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서프라이즈] ② 그곳에 역대급 무대는 없다

단언한다. 요즘 음악 예능에 ‘레전드’ 보는 재미는 없다고.

지르지 않으면 ‘연우신’도 탈락자가 되는 세상

김연우가 ‘나는 가수다’에서 조기 탈락하며 가창력에 대한 어떤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논란은 김연우가 본래 스타일대로 중저음 위주의 힘있는 가창을 구사했던 데서 시작한다. 사람들은 비록 김연우의 방식이 고음을 한껏 내지르는 일반적인 방식보다는 가시적이지 않더라도 대단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프로그램에서의 조기 탈락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가창’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그게 아니었고, 그래서 그는 경연장을 나와야 했다.

김연우 나가수 탈락

진짜 해도 너무했지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오게 만들어 ⓒMBC 나는가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그 인식이란, 누가 더 높은 음을 폭발적으로 내지르느냐 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거의 이 기교만이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필승 카드가 되어 있다. 그 외의 구간에서 감정이 분절되지 않게 잔잔한 중저음을 잘 유지하며 이어갈 수 있느냐, 자기 성역 바깥의 발음, 억양, 호흡 등을 디테일하게 잘 소화하느냐 등은 당연하게도 간과된다. 그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재방송되고 있을 각 방송사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 속 무대는 ‘역대급’, ‘소름 돋는’ 같은 수식어를 넘치도록 부여받는다.

넘치는 것은 수식어뿐이 아니다. 그런 칭송을 받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의 개수 역시 점차 ‘증식’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판타스틱 듀오’, ‘듀엣가요제’는 일반인을 끌어다가 가수와 콜라보하게 하고,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는 아예 가수와 일반인을 경쟁 구도에 올려둔다.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유추하는 쇼도 무려 두 가지(‘히든싱어’와 ‘복면가왕’)나 있다. 이 시점에서 이렇게 말해 보면 ‘연우신’에게 바치는 지나친 허세가 될까? “까짓거 김연우는 그때 나오길 잘했지!”

 

어떤 거대한 ‘노래방 무대’

노래방 거리

ⓒ오마이뉴스

2015년 기준으로 전국에는 3만 4천여 개의 노래방이 있고, 하루에 평균 190만 명이 노래방에 간다. 노래는 이미 진작부터 많은 이에게 가장 만만하게 실천할 수 있는 예술이다. 여기서 만만하다 함은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 예술을 즐기는 층위와 문턱이 그렇게 높을 필요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격 없이 더 많은 이가 즐긴다면 그게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총량으로 이어질 테니까. 하지만 과해진 만큼이나 그 속을 채우는 무대 하나하나의 의미는, 안타깝게도, 점차 퇴색되고 있다.

혹시 음악을 잘 모른다면, 이렇게 알아두시길 바란다. 편곡이든 해석이든 조합이든, 지금의 음악 경연 프로그램 속 퍼포먼스들은 사실 평범하디 평범한 반주 위에서 진행된다. 그 곡의 내용적 중심부를 차지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클라이맥스 구간에서 “한껏 내지르는 고음” 따위의 기교 과잉이나 감정 과잉이다. 전체적인 완성도나 신선미는 없고 이런 짧은 볼거리만 있으니, 방송에 맞춰 기계적인 ‘가창’을 선보여야 하는 가수들과 노래에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고, 제작진과 방송사는 어떻게든 그 공백을 채워 뭔가를 ‘돋보이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리하여, 설령 어떤 독특함이나 평가할 점이 있다 할지라도, 모든 무대는 죄다 똑같은 수식어로 표현된다. 하이라이트 클립들을 늘어놓고 보았을 때 모든 무대가 특징을 거세당한 채 일률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버즈의 “가시”를 시작으로 이승철의 “말리꽃”, 더크로스의 “당신을 위하여”, 김경호의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로 이어지는 우리네 남정네들의 노래방 무대를 생각해 보시라. 그 ‘노래방’을 스튜디오 크기로 키우면, 놀랍게도, 그 경연 프로그램들이 나온다. 오로지 얼마나 격정적으로 부르느냐만 가지고 자웅을 겨룬다는 점에서는 똑같지 않은가.

