과 생활 모두 불안해. 아이가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받을 수 있는 교육이 하나도 없어. 처음 여기 올 때 나이가 다섯 살이라면 지금쯤은 나이가 열한 살이거든. 이런 아이들이 아무 교육도 받지 않고 이대로 성장한다면 새로운 계층이 되겠지. 그 사람들을 이대로 둔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와중에, 다른 성별이라는 이유로

Q

여성 난민이라서 특히 어려운 점은?

수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어와 다른 사회에 적응하는 게 가장 큰 문제야. 터키 사람들이 자꾸 우리에게 “왜 우리나라에 왔어요?”라고 물을 땐 당황스러워. 터키 뉴스나 언론 보도에 관심도 없이 시리아 난민들이 여행객처럼 터키에게 왔다고 생각해. 이런 사회에 여자가 적응하는 건 어려워.

결혼한 여자 난민, 임산부들도 고생이 많아. 그 분들을 도우려고 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시리아인이라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에서 아예 쫓겨난 적도 있어. 어떨 때는 반드시 통역사랑 같이 가야 해. 원래는 병원에서 통역사를 준비해야 하지만 무조건 통역사랑 같이 오라고 할 때도 있어.

그래서 어떤 단체에서는 여성 난민을 위해 통역사를 붙여주기도 하지만, 그럴 때는 병원에서 되려 그 통역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어떤 단체에서 보낸 거냐? 왜 왔냐, 어떻게 왔냐 계속 물어봐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도 해. 터키 정부에서 나를 보냈다고.

레바논 시리아 난민 여성 착취 위협

램지 조사관은 “인터뷰를 나눈 (레바논 내 시리아 난민) 여성들이 체류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도움이나 보호를 요청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이들에 대한 괴롭힘과 착취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은 매우 명백하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

Q

강간, 성폭행 위험은 없어?

수잔

어디에나 있는 문제이고 당연히 (여기에도) 있지. 전쟁 때문에 많아진 부분도 있지만 이미 일반화된 문제라 생각해.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시리아 난민들에게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게 있어. 시리아 사람들이 기초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터키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태도를 보이는 거야. 시리아 사람들이 고생 많이 하고 있다는 걸 터키 사람들도 잘 알고 있어. 터키인 친구들이 현재 겪는 시리아 사람들의 고통을 겪는다면 터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자살할 거라고 해. 시리아 국민은 강하고 지금까지 많이 참았어. 5년 동안 그렇게 큰 고통을 참았으니 대단한 사람들이라 생각해.

Q

남자들은 총을 들고 싸우기도 하는데 시리아 여성들은 어떤 투쟁을 벌이고 있어?

수잔

옛날 말 중에 ‘여자는 학교다’라는 말이 있어. 학교처럼 여자가 사람들을 교육하고 키운다는 뜻이야. 지금을 살고 있는 여성에도 필요한 말일지 몰라. 주변에 있는 아이들 자식들 사람들을 다 잘 가르쳐야 해. 그리고 올바른 방향을 이야기해 주어야 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잘 가르치면 평화가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자식을 평화롭게 기를 수 있겠지.

시리아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총을 든 사람이 아니라 평화와 올바른 이슬람이야. 이슬람이라는 이름 자체의 뜻에는 이미 평화(살람)가 있어. 이슬람의 첫 단어는 “읽으라”야. 그 의미는 ‘아는 것’이 중요한 종교란 뜻이지. 시리아 재건의 성공은 두 단어에 답이 있는 셈이야. “읽다”와 “이슬람”. 무기로는 불가능해. 이걸 깨우치는 게 곧 여자의 역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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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지점에서부터 헤매고 있습니다

Q

전쟁이란 무얼까.

수잔

고통. 가난. 상실.

Q

평화란 무얼까.

수잔

희망, 삶, 불안이 없는 것, 모든 것.

Q

같은 20대로서 한국 20대에게 시리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잔

용서와 자비, 평안, 평화, 사랑, 고유의 역사가 있는 나라, 갈등이 없는 나라. 모든 민족들이 조화롭게 살고 있고, 수니와 시아 간에 아무 갈등이 없는 나라.

(※역자 주: 원래 시리아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갈등이 적은 나라였고 서로 의식도 하지 않다가, 전쟁 후에 종교 갈등이 부각되었음.)

Q

남은 20대는 어떻게 보내고 싶어?

수잔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꾸었던 꿈을 이루고 실현할 수 있도록 살고 싶어. 공부, 일자리, 좋은 삶…

Q

시리아에서 갖고 있었던 꿈은 뭐였는데?

수잔

가족 곁에서 좋은 삶을 사는 것.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일도 하면서 석박사까지 공부도 하는 것이었어. 나는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어. 교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평화롭고 좋은 생각들을 많이 나누고 싶었어. 진짜 평범하게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어.

Q

그 꿈은 어떻게 되었니?

수잔

아직 꿈나라에 있어. 만약에… 모든 나라가 시리아에서 손을 떼면… (그 꿈이 이루어질 것 같아.)

Q

시리아로 돌아간다면 계속 시리아에서 살 생각이야?

수잔

물론 당연하지. 가끔 내가 놀랄 때가 있어. 터키 사람들이 나한테 전쟁이 끝나면 정말 시리아로 돌아갈 거냐고 물어. 나에겐 이 질문 자체가 이상해. 전쟁만 끝나면 모든 시리아 사람들은당연히 시리아로 돌아갈 거라 생각해.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땅과 마실 수 있는 물만 있다면.

Q

같은 20대 난민이 난민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 줄래?

수잔

자기 계발을 게을리해선 안 되고 스스로를 잘 돌보고, 시리아의 갈등을 만든 세력에 참여하지 말고 평화를 계속 요구해야 해.

지금은 시리아 갈등을 둘러싼 모든 국가들이 젊은이들을 죽이거나 이용하거나, 통제하려고 애쓰고 있어. 그런 상황에서도 젊은이들이 교육을 열심히 받고 스스로를 잘 돌보고 좋은 대학에 가서 자기 능력을 잘 발휘할 줄 알아야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서 나라의 재건을 도울 수 있을 거야.

Q

시리아가 다시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수잔

오래 걸릴 거야.

Q

평화를 만들기 위해 젊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수잔

아무것도 없어. 희망이 없진 않지만 허공에 떠 있을 뿐이야. 희망이 있긴 있었지. 터키에 와서 6개월 내로 시리아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못 갔고, 1년 후에도 못 갔고, 이젠 그 기다림이 5년이나 되었지.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Q

한국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잔

자기 나라 잘 보호하고, 자기 관리 잘 하고, 시간을 잘 쓰고, 다른 나라에게 국가의 통제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해. 나쁜 나라가 국민들 사이에 갈등을 만들도록 두지 마. 한 민족은, 여러 민족 여러 종파는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한 나라 국민이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JTBC

그럼에도 불구하고. ⓒJTBC

‘한 나라는 곧 한 손이다’라는 말이 있어. 그 손을 잘 보호해. 국가를 발전시키고 문화, 지식을 많이 개발하도록 해. 시리아 상황에 관심 가져 주는 모든 한국 사람들이 고마워.

Q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은?

수잔

평화(safety)를 다시 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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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시리아
헬프시리아는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해 2013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NGO 단체입니다. 시리아 난민 상황이 알고 싶으시거나 시리아 난민을 돕고 계신 분은 누구나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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