 

본 적 있는 가수, 들은 적 있는 노래, 예상 가능한 리액션

단순히 음악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그밖의 부분에서도, 최근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은 식상하기 이를 데 없다. 선곡, 출연 패널, 보컬을 선보일 가수 등 거의 모든 요소에서 그렇다. ‘거대한 크기의 노래방’에서 유명한 곡 부르는 건 봐 주자고? 아무리 그래도, 아무 재해석도 없이 그간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불러 왔던 과거 인기곡을 그냥 다시 골라 부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나마도 그걸 ‘이미’ 가창력 검증이 된 김건모, 윤민수, 거미 같은 보컬리스트가 부르게 하는 것도 좀 그렇다. ‘나는 가수다’와 ‘불후의 명곡’은 적어도 소향이나 하현우 등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메리트를 가진 가수, 혹은 차지연이나 임태경 같은 대중가요 바깥의 카테고리 속 사람들을 섭외해 왔으니 논외로 할 수 있다. 다른 프로그램들이 이미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이들을 다시 데려와서 무대를 꾸리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좋단 말인가? ‘안전빵’을 노리는 것 이상으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복면가왕 트와이스 지효 김구라 승모근 발언

노래 듣고 말하는 거 맞아?? ⓒMBC

그런 그들을 보며, 음악적 식견은 없지만 방송에는 일가견이 있는 패널들이 과장된 감동의 표정을 짓거나 우스꽝스러운 말을 한 마디씩 건네며 분량을 만든다. 그 누가, 굳이 사람 얼굴을 가려 가면서까지 무대에 집중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에서, ’저분 승모근이 올라와 있다’ 운운하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가? 그럼에도 그들을 끊임없이 돌려가며 기용하는 이유는 사실 자명하다. 그들이야말로 무대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인상을 우습게, 예쁘게, 또는 감동적으로 포장해 이야기해 주는 데 프로이기 때문이다. 음악적 디테일을 보지 않는 우리 대중이, 누구의 어떤 무대에 대해서든, 아주 익숙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자기들 마음대로 ‘소름 돋는 레전드’?

그래서 지금의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은 하나같이 재미가 없다. 뻔한 기획, 식상한 포맷, 살면서 백 번은 더 듣고 본 듯한 노래들과 예상되는 감동으로 채워진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 아니냐고? 그건 그렇다. 그런데 다만, 그 싫은 걸 ‘레전드 명장면’으로 만드는 게 나나 당신 같은 대중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TV캐스트 역대급 검색결과

오늘도 줄기차게 올라온다. ⓒ네이버 TV캐스트

과연 그 프로그램들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고, 그 모든 휘황찬란한 수식어를 부여받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수식어는, 사실은 내용 없고 빈곤한 ‘노래방 무대’라는 점을 들키기 싫어서 습관처럼 붙이고 있는 위장일까? 이 장르가 시작한 지 채 3년이 안 됐고 그래서 달리 비교 대상이 없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만든 것을 번번이 스스로 ‘역대급’이라 부르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는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자화자찬의 반복을 원하지 않는다. 좀더 치밀하게 짠 컨셉, 누가 왜 노래해야 하는지가 명백한 섭외, 점점 수준이 올라가는 음악, 그걸 정확하게 전달하는 진행이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게 있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가 알아서 평가하고 받들어줄 텐데, 그런 건 없고 조건반사적인 ‘닭살’을 돋게 만드는 소음 같은 고음을 들려주며 ‘소름 돋는 라이브’랍시고 팔고 있으니, 그저 올라가는 면역력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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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김정원

Twenties Timeline 피처 에디터. 읽고 쓰고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의외로 꼰꼰대고 우는 소릴 자주 냅니다.